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가지 이념으로 진단한 프랑스 대선의 특징

정치성향의 ‘MBTI’

2022-05-02     장이브 도르마장 외

“소득과 연령이 높은 이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했다”라고 이번 프랑스 대선의 양상을 단편적으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유럽 통합, 백신, 이슬람, 환경 문제와 관련된 유권자의 입장은 ‘체제’에 대한 불신의 수준 못지않게 투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는 2017년에 시작된 정치 무대 대격변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대선가도에서는 팽팽한 삼각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기존의 ‘좌우대립’ 양상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사회당(PS)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와 대중운동연합(UMP)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앞에서 유권자층은 좌우로 갈렸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층을 광범위하게 흡수해 당선됐다. 마린 르펜의 지지층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좌파나 우파, 어느 쪽에도 편승하지 않는다. 또한, 진영논리 자체에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 정치계의 흐름을 좌우한 진영논리가 표심을 움직인 후보는 장뤼크 멜랑숑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프랑스 사회를 가르는 심각한 ‘분열’이 정치성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론적 주장에 기초해, 정치성향을 분류하는 체계를 개발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유권자들이 이슬람이나 페미니즘, 환경이나 부의 재분배 등에 관한 기존 견해를 쉽사리 바꾸지 않듯, 개개인의 서로 다른 견해가 모여 확고하고 잘 변하지 않는 여론 층을 형성한다. 여론 층을 알면 유권자의 구성, 후보자의 이미지, 선거의 질을 피상적으로 해설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삼각구도를 만든 이념적, 정치적 원인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몇 달에 걸쳐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총 세 가지 분열이 정치 지형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3가지 분열, 16가지 유형

첫 번째 분열은 다문화와 국가 정체성의 대립이다. 문화와 정체성에 따라, 이민자 문제와 이슬람의 위상을 비롯해 사회문제와 환경문제에 관한 유권자의 판단이 좌우된다. 두 번째 분열은 ‘사회 체제’와 연관된다. 주로 안정, 현상 유지를 원하는 집단과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으로 나뉜다. 때에 따라서는 ‘서민 대 엘리트’라는 양극단의 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분열은 경제문제와 관련이 깊다. 시장친화적 관점에서 사회정책과 재분배를 요구하는 집단과 ‘복지’ 및 공공지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집단이 대립한다. 개인이 속한 이 3대 분열 양상과 급진적인 정도에 따라 우리는 유권자층을 다음과 같이 총 16가지 ‘집단’으로 분류했다. 

각 집단은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음의 16가지 이념적 성향을 나타낸다. ‘다문화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 연대주의자, 중도층, 저항세력, 정치 비관여층, 사회공화주의자, 절충주의자,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정치 기피층, 유럽연합 통합 회의론자, 사회애국주의자, 복지 반대층, 국가 정체성 수호론자’.(1) 

마크롱 지지층은 주로 ‘서민 대 엘리트’ 간의 분열을 중심으로 집결됐다. 이 양극단의 유권자들은 ‘급진적’ 변화 요구에 반대하며, 현상의 전반적인 체제에 찬성하는 ‘온건주의’를 원한다. 이미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당의 자유주의자 분파와 알랭 쥐페 계파의 중도우파를 통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알랭 쥐페의 오른팔 격이었던 에두아르 필리프는 마크롱 정부의 총리로서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이들 유권자의 공통점 또한 사회학적인 특징을 띤다. 여론조사 기업의 대표이자 정치학자인 제롬 생트마리는 ‘엘리트 세력’이라는 적절한 명칭을 부여한 바 있다.(2) 실제로 이들 중에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 관리층이 두드러지게 많다. 

하지만 이 지지층은 모두 유럽연합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정치적인 공통점도 지닌다. 마크롱 대통령은 2005년 유럽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당시에 ‘찬성표’를 던졌던 유권자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친유럽적’인 이 집단의 주축은 2017년부터 마크롱을 지지해온 중도층이다(득표수의 80%). 마크롱을 중심으로 결집한 엘리트 세력을 나타내는 집단은 바로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집단이다. 도식적으로, 2000년대에 ‘사회민주주의자’ 집단은 ‘사회당’의, ‘자유주의자’ 집단은 ‘대중운동연합’ 지지층의 주축이었다. 전자는 온건 좌파 지식인을 대변하고, 후자는 온건 우파 지식인을 대변한다. 전자는 <르몽드>를 구독하며, 후자는 <르 피가로>를 구독한다. 

‘사회민주주의자’ 집단은 2012년 대선에서 올랑드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고, ‘자유주의자’ 집단도 대거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단 한 번도 같은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던 이 두 집단은 엘리트 연합을 구성해 오늘날 ‘마크롱파’의 기초가 된 중도층에 합류했다. 최근 대선에서는 그동안 우파 후보를 고정적으로 지지해온 집단까지 합류하면서 이 엘리트 세력의 통합이 완성됐다. 불과 5년 전까지도 ‘자유주의자’ 집단은 프랑수아 피용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1차 투표에서부터 마크롱을 지지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Les Républicains)은 5년 전 사회당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따라서 마크롱 대통령의 첫 5년 임기가 끝나고 나면 ‘구시대’ 정치 지형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와 정체성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민주주의자’ 집단과 ‘자유주의자’ 집단은 서로 반대편에 서있다. 전자는 재분배와 공공 서비스를 옹호하지만, 후자는 세금제도와 공공부문에 대한 기대가 낮다. 전자가 문화적 진보주의자라면 후자 중 상당수는 동성결혼 반대 시민단체 연합인 ‘마니프 푸르 투스(Manif pour Tous, ‘모두를 위한 시위’란 의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다. 

하지만 대선에서 이런 차이는 합일점과 공감대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노란 조끼’ 운동은 마크롱을 지지하고 나선 자유주의 우파의 변화를 (코로나19 위기로 집회를 하지 못하게 된 시점까지) 일시적으로나마 촉진했다. 진보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중도층, 자유주의자뿐 아니라 보수주의자들마저도 로터리에 모인 시위대처럼 ‘포퓰리즘’과 ‘새로운 제도’를 거부했다.

코로나19 위기도 서민과 엘리트의 분열을 활성화해 유사한 양상이 전개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백신을 신뢰하는 ‘지각 있는 사람들’과 보건방침 및 백신접종에 반대하는 ‘무책임한 음모론자들’의 대립을 부추겼다. ‘백신거부자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것이 전략’이라고 했던 발언이 바로 그 예다. 서민층과 일부 저학력층이 백신패스 반대 시위에 참여하며 정치적 분열을 거듭하는 동안, 가장 학력이 높은 집단과 가장 부유한 집단은 정부 조치를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서민과 엘리트 집단 간의 첨예한 정치적 분열로 16개 집단 중 6개 집단, 즉 다문화주의자, 연대주의자, 저항세력, 정치 기피층, 유럽연합 통합 회의론자, 사회애국주의자들을 아우르는 ‘대규모 정부 비판 집단’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민층이나 서민에 가까운 중산층 출신으로, 2019년 노란 조끼를 대대적으로 지지했고, 투표 기권율이 높은 편이며, 대다수가 나머지 두 후보인 멜랑숑이나 마린 르펜을 지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자신들이 주로 불신하는 엘리트 계층이 구현하는 ‘체제’에 가장 격렬히 저항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선거의 승리, 정권의 승리로 이어질까?

사회학적으로 이 ‘반(反)마크롱’ 전선은 대부분 2005년 유럽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당시 ‘반대표’를 던졌던 유권자층이자, 노동자와 종업원, 농촌 지역 주민이며, 국민전선이나 ‘급진 좌파’의 지지층이다. 그러나 이 집단은 국가 정체성 문제로 첨예하게 분열돼 있다. 따라서, 선거로 통합하거나 연합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린 르펜이 에리크 제무르의 공세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전체 집단 중 가장 서민적인 집단에 해당하는 오랜 지지층의 결집 덕분이었다. 국경을 중시하고 이민자들과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이들은 ‘마크롱’으로 대표되는 ‘국립행정학교 출신 관료, 투자은행 경력, 친유럽주의’ 같은 각종 ‘체제’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보인다. ‘보잘 것 없는 평민들’이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실언에 특히 실망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보호주의 노선을 더 이상 걷지 않는 좌파를 점차 멀리하며, 다문화주의 가치관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르펜은 자신의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에리크 제무르 후보의 급진주의를 활용해, 그동안 환심을 사지 못했던 유권자들의 지지를 성공적으로 끌어냈다. 우파, 농촌 주민, 노년층, 중산층에 속하면서 온건적이지만 대대적인 변화는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린 르펜은 보수 우파 지지 후보 가운데 1위(37%)를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멜랑숑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급진 좌파의 나머지 표심을 끌어모았다. 프랑스는 적어도 좌파가 소멸 중인 이탈리아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급진 좌파의 대다수는 대도시에 사는 고학력 중산층, 서민 구역 거주민, 노조에 가입된 임금 노동자, 특히 아리에주에서 알프드오트프로방스주에 이르는 랑그도크 지방의 저항적이고 대안적 시각을 가진 유권자들이다.(3) 고학력층, 청년층, 소수의 서민 구역 주민, 좌파 노조와 활동가들도 1차 투표에서 멜랑숑에게 집중 투표했다. 이런 상황은 2011년에 프랑수아 올랑드가 당선된 사회당과 좌파 급진당 경선을 앞두고 논란을 산 좌파 성향의 싱크탱크 테라 노바(Terra Nova)의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4)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지지층은 사회정의와 환경에 대한 요구, 정체성을 내세운 후보 거부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또한, 사회와 제도적 문제에서 유독 입장이 나뉜다. 멜랑숑을 지지하는 유권자층의 역학을 살펴보면, 급진좌파를 구성하는 세 집단인 다문화주의자, 연대주의자, 그리고 저항세력이 눈에 띈다. 이 세 집단의 특성은 멜랑숑이 2017년부터 제안했고 2012년에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이는 공약에 잘 녹아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관용적이고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체제’와 로비 활동, 제도권에 저항한다. 또한 재분배를 적극 옹호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부유층 과세를 중시한다. 

사회당과 유럽생태녹색당의 공약은 이 결정적인 세 집단에 관한 불복하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의 공약과는 상대가 안 됐다. 이 세 집단은 멜랑숑이 지난 가을, 투표 의사 12%(선거 초기 과소평가된 수치)를 획득해 경선을 통과하는 기반이 됐다. 선거 초반에 판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사회민주당이 과거에 겪은 위기와 녹색당의 야니크 자도(Yannick Jadot)가 일시적이나마 경험한 생태사회주의 실패를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더 ‘온건’하고 ‘현실적’인 좌파 진영을 구성하려 했지만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었다. 좌파의 주요한 5개 집단 중 4개 집단은 멜랑숑(다문화주의자, 연대주의자, 저항세력)이나 마크롱(사회민주주의자)을 지지했기 때문에 안 이달고(Anne Hidalgo)와 야니크 자도 후보에게 돌아갈 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인물이나 의사소통이 아니라 ‘정치 지형’이었다. 선거운동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지지층 중복 구도가 결과를 판가름했다.

사회민주당을 지지하던 유권자의 상당수(24%)도 결국 불복하는 프랑스 후보에게 투표했다. 최고 득표자 당선 투표 방식에서 삼자 구도가 연출되면 세 진영 중 한 진영은 2차 투표에 진출하지 못한다. 멜랑숑을 지지하는 집단은 경제와 사회 체제의 대립에서는 마크롱과 대치되고, 문화와 국가 정체의 대립에서는 르펜과 대치된다. 이런 격차 때문에 1차 투표 이후 공약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낳았고, 멜랑숑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상당수가 두 최종 후보 어느 쪽에도 표를 던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당선 후보는 소수 진영 혹은 소수의 유권자 지지만을 기반으로 선출되는 셈이다. 세 개 진영으로 나뉜 프랑스의 대선 형국에서는 패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기 때문이다. 40년 전에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규합하고자 했던 ‘프랑스인 3명 중 2명’은 요원한 일이 됐고, 이제는 ‘프랑스인 3명 중 1명’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5) 

이런 정치 지형에서 마크롱은 선거에서는 이길 수 있었지만, 과연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글·장이브 도르마장 Jean-yves Dormagen
몽펠리에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겸 클러스터 17 회장
스테판 푸르니에 Stéphane Fournier
정치분석가 겸 클러스터 17 직원
기욤 트리카르 Guillaume Tricard
클러스터 17 대표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16가지 집단에 관한 상세 설명은 웹페이지 참조, https://cluster17.com
(2) Jerôme Sainte-Marie, 『Bloc contre bloc. La dynamique du macronisme 세력 대 세력. 마크롱주의의 역학』, Le Seuil, Paris, 2019.
(3) Jérome Fourquet, ‘L’archipel électoral mélenchonniste 멜랑숑을 지지하는 집단’, 장조레스 재단, 2022년 4월.
(4) Bruno Jeanbart, Olivier Ferrand, 『Gauche, quelle majorité électorale? 좌파의 지지층은 누구인가?』, Terra Nova, 2011년 5월.
(5) Valéry Giscard d’Estaing, 『Deux Français sur trois 프랑스인 셋 중 둘』, Flammarion, Pari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