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재단의 수상한 농사법
아프리카 농업의 ‘트로이 목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위기가 임박했다. 5월 23일, 아프리카 개발 은행은 아프리카 대륙의 곡물 생산량을 늘릴 긴급계획을 발표했다. 생산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개량종자와 화학비료 사용에 중점을 둔 이 계획 뒤에는,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을 비롯한 거대 기부자들이 있었다.
2020년,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인구는 20% 이상이다. 국제연합(UN)과 아프리카연합(AU)이 공동진행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아프리카 사헬 지역과 중앙아프리카에서 2억 8,160만 인구가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며 “사회적 불안정과 극단적 기후” 및 “더딘 발전으로 인한 취약한 경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1)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공급이 불안해지고,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기아 공포는 어느 때보다 위협적이다.(2) 아프리카 25개국은 자국의 밀 중 1/3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한다.(3) 베냉과 소말리아의 경우, 밀 수입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100%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함에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행 중인 공공농업 정책과 식량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생산 제일주의가 대세다. 2014년, 적도 기니의 수도 말라보에서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 회담에서 정상들은 2025년까지 “기아를 퇴치”하기로 합의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프리카 정상들은 비료, 살충제, 소위 ‘개량’ 종자 등을 활용, “생산성을 최소한 2배로 늘려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키기로 했다. 이것이 이른바 ‘녹색 혁명’이다. 1960년대 인도 사례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4)
실패한 녹색 혁명, 영양실조 30% 증가
이런 접근방식은, 2006년 이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의 강력한 영향력과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기치 아래 적극적으로 장려됐다. 아프리카연합(AU)의 집행위원장은 하이을러마리얌 더살런 에티오피아 전 총리다. 이 단체에는 탄자니아 전 대통령 자카야 키크웨테도 소속돼 있다. 터프츠(Tufts)대학교의 티머시 A. 와이즈 교수에 따르면,(5)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의 전체 예산이 약 10억 달러인데, 그 중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이 무려 65%에 달하는 약 6억 5,000만 달러를 조달한다.
이렇게 엄청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은 실패했다. 그리고,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과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 대표자들은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다. 2006년 당시 목표는 2020년까지 농업 생산량을 2배로 늘리고 식량 불안을 1/2로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내부 기준으로만 봐도 실패한 것이 명백하다. 핵심 목표였던 생산성 향상은 18%에 그쳤다. 가장 성과가 나았던 동아프리카 사례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은 밀 생산의 경우 2006~2018년 에티오피아에서 71%, 르완다에서 66%, 우간다에서 64% 각각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영양실조는 30% 증가했다.(6)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25%가 영양실조 상태였는데, ‘녹색 혁명’ 이후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사실 이 ‘녹색 혁명’은 집약적·단작 영농에 기반한 것으로 다양한 곡물을 제공하기보다 칼로리 공급량만 늘리는 식이다. 유엔 식량 정상회의 특임 대사이자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회장인 아녜스 칼리바타의 말을 빌리면, “식량 다양화는 사치”로 치부된다.(7) 일례로, 르완다에서는 옥수수밭과 벼밭이 영양가 높고 기후변화에 강한 수수밭과 조밭으로 바뀌고 있다.
농민들의 반발, 경작하지 않는 땅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은 아프리카 대륙 기구와 국제기구의 지지를 업고 정책을 고수 중이다. 2030년을 위한 ‘전략’을 봐도 알 수 있다.(8) 이에, 농민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났다. 고구마, 수수 등 기본작물 재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어떤 농민들은 이것들을 몰래 키우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안 안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더 이상 작물을 심지 않기로 한 농부들도 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경작하지 않는 땅’이 늘어나는 현상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땅, 과밀한 인구를 볼 때 이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지난 몇 년의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에, 땅 전체를 경작하지 않고 두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토양 상태가 나빠서 경작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9)
집약적 농업을 지지하는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결국 일부 전통 작물 재배를 허가하기로 했다.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과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체제의 질서와 충돌한다. 아프리카의 2억 소농민을 대표하는 아프리카식량주권동맹(AFSA)은 보조금 지원자들에게 방향을 선회할 것을 요구했다. 아프리카식량주권동맹(AFSA) 회장인 밀리언 빌레이는 2021년 9월 22일 알자지라 방송에서, “아프리카연합(AU) 위원회가 파종법을 지배하는 법과 규칙을 바꾸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화학산업의 승리’, 그들의 진짜 목적은?
식량안보위원회 내에 구성·운영되는 고위급전문가단(HLPE)에 따르면, 2011년부터 아프리카식량주권동맹(AFSA)은 “과학과 실행, 그리고 사회적 움직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친환경 농법을 지지해 왔다.(10) 아프리카식량주권동맹(AFSA)은 “친환경 농법에 대한 보편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아직 없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목표는 상업적 농업 요소 사용을 줄이고 (…) 한층 다양하고 탄력적이며 생산적인 농업 생태계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양과 환경에 따라 필요한 농법도 다르다. 에티오피아 북쪽에서 테프(에티오피아에서만 나는 작물) 씨를 뿌릴 토양을 늘리고, 우간다에서 자연 비료를 사용하며, 탄자니아에서 비를 비축하기 위해 구덩이를 판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다양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동물에의 자연적 대응, 조직과 땅 상태 개선, 이산화탄소 배출 자연 조절, 영양·에너지·쓰레기 재활용”이다.
그러나, 2021년 3월 콩고 수도 브라자빌에서 모인 국제 곡물 바이어들은 이런 노력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11) 그들에게 농산물 산업은 ‘새로운 석유’일 뿐이다. 2030년까지 조 단위의 달러가 오갈 예정인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잠재적 성장이 ‘폭발’하려면 여러 차례 생산량을 증대해야 한다. 따라서 농민들의 저항,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산성을 개선하는 기술 수용을 늦추는 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곡물 바이어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이 2006년에는 비료, 농약 등을 얻으려면 평균 30km를 걸어야 했는데, 2020년에는 10km로 단축됐다고 기뻐한다.
이에 대해, 밀리언 빌레이 회장은 “화학산업의 승리”라며 비판했다. 빌레이 회장에 따르면,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은 “농민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농업 화학 제품 산업과 유전자조작식품(GMO) 산업 시장을 아프리카에 열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그레인(GRAIN) 협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12) 2003년과 2021년 사이에 재단이 농업 부문에 지원하는 지원금의 절반 정도가 집약적 단작 농업을 지지하는 거대 그룹에 돌아갔다.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국제농업연구협의그룹(CGIAR), 농업 기술 아프리카 기금, 유엔 관리 기구 등이다.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는 농업과 이해관계가 아주 깊다. 이런 사정이니, 살충제 산업의 세계적인 리더 격인 바이엘(Bayer)사 같은 거대기업의 실질적인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고 있다.(13) 2010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은 몬산토(Monsanto) 주식 50만 주를 샀다.(14) 몬산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제초제 라운드업을 만든 기업이다.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은 “지원금의 80%가 아프리카 농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기금의 82%가 북아메리카와 유럽에 기반을 둔 거대 기업에 돌아갔고, 아프리카에 있는 단체에 돌아간 기금은 1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15)
남아프리카 종교 공동체 환경 연구소는 500명의 고위직 인사가 서명한 공문을 통해서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이 인류 위기를 악화시키는 농산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16) 이 공문에 의하면, 이런 발전 모델은 땅 없는 농민들을 늘리고, 지역 생태계를 파괴한다. 프란체스카 드 가스파리스 연구소 집행부장은 말한다. “우리가 윤작도 하지 않고 상업용 작물만 재배하면, 그 작물은 병충해에 약해집니다. 비옥한 토양도 망가지고, 생물다양성도 파괴되고, 아프리카 고유의 작물도 줄어들겠지요. 전 세계적으로 과거 상황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산업화한 단작 농사는 아프리카 공동체를 악화시키고, 아프리카의 국제원조 의존도를 높일 것입니다.”
친환경 농업이 대안이 될까? 2015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녹색 세네갈”이라고 명명한 접근방식의 시험대로 세네갈 수도 다카르를 선정했다. 미쉘 파크리 유엔인권이사회 식량권특별보고관은 여기서 “강력한 농민의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많은 자치 단체들의 몇몇 지도자는 지역 결정기관의 멤버가 돼 서아프리카의 다른 기관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연구원 파트리크 보타지와 세바스티안 보일라트는(17) 친환경 농법을 시행하면서 비정부조직(NGO)와 국제 기부자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될까 염려한다. 식민지 시대, 포스트 식민지 시대 프랑스 농학자가 만든 제초제를 수입하는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식량은 상품이 아니다! 인권이다”
또한, 농산물 가공 산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 9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지휘하에 뉴욕에서 유엔이 주최한 식량시스템 정상회의가 열렸다. “식량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인권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3을 차지하고, 80%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현재의 식량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 내용이 정상회의에서 논의돼야 했으나, 세계경제포럼과 공동개최된 정상회의에서는 대기업과 산업의 이익에 대해 논의하기 바빴다. 파크리 보고관은 농업과 식량을 주제로 열린 학회 역사상 이는 상당히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1945년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출범하고 이후 1974년, 1996년, 2001년에 큰 회담이 열렸다. 국제토론의 주제는 항상 식량주권과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이 주제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농업 비즈니스만 남아있다. 이에, 아프리카식량주권동맹(AFSA)을 포함한 100여 개의 단체들이 이 행사를 반대하고 보이콧하는 회담을 열었다.
글·크리스텔 제랑드 Christelle Géran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Aperçu régional de l’état de la sécurité alimentaire et de la nutrition 2021 (2021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상태 보고서)’,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ECA(Economic Commission for Africa, 아프리카경제위원회), AU(African Union, 아프리카연합), Accra, 2021년.
(2) Akram Belkaïd, ‘Le spectre de la famine 기아 공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5월호.
(3) ‘The impact on trade and development of the war in Ukraine’, UNCTAD(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유엔무역개발회의), Geneve, 2022년.
(4) Jacques Diouf, ‘Pour une autre révolution verte en Afrique 아프리카의 또다른 녹색 혁명을 위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4년 9월호.
(5) Timothy A. Wise, ‘Failing Africa’s farmers : an impact assessment of the Alliance for a green revolution in Africa’, Global development and environment Institute, Tufts University, Medford, 2020년 7월.
(6) ‘Indicateurs de sécurité alimentaire 식량안보지수’,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Rome, 2019년.
(7) ‘Good food for all - averting a Covid-19 hunger crisis’ (propos tenus à la minute 37’20).
(8) ‘Notre stratégie 우리의 전략’, https://agra.org
(9) An Ansoms, ‘The end of the green revolution in Rwanda ?’, African review of political economy, Johannesbourg, 2020년.
(10) ‘Approche agroécologique et autres approches novatrices pour une agriculture et des systèmes alimentaires durables propres à améliorer la sécurité alimentaire et la nutrition 식량안보와 영양상태 개선이 가능한 농업과 지속적 식량공급 시스템을 위한 친환경적 농법 및 혁신적 접근법’, HLPE(High Level Panel of Experts on food system and nutrition, 세계식량안보위원회 내 고위급전문가단), Rome, 2019년 7월.
(11) ‘Forum africain régional sur le développement durable, Dialogue régional : systèmes alimentaires africains 지속적 발전을 위한 아프리카 지역 포럼 및 대화 : 아프리카 식량 시스템’ ECA(Economic Commission for Africa, 아프리카경제위원회),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IFAD(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 국제농업개발기금), 아프리카개발은행(African Development Bank Group), Brazzaville, 2021년 3월.
(12),(15) ‘Comment la Fondation Gates pousse le système alimentaire dans la mauvaise direction 빌게이츠 재단은 어떻게 식량 시스템을 악화시키는가’, GRAIN, 2021년 6월. http://grain.org
(13) Lionel Astruc, 『L’art de la fausse générosité : la fondation Bill et Melinda Gates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의 잘못된 후원방식』, Actes sud, Paris, 2019년.
(14) John Vidal, ‘Why is the Gates foundation investing in GM giant Monsanto’, <The Guardian>, London, 2010년 9월 29일.
(16) ‘Open letter to 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from the SAFCEI and faith community representatives from the African continent’, 2020년 9월 10일. http://safcei.org
(17) Patrick Bottazzi, Sébastien Boillat, ‘Political agroecology in Senegal: historicity and repertoires of collective actions of an emerging social movement’, <Sustainability>, Bâle, vol. 13, n° 11, 2021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