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고립되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외교적 실패

2022-05-31     마르크 앙드벨 | 기자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유럽의 구세주’로, <타임>에서는 구대륙의 차기 ‘리더’로 환영받던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제 외신을 미소 짓게 한다. 홍보기관에서 대대적으로 준비한 듯한 그의 외교적 행보는 한 번씩 ‘큰 사건들’로 이목을 끌지만, 대부분은 큰 성과가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자기 시대 사람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지도자’로 보이기 위해 이미지라는 무기를 쓸 줄 안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자신의 상징성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에 맞서 이 지구와 생태계를 지키는 수호자로,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항해 체첸의 성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옹호자로 등장했던 그는, G7에 처음 참석할 때는 쥐스탱 트뤼도와 브로맨스를 뽐내기도 했다.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외교경험이 전무했던 이 전직 은행가는, 5년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는 국외에서 ‘프랑스의 이미지’를 신속하게 회복하기를 갈망했고, 곳곳에서 국제 언론의 찬사를 휩쓸며 이 세계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애썼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프랑스를 ‘중견 대국(Great middle power)’으로 표현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열망을 넘어, 2017년 8월 마크롱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반드시 강대국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 프랑스가 강대국이 돼야만 그도 강력한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임기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의 외교적 성과는 어떨까? 혼돈의 한복판에 있는 이 세계에서 과연 프랑스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국외에서 볼 때 국제무대에서 점점 많은 ‘사건들’이 벌어질 때, 전략적으로 정확한 예측에 실패하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함으로써 프랑스의 무능력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4차례, 1시간 30분의 통화…성과는?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내 여론에 홍보 역할을 할 새로운 기회가 됐다. 다른 많은 사안들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적극적인 행동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2월 중순과 3월 중순에 푸틴과 14차례 전화통화한 사실을 적극 밝혔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열린 TV 연설에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능한 만큼, 또 필요한 만큼 저는 푸틴 대통령과 계속 연락할 것입니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엘리제궁 홍보실은 (외교 관행과 연락의 효율성을 방해할 위험이 있음에도) 통화 내용을 종종 상세히 보도하는 성명을 내보냈다. 마크롱의 출마 선언 당일 엘리제궁은 그가 ‘1시간 30분’ 동안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고, 이를 근거로 ‘곧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 같다’고 예상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엘리제궁 홍보실의 말을 신뢰한다면, 당시 마크롱은 푸틴에게 ‘이제 그만 자신을 속이라고’ 권했을 것이다.

“당신은 자기 말만 하고, 계속 핑계만 찾고 있다. 당신이 내게 하는 말은 현실에 맞지 않고, 현재 벌이는 군사작전도 납득할 수 없다. 당신네 나라가 결국 고립되고 힘을 잃을 것이며 한동안 제재를 받을 것이란 사실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연락 상황을 연출하는 것일까? 아마도 현재 재임 중인 대통령이 당당하고 냉철하게 이 세계의 ‘강대국들’에 맞설 수 있다고, 그러니 전시의 유럽에서 장군을 바꾸지 않는 게 좋다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성명은 여기서 끝이었다. 결과적으로 성과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2월 7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크렘린에서 푸틴을 만났고, 여세를 몰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까지 만났다. 그러나 결국 그가 얻어낸 것은 2월 21일 조 바이든과 푸틴이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는 애매한 약속뿐이었다. 당시 엘리제궁은 당연히 승리를 확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2시간 뒤 크렘린은 이 발표가 ‘앞서간’ 것이라고 판단했고, 같은 날 이 발표에 앞서 푸틴은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고하라”

마크롱에게 이 연속적 사건이 주는 모욕감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와 미국은 유럽연합(EU)에 자기들의 외교에 발맞출 것을 강요한다.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에 집권한 이후 ‘러시아와의 대화’를 외교적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이미 밝혔다. 당선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그는 푸틴을 베르사유로 초청해 외교부의 수많은 외교관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비아리츠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인 2019년 8월, 러시아 대통령이 포르 드 브레강송을 방문한 사실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마크롱은 전통적으로 대사들이 참석하는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 앞에서, 외교부에 존재하는 ‘그림자 정부(Deep State)’를 규탄함으로써 외교관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외교 행정부가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로 풀어가려는 자신의 방식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외교관들에게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를 (…) 재고하라’고 권고하기로 한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꽤 정확하게 분석했다.

“러시아를 유럽에서 몰아내는 것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다. 긴장감을 고조시켜 러시아를 고립 상태로 몰아넣거나, 러시아가 중국 같은 다른 강대국과 손잡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우리의 이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대선 기간에 출간한 저서 『혁명(Révolution)』에서 이미 그의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러시아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안정시킴으로써 서로에 대한 제재를 점진적으로 해소해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자 했다. 트럼프가 시도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와 직접 대화를 재개하려고 시도하던 중, 결국 마크롱은 자신이 유럽의 다른 파트너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프랑스의 일방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적합한 수단이 프랑스에는 없다고 판단했을 정도였다. 또한 엘리제궁은 특히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독일과 각을 세웠는데, 이때 러시아 문제로 프랑스-독일 간 경제적·전략적 대립이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 대통령은 말만 번지르르하다”

2019년 초부터 프랑스는 브뤼셀에 맞서 ‘노르트스트림2’에 반대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가스관으로, 우크라이나 우회 경로가 구축되면 키이우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마크롱은 푸틴 대통령과 대화에 착수한 시점에 이 에너지 프로젝트에 반대했고 미국에 동조하는 모양새였다. 한편 비난을 잠재우고자, 그는 유럽의 파트너들과 영구적인 협의 하에 모스크바와 대화를 진행하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이 외교적인 ‘동시적’ 태도로 인해 러시아인들은 5년 동안 프랑스 대통령을 결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러시아 고위 외교관이 털어놓은 것처럼 “프랑스 대통령은,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심각한데도, 마크롱은 베르사유에서 열린 한 유럽 정상회담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 프랑스가 6개월의 EU 의장국 임기를 확보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EU의 리더로 등장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EU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점차 확대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27개 EU 회원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에 40% 이상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금지 조치에는 반대한다. 며칠 전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 제안했듯, 우크라이나를 긴급히 EU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중재를 제안하는 것은 다른 ‘권력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푸틴을 만나러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스라엘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가 그런 경우다. 터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외교부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와 드미트로 쿨레바의 첫 회담을 안탈라야에서 개최했다. EU의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인 호세프 보렐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중재 요청을 검토하는 방안까지 수락해야 했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들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대국이 나서야 하고 미국도 유럽도 중재자가 될 수 없으니 중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얼마 전 중국과 가스 공급 계약을 새로 체결했고, 중국 쪽으로 가스관 공사에 착수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마크롱의 두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마크롱의 또 다른 약점, 아프리카

그러나 외교 분야에서 마크롱의 약점은 이뿐이 아니다. 현재 아프리카는, 프랑스 입장에서 또 다른 ‘전선(戰線)’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서 사헬 지역의 몇몇 우방국들을 만난 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말리에서 프랑스군을 철수하겠다고 2022년 2월 17일 공식 발표했다. 현재 말리를 장악한 군사정권은, 프랑스 군대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최근 몇 달간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의 준(準)군사 조직 와그너의 용병들이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 입성하면서 결국 프랑스와 말리 정권의 결별이 현실화됐다. 프랑스가 손을 떼자(완전히 철수하려면 4~6개월 정도 걸릴 것이다), 푸틴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번에도 마크롱은 사헬에서 프랑스의 뒤를 이어달라고 유럽의 파트너들, 특히 독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말리에서 프랑스의 실패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으나, 아프리카 내 러시아인들, 프랑스의 다른 경쟁국들, 특히 터키를 상대로 수차례 실수를 저질렀다. 아프리카에서 마크롱이 범한 중요한 실수는 아마 2021년 봄 차드에서 벌어진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차드의 대통령 이드리스 데비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아직 사망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마크롱은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로 달려가 마하마트 데비를 새 지도자로 ‘임명했다.’ 마하마트 데비는 이드리스 데비의 양자로, 원래 고란족 출신이다(이드리스 데비는 자가와족 출신). 프랑스는 ‘부자세습’이란 해결책을 지지함으로써 차드 헌법을 위반한 셈이 됐다. 사실 권력은 국회의장에게 돌아가는 게 수순이지만, 국회의장은 위험 때문에 임시 정부 대통령을 거부했다. 

그러나 헌법에는 이런 상황에 대비한 조항이 있고, 다른 후보들도 있었다. 엘리제궁은 이 결정을 밀고 나가기로 한다. 차드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말리에서 상황이 악화된 이유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한 참관인은 “말리 국민들은 프랑스의 결정보다 스스로 정권을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차드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호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프랑스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말리 다음으로 차드가 러시아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아프리카 내 중국의 성장세도 우려하고 있다. 2000~2016년 중국은 아프리카에 총 1,250억 달러(약 1,138억 유로)의 차관을 제공했다. 이 액수는 세계은행, IFM, 프랑스개발청(AFD)의 총 차관 규모보다 크다. 외무부 장관 장이브 드리앙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포식자’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우리의 경쟁자들은 금기도 제한도 없다”라고 말했다. 푸틴이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고, 마크롱이 환심을 사려 노력했던 대상, 바로 중국이다.  

 

알제리와의 협상에 실패하다

사헬 문제에서도 프랑스는 알제리와의 협상에 실패했다. 지난 가을, 양국은 15년 만에 가장 심각한 외교적 위기를 겪었다. 2021년 9월 30일 알제리 출신, 프랑스-알제리 이중 국적자, 알제리 청년 등 18명을 엘리제궁에 초청한 회담에서 프랑스 대통령은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특히 “1962년 독립 이후의 알제리라는 국가는 기억의 부채(負債) 위에 세워졌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프랑스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정치-군사체제”를 비판했다. 

비자 발급 문제로 양국 관계가 긴박한 상황에서 이 발언들이 나오자 항의가 빗발쳤다. 알제리는 자국 대사를 소환해 사헬에서 바르칸 작전을 수행하는 프랑스 군용기의 알제리 상공 비행을 금지했다. 양국 간 위기 상황의 징후가 포착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시작한 뒤 줄곧 엘리제궁에서 외교 문제를 도맡아온 외교부 장관 르 드리앙은, 결국 몇 주 뒤 비밀리에 알제리를 방문해 상황 수습에 나섰다.       

마크롱은 알제리 ‘체제’를 잘 안다. 그는 경제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알제리 체제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2014년 11월과 2015년 5월 로랑 파비우스 외무부 장관과 알제리를 두 차례 방문하면서 알제리 체제를 경험했다. 당시의 경제부 장관은 ‘경제 외교’라는 이름으로 몇몇 책임자들 및 알제리 과두정치가들과 친분을 맺지만, 양국 간 유용한 중재자들과도 어울렸다. 엘 오라시 호텔 테라스에 알제리의 프랑스산업연맹(Medef)에 해당하는 경영자포럼(FCE) 대표들과 함께하는 업무 조찬이 마련됐다. 알제리의 대기업 경영인 알리 하다드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건설 및 공공사업(BTP)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른 ETRHB 그룹의 회장인 이 리더는 당시 알제리 대통령의 동생인 사이드 부테플리카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마크롱은 대기업 세비탈 그룹 소유주인 이사드 레브랍 회장과도 만찬을 했다. 2019년 봄 히라크(Hirak, 알제리 및 모로코 북부 리프 산악지대, 레바논 등지의 민중저항운동)가 벌어지고 부테플리카 정권이 몰락하면서, 안타깝게도 마크롱은 임기 후반에 이 각별한 관계를 이용할 수 없었다. 2020년 알리 하다드는 다른 알제리 과두정치가들처럼 부패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았고, 이사드 레브랍도 몇 개월간 수감됐다. 우리는 여기서 비스니스와 인맥을 중심으로 한 경제 외교의 한계를 다루고 있다. 이런 이면 외교가 외국의 국민들에게 더 나은 프랑스의 이미지를 선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레바논이라는 중요한 카드

베이루트 시내 인근의 항구를 초토화시킨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 지 이틀 뒤인 2020년 8월 6일, 마크롱 대통령이 긴급히 이곳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베이루트를 방문했을 때 그는 HSBC 은행 CEO인 사미르 아사프와 CMA CGM 선박회사 사장인 로돌프 사데를 대동했다. 사미르 아사프는 2016년 9월 런던에서 대선 캠페인을 위한 모금 만찬을 주최한 바 있다. CMA CGM 선박회사는 베이루트항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관리하기 위해 세계 1위의 MSC 선주(船主)와 제휴를 맺었는데, MSC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은 엘리제궁 비서실장 알렉시 콜레르의 가족들이다. 마크롱은 당연히 카메라 앞에 섰고 구세주 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는 레바논 국민들에게 “저는 여러분을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방문의 물밑작업은 콜레르가 진두지휘했다. 이번에도 프랑스 외무성과 르 드리앙 장관은 제외됐다. 

레바논에서 마크롱은 외교적 위신을 회복하고자 한다. 레바논이라는 카드는 근동에서 소외된 프랑스에는 중요하다. 프랑스는 레바논을 덮친 정치적 위기의 책임자로 서둘러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 리아드 살라메를 지목했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의 미국은 리아드 살라메를, 레바논 중앙은행과 금융 시스템 전체에 대해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 헤즈볼라를 저지할 방어막으로 여겼다. 프랑스 대통령은 경제 위기에 지치고 레바논 엘리트들의 심각한 부패에 격분한 레바논 국민의 민심을 얻기 위해, 주로 IMF가 구상한 금융 해법을 추진해 판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그는 레바논의 미묘한 정치적 균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역 문제와 국제사회의 문제를 통합하지도 않았다. 프랑스는 레바논 중앙은행과 헤즈볼라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둘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성과는 거의 없다. 레바논 엘리트들과 프랑스 대통령의 관계가 몇 주 만에 경색됐다. 2020년 12월 2일 프랑스와 유엔(UN)이 주관한 기부국 화상회의에서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영어로 연설했다. 

 

“이제 프랑스는 그곳에 없다”

알랭 쥐페의 전임 고문이었던 에르완 다부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프랑스가 없으면 중동에서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프랑스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고 한탄했다. 정확히 말해 집권 이후의 마크롱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더 눈에 띄는 존재가 된다. 물론 프랑스의 공식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식민지화에 반대하고, 예루살렘을 두 국가 공동의 수도로 하는 해법을 지지한다. 그러나 정세는 점차 변하고 있다. 트럼프가 2020년 1월 팔레스타인의 국권을 청산하는 ‘세기의 거래(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폐기됐다)’를 제안했을 때, 엘리제궁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라고까지 표현한 외교부 성명에 영감을 줬고, 프랑스의 기존 입장을 언급하지 않은 채 ‘평화 계획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열린 프랑스 유대인단체 대표회의(CRIF) 만찬에서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는 긴급히 브뤼셀로 떠난 대통령을 대신해 국가 원수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연설문을 읽었다. 연설문에서 마크롱은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영원한 수도입니다. 저는 그 말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예루살렘과 관련한 유엔의 결정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템플 마운트(성전산)’를 뜻하는 유대식 표현을 고의로, 그리고 명백히 계속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 운동이 한창인 와중에 발표된 이 성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프랑스의 심도 있는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지역에서 마크롱이 가장 우려하는 존재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동지중해에서 계속 프랑스를 도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터키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프랑스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했다. “그는 NATO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내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또 NATO에 다시 말하겠다. 당신들이 먼저 뇌사상태에 빠졌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충격적인 발언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프랑스 대통령의 인터뷰 후 나온 것으로, 여기서 그는 특히 터키가 트럼프의 동의를 제외하고 다른 동맹국들과 협의 없이 시리아 북동부에서 쿠르드족에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9년 가을에서 2020년 여름 사이, 사실상 워싱턴의 지원을 받는 에르도안은 트리폴리 정부와 함께 리비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계속해서 진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제궁은 러시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가 지원하는 하프타르 장군 택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곧 심각한 외교적 교착상태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2017년 7월 마크롱은 셀생클루 정상회담을 개최해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리더 파예즈 알-사라즈 총리(리비아통합정부(GNA))와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리비아국민군(LNA))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것이 마크롱의 첫 ‘외교적 행동’이었으나, 이 극적 구상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리비아에서 ‘피스메이커’ 역할을 원했다. 그는 이 외교 공세를 위해 엘리제궁에서 극비리에 비선들과 물밑 작업을 벌였다. 비정규 채널을 늘리면서 프랑스는 당시 트리폴리 정부의 내무부 장관이자 미스라타의 실세인 파티 바샤가를 간과했다. 이는 중대한 실수였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바샤가는 결국 20022년 2월 리비아 총리로 선출됐다. 마크롱은 리비아 문제에서 보인 행동으로 유럽에서 고립을 자처했다. 다른 문제들도 그렇지만, EU는 특히 리비아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트리폴리 정부를 지지하는 이탈리아 쪽과, 터키에 반대하는 프랑스 및 그리스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프랑스 고립의 원인은?

프랑스의 고립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 근동 관계의 구조적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후 워싱턴은 태평양을 예의주시했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돌변하자, 마크롱은 대선 기간에 출간한 『혁명』에서 쓴 것처럼 2017년부터 특히 ‘독일과의 전략적 대화’를 통해 ‘유럽 방위’를 구축하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프랑스 대통령은 2019년 가을 <이코노미스트>에서 유럽이 ‘전략적 자치’를 획득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재차 이런 포부를 드러냈다. 

구대륙에서 미국의 퇴장을 언급하면서, 당시 그는 ‘서구권의 붕괴’를 강조하며 파트너들에게 전략적 자치와 안보를 확실히 하려면 ‘강력한 유럽’을 구축할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여러분은 이웃 관계와 관련한 정책을 국내에서 재정립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이해관계가 다른 제3자에게 그 정책의 관리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유럽 스스로 유럽의 주권에 대해 반성해야만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유럽의 파트너들은 이 이슈와 관련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큰 진전이 없자, 독일은 일방적으로 재무장에 나섰고 미국에서 F35 전투기를 사들였다.

아무리 마크롱이라도 특히 중앙유럽이나 동유럽 같은 많은 유럽 파트너들이 즉각 반발할 것을 우려해, 유럽 방위 문제를 NATO에 포함시키는 것까지는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사회당 출신의 전임 외무장관 위베르 베드린은 “소련과 냉전이 종식되면서, 프랑스는 근본적인 지지점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중대한 협약들을 체결함으로써 무마되는 외교적 기회주의와 종종 공존하기도 한다.  

세계가 아시아를 향해 움직이는 이 격변의 상황에서, 프랑스는 묘책이 없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는 프랑스령 지역(폴리네시아, 뉴칼레도니아, 왈리스 푸투나 제도, 레위니옹, 마요트 등)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이유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했으나, 호주는 프랑스가 중국에 너무 소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판단했다. 일례로 2021년 5월 프랑스는 미국, 일본, 호주, 영국과 태평양에서 대규모 해상훈련에 참가하면서, 두 초강대국 사이에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력히 호소했다. 이어서 6월에 영국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마크롱은 소위 ‘선진’ 7개국 그룹은 “중국에 적대적인 집단이 아니며”, 이 “민주주의 집단은 세계의 모든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길을 잃고, 시력도 잃어가는 난국

이 새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프랑스는 길을 잃은 듯하다. 게다가, 시력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호주가 프랑스의 나발 그룹과 맺은 잠수함 계약을 파기하고 오커스(AUKUS,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협정을 발표하기 불과 이틀 전, 마크롱은 호주의 총리 스캇 모리슨에게 걱정 섞인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잠수함이라는 우리의 공동의 야망에 대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어떤 것을 기대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AUKUS 협정 소식을 전하며 외교부 장관 르 드리앙은 외교적 언어 대신 ‘뒤통수를 맞았다’, ‘신뢰를 저버렸다’, ‘일방적 결정’ 같은 직설적 표현을 사용했다. 프랑스는 호주 및 미국 주재 대사들을 즉각 소환했다. 프랑스 언론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부’ 의사를 밝힌 이후, 미국-프랑스 간 가장 심각한 외교적 위기라고 언급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종종 그랬듯, 연극은 통했다. 프랑스는 목소리를 한 번 높인 후에는 결국 미국의 친구들과 보다 세련된 교류를 재개했다. 프랑스가 이런 초강대국과 사이가 틀어진 채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짧은 통화 후 바이든은 2021년 10월 말 로마에서 열린 G20과는 별도로,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빌라 보나파르트에서 마크롱의 영접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어설프게’ 행동한 것을 인정했다. 보디랭귀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바이든은 잘못을 인정하면서 마크롱의 허벅지를 살짝 만졌다. 보기 흉한 장면이다. 드골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프랑스는 동맹국이지만, 프랑스에 동조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글·마르크 앙드벨 Marc Endeweld
기자. 저서로 취재 내용을 담은 『L’Emprise. La France sous influence 영향력의 지배 아래 놓인 프랑스 』가 있다.

번역·조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