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깃함 몇 척 때문에!

2022-04-04     발리아 카이마키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리스어판 발행인

내가 어렸을 때, ‘그리스-프랑스-동맹(Grèce-France-Alliance)’이라는 슬로건은, 각운을 이루며 다채롭게 변주됐다. 특히 그리스와 프랑스의 지도자, 콘스탄틴 카라만리스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와 프랑수아 미테랑이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때 말이다.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도 그리스의 영웅이 될 뻔 했다. 올랑드는 그리스를 유럽연합(EU)에서 완전히 몰아낼 채비를 마친 유럽 ‘협력국’들에 맞서 그리스를 지지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영웅이 ‘될 뻔’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어른의 부재(Adults in the room)>(2019)처럼, 곧 프랑스 정부가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요즘 이 슬로건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프랑스산 최첨단 프리깃함(호위함) 구매 결정 때문이다. 그리스가 최근 프랑스와 체결한 협정은 전함 구매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평화 시기에는 물론 전시에도 연대하는 ‘영원한’ 동반자 지위로 격상하는 내용을 추가로 담고 있다. 협정문 제 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엔 헌장 제 51조에 의거해, 양국 중 한 국가의 ‘영토’에 무력 공격이 발생한 사실을 양국이 상호 인정할 경우 필요시 무력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해 서로 지원한다.”

그리스 언론은 이 새로운 ‘세기의 협정’이 그리스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평가하느라 시끄러웠다.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프랑스산 프리깃함의 전력을 과대평가하고 막대한 구매 비용을 과소평가하며(비용 마련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열렬히 호응했다. 몇몇 눈에 띄는 헤드라인을 예로 들자면 ‘2대 가격으로 3대 구매!’, ‘그리스와 프랑스, 역사를 다시 쓰다’, ‘마크롱과 미초타키스의 역사적인 계약’ 등이 있다. 그 중 단연코 압승은 ‘술탄에게는 악몽 같은 조항’이다. TV 방송사들은 그리스가 ‘메이드 인 프랑스’ 프리깃함으로 터키를 능가할 것인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경쟁적으로 내보냈다. 퇴역 장군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이 전함들을 활용해 에게해에서 터키보다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으스댔다. 물론 이 협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편집장 일보(Efimerida ton Syntakton)> 1면 기사, ‘무장은 했으나 빈털터리’는 이 협정의 맥락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리스는 터키와의 다음 대결에 대해 환상을 가질 법하다. 프랑스가 에게해에 프리깃함 2~3척만 더 파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스에 무력 지원을 하는 것은 프랑스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얼마 전 호주에서 프랑스 잠수함 건조사업이 취소되는 수모를 당한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프리깃함이 프랑스가 탈식민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프리카 해안에 먼저 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협정이 유럽의 진정한 자주 국방의 시초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유럽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사실을 잊고서 말이다. 유럽의 진정한 자주국방은 무기계약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정치적 성찰과 우선순위, 동맹, 목표, 계획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경제와 외교 방면에서 호주와 미국에 호된 일격을 당한 프랑스의 눈물을, 그리스 혼자 닦아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재정에 깊은 주름이 패인 그리스

<뉴욕타임스>가 공동 주최한 아테네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어느 쪽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며 프랑스와의 방위 협정체결이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미국과의 기존 동맹 재검토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협정은 오랜 역사를 가진 양국 간 국방 협력체제의 성과”라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번 협정은 그리스의 향후 국방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국경 수호와 주권 보전 목적의 군사적 지원을 예고하는 동맹일 뿐만 아니라 적절한 가격으로 현대식 함대를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협정이다. 이 협정은 유럽의 방위 독트린을 재검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시킬 것이다. 나토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는 적극적인 나토 회원국으로 새로운 전략 개념 '나토 2030' 우선순위 수립에 참여하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받은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는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와 미국이 상호방위협정 5년 연장에 서명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가 자신의 시 ‘위험한 것들(Dangerous Things)’에서 (시리아 대학생) 미르티아스를 묘사한 표현처럼 그리스의 선택은 “일부는 이교도적, 일부는 기독교적”이다. 

그리스의 프랑스산 프리깃함 구매 협정이 촉발시킨 뜨거운 논쟁은 작년 10월 7일 목요일 국회 비준까지 이어졌다. 3일 만에 입장을 표명한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정당 시리자(Syriza)는 협정 비준 지지에 조건을 내걸었다. 국제법이 정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EZZ)을 포함시키도록 앞서 언급한 협정문 제 2조를 수정하고, 프랑스가 사헬 지역에서 벌이는 작전과 같은 ‘공동의 이익’ 보호를 위한 합동 군사 배치를 제한하기 위해 제 18조 10항을 수정하는 것이 시리자가 내건 조건이다. 

시리자는 성명을 발표해 “군사적 억제력 강화를 항상 지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특히 오늘날과 같이 터키의 적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시리자는 이번 협정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공공재정 관리에서 일말의 신임도 얻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관리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시리자는 이와 같은 입장 표명으로 그리스와 프랑스 양국을 상대로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운신의 폭을 확보했다.

아무리 완곡하게 표현해도, 그리스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다. 시리자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가계에서 걷은 세금으로 남긴 재정 흑자는 빛바랜 추억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수요 강세와 원자재 투기로 인해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다. 게다가, 그리스 국영전력회사(DEI) 민영화까지 악재가 겹쳤다. DEI 지분의 17%가 곧 민영화되면, 국가 지분은 51%에서 34%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리스가 시련의 계절에 또 직면했다. 

 

 

글·발리아 카이마키 Valia Kaimak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리스어판 발행인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참고문헌>
(1) Samuel Dumoulin, ‘Nous sommes tous des Grec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3월호.
(2) Mohamed Larbi Bouguerra, ‘En Grèce, l’austérité au filtre des eaux usé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