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간의 대결, 투쟁 끝난 뒤 마요트는

2011-12-09     레미 카라욜

파업, 시위, 바리케이드…. 최근 마요트에서는 보기 드문 강도의 사회 갈등이 불거졌다. 노조와 소비자단체는 인도양의 프랑스 지자체인 이곳의 높은 물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사회운동은 이 섬에 고착화된 지배관계가 얼마나 노골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11월 18일의 마요트. 이곳 작은 섬의 카웨니 산업단지는 일상으로 복귀 중이다. 양철 가옥이 빼곡하게 들어선 언덕 위에 위치한 마요트섬의 최대 빈민가 사람들은 매일 아침 창고와 상점이 흩어져 있는 카웨니 평원을 내려다본다. 국도를 따라 분주하게 노동자들을 내려놓는 택시에 이어 사장들이 모는 4륜구동의 번쩍거리는 차들로 붐빈다.

이곳이 바로 프랑스의 새로운 101번째 도(1)의 경제 허파다. 총파업의 서곡으로 번진 고물가에 반대하는 9월 27일의 첫 시위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몇 년에 걸쳐 매일같이 대면하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는 양극의 두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한쪽은 고용주, 다른 한쪽은 피고용인으로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은 없다. 단 이곳에서는 (관공서에서 그렇듯이) 고용주는 백인이고, 피고용인은 흑인이다.

전례 없는 43일간의 파업 기간에 공공서비스와 기업 활동은 거의 멈추었다. 파업 이후 남은 건 혼돈의 감정이다. 마요트의 최근 역사에서 이처럼 폭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고물가 반대’ 운동은 연합 노조 및 소비자단체 진영과 고용주 진영 간에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11월 8일 중단됐다. 시위에 참가했던 이브라힘은 “결국 이렇게 끝나버리는가”라고 비탄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지지한 이번 싸움에서 마요트인들이 다 잃은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의 대변인 보이날리 사이드 툼부는 이렇게 믿고 싶다. “그래도 알렉상드르 샤할람바키스와 제라르 루돌프(마요트섬의 대형 유통시장을 장악한 3대 그룹 중 하나인 소디프랑(Sodifram)의 경영진)가 우리를 이제 다른 눈으로 볼 것이다. 어쨌든 마요트인들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입도 떼지 못했던 명백한 현실을 감히 고발한다면, 그것은 마요트의 경제권이 마요트인들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미지가 있다. 때는 10월 6일이고, 갈등이 시작된 지 10일이 지난 뒤 처음으로 모든 관계자가 테이블 주위에 모여 있다. 한쪽은 운동의 주도자들이다. 모두 흑인이고 이들의 뿌리는 코모로제도다. 이들은 사이드, 나후다, 누수라, 마울리다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다른 한쪽은 12명의 경영진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대부분 백인이다. 일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또 다른 이들은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이다. 여기엔, 과거 공안과 요원 출신인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회장 미셸 타이유페르, 아무도 마요트에 투자하지 않았을 때 대형 유통에 뛰어들어 부를 거머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상공회의소(CCI) 소장 이다 넬 등이 포함돼 있다. 비본토 지역 출신은 단 세 사람이다. 두 사람은 몇 세대 전 섬에 정착한 인도 상인들로, 마요트 직원들을 가혹하게 대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머지 한 명은 크레올 일가가 경영하는 최대 물류회사 SMART(2)의 대표이다.

시위 기간에 뿌려진 전단에서 극작가 알랭 카말 마르샬은 수많은 마요트인들의 불만을 이렇게 요약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사장은 우리를 야수처럼 쳐다본다. (1841년 프랑스 식민통치 시점부터) 6만7640일 동안 부를 축적해온 사람들과 6만7640일 동안 땀 흘려온 노새 사이에 평등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교사이자 진보 진영의 지역의원으로 선출된 믈라일리 콘드로는 단언한다. “명백한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체제에 놓여 있다. 마요트인이라 할 수 없는 자들이 경제를 점유한 반면, 소비자는 대다수 섬 출신이다. 도식화해서 보면 한쪽엔 부유한 므준구(Mzungus·백인을 지칭하는 말), 다른 한쪽엔 마요트인이 있다.”

오랫동안 마요트섬에는 ‘모두스 비벤디’(잠정적 합의)가 지배해왔다. 즉 ‘프랑스 본토 출신’은 민간 분야에서, 마요트인들은 행정 분야에서 일해왔다. 그러나 몇 년간 혼란을 거친 공공 분야는 더이상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 결국 마요트인들은 민간 분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돈도, 의지도 부족하다. 충분한 자본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요트인들은 백인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최근 한 동료가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가게를 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필요한 여건들이 전혀 갖추어 있지 않다.” 콘드로의 말이다.

젊은 경영인 압두 수브라는 신용대출을 받을 때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증언한다. “입찰 때 관공서와 대기업 간의 공모 행위는 말을 못할 정도다.” 수브라는 중소기업경영인협회 회원이다. 이 협회는 지난 파업을 지지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당연하다. 마요트 출신이든 타 지역에서 왔든 상관없이 소기업 사장들은 누구나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물건을 사야 한다. 우리도 독과점의 희생자다.”

므준구가 경영하는 12개 기업이 상공회의소와 프랑스경제인연합회, 대표위원회 의석 등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독과점 상태는 “마요트 경제의 발전이 아닌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수브라는 성토한다. 오랫동안 이들과 결탁한 지역 의원들과 프랑스 본토 국민의 지배를 받는 관공서에 기대어 이런 독과점이 가능했던 것이다. 툼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므준구 커뮤니티는 작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마요트인과 프랑스 본국인들은 매우 다르다. 이런 난항 앞에서 므준구는 한데 뭉친다. 고위 공무원은 대기업 사장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 레미 카라욜 Rémy Carayol  언론인
국제투기자본 감시 시민연대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에서 펴낸 <발전의 미래는 있는가: 절약과 연대의 사회를 위하여>(Mille et Une nuits·파리·2004)를 편집했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마요트는 지난 3월 31일, 프랑스 해외도(海外道·DOM)로 편입됐다. 그 뒤 프랑스법에 맞춰 지역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기존 관습법에 의해 토지를 소유해온 원주민들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다.
(2) 작은 배를 이용해 대형 선박과 하안 사이의 물류를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