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분열된 러시아 ‘좌파’
레닌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공산주의자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 9월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 신세대 공산주의자 의원들은 스스로 크렘린궁에 대적하는 야당 세력이 되기를 희망했다. 이후로 공산당 지도부는 반체체 인사들을 숙청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작전을 독려했다. 의회 바깥에서 좌파 활동가들은 여전히 전투를 이어나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월 22일자 연설에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동기를 밝혔다.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 국경 내에 볼셰비키 세력이 만든 인공적인 실체고, “당연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우크라이나’라고 부를 수 있다.”
푸틴, “볼셰비키의 전략적 오류로 통일국가 붕괴”
푸틴 대통령은 20년 전 집권할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엄청난 지정학적 참사’라고 평가했지만 이제 진정한 비극은 소비에트연방의 창설이라고 믿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볼셰비키 지도부가 범한 전략적 오류로 통일 국가가 붕괴됐다”며 각 공화국이 소비에트연방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비에트 헌법에 남겨 놓은 레닌을 비난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진정한 탈공산화’ 프레임을 씌워서 소비에트 역사라는 과거를 청산하고 혁명 이전 러시아 제국의 원칙들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했다. 이같은 반(反)레닌주의 움직임은 원내 제2당인 러시아연방공산당(PCFR),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러시아연방공산당의 지도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수 작전’을 아낌없이 지원하는배경이 됐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의 강령 서두를 보면 볼셰비키당의 직접적인 계보를 잇는다는 선언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연방공산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93년이다. 그보다 두 해 앞서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소비에트공산당을 해산시켰고, 이후 러시아 경제에 도입된 ‘충격 요법’(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역주)을 맹렬하게 반대하는 여러 좌파 정치 단체가 등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 좌파 단체를 축출하기 위해서 정치 게임의 새로운 규칙들을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온건파 야당 세력 창설을 장려하기로 결정했다. 옐친 대통령은 ‘범죄적 공산주의 이념’을 금지할 방도를 고심한 끝에 일부 동유럽 국가를 본떠서 공산당 재건을 승인했다.
1993년 2월 러시아연방공산당 창립대회에서 겐나디 주가노프가 당수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3년 10월에 ‘소련 최고회의(러시아 의회)’의 무력 해산이 권위주의적 대통령 체제 수립의 전조가 된 이후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새로운 정당 체제의 좌파 진영에서 사실상 준독점 상태를 점하게 됐다. 그 대가로 러시아연방공산당은 ‘득표율이 얼마가 됐든 상관없이 공산당원들은 국가의 전략적 방향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에 굴복했다. 특히 공산당원들은 민영화 계획과 시장 경제 건설에 반대하기를 포기했다. 이들은 사회 불만을 통제하며 오랜 기간 동안 체재안정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러시아연방공산당은 활동 기반이 가장 넓은 정당(당원 수가 50만 가까이 됐음)이었고, 시위대 수만 명을 거리로 결집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유일한 정당이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재정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텔레비전에 대한 접근성이 거의 전무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의 열정에 힘입어 선거 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1995년 하원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주가노프 당수는 대선 2차 투표까지 진출했으나 옐친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했다. 이 선거에서 여러 조작이 있었지만 러시아연방공산당 당원들은 투표 결과를 인정했다.(1)
2000년에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의 정치 체제는 점차 경직됐다. 크렘린궁은 러시아연방공산당의 성공과 상대적인 독립성을 점점 더 용인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정부는 러시아연방공산당 지도부에게 모든 급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러시아연방공산당 조직에 대한 재정적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했다. 2000년대 초반 당원으로부터 거두는 분담금은 러시아연방공산당의 수입의 절반이 넘었지만 2015년에는 6%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공공 자금 비중은 89%로 증가했다.(2)
야당 러시아 연합공산당, 반체제 유권자들에게 구애
러시아연방공산당은 ‘건설적인’ 야당 역할을 온순하게 수행했지만 그 때문에 당원 수가 줄기 시작했고(2016년을 기준으로 16만 명) 유권자층의 지지도 잃게 됐다. 그 이후로 러시아연방공산당은 크렘린궁에 대해 신의를 지킬지, 신규 지지자들을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2011년 총선에서 부정선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총선 투표결과 조작에 반대하는 시위를 외면하고 다른 자유주의 야당이 국민의 자유를 표방하도록 내버려 뒀다. 하지만 2018년 3월 대선에서 마침내 러시아연방공산당은 반체제 유권자들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민영화된 소브호즈(스탈린 시대의 국영 농장-역주)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 파벨 그루지닌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그루지닌은 평소 공산당이 지지하던 인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루지닌은 소비에트연방의 성과나 성공이 아니라 현재 사회의 문제점들을 강조했다.
‘시스템 바깥의’ 반체체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는 대선 보이콧을 호소했지만(나발니는 해당 대선에 출마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루지닌은 1차 투표에서 11.7%의 득표율(860만 표 획득)을 기록해 2위 자리에 오르면서 전통적으로 푸틴이 우세했던 대선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나발니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스마트 투표’라는 새로운 전략을 2018년 가을에 선보였다. 나발니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푸틴의 통합러시아당(당원들은 대부분 공산당원이다)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후보들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했다. 위와 같은 방향 전환은 2018년 여름에 일어난 정년퇴직 연령 상향 조정에 항의하는 시위에서도 볼 수 있었다.(3) 시민들은 해당 연금 개혁 조치에 반발했고 그 때문에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의 입지가 강화됐다. 2018년 9월에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이르쿠츠크 지역과 하카스 지역, 울리야놉스크와 사마라 일부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위와 같은 움직임은 2019년 가을 공산당이 모스크바 시의회 의석 가운데 3분의 1(45석 가운데 13석)을 차지하면서 다시 나타났다.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자유주의 신념을 가진 일부 도시 노동자 계층이 자신의 원칙과 이념적 유사성에 반해서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을 둘러싼 선거 지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공산당 유권자층은 주로 러시아 남부 농업 지대 주민들이었지만 현재는 산업화된 지역과 대도시 주민들이 많다. 2021년 9월 총선에서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예카테린부르크와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첼랴빈스크 등의 도시에서 많은 표를 얻었지만 인구가 수백만이 넘는 이 도시들 가운데 어느 곳도 과거 1990년대에 ‘붉은 벨트’(공산당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던 지역-역주)에 속했던 곳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적 여론이 항상 우세했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연방공산당은 각각 22%와 18.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자유주의 야당인 야블로코당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다른 야당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끄는 러시아자유민주당이 속한 극우파 세력보다 10% 이상 앞섰다. 2016년 총선만 하더라도 두 정당 득표율은 13% 가량으로 비슷했다.
새로운 유권자층이 등장했지만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이념적으로든 내부 정치 구조면에서든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공식 강령에는 여전히 소비에트연방 시절 말기 정신의 스탈린주의와 민족주의, 가부장적 복지국가의 수호 정신이 배어 있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공식 강령에서 ‘역동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고, “자본주의의 부활을 계기로 러시아의 문제는 극도의 예리함을 얻었다”며 ‘위대한 국가의 대량 학살’과 물질적이고 영혼 없는 서구의 공격으로부터 러시아 문명을 보호할 필요성에 대해 알렸다.
위와 같은 노선에 맞춰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1월 19일 러시아군이 국경에서 기동 작전을 수행하고 서구 지도자들이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이어나가던 때, 겐나디 주가노프가 거의 30년 째 당수로 있는 러시아연방공산당 소속 하원위원 11명은 하원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동부의 ‘인민 공화국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들 국민에 대한 ‘대량 학살’을 종식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해당 결의안의 제출은 2014년 민스크 협정(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속한다고 인정함)을 둘러싼 협상이 중단되고 즉각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공산당 소속 하원의원 3명,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
초기만 하더라도 여당인 통합러시아정당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며 해당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뒤 해당 결의안은 의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채택됐으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근거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첫날에 러시아연방공산당은 공식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알렸다. 하지만 공식 성명에서 ‘전쟁’이나 ‘군사 작전’ 등의 단어는 조심스럽게 피했다. 해당 성명에는 이웃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비무장시키고 탈나치화”시켜야 하는 필요성에 대한 공식적인 수사학적 용어들이 재등장했으며 “우크라이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한 미국의 위성국들”의 계획에 대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단언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약 한달 반 뒤인 4월 12일에 새롭게 발표된 선언문에서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즘의 세계 중심지”라고 묘사하고는 서구와의 대치 상황에서 비상사태를 도입하고 엄격한 공공 경제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자유주의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의 정신적·경제적 자원을 동원할 것”을 촉구했다.
반전 좌파 연합, 침공 지지한 러시아 연합공산당에 반발
이 때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했던 단 세 명의 러시아 하원의원도 러시아연방공산당 소속이었다. 오랜 기간 교육 민영화에 반대하며 투쟁을 해 온 올레그 스몰린 의원은 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초기부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군대는 정치에서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군사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군사 행동은 ‘별 것 아닌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와 다른 이들의, 모든 이들의 삶에 가슴이 아픕니다.” 부랴트 공화국의 대의원 바이체슬라프 말카에프도 강력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며 우려를 표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승인을 위한 모든 캠페인에는 […] 매우 다양한 [공산당 하원의원들이 제시한 초기 계획에서] 숨겨진 의도가 있다. […] 그리고 이제 양국 간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시베리아에 있는 말카에프 의원의 선거구에서는 군사 작전이 시작된 이래 전사한 군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보로네시와 블라디보스토크, 코미 공화국, 야쿠티야 지역구에서 선출된 러시아연방공산당 소속 지역의원 여러 명은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당 내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의원으로 꼽히는 에브게니 스투핀 모스크바 시의원은 (하원에 선출되지 않은) 여러 정치 단체를 모아서 반전 좌파 연합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들 활동가에게 있어서 공개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러시아연방공산당 지도자들의 노선에 반한다는 뜻이며 또한 그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 중 몇 명은 카드를 반환하기도 전에 제명됐다.
아나키스트단체, 러시아군에 탈영 촉구하며 평화시위
러시아연방공산당보다 더 좌파 성향이 짙은 다른 단체들은 평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러시아사회주의운동(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에 가까움)은 사회주의운동(SR)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좌파 정당과 함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함께 한 보기 드문 이니셔티브 중 하나다. 해당 성명에서는 러시아가 주도한 범죄이자 제국주의적 전쟁을 규탄하고, 석유와 가스 제재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방위 무기 제공 등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보부가 반애국적이라고 의심되는 지역 좌파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해당 선언이 가진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단체 ‘자치 행동(Avtonomnoe Deistvie)’은 “러시아 군인들에게 탈영을 하고 범죄가 되는 명령에 불복종하고 우크라이나를 즉시 떠날 것”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소비에트연방이라는 옛 국가 권력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과, 좌파의 입장이 민주적이고 반(反)권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계획에 대한 약속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간의 분열을 완성했을 뿐이다. 오늘날 자국 정부가 주도하는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라는 모든 요구는 러시아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억압과 적대감을 초래할 위험이 있지만, 반전 좌파 진영은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에 러시아 군인들에게 장교들의 명령을 거역할 것을 요구했던 사람들이 뜻밖에도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크라이나가 현재 인정된 국경 내에서 형성됐다는 사실은 푸틴 대통령이 레닌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글·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 Ilya Budraitskis
수필가 겸 정치 이론가. 『Dissidents among dissidents. Ideology, politics and the Left in Post-Soviet Russia』(Verso, 모스크바, 2022)의 저자.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Hélène Richard, ‘Quand Washington manipulait la présidentielle russe 워싱턴이 러시아 대선을 조종하려 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3월호·한국어판 2019년 4월호.
(2) ‘Activités financières des partis à la veille des élections des députés à la Douma d’État 러시아 하원에서 하원선거 전날 정당들의 재정 활동’, Golos, 2016년 8월 4일, www.golosinfo.org
(3) Karine Clément, ‘Le visage antisocial de Vladimir Poutine 푸틴의 반사회적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