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 위기, 그리스 무너져내리다

2011-12-09     노엘 부르기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무슨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아테네, 테살로니키, 그리고 그리스의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스에서 내일에 대한 강박관념은 마치 절박한 파멸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적·집단적 존재의 불확실성 속에 모든 사람을 가둬버리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그리스의 첫 번째 시련은 아니다. 그리스인은 항상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민족이고, 특히 적대감 속에서 강인하게 단련된 민족이라고 여겨왔다. 한 작은 기업체의 경영주는 “우리는 언제나 역경을 겪어왔으며, 언제나 그것을 극복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여태 힘들었다, 이젠 내일이 없다

지금 그리스에서는 긴축 프로그램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법과 시행령, 공문, 간단한 정치적 결정이 기존 사회적·경제적·행정적 규범과 충돌하고 있다. 매일매일 모든 것이 바뀐다. 어제까지 진실이던 것이 오늘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내일은 알지 못한다. 시민들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부조리하고 불안한, 그리고 점점 더 옹졸해지는, 이해할 수 없고 수시로 바뀌는 규칙을 내놓는 관료체제를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있다. 키클라데스 시청 직원은 동료들에게 “사람들은 법을 따르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각종 조처의 세부 사항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동차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13가지나 되는 서류와 신분증을 제출하고, 1인당 200유로를 내야 한다. 공공 분야의 일부 직원들은 태업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퇴직한 전직 선박회사 기술자는 “월급을 삭감하면 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경찰을 부르면 ‘당신 문제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며 정부에 화를 낸다. 스트레스는 고조되고, 가정폭력·절도·살인은 현격히 증가하고 있다.(1)

한편으로는 임금이 줄어들고(일부 분야에서는 35~40% 줄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금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 세금들은 당해 역년을 기준으로 소급 적용되기도 하고 원천징수하는 것도 있어 실질적으로 소득이 50% 이상 감소한 것과 마찬가지다. 2011년 여름 이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세금은 연대세(연간 소득에서 1~4% 공제)와 에너지를 소비하는 납세 대상자가 별도로 내야 하는 석유 및 가스세이다. 소득과세 최초 구간을 연간 5천 유로에서 2천 유로 이하로 하향 조정하고, m²당 0.5~20유로의 토지세를 전기요금 청구서에 부과해 2∼3회에 분할 납부하도록 하고, 납부하지 않으면 단전하거나 과징금 등을 부가하게 했다. 지난 11월 초부터는 퇴직자도 회사원도(공무원이든 민간기업 회사원이든 구분 없이) 월말에 그들이 얼마를 받게 될지 모른다.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쇄신’ 중인 기업체와 공공서비스들은 강력한 감원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부터 2015년까지, 53살 이상 직원 12만 명이 ‘예비역’ 상태가 될 것이다. 예비역은 33년의 근무를 마친 공무원들이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되는 예비 단계다. 그들은 퇴직하고 기본급의 60%만 받게 된다. 50살 이상의 철도 종사자 모임이 우리에게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많은 자동퇴직 공무원들이 곧 비참한 수준의 수입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긴축,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마비

희망퇴직 절차(2)의 일환으로 박물관 경비원이 된 전직 철도 종사자들은 예전에는 그리스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 수입이라 할 수 있는 매달 1800~2천 유로를 받았지만 이제 그들의 기본급은 1100~1300유로에서 결정되고, 대기발령자의 경우 600유로가 최고 금액이다. 만일 그들이 (좀더 많은) 월급을 받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식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들은 이 기본급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고, 이 경우 당국은 주저 없이 징계한다.

테살로니키의 한 주민은 “임금 삭감이 야만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각종 공과금을 내지 못한 채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실업이 늘어간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5월 공식 실업률은 16.6%로, 2008년보다 10% 증가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40%에 달한다.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거의 재앙 수준이라 할 수 있는 경제·사회·정치상의 위기는 공공보건에서 우려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공병원 예산과 진료 예산은 평균 40% 삭감됐다. 하지만 응급 입원은 증가하고, 동시에 의사에게 진료받지 않는 비율도 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약품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고, 얼마 안 있어 분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기자는 “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데 약값으로 한 달에 500유로가 들어간다. 보험에서 약값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약국에서 이제 약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서 분개한다.

폭증하는 자살·성매매·노숙자…

질병(특히 심장질환)과 정신질환이 우려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개인 부채와 실업 등으로 인해 ‘중대한 우울증, 장애, 전반적인 불안 증세’가 야기되고, 현격히 늘어난 자살 건수 역시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3) 의회에서 언급된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자살 건수는 2009년 대비 2010년에 25% 증가했고, 보건부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2011년 상반기에 40% 증가했다. 의학전문지 <더 랜싯>에 실린 통계(4)를 보면, 성매매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증가했고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및 성행위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 감염이 늘었다.(5) 노숙자 수 역시 최고 수치를 기록하며, 이들의 면면도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노숙자들은 더는 중산층이 될 기회가 없는 사람, 젊은이, 그리고 적당히 가난한 이들이다.”(6)

‘과학적 잔혹성’, 어느 나라도 못 버텨

이 중대한 위기를, 한 사회복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야만적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스 사회는 전통적으로 사회국가의 태만을 가족적 연대감으로 극복해왔는데, 이제 그런 연대감을 발휘할 충분한 재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를 떠나기 원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떠난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은 한정돼 있다. 그들은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교회를 찾아간다. 테살로니키의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인 스테파노스 톨리오스 신부는 그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간청하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 10여 명을 접견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쌓이는 서류 더미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볼로스, 파트라스, 헤라클리온, 아테네, 코르푸, 테살로니키 등 여러 도시에서 지역 공동체들은 지역교역 시스템을 만들어 지하경제(암시장)를 시행하고 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각 가정에서는 시설에 수용된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양로원에 지급되는 1인당 300~400유로의 지원금을 그들이 수령하기 위해서다.

어떤 나라도 이런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버티기 힘들다. 국내외 엘리트들이 ‘과학적 잔혹성’(7)을 가지고 그리스에 강요하는 긴축재정이 가져올 사회적·보건적 결과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리스는 성공적 사회보장체제를 발전시킬 시간적 여유와 방법이 없었다. 이제 기존 연결망들이 찢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역량이 부족한 국가의 또 다른 면인 인기영합적 시스템이 이전에 구축될 수도 있던 것(사회보장체제를 포함해)을 허물어버렸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대학의 교수이자 치료기관 책임자이기도 한 소티리스 라이나스는 “이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고 단정한다.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 이 트로이카의 긴축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정부는 보건부 예산 중 210개 항목을 삭제하는 동시에 크고 작은 수많은 조직들과 주민 대상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이 작업이 무분별하게 진행된 결과, 반드시 필요하고(예를 들어 ‘그리스 알츠하이머 연합’ 같은) 실제적으로 유용한 작업들도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최소한 30년 전부터 국가체제의 와해를 도모해온 초국적 세력들은 이제 국내 차원에서 오랫동안 인기 영합 전술을 펴온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세력들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이 모든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청교도적 도덕성에 대한 공격이 여기저기서 행해진다. 그리스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 역시 현 상황에 책임이 있다며 그리스인들을 공격한다. 그 과정은 고전적이다. 일부 사회단체들을 비난·규탄하고, 그들을 인민재판하는 것이다. 공무원, 의사, 자신이 내야 할 세금을 숨긴 혐의를 받는 상인을 싸잡아 도마 위에 올린다. 그러나 국민은, 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도 문제의 근원이 바로 ‘시스템과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만연한 인기영합주의와 부패

부패와 인기영합주의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그리스는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관료제나 시민들의 주권이 제대로 구현되는 근대국가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국제체제에서 주변국이던 그리스의 제도는, 1830년 독립 이래 해외 열강들에 의해 외부로부터 강요되거나 도입된 것들이다.(8) 그리스는 늘 국제세력 관계에 종속돼 있었고, 종속된 상태에서 자본주의 경제에 통합됐다. 이 때문에 그리스는 지역에 대한 충성심, 확장된 가족집단, 마을 및 지방 공동체적 가치 아래 구조화된 전통적이고 분절화된 사회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치 모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의 시스템은 권위적이고 대단히 중앙집권적이어서 권력분립이나 지방자치, 실질적 민주주의의 요구를 무시해왔다.(9) 인기영합주의와 부패가 계속 반복되기에 적합한 자양분이 이미 마련돼 있었고, 이런 상황이 엘리트들의 사익 추구와 지배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하고 견뎌왔다.

모른다, 누구를 향해 봉기할지

자신과 자국에 비판적이면서도 자부심을 느끼는 그리스인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단지 해결책이 없을 뿐이다.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까지 사실상 정치 공동체를 구성할 능력이 없었던”(10) 국민이 어떤 사회 모델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라이나스가 아이로니컬하게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거짓말 속에서 살았던 위기 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한 충격 앞에, 놀랍게도 질서와 권위로 되돌아가자는 요구가 나타난다. 지난 11월 초 파판드레우 총리 후임으로 전직 그리스은행 총재인 루카스 파파데모스가 임명돼 새 내각을 구성할 때 그에게 우호적이던 여론조사는, 치욕스러운 정치권보다는 차라리 테크노크라트가 권력을 잡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감정이 국민 사이에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긴축 프로그램을 지지한다는 표시는 아니다. 차라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려는 갈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탈리아 총리로 선출되기 전 마리오 몬티가 표현한 ‘낯선 시장’(11)은 일부 사람들에겐 국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정직하고 능력 있는 정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과연 그렇게 될까?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자신의 지도자를 제거했다고 생각하게 된 그리스인들은 이제 누구에 대항해서 봉기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라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적이라는 존재가 없다. 추상적인 정부, 그것이 그 적의 힘이다. (그 적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다. 적은 추상적일 수 있지만 불행은 현실이다. 그들이 당신의 삶을 앗아가고, 나의 미래를 박탈할 것이다.”

/ 노엘 부르기 Noélle Burgi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
소르본대학 유럽정치사회과학센터 연구원. 주요 저서로 <소외 기계: 고용 복귀라는 환상>(라데쿠베르트 출판사·파리·2006) 등이 있다.

번역 /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1) ‘가정폭력 발생 건수 3배 증가’, <I Simerini>, 키프로스, 2011년 3월 16일. ‘아동학대와 아동빈곤 위험 증가’, 2011년 4월 15일.  www.tvxs.gr.
(2) 현재 민영화가 진행 중인 철도공사는 인원 감축 계획의 일환으로 이 절차를 기획했다.
(3) 2011년 2∼4월 진행된 정신건강 대학연구소의 미공개 연구, <엘레피테로티피아>(Elefitherotypia), 아테나, 2011년 10월 5일 참조.
(4) 알렉산더 켄티켈레니스 외, ‘금융위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그리스 비극의 조짐’, <더 랜싯>, 런던, 2011년 10월 22일, vol.378, n°9801, pp.1457~1458, www.lancet.com.
(5) ‘EU 내의 마약 주사자들 HIV 위험’, 마약과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유럽 모니터링 센터, 리스본, 2011년 11월 14일, www.emcdda.europa.eu.
(6) 아테네의 비정부기구 Klimaka의 연구, ‘그리스 위기가 수천 명의 노숙자를 만들다’, 2011년 10월 9일 참조.  www.monstersandcritics.com.
(7) 칼 폴라니의 표현, <거대한 전환>, 갈리마르, 파리, 1983.
(8) 그리스 독립전쟁(1821~30년) 이후, 1832년 체결된 런던조약은 그리스에 왕정을 강요했다. 프랑스·러시아·영국 등 유럽 열강들은 바이에른 공(公) 오토 드 비텔스바흐를 초대 왕 오토 1세로 추대했다. 이 국가들은 계속 개입 세력으로 남았다.
(9) 니콜라스 P. 무젤리스, <근대 그리스, 미개발의 양상들>, Macmilan, 런던, 1978 참조.
(10)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책임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그리스 운동>, Collectif Lieux Communs, n°18, 2011년 9월.
(11) 마리오 몬티, <낯선 시장>(Il podesta forestiero), Corrier della Sera, 밀라노, 201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