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형사재판소, 강대국 범죄에 속수무책

국가 이기주의에 가로막힌 취약한 유엔 시스템

2022-05-31     윌리엄 부르동 | 변호사

국제 형사 사법은 몇십 년 만에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이론적으로라면 대량학살 범죄를 저지른 그 어떤 국가원수나 고관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를 위한 위대한 야망은 편파성 논란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3년과 1994년에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를 설치했다. 사법적 혁신으로 평가되는 두 재판소의 설치는, 2002년 7월 1일 발효된 로마 규정(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을 인정하기 위한 다자조약-역주)을 통해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레바논 등의 특별 재판소와 함께 운영됐다. 

현재 유엔 회원국 193개국 가운데 123개국이 ICC에 가입했으나,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및 주요 아랍 국가(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요르단, 튀니지 제외)는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ICC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 강대국 지도자들은 종종 (전쟁, 반인륜 범죄, 침략, 집단학살 등) 최악의 범죄를 일으킨 가해자로 이름을 올린다. 게다가 이 국가들은 국제 형사 사법의 발전을 공공연하게 방해하기까지 한다. 

 

강대국은 ICC 기소에서 벗어나고, 약소국만 걸려들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것에 분노해 2019년 4월, 감비아 출신 파투 벤수다 ICC 검사의 비자를 취소했다. 결국 수사는 공식적으로는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또한, 미국은 해외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을 ICC에 넘기지 못하도록 외국 정부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국제 형사 사법에서 비교적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는 로마 규정을 비준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1999년 상원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프랑스는 서명이 무색하게도, 이런 규정들이 자국에 유리하길 바랐다.(2)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이 새로운 규정에서 전쟁 범죄를 제외하려는 시도를 했고, 비준이 이뤄지기 직전에, 자국민이 저질렀거나 자국 영토에서 자행된 전쟁 범죄들에 대해, 당사국이 ICC의 관할권을 7년 동안 수락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인 124조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조항을 함께 비준한 국가는 프랑스와 콜롬비아뿐이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위베르 베드린은 상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저 몇 달 동안 관련 국가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는 목적뿐인, 정치적 속셈을 가진, 근거 없는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프랑스는 결국 2008년 이 조항의 적용을 철회했다. 

프랑스는 ICC 검사의 기소 가능성을 제한하고, 국제 범죄를 최대한 좁은 범위 안에서 정의하는 대안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로마 규정이 체결됐을 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국제 형사 사법의 커다란 도약을 환영했으나, 속으로는 ICC의 자율성을 두려워했다. ICC의 활동이 (당연히) 외교 정책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ICC의 권한은 범죄가 벌어진 국가의 법규에 근거하며, 용의자의 국적 국가에서 적용되는 법규는 훨씬 부차적인 고려 대상이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처럼, 현직 국가 지도자들의 면책 특권으로는 ICC의 기소를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케냐타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폭력 행위로 인해 2014년 기소되었으나 이후 공소는 철회됐다. 

 

현재 ICC 기소된 자들은 모두 아프리카 국가 출신

ICC의 법규에는 이미 처음부터 ‘이중 잣대’가 암묵적으로 포함돼 있다. ICC의 활동을 보편화(즉, 영토나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ICC 검찰에 대한 제소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안보리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임이사국 다섯 국가의 거부권은, 자국이나 동맹 국가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사안일 경우, 이 가능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 무기를 사용한 것이 거의 확실해 반인륜 범죄와 전쟁 범죄 혐의를 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는 여러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3)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우, 2014년 4월 9일,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한 덕분에 카림 칸 ICC 검사가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로마 규정을 비준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ICC 제소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누리는 이런 특권은 아프리카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와 유럽연합 등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로마 규정을 비준하도록 강력하게 (때때로 은밀히 재정 압박을 가하며) 독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상당수 국가가 ICC의 권한 아래에 있다. 현재 ICC에 기소된 37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다.

2022년 3월 10일, 남오세티야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인 세 명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되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ICC는 2002년 설립된 이후, 단 세 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콩고민주공화국 반란군 수장이었던 토마 루방가와 보스코 은타간다(콩고민주공화국 내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 혐의), 말리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조직원 아흐마드 알파키 알마흐디 등 모두 아프리카 사람이다. 

ICC의 재판관들은 2021년 3월, 2011년 대선 후 벌어진 폭력행위 때문에 기소된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의 반인륜 범죄 혐의를 무죄 판결하며 준엄함과 독립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그바그보 대통령의 처벌을 바라온 벤수다 검사와 검사를 지지한 프랑스에게는 굴욕적인 판결이었다.(4)

이제 ICC에게는 새로운 진실 공방이 기다린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발생한 사건들은 잠재적으로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이기 때문이다. 2월 28일, 영국 출신 카림 칸 ICC 검사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 범죄 및 반인륜 범죄에 대한 조사를 즉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전례 없이 빠른 대처였다. 

그러나 칸 검사의 행동은 복잡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ICC의 관할권은 국내 법규와 비교하면 이른바 ‘보조적인’ 권한이기 때문이다. 국내 법규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무력하다고 해도, 또 해당 국가가 국내 법규를 적용한 절차 착수를 거부한다고 해도 말이다. 일례로, 벤수다 검사는 2020년, 영국군이 2003년에서 2009년 사이 이라크에서 벌인 범죄 조사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사법 당국이 자국에서 해당 범죄를 처리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법관인 이리냐 베네디크토바도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크라이나 사법 당국이 자신들에게 모든 범죄를 처리할 수단이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미래의 용의자 몇몇이 ICC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정치적 협상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대부분이 비밀리에 이뤄질 협상에서는 한 용의자가 같은 혐의에 대해 두 번 판결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시할 것이다. 일부 국가는 분명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의 ‘주역들’을 피고석에 앉히려면 ICC의 신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도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공동 조사팀과 칸 검사 사이에 협력 협정이 체결된 점은 희망적이다. 

 

ICC에 보편적인 관할권 부여해야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 사회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촉매제가 될 수는 있지만, ICC 이미지의 세계화가 모든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에 대한 이례적인 관심과 움직임 때문에 우간다, 리비아, 코트디부아르, 말리, 조지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필리핀 등 ICC가 다루는 다른 사건들의 기소가 늦춰지거나 철회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오랜 투쟁 끝에, 2021년 2월 5일 ICC의 관할권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으로 확대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스라엘 청소년 세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2014년 6월 13일부터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쳤는데, 이때 벌어진 범죄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압박도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이스라엘군을 비롯해 하마스(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집권당-역주)가 2014년 7월과 8월에 저지른 범죄들, 2018년 가자지구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 요르단강 서안 지구 점거에 대한 조사가 2021년 3월 3일 시작됐다.(5) 그러나 벤수다 검사장이 주도한 조사는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의 협력 부재로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ICC 활동 둔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칸 검사는 콜롬비아와 방글라데시에 대한 조사 착수를 발표했다.

많은 비정부기구(NGO)와 국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유엔 헌장을 개정해 ICC의 제소와 관련한 거부권 행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거부권을 가졌으며, 잠재적 가해자이기도 한 강대국들이 사법 절차가 시작되거나 종결되면서 파생되는 그 어떤 손해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바로, ICC에 보편적인 관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몇몇 국제 조약(1984년 12월 10일 채택된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 등)을 비준한 국가들은 자국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모든 용의자들을 심판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2000년대에 여러 국가의 재판소에서는 NGO들이 수집한 자료들 덕분에 이를 실행에 옮겼고, 르완다의 투치족 대학살에 참여한 혐의를 받는 인물들이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필자는 2000년, 세네갈 사법 당국이 이런 보편적인 관할권의 원칙을 인정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아주 긴 법정 공방 끝에, 세네갈 당국은 자국에 망명 중이던 이센 아브레 전 차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정치범 4만 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브레 전 대통령은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 및 고문 등의 혐의로 2017년 4월 26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4년 뒤 코로나19에 감염돼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보편적인 관할권을 인정한 또 다른 사례로, 스페인의 판사 발타사르 가르손이 1998년 10월 16일 런던을 방문한 칠레의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가택 연금 처분을 내린 일이 있었다. 2000년,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잭 스트로 영국 내무 장관은 건강상의 이유로 피노체트를 석방했다. 

 

우크라이나 특별 재판소 설치는 유엔 권한 벗어나 

이 일을 계기로 국가들은 통제권을 되찾았다. 이스라엘과 중국의 외교 항의가 이어진 뒤, 스페인의 판사들은 당사자가 스페인 국민이거나 스페인에 체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는 해외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 대량학살에 대해 조사할 수 없게 됐다. 2009년에는 프랑스도 유사한 제한 조치를 통과시켰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변호사 필리프 샌즈 같은 인사들은 우크라이나 특별 재판소 설치를 제안한다. 침략 범죄, 즉 정당방위가 아닌 상황이나 유엔의 허가가 없는 상황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행위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가 신속히 재판받아야 하는 사유로 충분하다.(6)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특별 재판소 설치는 유엔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엔의 시스템을 더욱 허술하게 만든다.

이렇듯 국제 형사 사법은 세계의 역설을 드러낸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국제 NGO들은 세계화 덕분에 피해자들이 견뎌낸 고통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효율적으로 움직였지만, 동시에 족쇄가 채워지고 훼손된 국제 형사 사법과 마주했다. 늘 그렇듯이, 최대 도덕이라는 꿈은 최소 도덕만을 요구하는 거대 국가 이성(국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국가의 행동 기준-역주)에 대한 집착과 충돌한다. 

 

 

글·윌리엄 부르동 William Bourdon
변호사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Francesca Maria Benvenuto, ‘Soupçons sur la Cour pénale internationale 국제형사재판소의 편향된 그바그보 재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4월호, 한국어판 2016년 6월호
(2)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상원 보고서 n°313 (98-99), 상원 외교, 국방, 군사 위원회를 대표하여 앙드레 뒬레 의원이 작성, Paris, 1999년 4월 12일.
(3) Emmanuel Haddad, ‘Improbable justice internationale en Syrie 시리아에는 국제정의가 적용되지 않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0월호, 한국어판 2017년 11월호.
(4) Fanny Pigeaud, ‘Fiasco du procès de Laurent Gbagbo 요란스럽기만 한 로랑 그바그보의 재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2월호, 한국어판 2018년 1월호.
(5) 예비 조사 관련 2019년 활동 보고서, 국제형사재판소 검찰.
(6) ‘Gordon Brown et Philippe Sands : “Créons un tribunal pénal spécial pour juger le crime d’agression commis contre l’Ukraine” 고든 브라운, 필리프 샌즈,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 범죄를 심판할 수 있는 특별 형사법정을 설치하자”’, <르몽드>, 2022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