세계정세는 안중에도 없는 대중매체들

프랑스 TV 뉴스에서 사라진 국제뉴스

2022-04-04     다비드 가르시아 l 언론인

프랑스 대중매체는 대체 언제쯤 대통령 후보들에게 국제정치 이슈에 관해 질의할 것인가? 세계대전이라도 터진 후일까?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은 강박적일 만큼 강조되는 한편, 다른 국가들에 대한 뉴스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내용도 점점 빈약해지고 있다. 

 

2021년 9월 17일, 질 불로가 진행하던 프랑스 TV 채널 <TF1>의 저녁뉴스에서 장폴 벨몽도의 사망을 집중보도했다. 국민배우인 벨몽도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들과 유명한 대사가 47분 동안 방송됐다. <TF1>은 원래 국제뉴스 보도를 최소화해왔으나, 이날은 아예 국내뉴스에만 몰두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30년 전인 1991년 11월 9일, 부이그 그룹 소유인 <TF1>은 또 다른 국민배우 이브 몽탕의 사망을 ‘특집’으로 보도했었다.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다른 뉴스들로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뉴스거리들도 빈약했고, 대중이 원했거든요.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시청률이 무려 55%에 달했거든요.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TF1>의 주말뉴스 앵커였던 클레르 샤잘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1)

 

왕실 이야기로 가득 채운 뉴스

정말로 다른 뉴스거리들이 없었을까? 구소련의 잠재적 해체 과정에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1991년 11월 8일 체첸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는 소련 해체 이후의 캅카스 지역 분쟁에 대한 예고였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1944년 이후 최초로 공산당이 배제된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체첸은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였다. 그리고 불가리아의 운명에 누가 신경을 썼던가? 시청률이 <TF1>에 명분을 줬다. 2021년, 6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부이그’ 기업의 저녁뉴스는 가장 시청률이 높은 반면, 국제뉴스에 가장 적은 비중을 할애했다. 

국제뉴스는 프랑스 방송에서 밀려났다. 일례로, 2021년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14일 동안 <TF1>, <France 2>, <France 3>, <Arte>, <M6> 저녁뉴스의 오프닝을 집계한 결과를 보자. 국제뉴스를 <TF1>, <France 3>, <M6>에서 단 한 번 오프닝에서 다룬 사례가 있었다. 그것은 4월 17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배우자인 필립공의 장례식 장면이었다. 시청률을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왕실 이야기들이 뉴스를 장식했다.

도처에 널린 코로나19 사태는 <M6>에서는 6회, <TF1>에서는 8회, <France 3>에서는 9회 오프닝 뉴스로 등장했다. 방송국들은 세 가지 사건에 집중했다. 8세 여아 납치사건(<TF1>, <M6>에서 2회, <France 3>에서 1회), 여경 흉기 살해사건(<TF1>에서 1회, <France 3>에서 2회, <M6>에서 3회), 2017년 벌어진 사라 알리미에 대한 반유태주의 암살사건(<TF1>에서 1회). 프랑스 우주비행사인 토마 페스케의 우주여행은 모든 방송국에서 오프닝 뉴스로 1회 다뤘다.

광고와 시청률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 2>는 국제뉴스를 그나마 높은 비중으로 다뤘다. 영국 왕실의 부고에 대한 불가피한 추모와 더불어, 미국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유죄판결을 4월 21일 오프닝 뉴스로 방송했다. 4일 후 로랑 들라우스는 ‘코로나19 사태에 휩쓸린 인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현장르포로 방송했다.

프랑스 독일 합작 채널의 <Arte> 뉴스는 다른 민영 및 공영 방송국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14일 연속으로 국제뉴스를 첫 소식으로 다룬 것이다. 그런데 평균 70만 명의 시청자를 보유한 <Arte> 채널의 뉴스는 지금까지 소개한 5개 채널 중에서 시청률이 가장 낮다. 이 사실이 ‘프랑스 시청자들은 국제뉴스를 외면한다’는 가설을 확증하는 것일까? “시청자들이 보여주듯이 프랑스 시민들은 국제뉴스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1999~2005년에 <France 2>의 사장대행과 사장을 역임했던 크리스토페르 발델리가 단호하게 언급했다.(2) 국회유럽위원회에서 그는 <France 2>가 “프랑스 국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국제뉴스로 저녁뉴스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나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국회뉴스 사장인 크리스토페르 발델리는 변화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8년, 클로드 세리용은 다시금 <France 2>의 저녁뉴스 앵커가 됐다. 보도국장인 피에르 앙리 아른스탕의 지지에 힘입은 그는 방송국에서 국제뉴스의 위상을 회복했다. 세리용은 자신이 1990년대 초반에 제작했던 제대로 된 공영방송국의 산물인 ‘제오폴리’를 다시 진행했다. “개발도상국가들을 지원하고자 했던 당시 <프랑스 텔레비지옹> 사장 에르베 부르주는 게게 주간 국제정치방송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세리용이 말했다. 그렇게 타국의 뉴스가 과거 기록물 및 현장르포를 통해 전해졌다. 그러나 세리용은 갑작스럽게 저녁뉴스에서 밀려났고, 이후 20년 만에 다음의 결론에 도달했다. “윤리적으로는 맞는 결정이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틀렸습니다. 경제, 사회, 국제뉴스를 우선시하는 편집방침으로 인해 뉴스 시청률은 21%로 하락했습니다.” 

그 당시 <France 2> 사장이었던 미쉘 코타는 그의 결론에 동의했다. “저녁뉴스 시청률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저는 클로드 세리용에게 국제뉴스 오프닝을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그는 국제뉴스 오프닝을 철저하게 고수했습니다. <France 2> 사장이었던 저는 뉴스 시청률이 19%까지 내려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무렵 마찬가지로 저녁뉴스 앵커였던 브뤼노 마쥐르는 그때를 기억하며 말했다. “방송국 윗선에서는 1분 단위로 시청률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아른스탕과 세리용은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했다. 1998년 9월과 10월에 21회 동안 국제뉴스로 저녁뉴스가 시작됐다. 그러나 2001년 1월과 2월에는 오프닝 국제뉴스가 5회로 줄었다.(3) 

몇 달 후,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세리용이 너무 신랄하다면서 그 자리를 <TF1> 기업이 소유한 LCI 기자로 교체했다. “다비드 퓌자다스는 국제뉴스보다 프랑스 국내 정치를 더 많이 거론했습니다.” 미쉘 코타는 인정했다. “부이그 그룹은 오랫동안 국제정치에 대한 방송분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1987년 <TF1>이 민영화됐을 때 <TF1> 보도국 국장이었다. 

크리스토프 닉과 피에르 페앙은 취재수첩을 묶은 책 『<TF1>과 권력』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989년 11월 9일 저녁뉴스에서 <TF1>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베를린 장벽 붕괴를 오프닝 뉴스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4) 스타 앵커 파트리크 푸와브르 다르보르는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의 미술품 도난사건’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날, 국제뉴스는 무엇인가?

낮뉴스의 변화는 이보다 빨랐고 또한 급격했다. ‘근거리’ 뉴스의 열렬한 주창자였던 장피에르 페르노는 국제뉴스를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1999년 봄 코소보 전쟁을 보도하도록 내버려 둔 잘못을 참회한다고 밝혔다. “혼돈의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의 현장르포를 계속해서 보도하느라, 우리는 프랑스 국내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지방 특파원이었던 가브리엘 나트가 제게 전화를 해서 말했습니다. 니스에서 사람들이 지겨워한다고요. 3주 동안 똑같은 뉴스를 계속 내보내는 건 너무하다면서(...)”(5)

전성기에 페르노는 700~800만 명의 시청자들을 불러 모았다. <France 2>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2020년 말, 그는 마리소피 라카로에게 앵커 자리를 넘겨줬다. 그녀는 <France 2>에서 낮뉴스 앵커였고, 이미 <TF1> 방식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2021년 4월 14일 보도된 현장르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로제르 지역 물리네 호수에서의 송어 낚시”, “르퓌앙블레 지역민들의 자랑은 렌즈콩과 레이스 장식이다.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 세대를 추억한다.” 뉴스가 진행되는 43분 동안 국제 소식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정치적, 경제적 결정들을 이토록 잠잠하게 한 것일까? 그래서 국제사회 소식은 역설적으로 쓸모없는 것이 된 것일까? <TF1> 낮뉴스가 국제사회의 문제들을 열심히 보도하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에 마리로르 오그리가 이브 무루지와 함께 낮뉴스를 진행했었다. “<TF1> 낮뉴스는 국제 정치소식 1~2개를 거의 매일 내보냈습니다.” 그녀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1976년, 이브 무루지는 소련 크레믈린에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을 40분 동안 인터뷰했다. ‘문화재 복권’이나 ‘한파가 수목업에 끼칠 영향’을 보도하는 뉴스 사이에서 앵커인 마리소피 라카로가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국제정치에 대해 언급하던 시기로, 국제뉴스는 외국의 정치 및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들을 주로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그 후 국제뉴스는 점점 다른 주요 주제로 구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분쟁들(전쟁, 테러 등), 사건사고나 비극적 참사들, 유명인들, ‘현실에서 동떨어지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들, ‘멋진 이미지들’ 혹은 ‘화려한 이미지들’ 등을 다뤘습니다.” 사회학자 도미니크 마르쉐티가 설명했다.(6)

에티엔 렌아르트는 이런 ‘오락거리 기사’를 보도한 중심인물이었다. 1990년대에 <France 2>의 워싱턴 및 런던 특파원이었고, 2008년부터 ‘취재 및 현장르포’ 국장이었던 그는 국제뉴스를 총괄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그의 사무실은 영국 국기 색깔들로 장식돼 있었고, 2018년 메간 마클과 해리 왕자의 결혼기념 깃발이 걸려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France 2>의 국제정치 편집자이자 구소련 전문가였던 조지 보르톨리와 <TF1>의 워싱턴 및 베를린 특파원이었던 장루 드미뇌와 같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렌아르트는 그들의 방식이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들은 뉴스세트장에서 엄숙한 어조로 국제정치에 대한 논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형식면에서나 내용 측면에서 오늘날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디플로는 지긋지긋해요”

기자들의 전문용어로 외교 전문가들을 ‘디플로’라 부른다. 1981~2015년에 <France 2>의 예루살렘 특파원이었던 샤를 앙데르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와 여러 편의 다큐를 만들었다. 렌아르트의 관점에서는, 앙데르랭도 분석만 하고 현장취재는 하지 않는 ‘구세대 논평가’다. “‘디플로’는 이제 그만 하게나!”라고 <France 2> 국장이 엄명을 내렸다. “정치적 상황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앙데르랭은 회고록에서 밝혔다.(7)

이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전문가를 초대하는 대신 지도와 사진들로 꾸며진 뉴스를 내보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시청자들을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국제뉴스는 시청률을 낮추지 않습니다.” 지난 9월,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최신’ 자료를 근거로 에티엔 렌아르트가 말했다. 그녀는 국제뉴스를 원하는 시청자는 30%에 그치며 60%는 안전문제, 55%는 구매력에 대한 뉴스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답변들이 시청자들의 선호도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지난 2020년 9월 16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신임의장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유럽연합의 현 상황에 대한 첫 번째 연례정책연설을 했다. <TF1>과 <France 2>는 그것을 뉴스로 내보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의 연설이 사람들에게 흥미 있는 그림은 아닙니다.” 에티엔 렌아르트가 밝혔다. “<France 24>를 제외하면 (편집자 주: <RT France>도 7분간 이 소식을 전했음) 어떤 방송사도 그 장면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블린 지역구 ‘전진하는 공화국’ 소속 의원인 오로르 베르제가 유감을 표했다. “유럽연합 기구들이 TV 뉴스에서 실제 비중보다 적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덧붙였다. 지난 5월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5~2020년 TV 뉴스에서 유럽연합 뉴스를 다룬 비중은 3.6%에 그친다.”(8)

2019년까지 <France 3>에서 ‘유럽의 거리’ 방송을 진행했던 베로니크 오제는 유럽연합 문제들을 다루는 방송을 고수하기 위해 싸웠다. “<France 2>의 보도국장이었던 아를레트 샤보는 그 무렵 “유럽연합이 모두를 귀찮게 한다”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베로니크 오제가 회고했다. 2003~2010년 <France 2> 보도국장이었던 샤보는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명성에 걸맞게 자신의 신조를 유지했다. “유럽연합 정상들의 복잡한 정치적 쟁점들을 TV에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랑스 텔레비지옹>은 2명의 기자만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로 파견했다. 반면 “독일의 제1 공영채널인 <ARD>는 15명, 독일 라디오 TV 국제 방송인 <Deutsche Welle>는 14명, 독일의 두 번째 공영채널인 <ZDF>는 6명의 기자를 파견했는데 말이죠.”(9) 

샤보는 국제관계에 대한 무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플로는 정말 지긋지긋해요, 마치 국내 정치인들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뒤섞어 놓은 것 같아요.” 그녀는 약간은 비꼬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2000년대에 <France 3>은 유럽연합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논평 TV시리즈 ‘프랑스 유럽 익스프레스’를 방영했다. 크리스틴 오크런트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2005년 ‘유럽헌법조약 국민투표 찬성’운동을 벌였다. 심지어 매우 적극적인 연방주의자인 프랑수아 바이루 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여러분들 또한 정치 지도자들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프랑스가 마치 권력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프랑스 전체가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투표 석 달 전에 진행자와 부진행자인 세르주 쥘리에게 말했다.(10)

“16년이나 지난 방송에 대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크런트의 주장이다. 여전히 오만한 이 스타 언론인은 오늘날 <프랑스 퀼튀르> 채널의 프로듀서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거친 그녀의 주간 프로그램 ‘국제 사건들’은 프랑스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방송 채널들의 국제뉴스, 유럽연합 관련 뉴스 비중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만 찾는다면, 공공 서비스로서의 임무를 저버리게 될 겁니다.” 그녀가 힘주어 말했다. 

 

“그건 시청자들과 무관한 주제입니다”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간부들은 공공서비스 사명을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Arte> 다음으로 <France 3>이 국제뉴스에 가장 많은 방송분을 할애했다. <France 3>의 해외담당이었던 크리스티앙 말라르는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5백만 명 이상이 시청한 <France 3> 저녁뉴스가 어떤 날에는 <France 2>를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France 3> 국제국 보도원이었던 장이브 세랑이 지적했다. “공영방송국 내 두 채널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France 2>가 민영채널인 <TF1>을 따라잡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프랑스 텔레비지옹> 지도부는 <France 3> 채널이 프랑스 지역 뉴스에 집중하도록 정책을 수정했습니다.” 

그의 전 상사인 에티엔 렌아르트는 이런 변화를 강화했다. “<France 2>와 <France 3>의 보도방침은 분명히 다릅니다. 특별한 경우 외에는 <France 3> 저녁뉴스에서는 국제뉴스를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장이브 세랑이 설명했다. “10년 전 <France 3>에서 국제뉴스를 그만둔 것은 공식적으로는 <France 3> 시청자들은 국제뉴스에 관심이 없다는 <프랑스 텔레비지옹> 연구팀 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보고서를 실제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시청자상담실 담당자는 시청자들로부터 그와 상반되는 내용의 편지들을 받았습니다.” <France 3> 편집국 시청자상담실 담당자였던 마리로르 오그리는 2013~2014년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도로변에서 벌어지는 뉴스에 치우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평가절하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종종 이런 느낌을 받았다.”

2010년 가을에 <프랑스 텔레비지옹> 보도국장으로 임명된 티에리 튈리에는 국제부 기자들에게 ‘근거리’ 뉴스들로 되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저는 더 이상 보스니아 뉴스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설명을 보탰다. 아프리카 차드 호수의 급격한 사막화와 지역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France 3>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그는 평가했다. 현지 보도원 릭 라갱 부쉐는 집단학살의 원인이 된 1994년 4월 6일 쥐베날 하브자리마나 암살 테러를 재검토하러 르완다로 가겠다고 알렸다. “그건 <France 3> 시청자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주제입니다”라고 튈리에는 내뱉었다. 부쉐는 실망하기는커녕 사비를 들여 취재했다. 그렇게 해서 2021년 7월 16일, <France 24>에서 방영된 집단학살의 영웅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르완다의 의인들’이 제작됐다.

아프리카가 방치됐다면, 중남미는 버려졌다. “브라질은 스포츠”, “아이티는 자연재해”, “콜롬비아는 내전” 같은, 고정관념을 반영(혹은 강화)하는 관점에서 방송될 수 있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프랑스 국립 시청각연구원(INA)의 연구는 이런 관심의 결여를 확인해줬다. (11) INA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7%에 달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보도는,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TV 뉴스의 2~5%에 그친다. 그러나 2011년 아랍지역 혁명을 보도할 당시에는 최고 12%까지 점유했다.”(12) 아시아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이 러시아, 시리아, 이스라엘, 터키의 뒤를 이어 5위다. 그러나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세 국가의 인구는 17억 명이다)는 거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세아니아는 호주와 스포츠 중계만 겨우 방송된다.”(13) 

반면, 북미관련 뉴스는 넘쳐난다. 이미 2012년 12월 INA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경제 최강국인 미국은 TV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해가 갈수록 미국은 <TF1>, <France 2>, <France 3>, <Canal+>, <Arte>, <M6> 채널 저녁뉴스의 국제소식을 장악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35년 전 민영화 되면서 <TF1>은 모든 해외지국을 점차 닫았지만, 미국만은 예외다. <TF1> 홍보부 간부들이 외쳐대는 것처럼 “2020년 1월 1일부터 <TF1>은 430여 건의 미국 현지르포와 생중계 뉴스를 방영했다. 대선 무렵에는 상당수의 특집방송도 보냈다.” 

 

러시아는 중동보다 반인권적인가?

 

정규직 특파원 팀을 해외로 파견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방송사 채널들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외부 기자들과 협업을 선호한다. 이 경우 방송 건수별로 수당을 책정하면 된다. 게다가 필요할 때마다 해외 특파원들과 해외지사의 이미지들을 채널들이 공유할 수 있다. <M6> 편집국에서는 단 한 명의 특파원이 해외에서 전일제로 일한다.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인 장바티스트 브뤼노는 모든 해외현장에서 일한다. <Europe1>(라가르데르 그룹 소유 채널)의 뉴욕 사무실은 2020년 없어졌다. “이곳이 문을 닫은 후 해외에서 일하는 100% <Europe1> 기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지난 가을 39년 근무했던 <Europe1> 을 떠난 올리비에 사맹이 말했다. 

2021년 8월 30일과 9월 2일에 <TF1>과 <France 2> 저녁뉴스는 뉴욕 지방에서 50여명의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 ‘아이다’로 시작했다. 며칠 동안 라디오와 TV의 일반 채널들이 이 소식을 전했다. 지구 반대쪽에는 중동에서 예멘이 전쟁 중이었다. 지난 11월 UN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 무려 37만 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미국 허리케인과 달리, 예멘 전쟁에 관한 발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한 국가가 강대국인지 약소국인지에 따라 기사화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14) 시청률이 높은 채널들 중 <M6>만 이 전쟁에 대해 52분간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을 뿐이다.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특별 취재’에서 방영한 현장르포는 2/3 분량을 해외에서 취재했다.)

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한 쪽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15)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프랑스 외무부에서 주시하는 다른 독재정부들에 비해, 대중매체에서 한층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중동 걸프만 지역에서 서방국가들의 주된 동맹국이자 프랑스 군수산업의 주요 상대국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 간에 정부노선을 추종한다. 그 결과, 러시아는 거의 매번 인권 문제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서방 진영과 무조건적으로 동맹을 맺는 중동 왕국들이 러시아보다 더 인권을 중시하는가? 그렇지 않다. 러시아에 대한 편견은 신문에서 한층 더 심각하다. “크렘린궁은 호인과도 같다. 패망한 정치인들, 실의에 빠진 퇴직자들, 발상이 메마른 분석가들에게 유용한 곳이다.” <Europe1>의 국제논평가인 뱅상 에르부에가 던진 말이다. “언론매체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러시아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습니다.” 미쉘 코타가 말했다. 

9명의 상주 해외 특파원과 ‘방송 분량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150명의 프리랜서 신문기자들’을 갖춘 라디오 프랑스는 매일 1시간 30분을 국제뉴스에 할애한다.(16)(17) 그에 비해 자랑할 수준은 아니지만, <France 2>는 1960년대 프랑스라디오TV(ORTF) 시절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해외지국이 있다. 6개의 해외지국인 워싱턴, 런던, 베를린, 로마, 브뤼셀, 예루살렘에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추가됐다. <프랑스 텔레비지옹>이 출자한 아프리카 지국은 2016년 여름에 외부 업체로 넘어갔다. 당시 <프랑스 텔레비지옹> 채널의 인사국장이었던 엘비르 무아요는 “세네갈 수도인 다카르 지국을 닫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8) 무아요는 “과거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역사적인 해외지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오늘날 이런 조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텔레비지옹>과 마찬가지로 공영방송인 <BBC>의 해외지부를 보자. 전 세계에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4배 이상에 달하는 해외지부를 갖추고 있다. 빈약한 것은 해외지부 뿐이 아니다. 편집국의 뉴스 선정은 한심할 지경이다. 지난 3월 26일, 르완다 집단학살에서 프랑스의 책임과 관련된 뒤클레르의 보고서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제출됐다. 그러자 <France 2>는 마지못해 저녁뉴스에서 이를 다뤘다. 그리고 뉴스가 끝나갈 때 “코로나19사태와 동떨어진 천국 같은 잔지바르 해변”에 4분을 할애했다. “윗선에서는 종종 동물과 관련된 뉴스를 요구합니다. 마지막 남은 흰 코뿔소들의 운명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흥미롭긴 했지만, 마치 ‘동물농장’을 보도하는 것 같았습니다.”(19) 2010년대에 <France 2>의 ‘아프리카’ 특파원이었던 제라르 그리즈벡이 이렇게 말했다.

 

우울한 뉴스에 질린 시청자들을 위한 서비스

이런 ‘이국에의 향수’는 점차 시간과 채널을 가리지 않고 TV 뉴스에 확산됐다. 낮이나 저녁이나, <France1>이나 <France 2>이나 가리지 않고 말이다. 2021년 2월 1일, <TF1>에서 질 불로가 아이슬란드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 저녁처럼, 저는 여러분들의 탈출 욕구를 충족시켜줄 아이슬란드를 소개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이슬란드가 지구의 가장 깊숙한 곳과 연결돼 있다고 합니다. 간헐온천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점점 오락성만 추구하고 정치성을 배제한다면, 이것을 과연 뉴스라고 할 수 있을까?

아를레트 샤보는 TV 뉴스의 ‘탈출 욕구’를 열렬히 변호했다. 샤보는 “그림엽서처럼 아기자기한 주제들은 정보를 제공한다”라며,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쁜 그림들 사이에서 경제적이고 환경적인 쟁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파마산 치즈 제조과정을 취재하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풍경을 즐기는 이는 샤보만이 아니다. <TF1>, <France 2>, <M6> 모두가 지난 가을 로마에서의 ‘멧돼지 습격’ 현지르포를 방영했다. “기상천외한 이미지와 더불어 이런 부류의 소소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M6> 보도국장인 스테판 장다름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비드 퓌자다스는 그의 전성기 시절, 워싱턴에 상주하는 <France 2> 해외특파원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했다. “요즘 심각하게 우울한 뉴스들만 있네. 야외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한숨 돌릴 만한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 의미도 있는 것으로.” 그러자 그와 친한 동료 알랭 드 샬브롱은 “미국 콜로라도에서 급류타기 팀을 꾸린” 복음주의 목사와 함께 현장르포를 제작했다. 이 르포의 기획의도는 “신이 7일 만에 세상을 창조한 사실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라고 한다.(20)

“<TF1>은 프랑스와 관련 있는 해외뉴스를 우선적으로 취재했습니다.” <TF1>의 취재기자인 질 파로가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프랑스 군인들을 따라다녔다. 그는 말리 북부의 키달 지역에서 ‘바르칸 작전’을 수행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출전에 동반했다. 현장르포 ‘출정’은 2021년 10월 20일 저녁뉴스에서 방영됐다. 마찬가지로 <TF1>에서 프랑크 오르테가는 2015년 3월 18일,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의 바르도 박물관에서 자행된 이슬람국가의 테러를 보도했다. 오르테가는 “<TF1>은 희생자들 중에 프랑스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현장으로 보도팀을 보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프랑스 방송사 편집국들은 유럽경제대국이자 주요 프랑스정치상대국인 독일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은 듯했다. <RTL> 보도국장인 자크 에누는 지난 9월 독일 총선 관련 프랑스의 보도에 대해, “자국(프랑스)에 파급효과가 적은 선거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독일 정치계에 큰 변화는 없었고, 우리는 프랑스 시청자들이 이 선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TF1>은 예루살렘 지국을 닫았다. <프랑스 텔레비지옹>은 예루살렘 지국을 유지했지만, 형식적이었다. “윗선에서는 제게 지역 관광지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끝이 없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보도하는 것보다야 훨씬 유쾌한 작업이긴 하지요.” 앙데르랭이 한탄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확실히 편집국장들에게 지겨운 소재다. “유혈사태 기간 외에는, 저녁뉴스 편집장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에 대해 무심했습니다. 그 무관심도 일면 이해는 됩니다. 이 전쟁은 오래전부터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으니까요.” 작년까지 <France 2>의 예루살렘 특파원이었던 도미니크 데르다가 말했다. 

과거에는 해외 특파원들이 비교적 자율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편집국장들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몇 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이었던 알랭 드 샬브롱은 “편집국장들은 뉴스에 넣을 것과 뺄 것을 결정한다”라고 지적했다. 도미니크 데르다는 “국제인권감시기구(HRW)가 고발한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해 저녁뉴스 편집국장은 관심이 없다”(21)라며 유감을 표했다. <프랑스 앵테르>와 RTL 인터넷사이트 외에, 라디오 및 TV 뉴스는 HRW의 고발 보고서를 다루지 않았다. 데르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 초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유태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에 대한 현장르포, ‘권력에 오른 유태인 우월주의자’ 촬영 허가를 받아냈다. 

팔레스타인 쪽에서 260명이 사망하고 이스라엘 쪽에서 13명이 사망했던 작년 봄의 단기 전쟁으로 인해 연기된 현장르포는 작년 6월 16일 방영됐다. 그러나 <France 2>가 아닌 <France TV info>(canal 27)에서였고, 그것도 밤 11시 뉴스에서였다.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언론인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1) ‘Le 9 novembre, Claire Chazal inventait l’information continue 1991년 11월 9일, 클레르 샤잘은 계속되는 뉴스를 개발했다‘, <France Inter>, 2015년 9월 8일.
(2) ‘Quelle place pour l’Union européenne dans les médias? 대중매체에서 유럽연합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Commission des affaires européennes du Sénat>, Paris, 2021년 9월 23일. 
(3) ‘Arrêt sur images 이미지에 멈춰있기’, <France 5>, 2002년 6월 2일. 
(4) Christophe Nick, Pierre Péan, 『<TF1> un pouvoir <TF1>과 권력』, Fayard, Paris, 1997. 
(5) Jean-Pierre Pernaut, 『33 ans avec vous 당신과 함께 한 33년』, Michel Lafon, Neuilly-sur-Seine, 2021.
(6) Dominique Marchetti, ‘Les détours du monde (세상의 우회로들)’, 『Nouveaux Dossiers de l’audiovisuel』, 제10호,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 Bry-sur-Marne, mai-juin 2006년 5월~6월.
(7) Charles Enderlin,『De notre correspondant à Jérusalem 예루살렘의 특파원』, Seuil-Don Quichotte, Paris, 2021.  
(8) Fanny Hervo, et Théo Verdier, 『Élections européennes et Covid 19 : quelle visibilité de l’Union européenne dans les journaux télévisés?』, Fondation Jean Jaurès et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 Paris - Bry-sur-Marne, mai 2021. 
(9) ‘Rapport d’information relatif à la prise en compte des sujets européens dans les médias audiovisuels 유럽관련 이슈들의 TV 보도방침에 대한 프랑스 국회보고서’, Assemblée nationale, Paris, 20 octobre 2021년 10월 20일.
(10) Serge Halimi, 『Les nouveaux chiens de garde 새로운 경비견들』, Liber Raisons d’agir, Paris, 2005. 
(11) ‘Les Amériques du sud’, INA Stat, 제 52호, 2018년 12월. 
(12) ‘L’Afrique dans les JT: retour sur une décennie d’info (2011~2019) TV 뉴스 속의 아프리카: 지난 10년간의 뉴스 (2011~2019)’, INA Stat, 제 57호, 2020년 6월. 
(13)  ‘Zoom sur l’Asie et l’Océanie dans les JT (2013-2017) TV 뉴스속의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들여다보기’, INA Stat, 제 50호, 2018년 6월. 
(14) Téo Cazenaves, ‘Loin du cœur, loin des yeux 마음에서 멀어지면 눈에서도 멀어진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3월호.
(15) ‘Yémen: immersion dans une sale guerre 더러운 전쟁에 파묻힌 예멘’, ‘Enquête exclusive 특별 취재, <M6>, 2021년 12월 5일. 
(16) Médiatrice de Radio France, ‘Bureaux et journalistes correspondants à l’étranger 해외지국 및 특파원들’ 2 mars 2020년 3월 2일.  
(17) David Garcia, ‘France Inter, écoutez leurs préférences 프랑스 앵테르, 그들의 부유층 편향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8월호.
(18) Comité d’établissement de France Télévisions, 2016년 9월 22일.
(19) 1976~2016년 <TF1>, <France 2>, <France 3>에서 방영된 동물관련 방송. 
(20) Alain de Chalvron, 『En direct avec notre envoyé spécial les tribulations d’un grand reporter 특파원 생중계. 위대한 특파원의 고뇌』, L’Archipel, Paris, 2020. 
(21) ‘Un seuil franchi: Les autorités israéliennes et les crimes d’apartheid et de persécution 위험수위를 넘어서다: 이스라엘 지도자들, 인종차별 범죄, 박해’, Human rights watch, New York, 2021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