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희극으로 바꾸려면
정부가 예산 균형을 잡기 위해 공공서비스를 헐값에 매각하고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천연자원을 펑펑 낭비할 때, 공동재산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앵글로색슨 문화에서 형성돼 이탈리아처럼 중앙집권화되지 않은 국가에서 개발된 ‘공유재산’ 개념은 공공재산과 사유재산 간의 모순을 넘어설 것을 제안한다.
국가가 철도와 항공로, 병원을 개인에게 매각하고, 상수도를 양도하거나 대학을 매매할 때, 국가는 공동체 재산의 일부를 수용한다. 개인 소유의 부동산에 도로나 다른 공공 구조물을 건설하려 할 때 진행하는 토지 수용과 매한가지다. 정부는 민영화 과정에서 자신의 자산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에게 비례적으로 소유권이 있는 자산을 매각한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밭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자기 소유가 아닌 재산을 강제로 취득한다.
공권력, 현 시점에서 정부가 결정한 모든 민영화 사업은 모든 시민에게서 공유재산에 대한 그들의 몫을 빼앗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법정 점유하는 경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자유주의 헌법의 전통은 사유재산 수용에 대한 보상금 지급 제도를 제정해 국가로부터 사유재산을 보호하지만, 신자유주의 국가가 공동체의 재산을 민간에 양도할 때는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법률 조항, 아니 헌법 조항도 없다.
공유재산을 자본에 팔아먹는 국가
현재 국가와 초국적기업 사이의 긴장관계를 살펴볼 때, 이런 비대칭성은 법률적·정치적으로 시대착오적 오류다. 무책임한 헌법도 현 정부가 만인의 재산을 거리낌 없이 팔아서 경제정책을 지원하도록 방치했다. 게다가 공권력이 주권을 보유한 국민을 섬겨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물론 신하(정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위임인(시민)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신용 있는 관리자이지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주인이 아니다. 한 번 양도되거나 손상 또는 파손된 공유재산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유재산은 현 세대를 위해서든 후손을 위해서든 재생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되찾기도 어렵다. 현 세대는 우리가 과반수로 찬성해 사악한 신하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만, 후손에게까지 그들이 하지도 않은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공유재산 문제는 일단 헌법적 형식에 입각하고 있다. 정치 체제는 미래에 등장할 정부의 자유의지를 대신해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1)
그러므로 공유재산을 사유재산뿐 아니라 공공재산에 대한 대안으로서 법률적 독립성을 갖춘 범주로 분류하는 이론적 구상을 발전시키고, 여기에 전투적 방어 능력을 갖춰줘야 한다.(2) 오늘날 신하가 게임의 악습(세금이 아니라 부채에 의존하는 정책)에 물들었고, 이는 신하가 자신보다 막대한 힘을 지닌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좌지우지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더욱 필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글로벌 금융가에게 빚진 상황에서 정부는 게임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명목을 앞세우며 모든 제재권 밖에 있는 공유재산을 탕진한다. 정부의 이런 논리는 정작 지속적이고 치밀한 정치적 선택으로 나타난 현 상황을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공유재산에 대한 바른 인식, 다시 말해 공유재산이란 공동체의 기본권과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라는 인식은 문서로 정한 것이 아니다.(3) 이 인식은 전세계에서 수없이 패배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벌여온 투쟁을 통해 만들어졌다. 대다수의 경우, 공유재산의 진짜 적은 충실한 보호자가 되어야 할 국가였다. 사사로운 이익(예를 들어 다국적기업의 이익 등)을 위해 공유재산을 수용하는 일도 기업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결국 약자의 처지)에서 정부가 기업이 강요하는 민영화, ‘무분별한’ 토지 개발, 경영정책을 실시한 탓이다. 현재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모습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우리 재산 탕진할 수 없게 해야
근대 서구의 전통은 권위적이고 절대권력을 지닌 정부로부터 사유재산을 보호하면 된다고 봤던 역사적 시기에 국가-사유재산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공익성, 법정 영역(국가의 다른 권력이 명령이나 규칙의 형태로 개입할 수 없는, 법제자에게만 단독 결정권을 주는 사안), 보상금 등 헌법적 보상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제 국가와 민간 분야의 긴장관계가 변화한 오늘날에는 공공재산 역시 장기간에 걸친 보호와 보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의 일을 국가에 일임한 기존 틀 안에서는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국가로부터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만을 생각해온 자유주의 체제의 발상 자체가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수도와 공립대학, 먹을거리를 지키고, 국토를 훼손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공유재산을 수용하거나 훼손하는 정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막연하다. 이런 정책에 대한 바른 인식을 소개하거나 일련의 투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도구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유재산은 신자유주의 국가와 민간 권력에서 공적인 것을 지키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긴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개념은 2009년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이 공유재산 연구, 특히 저서 <공유재산에 대한 경제적 지배구조>(4)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질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국제사회의 키워드가 됐다. 그러나 개념의 가치는 확립됐지만 중요한 잠재력은 묵살됐다. 학계는 오스트롬의 업적을 높이 샀지만, 법률적·정치적 분야에서 공유재산을 중심에 두는 혁신적 결론을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인정하진 못했다.
자유주의 체제 안에서는 불가능
미국 생물학자 개럿 하딘이 이론화한 ‘공유지의 비극’(5), 즉 개인이 공공자원을 자유롭게 이용하면 공공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해 그 존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주류 학계에 공유재산을 전형적인 치외법권 지대로 여기도록 했다.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경제학자와 사회과학 전문가들은 다양한 음식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뷔페에 초대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최대한 많이 먹으려는 모습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론을 정립했다. 게걸스런 호모에코노미쿠스는 최소한의 시간 동안 최대한의 음식을 소비한다.
오스트롬은 이런 이론이 실제 사회와 인간의 행동양식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보여줬다. 그렇지만 이 모델이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두 기관의 행태를 정확히 보여준다는 정치적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기업과 신자유주의 국가 모두 사실상 공유재산에 대해 뷔페에 초대받은 허기진 손님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원을 최대한 획득하려고 한다. 기업은 관리자와 주주들의 이해에, 국가는 국민과 정치지도자의 이해에 떠밀려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이데올로기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은폐한다.
공유재산 담론이 학계의 주류로 편입된 이상 경제위기 이후에 유행한 ‘지속 가능성’이나 ‘녹색경제’와 마찬가지의 구호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과학혁명’ 이후의 세대는, 이전 세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사용할 수단도 없던 엄청난 자산이 담긴 상자를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6) 초기 근대사회(16~18세기)에서는 법과 기술, 경제의 결합을 통해 상자 속에 있는 자산(석탄·석유·가스·지하수), 우리가 생산할 수도 없고 수백만 년에 걸쳐서야 겨우 자연스럽게 재생산되는 천연자원을 탕진하며 이용하는 것이 ‘과학’인 상상계를 만들었다. 지난 300년간 이 상상계에서 자원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과학이 뿌리를 내렸고, 우리는 이를 ‘경제’라고 불렀다.
헌법적 모순 폭로하고 넘어서야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볼 때, 공유재산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향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공유재산을 넘기는 일은 당연하다. 돈, 개인 소유의 부동산, 급여 생활 등 자본 축적 과정은 상품화를 가져왔고, 인간의 발명품은 토지, 생애, 질적 교류 등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재생산될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상업적으로 전환시켰다.
카를 마르크스는 16세기 영국의 공동 토지 약탈을 예로 들어, 원시적 자본축적이란 자본주의 발전의 첫 번째 단계라고 기술했다. 자본축적으로 산업혁명을 촉발하기에 충분한 자금이 마련됐다. 마르크스의 정의를 확대하면, 세금과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인한 결실로 확립된 공유재산, 즉 교통과 공공서비스, 통신, 도시 개발, 문화유산과 자연 경관, 학교(더 넓게는 문화·지식과 연관된 모든 것), 결국 방위산업과 교도소까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모든 구조를 사유재산화하는 일도 원시적 자본축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7)
공유재산을 중심에 놓는 정치적 흐름의 전반적 변화는 기술·법률적 측면에서 이뤄질 전복의 초석이 될 것이다. 결국 이는 사유재산을 공유재산보다 더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헌법의 전통에서 이어진 모순을 폭로하고, 비난하며, 뛰어넘는 것이다.
글 / 우고 마테이 Ugo Mattei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비교국제법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헤이스팅스 법과대학 비교국제법 교수이자 <공유재산, 마니페스토>(라테자·바리로마·2011)의 저자.
번역 / 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이런 보호 조처가 필요하지만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1946년 공공서비스 독점을 헌법으로 정했지만 추후 민영화되는 것을 막진 못했다.
(2)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코먼웰스>(Common Wealth), 하버드대학교출판국, 2009.
(3) 우고 마테이·로라 네이더, <강탈: 법의 지배가 불법일 때>, 블랙웰, 옥스퍼드, 2008.
(4)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재산에 대한 경제적 지배구조, 천연자원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드뵈크 출판사, 2010(초판본 1990).
(5) 개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사이언스>, vol.162, n°3859, 워싱턴, 1968년 10월.
(6) 카를로 M. 치폴라, <세계경제학사>, 펭귄, 런던, 1962.
(7) 엘리자베타 그란데, <세 번째 파업>(셀레리오·팔레르메·2007). <신제국주의>(레프레리오르디네르·파리·2010) 중에서 데이비드 하비의 ‘몰수를 통한 자본축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