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주권’을 되찾으려는 프랑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은 대통령 취임 직후, 아미앵을 방문해 생산 이전으로 폐쇄위기에 처한 월풀 건조기 공장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년 후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산업정책에서 마크롱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의 화려한 언변에 비해 성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2년 전부터 코로나19가 전 분야를 강타해왔다. 특히 산업 부문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에서 프랑스는 자국의 힘으로 백신을 개발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다. 게다가 응급상황에서 마스크를 구하지도 못할 만큼, 산업자원을 충분히 동원할 힘도 없었다. “(팬데믹은) 마치 전기 충격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계획 상임위원회(Haut-commissariat au Plan, HCP)가 최근에 발표한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1) HCP는 1946년 드골 장군이 설립한 기관으로, 2006년에 폐쇄됐지만 2020년 가을 마크롱 대통령의 손에 부활했다. “탈산업화가 불러온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염병이 닥쳤을 때 프랑스는 마스크, 산소호흡기, 의료장비 및 핵심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보건위기는 전환점의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해가 갈수록 중국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제조공장이 됐다. 2020년,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8.7%를 차지했다. 16.65%인 미국보다 한참 앞서 있으며 유럽연합과 차이는 훨씬 크다. 유럽 주요 4개국(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생산량을 모두 합해도 11.8%에 지나지 않는다. 수치가 시사하는 바는 자명하다. 1990년에만 해도 미국과 유럽은 전세계 반도체의 80%를 생산했다. 2020년이 되자 유럽의 생산량은 9%로 줄었고, 미국도 겨우 1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아시아에서 생산된다.
프랑스에서 이런 현상은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국내 총생산에서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23%에서 2019년 13.5%로 줄었다. 유럽연합의 평균(19.7%)보다 낮으며, 산업 비중이 감소한 인접 국가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낮다. 이탈리아(2019년 기준 19,6%)와 스페인(2018년 기준 15.8%), 특히 독일(2019년 기준 24.2%)과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프랑스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팬데믹과 관련해, 마크롱 대통령도 “스타트업 국가”에 대한 연설에서 “경제주권”을 언급했다. 2020년부터 그는 “프랑스에서 생산하려는 의지, 그리고 독립을 되찾고자” 앙제 인근 소재 콜미 호펜(KolmiHopen) 그룹의 마스크 공장에 도움을 청했다. 2020년 여름, 대통령은 해당 주제를 다시 언급하며 단언했다. “해외로 이전했던 생산을 국내로 재이전해, 프랑스 영토 내 생산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보건과 산업주권은 다가올 부양책의 양대산맥이 될 것입니다.” 2020년 9월, 마크롱 대통령은 ‘프렌치 테크(French Tech)’ 주요 인사들 앞에서 “유럽의 디지털 주권”을 옹호하며 자신의 계획을 고수했다. 이어 12월 크뢰조 소재 프라마톰 원자력발전소에의 연설도 표현만 바뀌었을 뿐, 핵심은 그대로였다. “원자력은 프랑스 독립 전략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전환점”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일각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의 정치 행보가 20년 전 장피에르 슈벤느멍의 시민운동(Mouvement des Citoyens)을 연상시킨다며, 이런 주권 행사는 원상복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 중 한 명이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올리비에 마를레인데, 그는 2017년부터 정부의 산업정책을 주시하는 의회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마크롱 정권 하의 프랑스에서 산업정책은 상업은행과 정부의 합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국가전체의 산업적 이익보다 자본의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정책입니다.”(2)
베르시 정부청사(마크롱이 2014~ 2016년 올랑드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근무한 건물) 4층에 자리한 아녜스 파니에뤼나셰 산업부 특임장관(장관을 보좌해 특수한 주요 영역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 -역주)의 사무실에서 이에 대해 묻자, 특임장관은 긍정적인 인상을 풍기려 애썼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가 됐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고자” 2017년부터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 목록을 펼치며 자화자찬했다. 법인세 삭감, 노동법 개정, PACTE법(경제성장과 기업변화를 위한 실행계획) 등이 그것이다.
그만큼 “예측 불가능한 노동법”, “행정 복잡도”, “프랑스를 향한 부정적인 편견”을 알리는 신호도 커졌다. 파니에뤼나셰는 파리병원연합(AP-HP)과 신탁은행을 거친 고위 공무원으로, 현 정부의 민간 부문 금융정책의 중심인물 중 하나다. 그는 과거 자동차 부품제조사 포레시아의 고위직을 맡았던 경험 덕분에 ‘기업계’에도 정통하다.
“최악의 독재국가에 계속 의존할 수 없다”
정부는 공표 효과(공개 발언을 통해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역주)를 증대시켰다. 1월 중순경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21개 외국기업이 참여한 40억 유로 상당의 투자 프로젝트 유치를 자축했다. “경제주권”을 외치는 대통령의 연설 뒤로 신속하게 정책변화가 일어날 조짐은 없다. 파니에뤼나셰는 만족한 기색이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 취임이전 2000~2016년 사이에, 제조업 일자리 100만 개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일, 특히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 덕분에 3만 7,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새로 생겼습니다.” 시류를 뒤집었다고 하기엔 소박한 결과다.
마를레 하원의원은 이런 종합평가에 신랄한 답변을 내놓는다. “외국 투자자들이 찾는 ‘매력’에 맞추는 것이 마크롱 정부 정책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일시적으로 쉽게 자본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그만큼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정계에서 외국 자본 투자라는 주제는 대통령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마크롱이 경제부 장관이었을 무렵, 그는 프랑스 그룹을 인수하려는 다수의 외국기업에 허가를 내줬다. 대표적인 사례로 알스톰(Alstom),(3) 미국 FMC와 합병된 석유화학기업 테크닙(Technip), 스위스 홀심(Holcim)이 인수한 시멘트 제조사 라파르주(Lafarge), 그리고 핀란드의 노키아(Nokia)에 매각된 정보통신그룹 알카텔 루슨트(Alcatel Lucent)가 있다. 매번 인수합병 작업은 국가와 장관의 주재 하에 ‘평등한 결합’처럼 진행됐다. 하지만 실상 포식자의 먹이가 된 셈이었다.
2년 전부터 정부는 ‘몽트부르 법령’을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몽트부르 법령은 외국 자본을 통제할 길을 열어준 법으로 국방, 보안, 수도, 에너지, 교통 등 전략 산업에 해당하는 활동은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 이제 새로운 전략 산업으로 우주항공, 데이터 호스팅, 언론, 식량안보, 양자물리학, 에너지 저장, 바이오기술이 추가됐다. 이런 새로운 조처를 했음에도 공표 효과의 논리가 여전히 모든 전략의 핵심에 있는 듯하다. “정부는 정말 민감한 사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퀘벡 그룹 쿠쉬 타르가) 까르푸를 인수하지 못하게 막았으면서 (2018년에 중국 그룹이 반도체 기업) 린센스를 인수하도록 놔둔 걸까요?” 2013~2015년 모든 부처를 아우르는 경쟁정보활동(CI)의 대표였던 클로드 르벨이 의문을 제기한다. “소규모 산업에 대한 주권과 전략 혁신에 더 큰 지원이 필요한데도 지금 우리의 주권은 방어적이기만 합니다.”(4)
우리에게 현 정부의 성과를 자랑한 뒤, 파니에뤼나셰는 “생산에 대한 투자가 우리의 약점”임을 인정한다. 그는 “부양책이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원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동맹국을 불문하고 온갖 종류의 권모술수가 용인되는 국제사회의 난투극에서 프랑스는 조금씩 산업정책에 대한 방어를 해제하며 30년 전부터 ‘서비스 경제’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마를레는 1990년대 초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사회당 소속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의 측근의 말을 기억한다. “이제 산업은 끝났다. 세계화는 전문화된 경제를 필요로 한다. 영국이 금융에 주력했듯 우리는 서비스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팬데믹 초기부터 연설 내용은 바뀌기 시작했다. 정책 담당자들이 2021년 11월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열린 ‘메이드인프랑스 박람회’에 대거 참석했다. 국가 전략을 대표하는 이들의 참석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경제전문지 <샬랑주(Challenges)>는 이런 현상이 “새로운 단일 대세론”으로 부상할까 우려한다. 녹색당 대선후보 야닉 자도 또한 산업정책에 문제를 제기한다. “프랑스 주권은 우리 계획의 핵심 사안입니다. 오늘날 최악의 독재국가, 중국에 계속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5)
몽트부르 전 재경부 장관이 대선후보 자리에서 사퇴하기 전, 산업주권은 단연코 그의 선거 프로그램 주요 논거 중 하나였다. “유럽연합의 선을 넘는 부조리한 규칙들 때문에 정부 사업의 자금 조달 및 활용이 막혔습니다. 우리는 이런 규칙을 거부할 것입니다.”(6) 그의 발언은 “프랑스 독립”을 되찾기 위해 유럽연합을 거스르겠다는 의지를 밝힌 과거의 장뤽 멜랑숑과 닮았다. 한편, 정계의 반대편에선 극우파 대선후보 에릭 제무르가 “국격의 실추”를 막고자 투지를 불태운다. 그는 미테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로익 르플로크프리장의 우정 어린 충고에 귀기울이며, 산업계 동향 파악에 나섰다. 르플로크프리장은 화학기업 론풀랑크와 석유화학그룹 엘프아키텐의 회장 자리를 거친 인물이다.
제무르는 자신의 대선출마 영상에 서슴없이 콩코드 비행기와 TGV열차를 집어넣었다. 프랑스 산업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이 두 가지는 마크롱이 “2030년 프랑스 계획안”을 소개하는 영상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형 여객선 ‘프랑스호’와 원자력 발전소 이미지가 그 뒤를 따른다. 마크롱은 산업 분야의 취약성을 깨닫고 “프랑스 및 유럽 내에서 미래의 챔피언을 배출하고자” 300억 유로 상당의 투자계획을 준비 중이다. 전자부품, 저탄소 비행기, 바이오 의약품, 해저탐사, 주요 원자재 공급 안정화 등의 산업이 우선순위로 선정됐다. 산업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300억 유로는 충분한 금액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7년 전부터 반도체 분야에 1,80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20년 시진핑 주석은 향후 6년간 전략 기술 산업에 1조 4,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한국은 향후 10년간 반도체 산업에 최대 4,5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제조업을 하찮게 여긴 대가는?
원대한 전략을 수립하는 동안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이 해당 주제를 조명하도록 애쓰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아미앵 시내에 자리한 카페에서 전직 월풀공장 노동자 9명과 만났다. 아미앵 월풀공장은 2017년 대선의 상징이 된 곳이다. 그는 공장을 재가동하려던 시도가 실패했던 과거를 서슴없이 언급했다. 마크롱의 정적이자 솜 지역 하원의원 프랑수아 뤼팽은 “마치 시골에 온 산타클로스 같군요.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선물을 나눠주려 오셨다”며 풍자한다. 2017년 9월, 마크롱은 월풀 공장에 찾아가 카메라 앞에서 공장을 재가동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야권에서는 마크롱이 상업은행 출신 은행가라는 점을 지적하며 제조업계 일자리 창출이 어려울 것이라 주장할 심산이다. 마크롱도 익히 아는 바다. 지난여름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원자력 사업 부문(전 알스톰), 특히 아라벨 터빈 사업을 인수하도록 지시했다. 알스톰에서 생산하던 아라벨 터빈은 EPR 원자로에 설치되는 증기터빈이다. 마크롱이 자신의 첫 패를 내보인 셈이다.(7) 이런 결정은 알스톰이 탈산업화의 상징적인 기업이었던 만큼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인수를 기념하고자 마크롱은 최근 터빈이 제조되는 벨포르로 향했고, 알스톰을 자신에게 긍정적인 상징으로 바꿔놓았다. EDF그룹은 인수비용으로 10억 유로를 넘게 지불했다.
그런데 그사이 미국이나 중국 제조사가 제조기술을 모방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제 와서 터빈 제조업을 인수한 것이 과연 유용한 결정일까? 알스톰은 프랑스 산업 추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알스톰이 팔리다니요, 이건 재난입니다!” 1991~1992년 프랑스 총리를 지낸 에디트 크레송의 발언이다. 사회당 출신 크레송 전 총리는 앞서 1980년대에 ‘산업 재편성’ 부서의 장관직과 산업도시 샤텔로의 시장직을 거쳤다. 그는 공직에 있었던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회상한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관료들은 이제 제조업은 끝났고, 서비스업이 미래라고 말하곤 했죠.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독립을 유지하려는 국가라면 자국 제조업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제조업을 하찮게 여겼어요! 하지만 제조업과 서비스는 공생관계입니다. 중국인들은 존중받으려면 제조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설립 초기 알스톰은 모든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1945년 이후 철도, 수력터빈, 터빈 교류발전기, 송전 사업을 아우르는 전력산업공사 콩파니 제네랄 델렉트리시테(Compagnie générale d’Électricité, CGE) 그룹이 모든 분야에 걸쳐 활동하며 2차 대전을 막 벗어난 프랑스의 산업주권을 지켰다. 독일의 지멘스나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8) 일본의 게이레쓰, 혹은 나중에 등장한 한국 재벌 삼성(9) 등 외국의 여타 거대그룹처럼 말이다. 1920년대부터 CGE 창립자 피에르 아자리아는 “프랑스가 산업에 집중하는 것이 강력한 미국과 독일 기업에 맞서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독일과 미국이 손을 잡으면, 다른 국가들의 독립성은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10)
1970년대에 CGE는 생나제르에 있는 아틀랑티크 조선소와 합병됐다. 대형여객선 ‘프랑스호’가 탄생한 조선소다. 정부 주도하에 대규모 산업 지원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프랑스는 ‘영광의 30년(1945~1975)’으로 불리는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자신감을 키웠다. 1980년대 초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알스톰 공장에서 TGV가 나왔다. CGE는 새로운 원자로 건설사업을 따내지는 못했지만(사업은 프라마톰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돌아갔다),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터빈 교류발전기 제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CGE는 알카텔 알스톰으로 개명한 뒤 미국 통신회사 ITT(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를 인수했다. 영광은 절정에 이르렀지만 이내 실리콘 밸리에서 새로이 부상한 공룡기업들에 빠르게 추월당했다.
알스톰, 로스차일드, 그리고 마크롱
1995년,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세르주 추루크가 그룹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앙브루아즈 루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로, 루는 전후 시대 프랑스 자본주의의 중심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추루크는 알스톰과 알카텔을 재정적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산업의 비중을 낮추는 ‘파블레스(Fabless : Fabrication와 Less의 합성어)’ 전략을 펼쳤다. 다시 말해, 생산은 전부 하청에 일임하는 ‘공장 없는 기업화’ 전략이다. 프랑스 내 자리한 20여 개의 공장을 포함해 총 100여 개의 공장을 거느리던 알카텔은 그 중 12개만 남기려 했다. 끝이 다가왔다. 2014년에 알스톰은 제너럴 일렉트릭에 팔렸다. 1년 뒤, 알카텔 루슨트는 핀란드 기업 노키아의 손에 넘어갔다. 알스톰이 (123억 5,000만 유로에) 제너럴 일렉트릭에 팔렸을 당시 이득을 본 파리 자본가들이 많았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보자. “1958년 드골 장군이 집권했을 때, 그는 주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쟁정보활동(CI) 전문가이자 파리 경제전쟁 학파의 수장인 크리스티앙 아르뷜로가 말했다. “그러나, 자본가와 대기업 경영자들은 드골의 계획이 실행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 계획을 비판하며 협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언론과 베르시의 고위 간부들, 유럽연합까지 국가의 모든 개입을 세계적인 흐름에 어긋나는 것으로 취급했다. 이들 대부분이 정부사업 수주 등으로 얻는 이익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마크롱파 기득권층은 프랑스의 독립성을 정책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정치제도가 아닌 은행 시스템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올리비에 마를레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마를레는 2019년, 알스톰 매각을 “부패한 계약사건”이라고 국립금융검찰국에 제소했다. 몽트부르는 당시 상황에 대해 “파리 전체가 넘어간 셈”이라고 묘사했다.
마를레와 몽트부르, 이 두 사람은 알스톰 매각이 변호사, 상업은행가 및 파리 금융센터 관련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알스톰 측에서 변호사사무소 10개소, 자문은행 2개소(로스차일드 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홍보대행사 2개소를 동원했다. 제너럴 일렉트릭 측에서도 자문은행 2개소(라자르, 크레디 스위스), 홍보대행사 하바스, 다수의 변호사사무소를 동원했다. 이 무수한 관계자들을 모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름 아닌 마크롱 대통령일 것이다.
우선 알스톰의 최고경영자 파트릭 크론은 로스차일드 상업은행의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의 측근이다. 게다가 파리에 있는 로스차일드 그룹사 출신 두 명은 마크롱의 측근으로, 현재 엘리제궁 비서실에서 보좌관을 맡고 있다. 매각 당시 알스톰의 고문이었던 기업변호사 장미셸 다루아, 사노피 회장 세르주 뱅베르가 그들이다. 뱅베르는 파트릭 크론을 사노피 제약그룹의 경영진으로 영입했다. 마크롱은 다루아와 뱅베르를 프랑스 경제성장자유화위원회에서 처음 만났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손에 설립된 위원회는 위원장 자크 아탈리의 성을 본따 ‘아탈리 위원회’로 불린다.(11) 다루아와 뱅베르는 마크롱의 로스차일드 은행 합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2)
이뿐만이 아니다. 파리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회장 베르나르 무라는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에게 열띤 지지를 보냈다. 인물관계도를 완성하려면, 피에르 도네스베르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 프랑스 재계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보험 중개법인 시아시 생토노레의 회장이자 파트릭 크론의 친구인 도네스베르는 2016년 재경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직접 받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됐다. 마크롱 후보는 대선 캠페인 자금 1,100만 유로의 융자를 은행에 신청한 상태였는데, 도네스베르가 결정적인 순간에 시아시를 통해 은행융자를 보증할 보험사를 알선해줬다. 이런 절묘한 도움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게, 도네스베르는 “순전한 우연”이었다고 단언한다. “우연히 만난 마크롱의 지인에게, 마크롱이 대출 승인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베이루, 마크롱의 새로운 노선
마크롱은 이제 대대적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2020년 9월, 그는 자신의 아군인 중도파 정치인 프랑수아 베이루를 국가계획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베이루는 ‘프랑스 탈산업화’라는 주제에 대해 단호한 인물이다. 그는 “산업이 버려진 것은 프랑스의 높은 인건비 때문이 아니라,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탈산업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13)
국가계획 상임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생산설비 재구축”을 “무역전쟁”으로 묘사한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제품만을 재구축 전략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는 게 좋겠다. 2019년도 기준 무역적자 금액이 500만 유로를 초과하는 914개 항목을 분석해 프랑스의 약점을 찾아냈다. 그 중 다수가 개발도상국의 경제불균형 문제와 유사하다.” 2021년도 프랑스 무역적자는 847억 유로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에너지와 제조품의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프랑스는 세계 최대의 감자 수출국이지만 감자칩, 감자퓨레가루 등 가공식품 부문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린다.
“한편, 위원회는 소비 사회 개발과 함께 수많은 프랑스 가전제품 제조사가 1960~1970년대 전성기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가전제품의 무역적자는 2012년 대비 40%나 증가했다. 적자 금액은 32억 1,000만 유로에서 44억 6,000만 유로로 늘었다.”
프랑스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90년 6.3%에서 2019년 3%로 반 토막 났다는 사실을 다루던 중, 금기시되던 단어가 보고서에 등장했다. 생산설비 구축을 위한 새로운 “계획경제”다. 멜랑숑이 “친환경 계획경제”를 제안했던 2017년 대선 때부터 계획경제가 다시 공론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오늘날, 불복하는 프랑스당 대선후보는 “국가주권 수호와 동시에, 친환경 경제를 위한 필수산업이 무엇인지 검토하려면, 국내로 생산이전을 담당하는 관리기구를 창설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2,000억 유로를 투자해 “생산방식을 바꾸겠다”라고 약속한다.(14)
이런 제안은 프랑스 최대 고용주 연합인 프랑스 기업운동(MEDEF)까지 사로잡았다. MEDEF 회장 조프루아 루드베지외는 “과도한 세계화”, 그리고 “제조기술을 잃어버린 몇 개 분야”를 개탄한다.(15) 이제 기업가는 “경제와 산업에 대한 주권 수호”를 희망한다. 그는 최근에 발표한 저서(16)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21세기 경제에서 계획경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건 드골 장군의 당시 경제정책에는 없었던 변수다. 바로 기후변화다. (…) 자유주의 기업가라면 놀랄지도 모르겠으나, 필자는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팬데믹과 별개로, 중국과 미국의 경쟁구도는 ‘결정권자’들이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재고할 계기를 주고 있다.
글·마르크 앙드벨 Marc Endeweld
기자. 저서로 취재 내용을 담은 『영향력의 지배 아래 놓인 프랑스 L’Emprise. La France sous influence』가 있다.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Reconquête de l’appareil productif : la bataille du commerce extérieur 생산설비 재구축: 무역전쟁’, Haut‐Commissariat au Plan 국가계획 상임위원회, Paris, 2021년 12월 7일.
(2) Olivier Marleix,『Les liquidateurs. Ce que le macronisme inflige à la France et comment en sortir 청산인들. 프랑스가 짊어진 마크롱주의,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Robert Laffont, Paris, 2021년.
(3) Jean-Michel Quatrepoint, ‘L’Europe en retard d’une guerre industrielle(한국어판 제목: 유럽이 산업전쟁에 뒤쳐진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6월호.
(4) <Challenges>, Paris, 2021년 4월 15일.
(5) <La Tribune>, Paris, 2021년 9월 8일.
(6) <Journal du Dimanche>, Paris, 2021년 9월 4일.
(7) ‘EDF s’apprête à racheter les activités nucléaires de GE GE의 원자력 사업 인수를 준비하는 프랑스 전력공사’, <La Tribune>, Paris, 2021년 8월 27일.
(8) Olivier Vilain, ‘Comment General Electric a réinventé le capitalisme américain, 미국 자본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G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11월호.
(9) Martine Bulard, ‘Samsung ou l’empire de la peur(한국어판 제목: 삼성, 공포의 제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7월호.
(10) Jacques Marseille,『Alcatel Alsthom, Histoire de la Compagnie Générale d’Électricité 알카텔 알스톰, CGE의 역사』, Larousse, 1992년.
(11) Serge Halimi, ‘Jacques Attali, magician 마술사 자크 아탈리’, <La valise diplomatique>, 2008년 1월 25일, www.monde-diplomatique.fr
(12) Marc Endeweld,『l’Ambigu Monsieur Macron 마크롱의 양면성』, Flammarion, 2015년.
(13) <Marianne>, Paris, 2021년 11월 6일.
(14) 『L’Avenir en commun』, Seuil, Paris, 2021년.
(15) ‘Geoffroy Roux de Bezieux face à Jean-Jacques Bourdin en direct 장자크 부르댕에 맞서는 조프루아 루드베지외(생방송)’, <BFM TV>, 2020년 3월 6일.
(16) Geoffroy Roux de Bézieux, 『L’intendance suivra ! De Gaulle et l’économie 정책결정에 따른다! 드골과 경제』, Robert Laffont, Paris, 2021년.
망상가
“우리는 아주 빠른 시일 내 공장 없는 기업이 되길 희망합니다(…) 2001년 6월 26일, 런던에서 알카텔 회장 세르주 추루크가 하청생산의 이점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2년 후 알카텔 임직원은 15만 명에서 5만 8,000명으로 줄었고, 120개에 달하던 공장은 30개만 남았다. 알카텔은 2015년 노키아에 매각됐다. |
경영자의 꿈
“공장 없는 기업 모델에서 물리적인 생산설비는 나약함과 동의어이며, 생산을 이전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공장을 치워버린 기업의 핵심 모토는 바로 유연성과 유동성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자리마저 비워버린 기업에서 노동자는 마치 연극의 일시적인 단역 같은 존재가 된다.” - 경제학자 알랭 디리반, <르몽드>, 2002년 11월 26일.
“최고의 산업정책은 바로 정책의 부재다.” - 경제학자 개리 베커, <비즈니스 위크>, 1985년 8월25일.
“우리 두바이인은 여러분이 (산업) 정책이라고 부르는 계획경제의 쓸모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를 믿습니다.” - 하마드 부아민, 두바이 상공회의소 소장의 2011년 발언. 경제학자 로버트 웨이드가 인용(‘Le retour des politiques industrielles 산업정책의 귀환’, 연구 노트,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 2011년 4월 13일.) |
환경오염 이전하기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세계은행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산업을 후진국으로 이전하라고 장려하면 어떨지요? (…) 환경오염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쳐 발생하는 손실은 질병 및 사망률 증감을 분석해 비용으로 측정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받아들일 수 있는 유해한 오염의 한도를 정해 놓고 물가가 낮은 나라, 즉 저임금 국가에 할당해야 합니다. 유독성 폐기물을 저임금 국가로 치워 놓아야 한다는 경제 논리는 제가 보기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 래리 서머스, 세계은행 내부 문서에서 발췌(1991년 12월 11일), <이코노미스트>지가 ‘환경오염 소비자’(1992년 2월8일)를 통해 폭로한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