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는 없다! 프랑스 정치대학의 실태

이슬람 혐오증이 불러온 정직 처분

2022-05-02     알랭 가리구 | 파리 낭테르 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

프랑스 그르노블 정치대학이 소속 교수에 대해 정직 처분을 내렸다. 이 대학교의 정치화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였다. 대학 당국이 교수에게 침묵을 종용했다는 점도, 징계처분 수위도 이례적이다. 사건은 ‘이슬람 혐오증’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에서 비롯됐다. 교수 두 명이 다른 교수들과 달리 “이슬람 혐오증을 인종차별과 동등한 선상에 놓을 수 없다”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곧 캠퍼스에 이 두 교수를 향해 “이슬람 혐오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벽보가 붙었고, 상황이 악화됐다. 

해당 교수들과 학생들 간에 여러 차례 이메일이 오가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일부 학생들은 메일 내용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면대면 소통이 어려운 상황은 학생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결국 한 학생연합이 이 내용들을 소셜 네트워크에 게시했고, 두 교수는 물리적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관련 학생들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엄격한 조사과정을 거쳤지만 무혐의 판정이 내려졌다. 이에, 두 교수 중 한 명인 클라우스 킨츨러 교수가 언론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2번 응했다. 입장 표명을 자제해달라는 총장의 요청이 있었지만 말이다.

킨츨러 교수는 인터뷰에서, “그르노블 정치대학이 속칭 ‘워키즘(Wokisme)’의 영향으로 대학의 자유 수호를 위한 여건을 더 이상 보장해주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대학 운영위원회에서는 그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

 

급진화에 동반된 반(反)급진화

이런 결정방식은,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중재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오던 대학의 기존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대학의 경영자율권을 주장해온 발레리 페크레스가 고등교육·연구·혁신부(이하 ‘고등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2008년 당시 ‘대학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법(이하 ‘LRU법’)’ 제정 이후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프랑스 대학의 운영위원회는 투표를 통해 구성된다. 운영위원회에는 교직원, 행정직원, 조합, 외부인사 등이 참여할 수 있다. 교수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이 점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1968년 프랑스의 고등교육기본법을 통해 확립된 대학의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가 2008년 ‘LRU법’으로 한층 강화되면서,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정치가 대학에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  

우선, 투표 자체가 불투명한 전략으로 맺어진 동맹들 사이에서 치러지는 정치적 과정이 됐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성향 또한 중요성을 지니게되면서 정치적 개입 가능성이 생겼다. 이제 대학의 결정과정에서 투명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대학의 자유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번 그르노블 정치대학에서 내려진 정직 처분은 참으로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최근 프랑스 대학 내에 쌓여온 분노와 갈등이 촉발된 결과라 할 수 있다.(1) 대학 내 교수와 강사 자리는 계속 줄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처우 및 급여도 악화되고 있다. 능력이 탁월한 개인이, 꾸준히 노력하면 승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이 충분히, 제때 빛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력을 보답 받지 못한 개인들의 분노는 정치적 시위로 옮겨간다. 학력 인플레이션이나 체제로 인한 상대적 박탈 때문에 터져 나왔던 과거의 저항운동과 같은 수순이다. 

새로운 세대들은 이런 고전적 수순을 따르면서도 차별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런 시도에 여러 ‘상호교차성’이 결합되고 다소간의 정치화 역시 더해졌다. 이런 시도에 심취한 이들의 입에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선배 교수들로서는 1968년 5월 혁명의 정취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서 그런 열망을 평가하거나 그것이 정치 이외의 분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급진화에는 반(反)급진화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킨츨러 교수 사건이 그 예다.

 

대학은 기업, 총장은 고용주, 교수는 직원

 

사실 이번 일이 정치대학(IEP)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대학이야말로 대학 기업화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파리 정치대학에 뒤이어 각 지방의 정치대학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점차 경영대학으로의 변모를 꾀해왔다. 게다가 대학 운영주체에 대한 당국의 통제권도 커졌다. 파리 정치대학의 총장이 내리는 결정에 프랑스 정부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물론 지방 정치대학에 대한 통제는 덜하지만, 지방의 경우도 기업 총수 노릇을 하는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점점 더 민간기업에 가까운 거버넌스를 구사하곤 한다. 

그르노블 정치대학 총장이 사용하는 단어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녀는 “총장은 학교의 명성이 타격을 받고 (...) 교직원들이 개인적인 공격을 받을 때 개입할 권리가 있으며, 그런 차원에서 직원에게 고용주로서의 역할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은, 학장들이 총장 혹은 이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위계적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동료 교수들과 논의를 벌이던 전통적인 대학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동료 중 제1인자(Primus inter pares)’ 원칙에 따라 합의제 운영기관이 구성되곤 했다. 학내에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공연한 집단적 반대 성명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도 징계를 입에 담지 않았다.(2)

한편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교수들이다. 이들은 교육이나 연구보다는 정계나 관료제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논문 발표보다 직위가 훨씬 매력적이다. 그러니 이번 정직 처분 문제로 고등교육부 장관이 곤경에 빠진 것도 당연하다. 장 미셸 블랑케 교육부 장관은 이번 처분이 “명백한 실수”라고 말했고, 프레데릭 비달 고등교육부 장관은 “모두 차분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3) 

이들 스스로도 대학 내에서 중진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은 뒤 장관직을 맡은 마당에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었을까? 학문적 차원에서는 급진성을 반대해야 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관료주의적 권위와 밀접한 위치에 있는 만큼 입장이 곤란할 것이다. 그런데, 대학은 몇 년 전부터 철저히 기업화돼왔다. 일개 ‘직원’이 돼버린 교수들은 ‘고용주’인 이사장이나 총장에게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과거 선배 교수들은 ‘사장을 두지 말라’는 명제를 반복하며,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위로했다. 오늘날, 후배 교수들도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미 늦었을지라도 말이다.

대체 언제부터, 대학교수가 언론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게 금기사항이 된 것일까? 오히려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교수가 학교 측을 고소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언론에서의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필자도 대통령 고문이었던 파트릭 뷔송(Patrick Buisson) 금융컨설팅 기업 피뒤시알(Fiducial)로부터 6년간의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대학에서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하튼 이번 일은 공격의 주체가, 그 자신이 존재 이유를 잃고 있는 교수진이라는 점에서, 정재계 인사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막고자 법적 공격을 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대학의 자유 수호자’들

어쩌면 이번에는 대학의 경영화가 새로운 해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총장이 ‘자신의’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그녀가 총장직을 진작 그만뒀어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의 완강한 태도는 책임전가를 위해 경영원칙을 운운하는 사장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번 사건 직후 해당 대학에 지원금을 끊어버린 로랑 보키에 지방의회장처럼, 일련의 사건들은 대학의 자유수호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물론 로랑 보키에와 그의 지지자 마린 르펜, 에릭 제무르 등 극우파 인물들을 “대학의 자유 수호자”라고 한다는 건 다소 우스꽝스럽다.

그르노블 정치대학 총장은 이번 정직 처분이 어떤 의미가 될지 알고 있었을까? 이런 사건들의 경우 각 개인의 권리에서 끝나지 않고 일반적 차원에서의 표현의 권리와도 연관될 것임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나아가 해당 총장은 해당 교수를 정직처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그녀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한 교직원에 대해 위협성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익 및 극우 매체에서 제법 유명세를 얻었다. 

물론 비용은 전적으로 학교의 몫이다. 어쩌면 운영위원회측은 승소 가능성이 없을 알기에 실제로 소송할 생각은 없으면서, 위협 차원에서 소송을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횡령으로 비난을 받자 공적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한 후,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고소를 포기한 어느 정치인처럼 말이다. 그럴 경우 잠재적 고소인은 비용 부담을 안게 되지만, 본인 혹은 기업이 비용을 부담할 여력만 있다면 소송 위협은 제법 효과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민사적 손해배상 청구가 포함되든 아니든, 명예훼손 소송에 드는 모든 비용은 그르노블 정치대학에 돌아갈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가 포함된다면 예심수사가 진행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단순 기소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수천 유로에 달하는 변호사 수임료가 발생할 것이다.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피고소인(교수)은 고소인(총장)의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손해배상도 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예심피의자 혹은 피고인에게는 ‘공무원의 직무상 보호(공무 수행 중 벌금이 발생할 경우 당국이 이를 대신 지불하는 제도)’라는 법적 기반이 있다. 킨츨러 교수의 경우, 대학 운영위원회를 상대로 직무상 보호를 신청할 수 있다(1938년 7월 13일 제정된 ‘공무원의 권리 및 의무에 관한 법률(제83-634호)’ 제11조). 만일 큰 비웃음을 사고자 벌인 일이라면, 그 목적은 이미 달성한 셈이다. 

 

 

글·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파리 낭테르 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 저서로 『La Vote et la Vertu. Comment les Français sont devenus électeurs 투표와 미덕. 프랑스인은 어떻게 유권자가 됐나?』,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1992가 있다.

번역·김보희
번역위원


(1) 2021년 2월 14일, 우파 매체인 <CNews>와의 인터뷰에서 프레데릭 비달 고등교육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슬람 우파주의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부패시키고 있지만 대학은 이에 무감각하다. 대학 내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자격과 영향력을 이용해 (중략) 이슬람 우파주의의 투쟁적 사상이나 급진적 사상 등을 지지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2) 1960년, 121명의 지식인이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낸 일도 있었다. 그 결과 많은 대학 교수들이 파면 처분됐다. 물론 이 처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철회됐다.
(3) 2022년 1월 7일, 비달 장관은 <Europe1>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르노블 정치대학의 정직 처분 결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무원이 지켜야 할 ‘신중의 의무’”를 강조했다. 킨츨러 교수에 대해서는 그가 “행정적 지위에 따라 해당 지역 교육청에 종속돼 있다”면서 “학교 전체에 낙인을 찍을 수는 없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