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쟁,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크렘린을 질식시키기 위해, 러시아 연료를 포기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은 미봉책을 내놓기에 급급하다. 이에 더해 치솟는 물가, 경기침체, 새로운 외교적 환경에 대한 적응문제 등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국은 이런 흐름이 자국의 이익에 부응한다고 기대하며 관망하는 듯하다.
독일 경제·기후부 장관 로베르트 하벡은 카타르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2022년 3월 20일은 생태적 전환을 논할 시점도, 독일 녹색당 출신 장관이 중시하는 ‘가치 외교’를 논할 시점도 아니었다. 하벡 장관이 카타르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다음 날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에게 굽신거린 것은 기후 위기 측면에서 부적절한 에너지인 액화천연가스(LNG)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LNG는 지금까지 독일 경제의 추진력이었던 러시아 가스를 대체할 수 있다. 독일 라인강 너머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이 이미지는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에 야기한 대혼란과,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에 가한 제재를 반영한다. 몇 주 만에 에너지 안보 문제는 무대 전면에 등장해, 기후 문제를 덮어버렸다. 19세기 말부터 전 세계는 화석연료의 공급 수단 확보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 때문에 국민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대륙을 식민지화하고 동맹국들을 지배했으며, 지역 전반에 걸쳐 인구를 조절하는 등의 일들이 일어났다.
2007~2011년 에너지 기업 엑손 모빌은 월스트리트 증권가를 지배했고, 2007년 11월 중국의 페트로 차이나는 주식시장 평가에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15년 뒤 시가총액 10대 주요 기업 리스트에서 석유회사는 부분 민간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뿐이었고, 8개는 대부분 첨단 기술 대기업이 차지했다. 러시아 침공 후 3개월, 키이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전쟁에는 속는 자, 속이는 자 그리고 승자가 존재한다. 유럽, 특히 독일은 명백하게 ‘속는 자’에 속한다.
‘속는 자’ EU가 저지른 두 가지 실책
우크라이나 위기관리에서 브뤼셀의 유럽연합(EU)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는 러시아의 천연가스(2022년 초 45%)와 석유(27%)에 대한 강한 의존도를, 적절한 대체 방안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서둘러 낮추려고만 했다는 점이다. 2022년 3월 8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REPowerEU 계획을 제시했다.(1) 이 계획은 ‘러시아 화석연료에 대한 EU의 의존도를 없애는 것’이 목표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말까지 러시아 가스 공급을 2/3까지 줄이는 것이다.
‘녹색 수소’, 태양광, 풍력 및 기타 바이오 메탄 등 다양한 방안을 이용하는 이 프로젝트는 특히 LNG를 기반으로 한다. LNG 수송선으로 운반되는(수송선 한 대당 프랑스 일일 평균 소비량이 실려 있다) 이 에너지원은 주로 미국, 호주, 카타르에서 수출하며 모두가 눈독을 들이는 대상이다. 국제거래의 1/3이 장기 계약이 아니라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최고 입찰자가 많은 양을 가져간다.
로베르트 하벡이 중동에 굽신거린 것처럼, 유럽 대표들이 에너지 공급원 다양화를 위해 내세운 도덕적 정당화는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EU 위원장은 “우리의 전략적 사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파트너들과 민주적인 내일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합니다”라고 설명한 뒤, 미래의 에너지 파트너로 미국을 비롯해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카타르 등 다른 세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를 언급했다.(2)
그러나 이 협상이 실질적인 가스 유통으로 이어지려면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미국은 러시아 가스를 대체하기 충분한 수출 능력이 없고, 주로 아시아로 향하는 카타르의 주문서는 2026년까지 동이 난 상황이며, 이집트는 생산량 대부분을 중국과 터키에 수출하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정국이 불안하고, 알제리-모로코 분쟁으로 마그레브-유럽 가스관(MGE)이 폐쇄된 북아프리카도 대책이 없다. 결국, 지난 4월 27일 유럽에서 가스 가격이 전년 대비 6배 이상 올랐다.(3)
이런 상황을 볼 때, 독일과 EU 위원회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 것은 독일로서는 두 번째 실수다. 미국의 경우, 러시아 탄화수소 금수조치로 손해 볼 게 없기에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3월 8일). EU 위원회는 5월 4일, “러시아산 원유 공급은 6개월 후, 정제유 공급은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한다”라는 발표로 미국의 입장을 따랐다. 이는 결국 구대륙의 국민들, 특히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셈이다. 유럽이 수입하는 경유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륙 차원에서 노란 조끼 위기를 피하려는 정부 조치로는, 연료 가격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 에너지 공급 루트를 적절하게 다양화할 수 있다면, EU가 러시아를 보이콧함에 있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미 분열 조짐이 보인다. 미국을 따르는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은 ‘푸틴이 벌이는 전쟁에 자금을 대는’ 탄화수소 수입을 즉각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전적으로 러시아 송유관에 의존하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폰 데어 라이엔이 제안한 방안을 ‘에너지 자살’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임시 면제 혜택을 받을 것이다.
독일의 모순, 미국의 압박에 굴복
독일의 사례를 보면, 유럽의 모순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저렴한 가스, 장기 계약과 지속이 가능한 인프라(노르트스트림 1, 2 가스관)를 기반으로 에너지 안보를 구축했다. 이 전략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러시아는 탄화수소는 풍부하지만, 독일로서는 쉬운 존재였다. EU는 이런 러시아의 경계에 존재함으로써, 알제리나 근동의 공급자들에게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1년 단계적 원자력 폐지를 결정함으로써, 소위 녹색자원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기대하며 독일이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하고 4년 뒤에도 여전히 메르켈 총리는 노르트스트림2를 포기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저항했다. 이후 독일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미국의 반러시아 정책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상업적 목적으로만 가스 거래와 인프라를 제공하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의 맹공, 독일에 새로 집권한 연정에서 녹색당의 존재, 그리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 합의는 산산조각 났다.(4) 2월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독일의 정책은 이제 베를린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러시아 탱크와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다시 넘는다면 더 이상 노르트스트림2는 없을 것이다. 노르트스트림2는 끝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독일이 대규모 인프라를 ‘끝장내겠다’라고 위협한다면, 과연 백악관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키이우 폭격으로, 독일은 몇 주 만에 미국의 입장에 따랐다. 독일은 노르트스트림2 승인을 중단했고, 2024년 중반까지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강제적으로 축소할 것이다. 이미 1~4월까지 55%에서 35%로 축소한 상태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미국, 카타르, 폴란드와 조약을 체결했다. 5월 1일, LNG 부유식 재가스화 터미널 4개를 임대하고, 2개 신규 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에는 미국을 따라 석유 금수조치를 수락했다. 이토록 위급한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 같은 중대한 사안 앞에, 국가원수라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이 유럽에 추가수출을 약속한 LNG 규모는,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양의 1/10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인프라는 2026년까지 가동되지 않을 것이다.(5)
숄츠 총리는 재빨리 입장을 번복했지만,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민주주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독일이 러시아 가스 수송 차단을 거부한다면, 독일은 사실상 대량 학살의 공모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뉴욕타임스>, 2022년 4월 7일 자). <르몽드>는 “러시아 가스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2022년 4월 8일자), 그런 조치가 “제조업체와 소비자 양측에 비용 증가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부분적인 실업과 일자리 감소로 인한 생산 중단”을 의미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가스 시장 재편이 부른 3중의 문제
이 사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곧 미국이 결정하고 독일이 과감하게 승인한 러시아 제재는, 결국 유럽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 재무 장관 재닛 옐런은 “유럽이 러시아 석유에 금수조치를 내려도 러시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 조치로 러시아 원유가는 상승할 것이고, 결국 러시아는 이득을 볼 것이다.(6) 좀 더 넓게 보면, LNG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가스 시장 재편은 경제-안보-생태라는 3중의 문제를 야기한다. 석유와 달리 LNG 가격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2002년 1/4분기에 1mBtU(영국 열량 단위로 293kwh에 해당한다)는 현물시장 가격으로 미국에서 7달러, 유럽에서 32.3달러(3월 7일 72달러로 최고가), 아시아에서 30.7달러에 거래됐다.(7) 따라서 유럽은 가스 가격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시점에 새로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2020년 여름 가스 가격은 2달러/mBtU 미만이었다.
공급의 신뢰성은 또 다른 문제다. 러시아나 카타르는 주권 국가와의 약속으로 장기 계약을 체결한 것이지만, 미국과의 LNG 거래는 민간 생산자들과 하는 것이므로 시장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LNG 운반선 브리티시 리스너는 3월 21일 휴스턴 인근의 프리포트 LNG를 출발해 파나마운하를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장기 항해에 나섰다. 그러나 이 선박은 4월 1일 방향을 되돌려 수문을 다시 통과한 뒤, 가격을 올려 유럽으로 향했다.(8) 이 장기 항해는 유럽 에너지 장관들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했다.
그러나 러시아-유럽 간 가스 공급 중단의 가장 큰 위선적인 측면은 환경과 관련된다. 미국에서 LNG를 생산 및 운송하면 기존의 러시아산 가스를 생산 및 운송하는 것보다 2배나 더 많은 탄소 발자국이 발생한다(프랑스로 수송한다고 했을 때 러시아산의 CO2 발생량은 23g/kwh인데 반해 미국산은 58g/kwh)(9)이나 된다. 수압 파쇄로 발생하는 오염까지 계산에 포함하면 트럼프와 바이든이 애지중지하는 ‘자유의 가스’ 발자국은 CO2 양이 85g/kwh까지 상승한다. 라인(Rhein) 경제의 녹색화 가설을 기대한다면서, 독일 녹색당 장관들이 발생시킨 탄소 발자국을 현황을 보면 더더욱 터무니없어 보인다. 지정학적 힘의 관계가 이토록 폭력적인 이유는, 어떤 환상이 오랫동안 국제 관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해왔기 때문이다. 채굴에서 운송을 거쳐 소비까지, 화석연료 거래는 상호의존 관계 속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논리로 성사된다.
수십 년간 세계화가 성공하면서, 시장의 전도사들은 ‘상호의존’이라는 미덕으로 인해 평화로운 세계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예언은 미국의 국제관계 연구자인 헨리 퍼렐과 에이브러햄 뉴먼에 의해 박살났다. 그들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온 한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네트워크 구조는 권력관계가 분산되고 비대칭이 제거된 평평하고 협력적인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힘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10)
실제로 일부 국가들은 스위프트 금융 통신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가스를 보유한 러시아처럼, 상호의존성을 강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부터, 서구 세력은 러시아가 얌전하게 굴지 않는다면, 난방 없이 겨울을 견디라는 협박을 할 것이라 우려해왔다. 푸틴이 루블화 지급을 조건으로 내건 지난 3월, 이 협박이 현실로 나타났다.
‘불안한 승자’ 미국, 산유국 이란과 대화 나서
에너지 상호 의존이라는 이 거대한 게임에서 미국은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중국과 인도 같은 거대 경쟁국들이 언제나 더 많은 화석연료를 수입하는 반면, 미국은 걱정할 게 없다. 전쟁으로 미국의 지위는 공고해졌고, 셰일 가스 및 석유의 민간 생산자들은 힘 빠진 경쟁상대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동 제한, 물류 혼란, 부품 및 원자재 부족으로 2년간 제조업이 중단되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주주들의 번영과 사회 질서가 동시에 위협을 받았다.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되고, 임기 중반 선거를 6개월 앞둔 시기에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2020년 이후 2배로 뛰었다. 가스 가격과 마찬가지로, 이는 프랑스보다 미국에서 더 긴박한 사안이었다.
한 상원 단체는 지난 2월,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신속한 조치”를 촉구하며 “정부는 가스 수출량 폭등으로 미국 가계의 잠재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파이낸셜 타임스>, 2022년 5월 6일 자).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한 이후, 미국은 달아오르는 이 압력솥을 근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지금까지 강도 높은 제재로 압박해온 베네수엘라와 이란 두 나라와 대화를 재개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다.
미국이 불안한 승자라면, 러시아도 (유럽과 더불어) 자초한 갈등에 대해 ‘속는 자’로 보인다. 2021년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출 절반 이상과 가스의 3/4이 서구 시장에 팔렸는데, 이 시장이 폐쇄되면 러시아연방의 수익은 영구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물론 4월 말에도 여전히 EU 국가들은 에너지 비용으로 1일 약 10억 유로씩 러시아에 지불하고 있다. 제재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봄의 석유 가격은 크렘린의 회계 책임자들에게 2022년에 전년도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다.(11)
그러나 유럽의 통화 흐름은 감소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엑손 등 주요 기업들의 철수로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은 늦어질 것이다. 노르트스트림2 중단과 일련의 제재에 맞서 푸틴은 4월 14일, 러시아의 경제 지도부에 “최근 몇 년간 추세를 강화하고, 러시아의 수출을 급성장시키고 있는 남쪽과 동쪽 시장으로 점진적으로 선회하라”(12)고 촉구했다. 아시아 중심의 에너지 무역 프로젝트는 사실 오래전에 시작된 발상이다.
2003년 채택된 ‘2020년까지의 러시아 에너지 전략’은 이미 아시아로의 선회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으며, 이후에도 재차 천명됐다.(13) 이 전략은 2012년 중국과 일본으로 하루 160만 배럴의 석유를 수송 가능한 길이 4,740km의 수송관(ESPO)을 가동함으로써 구체화됐다. 또한 2019년에 ‘시베리아의 힘(Sila Sibiri)’ 가스관을 열어 중국에 연간 380억㎥의 가스 수송이 가능해지면서(참고로, 노르드스트림1은 연간 55Md㎥를 수송한다), 유럽에 과도하게 독점적으로 의존하는 가스 무역 구조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속이는 자’ 중국, 러시아와 제2 송유관 건설 추진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는 몽골을 가로질러 중국에 연간 50Md㎥를 수송할 수 있는 제2 송유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두 대국은 서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고 있는데,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낀 몽골은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형국이다.(14) 러시아는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미국, 카타르, 호주와 경쟁하기 위해 LNG 시장에서 강력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특히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관여하는 사할린 섬과, 지금까지 토털 에너지와 제휴한 기단 반도(북극 LNG2)에 여러 개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아시아 시장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제재로 인한 기술・물류・재정 문제 외에도, 아시아 고객들과의 협상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지난 4월 중국의 독립 정유사들은 100달러를 웃돌던 브렌트유 가격 대비 러시아 원유 1배럴당 35달러를 할인받았다.(15) 절호의 기회였다. 2022년 상반기 중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에너지양은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단기적으로는 지난 가을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를 피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중요했다.
중국은 중기적으로 1차 에너지원인 석탄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가 절실한 중국은 석유 소비량의 3/4과 가스 수요의 40%를 수입하므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통제하는 항로에 크게 의존한다.(16) 후진타오 주석은 2003년 11월 이 약점을 ‘말라카 딜레마’라고 일컬었다. 말레이시아와 수마트라 섬 혹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있는) 필립스 섬 사이에 위치한 해협이 봉쇄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탄화수소의 80%가 오가는 이 지역을 막으면 중국은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해로든 육로든 러시아가 제안한 동부와 북부의 공급로는 시진핑 주석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대일로’ 전략이 그리는 노선에 흥미롭고 보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실속 차리는 자’ 인도, 미국의 압력에도 러시아산 원유수입 늘려
중국과 더불어 또 다른 ‘속이는 자’가 바겐세일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는 다름 아닌 인도다. 인도의 러시아 원유 구매량은 12월에 거의 전무했으나,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4월에는 인도 전체 수입량의 17%에 해당하는 70만 배럴 가까이로 급증했다. 현재 가격 대비 30% 할인이라는 조건은 이런 욕망을 부분적으로 크게 자극할 것이다. 러시아 유조선들이 더 많은 선박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심해질 것이다.(17) 인도의 원유 정제 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가솔린으로 바꿔 꽤 높은 마진으로 유럽에 되팔 수단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18) 제재의 지정학은 때로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승자들이 있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은 허세를 부리고 있고, 러시아는 곤경에 처해 있으며, 한쪽에서는 유럽이 다른 쪽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인플레와 산업 생산 비용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시급히 탄화수소 공급을 재조정하고 있다. 반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 1위와 3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의 유럽 고객이 기피하는 러시아산 연료를 통해 연료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에너지 회사?
한편, 우크라이나 철수를 위해 러시아에 경제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서구의 합의는,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 실패를 부른다.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은 러시아 가스 없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유럽인들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석탄을 태울 수 있다.” 또한, 환경문제로 폐쇄한 그로닝겐 바타비아 가스전을 재가동할지도 모른다(<파이낸셜 타임스>, 2022년 4월 30일~5월 1일 자). 그레타 툰베리가 “감히!”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린 독일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폐쇄한 화력발전소의 재가동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 이후, 가장 오염도가 심한 탄화수소의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세계는 광산 대기업들이 겨우 수요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탄화수소 소비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19)
악순환이 시작됐다. 러시아에 가한 제제가 유연하고 당장 사용 가능한 에너지인 화석연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갈망을 부채질하고 있다. 재생 가능한 자원의 양은 현재 전기 생산량의 1/3 이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사회 지도자들, 특히 2021년 2월 미국이 파리협정에 복귀하면서 제시한 기후 약속은 대규모 채굴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주요 기업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 스스로 금세기 중반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한 경제정보기관이 날카롭게 요약하고 있다. “석유 기업들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이익을 얻고 있으나, 이 이익을 러시아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에 투자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도자들은 주주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전 세계를 더 팽팽해진 에너지 시장에 대비시키고 있다.”(20)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쉘, 카타르 가스, 토털 에너지, 사우디 아람코, BP, 엑손, 셰브론인가?
글·마티아스 레몽 Mathias Reymond
경제학자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REPowerEU : Action européenne conjointe pour une énergie plus abordable, plus sûre et plus durable 더 저렴하고 더 안전하며 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유럽 공동 행동’, 유럽 집행위원회, Strasbourg, 2022년 3월 8일. 최종 버전: ‘REPowerEU Plan’, Bruxelles, 2022년 5월 18일.
(2) <Les Échos>, Paris, 2022년 2월 4일자.
(3)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22년 4월 28일자.
(4) ‘Comment saboter un gazoduc 가스관 건설을 방해하는 방법’ &‘ Washington sème la zizanie sur le marché européen du gaz 미국,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을 뒤흔들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5월호.
(5) <The New York Times>, 2022년 5월 7일자.
(6) <The Wall Street Journal>, 2022년 4월 29일자.
(7) ‘Quarterly report - Q1 2022 - International natural gas prices 분기 보고서 -2022년 1분기 - 국제 천연가스 가격’, Cedigaz, Rueil-Malmaison, 2022년 4월 19일.
(8) Sergio Chapa, ‘Another LNG tanker took a dramatic U-turn in pursuit of higher prices LNG 유조선, 더 높은 가격을 향해 또다시 극적 회항’, <Bloomberg>, 2022년 4월 8일자.
(9) <르몽드>, 2022년 4월 19일, Alexandre Joly & Justine Mossé, ‘Importations de gaz naturel : tous les crus ne se valent pas 천연가스 수입: 모든 원료가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www.carbone4.com, 2021년 10월.
(10) Henry Farrell & Abraham L. Newman, 『Weaponized interdependence :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 무기화된 상호의존성: 세계 경제 네트워크는 어떻게 국가를 강제하는가』, <International Security>, MIT Press, vol. 44, n° 1, Cambridge, 2019.
(11) <The Wall Street Journal>, 2022년 4월 29일자, <Washington Post>, 2022년 5월 11일자.
(12) Vladimir Poutine, ‘Meeting on current situation in oil and gas sector 석유 및 가스 부문 현황 회의’, 2022년 4월 14일, http://en.kremlin.ru
(13) Vladimir Kutcherov, Maria Morgunova, Valery Bessel & Alexey Lopatin, ‘Russian natural gas exports : An analysis of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 도전 및 기회 분석’, <Energy Strategy Reviews>, vol. 30, 2020년 7월호.
(14) Munkhnaran Bayarlkhagva, ‘A new Russian gas pipeline is a bad idea for Mongolia 새 러시아 가스관은 몽골에 해로운 발상이다’, <The Diplomat>, 2022년 5월 1일자.
(15) <Financial Times>, London, 2022년 5월 4일자.
(16) John Kemp, ‘China’s five-year plan focuses on energy security 중국의 5개년 개획은 에너지 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Reuters>, 2021년 3월 19일자.
(17) <The New York Times>, international edition, 2022년 5월 5일, <The Washington Post>, 2022년 3월 11일자.
(18) Emily Schmall & Stanley Reed, ‘India finds Russian oil an irresistible deal, no matter the diplomatic pressure 외교적 압력이 있지만 인도는 러시아 석유를 거부할 수 없는 거래로 본다’, <The New York Times>, 2022년 5월 4일자.
(19) Will Wade & Stephen Stapczynski, ‘Russia’s war is turbocharging the world’s addiction to coal 러시아의 전쟁으로 세계 석탄 중독이 급발진하고 있다’, <Bloomberg>, 2022년 4월 25일자.
(20) Kevin Crowley & Laura Hurst, ‘Big oil spends on investors, not output, prolonging crude crunch 거대 정유사는 생산량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돈을 들여 원유 부족 사태를 장기화한다’, <Bloomberg>, 2022년 5월 7일자.
중국과 석탄
석탄은 오염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다. 수출량은 2013년부터 내림세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의 갈탄 광산들도 곧 폐쇄될 예정이다. 한편, 중국은 2022년에 전년 대비 3억 톤의 석탄을 더 채굴할 계획이다. 전 세계 석탄 생산량과 소비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은,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탄 채굴량을 늘리고자 한다.(< Les Echos>, 2022년 4월 21일) 중국 정부는 오염물질을 배출해도 좋으니, 에너지 독립을 보장받길 원한다. 그런 한편, 206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약속하며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서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길 희망한다.
번역·정나영 |
베네수엘라
브라질을 제외하면 남미 국가들의 1차 에너지 소비량은 큰 편이 아니다. 생산 측면에서는,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을 약간 앞질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15년 전부터 곤두박질치고 있다. 2006년 334만 배럴에 이르던 일일 생산량은 오늘날 75만 배럴에 불과하다.(출처: BP) 2019년 4월부터 미국, 캐나다와 유럽연합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공사(PDVSA)를 대상으로 금수 조치에 들어갔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우파 야당의 후안 과이도를 지원할 목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산 원유 중 유독 점성이 강한 일부는 텍사스나 루이지애나에서 정유됐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정부를 압박하는 경제 제재에 이어, 미 정부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러시아산으로 대체했다. 그때부터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염가에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제재로 유가가 뛰면서 바이든 미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베네수엘라와 접촉을 구상했다. 새로운 세계 수요를 충당하려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공사는 시장조사와 새로운 시추기 도입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월스트리트 저널> 2022년 3월 6일 자 기사에 따르면 5년간 120억 달러) 한편, 가스는 남미 대륙의 전략 자원과는 거리가 멀다. 액화천연가스를 전 세계로 수송하는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유일한 생산국이다.
번역·정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