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메데인이라는 장애물
보수주의의 보루가 좌파로 기울 가능성
콜롬비아는 2022년 5월 29일 대선을 앞두고 있다. 좌파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가 당선되면, 콜롬비아에 최초로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격렬한 사회운동이 재점화됐지만, 콜롬비아 통치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재계와 마피아 세력의 결탁이 엄청난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수도 보고타 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 메데인의 상황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리오네그로 국제공항은 인구 250만 명의 도시 메데인의 관문이다. 도로를 타고 공항을 나오면, 오리엔테 세르카노(Oriente cercano, 스페인어로 근동(近東), Near East)로 불리는 푸른 산악지역으로 길이 이어진다. 콜롬비아 최고가의 호화저택들이 이곳에도 있다. (현재 부패 및 증인 매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의 저택도 그 중 하나다. 도로를 따라 세련된 레스토랑, 라운지 바, 쇼핑센터가 즐비하다. 주차장에는 SUV차량과 스포츠카들이 줄지어 서있다. 꽃과 나무, 들판이 펼쳐진 이곳의 공기에는 상쾌한 소나무 향이 배어있고, 기온은 24°C를 좀처럼 넘지 않는다.
메데인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메데인 시내보다 주변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첫 번째 도로는 엔비가도와 엘포블라도의 고급 주택지 언덕을 타고 올라 600m 아래 계곡까지 이어진다. 두 번째 도로는 과르네의 교외 빈민가와 메데인 북동부의 악명 높은 동네들을 지나간다. 어느 도로를 선택하던 쓰레기 수거차, 트랙터, 승용차,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 행렬 앞에 귀가 울리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빈자의 감옥인가, 혁신도시인가?
지속적인 대기오염으로 계절에 따라 계곡이나 계곡을 둘러싼 언덕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차량과 공사장 소음에 귀가 멍하고 가난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설 경비원이 지키는 주택가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명 소설가 엑토르 아바드 파시올린세는 메데인 계곡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9개 고리 중 가난한 자들이 갇혀 있는 고리에 비유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데인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이미지를 자랑한다. <쿠리에앵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은 “가장 폭력적인 도시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로”(2) 변모한 메데인에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메데인을 “영원한 봄의 도시”로 묘사하며 “독특한 구조를 뽐내는 공원과 도서관을 빈민가에 들여온 인프라 사업과 창의적인 교통수단” 덕분에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로 거듭났다고 찬양했다.(3)
이 작은 관광객의 낙원은 최근 대규모 시위에 휩쓸렸다. 전국으로 확산된 이 시위는 콜롬비아 역사상 전례 없이 규모가 크고 길게 이어진 시위대의 강한 결의가 드러난 민중운동이다. 2018년 9월, (안티오키아주(州)내 최고 명문대학 안티오키아 대학을 필두로) 대학들의 학생 총회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당국은 즉시 폭동진압대를 투입했다. 학생 시위에 이어 전국적인 파업이 일어났다. 헌법에 명시된 거리 집회권 존중 및 공교육 재정 보장을 요구하며 몇 달 동안 15번에 걸친 대규모 집회가 메데인을 마비시켰다. 정부와 주류 언론은 시위대를 공공기물을 파괴하는 폭도, 또는 테러리스트로 묘사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공감을 얻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대다수가 빈민가 출신이었다. 그들의 출신지인 빈민가 사람들과 도심의 노동자들이 시위대에 공감을 표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특히 고등교육 예산 확충을 비롯한 주요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수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콜롬비아 고등교육 예산은 바닥을 쳤고 학생들은 과도한 부채를 떠안았다. 하지만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시위는 재개됐다. 2019년 말에는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관련 단체 및 야당이 합세해 전국적인 총파업이 펼쳐졌다.(4) 2018년 시위는 학생들이, 2019년 시위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도했다. 교외에 거주하는 청년들, 노동자들, 피해자 권리 보호 운동가들, 원주민 및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공동체, 퀴어 운동가들, 평화주의자들, 환경운동가들이 함께 행진했다. 성탄절 연휴가 시작되자 정부는 본격적으로 진압을 시작했다. 정부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음에도, 아니 어쩌면 그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2020년 3월, 파업이 재개됐다.
1년 후, 코로나19로 악화된 경제·사회 위기에 정부의 부패와 팬데믹 부실 대처가 겹쳐 거리의 불만은 더욱 고조됐다. 2021년 5월, 결국 폭발한 분노는 전국적인 민중 봉기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도시 외곽의 열악한 빈민가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빈민가에서 이처럼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은 콜롬비아 역사상 처음이다. 몇몇 야권 인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가 모든 권위와 정당성을 상실했다. 민중의 주권 행사는 2개월간 지속됐다. 정부는 50명의 사망자와 3,000명의 부상자를 내며 무자비한 진압을 계속한 끝에, 결국 민중을 억눌렀다.
민중의 저항은 청년층에 그치지 않고 널리 확산됐으며, 놀랄 만큼 단호하고 완강했다. 그러나 이런 민중운동이 공식적으로 정치적 대표성을 띠거나 도시 계획 및 공공정책 참여 확대로 이어지기는 아직 어려운 현실이다. 2018년 대선 당시 메데인에서 22%의 득표율을 기록한(5) 구스타보 페트로 좌파 후보는 5월 29일 예정된 이번 대선에서 더 많은 표를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추천한 우파 후보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전 메데인 시장(2015~2019년)은 3월 13일 치러진 후보 경선에서 구스타보 페트로보다 3배 많은 표를 얻었다.
좌파 정부는 마피아에 맞설 수 있을까?
여론조사 기관들은 좌파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좌파 정부가 탄생한다면, 메데인의 시위대와 합의를 도출해 메데인의 재계 엘리트뿐만 아니라 메데인을 포함한 주변 지역의 마피아 세력에 맞설 수 있을까? 이것이 관건이다.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인정했듯, 선거기간 미사여구만으로 콜롬비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변화의 기점은 메데인이 돼야 한다.
21세기의 메데인과 주변 주거 밀집지역(400만 명 거주)의 특이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이 특이성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메데인 경제의 특징은 극도의 자본 집중이다. 안티오키아그룹(GEA)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 중 하나다. 그룹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전인 1990년대 말, GEA는 20세기 산업 황금기 동안 메데인의 정치, 공공 기관, 법률 제도, 재산권 및 경제 정책을 통제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연안, 남아메리카, 미국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1980~2004년, GEA가 흡수한 기업의 수는 3배 이상, 그룹의 이윤은 약 8배로 증가했다. 2021년, GEA 혼자서 콜롬비아 국내총생산(GDP)의 7.1%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 그룹의 성장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GEA는 복잡한 상호 출자 구조로 얽혀있는 다수의 대기업을 아우르는 기업 집단이다.(6)
GEA의 주축 방콜롬비아(Bancolombia, 콜롬비아 전체 예금액의 1/4 보유)는 콜롬비아 제1의 은행 및 금융기관이며, 2013년부터는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서도 은행 및 금융서비스 1위 기업으로 부상했다. 콜롬비아 국내 보험업계 선두 기업 수르아메리카나(Sura)그룹도 지난 수십 년 간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넘어 미국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GEA의 주요 중간 지주회사인 아르고스(Argos)그룹은 현재 20여 국가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멘트 생산 전문 기업으로 출발한 아르고스그룹은 이제 에너지, 광업, 부동산, 공공사업 및 고속도로 사업권에까지 투자한다. 콜롬비아 식품가공 산업 1위 누트레사(Nutresa)그룹이 보유한 공장은 국내에 30개,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에 16개다. GEA는 이 4개 대기업을 중간 지주회사로 보유한 거대 지주회사다.
이 기업 집단의 손에 재화, 자본, 부가 과도하게 집중된 현상은 엄청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동반한다. 메데인 주변 소규모 마을들에는 빈곤이 만연하다. 30년 전부터 콜롬비아 역대 정부는 빈곤 측정 기준을 수정해 메데인의 가난을 감추려 했다. 영양지수에서 단백질은 열량으로 대체됐다. 가계소득 산출 시 지출을 최소화하고 소득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 위해 새로운 계산법이 도입됐다. 2020년, 정부는 메데인의 빈곤율을 전국 평균보다 조금 높은 19.2%로 공표했다. 같은 시기 국립통계청(DANE)이 발표한 32.9%와 큰 격차가 있다. 메데인 인구 1/3에서 열량 섭취가 감소했다. 하루에 한두 끼밖에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부유층 과세에 적대적인 콜롬비아의 시대착오적 과세제도가 이런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다. 대기업보다 소규모 기업에 더 높은 과세율이 적용된다. 2019년 콜롬비아의 소득세 수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6에 불과하다. 총 세금 징수액은 GDP의 19.7%로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OECD 평균은 33.8%다).
강제이주와 녹색 강탈, 누구를 위한 도시농장인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대규모 강제이주를 유발했다. 2021년, 7만 4,000여 명이 고향을 등졌다. 전년도 대비 2배 증가한 수치다.(7) 강제이주의 피해자는 주로 영세농민들이다. 이들은 땅을 버리고 도시 외곽의 열악한 거주지에 정착해야 했다. 2016년, 정부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8)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무장단체, 신흥 게릴라 파벌, 조직범죄단체, 정부군간 대립 혹은 동맹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갈등의 모든 당사자는 재정 및 물류적으로 메데인과 연관이 있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코카인이 카리브해를 통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미국으로 수출되려면 메데인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마약밀매는 메데인의 도시 개발을 부추기는 인구 이동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2021년, 메데인에 정착한 강제이주민 수는 전년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9) 실제 이주민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제이주의 주된 책임은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조직폭력단에 있다. 바호카우카와 우라바에서는 범죄조직이 무장단체와 FARC에서 이탈한 게릴라 단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내전, 살해 위협, 갈취, 고문, 학살, 무장단체의 소년병 모집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또 다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이주민의 재이주는 메데인에서 흔한 일이나,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강제이주 피해자들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주민 수용 지역에서 추진되는 ‘녹색’ 인프라 사업도 대규모 재이주의 원인이다. 이 사업은 이주민 추방-이동-철거를 연쇄적으로 유발한다. 메데인 동부의 산맥을 가로지르는 ‘그린벨트’와 도심을 둘러싼 계곡 경사면 75km에 펼쳐진 ‘원형 정원(Jardín Circunvalar)’은 메데인의 이미지 개선을 꾀하는 당국과 GEA의 의지를 보여준다. ‘폭력과 범죄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안전하고 세련된 ‘웰빙 허브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그린벨트는 기후온난화 적응 노력의 일환으로 2012년 지정됐다. 점점 잦아지는 극한 기상현상에 대비해 산사태 발생 위험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교외지역 인구 증가 및 스프롤현상(Urban sprawl, 무질서하고 무계획적인 대도시 교외 발전 현상-역주) 억제도 그린벨트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계곡 경사면의 가옥 약 18만 채 중 상당수는 소유권이 없는 것들이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시 당국이 위험도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지역 수를 부풀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렇게 열악한 주거지를 철거하고, 중산층, 부유층을 위한 신규 주택단지 건설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의심이다. 친환경 구역을 설정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면, 외면 받았던 이 지역에 투자자와 상류층 거주자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동산 사업에는 항상 같은 주역이 등장한다. 바로 시청의 도시계획부, Argos와 같은 건축·토목 대기업 그리고 Sura와 같은 리모델링·재건축 기업이다. 콜롬비아의 건설 분야는 올해 전체 경제 성장률의 3~4배인 18%의 성장률 달성을 기대한다.(10)
시 당국은 ‘도시농장’도 계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주민들이 가꿔온 소규모 농장들은 위기에 처했다. 도시농장의 취지는 공식적인 규제의 틀 안에서 채소를 재배해 엘포블라도나 라우렐레스와 같은 부유층 거주 지역의 ‘유기농’ 시장에 유통하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 농장은 사라지고 토지와 노동은 현지 자본주의 경제에 통합될 것이다. 이런 ‘녹색 강탈’을 통한 경제적 축적은 공간 격차를 재생산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매춘, 성형, 마약, 살인의 중심지
메데인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2004년 세르히오 파하르도가 시장(2004~2008)으로 선출되면서 시작됐다. GEA에 동조하고 외국 자본에 호의적인 파하르도 시장은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기업환경을 조성하고자, 신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했다. 이후 메데인은 글로벌 서비스, 금융, 관광, 의료, 건설 시장에서의 강점을 앞세워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파하르도의 후임 시장들도 최상의 투자조건을 보장하고자 도시 이미지 ‘재고(Relooking)’ 정책을 계승했다. 메데인은 첨단을 자처하는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무분별하게 장려했으며 초국적기업에 막대한 면세 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거점이었던 메데인은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전 시장(2016~2019)의 표현을 빌리면, “라틴아메리카의 실리콘밸리”가 됐다.
‘녹색’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투자를 장려하자 메데인의 관광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8년, 시 당국은 관광, 비즈니스, 무역 박람회, 컨벤션 전담 부서를 설립해 호텔업계와 이벤트 기획업계 간 연계를 강화했다. 이후 10년 간 메데인의 국내외 방문객 수는 약 4배, 경제성장에서 관광분야 비중이 2배로 늘어났다.(11)
그러나 안티오키아 주(州)의 주도(州都) 메데인의 명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메데인은 남미대륙의 매춘 관광 중심지이자, 의료 특히 성형관광의 메카로 부상했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도 빠지지 않는다. 2015년 넷플릭스(Netflix)에 공개된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Narcos)>를 비롯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삶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됐고,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나르코 투어(Narco-tours, 마약 카르텔 관련 장소 관광)’ 상품 개발로 이제 관광객은 에스코바르가 소유했던 저택이나 그의 은신처를 방문해 셀카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에스코바르를 신화화하는 분위기에 편승한 ‘나르코 글래머(Narco-glamour, 마약 카르텔을 매력적으로 포장한 방식)’ 산업은 콜롬비아 역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에스코바르가 정부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메데인은 전 세계 살인율 1위 도시로 등극했다. 피로 얼룩진 메데인의 과거는 세탁되고 포장돼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가 됐다. 물론 시 당국, GEA 그리고 시민 대다수는 한층 건전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와 스토리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어 한다.
관광이 도시 발전 전략의 핵심이 된 이후 메데인은 서구의 여러 대도시보다 더 안전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메데인 내부의 폭력 사태는 2007~2009년 다시 증가했다가 2016~2021년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살인율은 평균 90% 가까이 감소했다. 이 눈부신 결과는 정책 결정자들의 선견지명보다 조직범죄 단체들의 동맹관계 변화와 수장 교체 덕분이다. 2015년, 메데인의 살인율은 1970년대 말 이후 처음으로 콜롬비아 국내 평균에 근접했으며 볼티모어, 시카고, 킹스턴, 카라카스보다 월등히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합법자본과 불법자본의 공존
메데인의 마피아들은 오피시나 데 엔비가도(Oficina de Envigado)라는 연합을 이루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시 당국 및 정계와 결탁한 이 범죄 카르텔에 유혈사태 감소는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의미한다.(12) 2008년, 마약 밀매범이자 무력단체 지도자 디에고 페르난도 무리요가 체포돼 미국에 인도됐다. 이후 메데인에서는 폭력 범죄가 확실히 감소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추적한 민병대 출신 무리요는 “학살은 사업에 해롭다”라고 선언한 최초의 마약 밀매 단체 수장이다. 하지만 법치와 모두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메데인은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범죄조직과 마약밀매 단체는 살인, 위협, 협박, 갈취를 통해 여전히 콜롬비아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구역 내에서는 강간과 살인을 금하고 이를 어긴 자들을 사형으로 다스린다. 따라서 주민들은 거주지역 내에서만 안전하다. 외부로 나가는 즉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범죄는 분산됐지만 여전히 고도로 조직화돼있다. 정치자금 지원과 돈 세탁은 범죄 조직이 정계 및 재계와 결탁하는 수단이다. 특히 그들의 특기 분야인 사설보안 및 감시, 매춘관광, 숙박, 외식, 주류, 운송, 건설, 부동산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 범죄 조직이 개입하고 있다.
무장단체들의 해산은 당시 이를 지지했던 이들 중 일부도 인정했듯 별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 2021년 안키오키아 주(州)에서 재개된 거의 모든 학살은 콜롬비아 연합자위대(AUC)에서 파생된 마약 카르텔인 걸프단(Clan del Golfo)의 소행이다. 걸프단은 고위층 군 지휘부와 결탁해 이권을 챙긴다. ‘대부’라는 별명을 가진 한 군 장교는 최근 에콰도르 국경 인근 태평양 연안 남쪽에 위치한 카우카와 나리뇨로 향하는 코카인 선적을 감독하다가 체포됐다. 걸프단은 또한 멕시코 범죄조직 중에서도 (‘엘 차포’와 그의 아들들이 이끄는) 시날로아 카르텔에 속한 로아이자 구스만의 조직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에서는 환경오염, 빈곤, 절망이 더욱 커지고 깊어지며 다른 한편에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 ‘현대적인’ 시 운영,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이 역설적인 시스템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콜롬비아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은 합법자본과 불법자본의 공존과 상호작용 방식이다. GEA는 특히 금융, 부동산, 건설, 보험 분야에서 지역 자본을 집적 및 집중화해 그중 일부를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유통시킨다. 콘서트 및 공연 광고나 후원을 통해 GEA는 선거는 물론이고 지역 대중문화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GEA가 사실상 비선출 종신 정부 역할을 하며 메데인과 주변 지역의 핵심 권력을 쥐고 있다면, 오피시나 데 엔비가도는 메데인의 거물들과 마피아 두목들을 위한 세금과 공물 징수를 장악하고 있다. 마약 판매와 자금 갈취를 둘러싼 끝없는 영토 분쟁을 중재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오피시나 데 엔비가도다. 이 카르텔은 범죄를 조직화하고, 일상생활을 규제하고, 고문, 살인 및 약탈을 독점한다. 또한 공공사업, 부동산, 운송, 정치 캠페인, 사설 보안, 호텔산업에 이르는 공식적인 경제 통로를 활용해 마약 밀매 자금을 세탁한다.
GEA는 오피시나 데 엔비가도가 활동하는 음지에 가림막을 쳐준다. 양측 모두 이익 극대화를 최고 목표로 추구하며 시 당국의 개발 계획 설계 및 실행 방식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역할이 분배된다. 도시계획청은 새로운 녹지를 지정한다. GEA는 신규 녹지의 홍보, 자금조달 및 개발을 담당한다. 새로운 입주자를 맞아들이기 위해 기존 거주자를 쫓아내는 것은 오피시나 데 엔비가도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 역할분담 체계에는 변수가 하나 존재한다. 메데인에 출현한 새로운 진보진영이다. 실업과 열악한 일자리로 고통 받으며 정치·경제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청년들이 이 진영의 주축이다. 과연 콜롬비아의 무게 중심이 좌파로 이동하고 메데인의 ‘기적’을 이룩할 돌파구가 열릴까? 메데인과 주변 지역을 위한 더 민주적인 정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예측 불허의 나라 콜롬비아의 이번 대선에 귀추가 주목된다.
글·알시데스 고메스 Alcides Gómez
콜롬비아 국립대학교 교수
포레스트 힐턴 Forrest Hylton
콜롬비아 국립대학교 및 바이아(Bahia) 연방대학교 교수
에런 타우스 Aaron Tauss
빈(Vienne) 대학교 교수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Hector Abad Faciolince, 『Angosta』, Seix Barral, Barcelona, 2003년.
(2) ‘Colombie. Medellín : De la ville la plus violente à la ville la plus innovante”, 콜롬비아 메데인, 가장 폭력적인 도시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로’, <Courrier International>, Paris, 2015년 1월 8일.
(3) Nell McShane Wulfhart, ‘36 Hours in Medellín, Colombia’, <New York Times>, 2015년 5월 13일.
(4) Lola Allen & Guillaume Long, ‘Feu sur l’“ennemi intérieur” en Colombie, 콜롬비아 보수 정권, “내부의 적”을 향해 발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6월.
(5) Loïc Ramirez, ‘En Colombie, la paix “réduite en miettes”?, 콜롬비아, 평화를 위협하는 대선결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9월.
(6) Nicanor Restrepo Santamaría, 『Empresariado Antioqueño y Sociedad, 1940-2004』, Penguin Random House Grupo Editorial SAS, Bogotá, 2016년.
(7) https://www.unocha.org/colombia
(8) Gregory Wilpert, ‘Pourquoi la Colombie peut croire à la paix, 콜롬비아가 평화를 믿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10월.
(9) ‘Aumentaron los desplazamientos forzados intraurbanos en Medellín’, <El Colombiano>, Bogotá, 2021년 11월 11일.
(10) ‘El PIB del sector edificador crecerá 3,5 veces más que la economía en 2022’, <La Republica>, Bogotá, 2021년 12월 15일.
(11) Juan G. Brida, Martin Rodríguez Brindis & Maria L. Mejía-Alzate, ‘La contribución del turismo al crecimiento económico de la ciudad de Medellín – Colombia’, <Revista de Economía del Rosario>, 24(1), 1-23.
(12) Juan Diego Restrepo, 『Las vueltas de la Oficina de Envigado: Génesis, ciclos de disputa y reorganización de una empresa criminal』, Íconos Editores, Bogotá,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