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쿠자, 아! 화려한 옛날이여

전성기를 잃어버린 일본의 야쿠자

2022-05-31     야기시타 유타 | 저널리스트

오랫동안 일본의 야쿠자는 전설로 통했다. 하지만 야쿠자 배제 조례와 경찰의 단속 강화로 야쿠자는 15년 만에 조직원이 70%나 줄었다. 점차 야쿠자들의 씨가 마를 판이다. 

 

기노시타 타로(1)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짧은 머리와 탄탄한 체격을 가진 40대의 기노시타 타로는 건물 페인트칠 일을 하고 있다. 기노시타 타로는 도쿄 남쪽에 위치한 동네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면서 아이스커피를 홀짝거린다. 기노시타 타로에게는 특유의 침착함이 느껴진다. 10년 전 3,3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에 속하는 이나가와카이에 몸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기노시타 타로가 야쿠자 조직원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라면 잘린 새끼손가락이다. 잘린 새끼손가락은 야쿠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그는 잘린 새끼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소매 안에 숨겼다. 현재 그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의 과거를 아는 고객은 한 명도 없다. 

그에게 오야붕(일본어로 ‘오야붕 親分’은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역주) 곁에서 보낸 세월은 여전히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25세의 나이에 야쿠자가 된 그는 오야붕의 운전기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했고 집 안 청소부터 옷 세탁까지 모든 집안일도 도맡아 했다. 게다가 마약 중독자였던 오야붕은 조금만 실수해도 마구 때렸고 마약 거래로 돈을 많이 벌어오라며 강요했다. 기노시타 타로는 한 달에 약 7,000유로 정도의 돈을 벌었으나 결국 2011년에 야쿠자의 세계에서 발을 빼기로 결심했다.

사회 복귀에 애를 먹는 많은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과 달리 기노시타 타로는 꽤 쉽게 사회 복귀에 성공했다. 야쿠자에 들어가기 전에 건물 페인트칠 일을 했던 경력 덕분에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훨씬 자유롭습니다. 더는 가족에게 폐를 끼칠 일도 없고요, 야쿠자 세계를 떠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야쿠자는 이미 10년 전부터 쇠퇴하고 있었다. 기노시타 타로가 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야쿠자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다. 기노시타 타로는 아직 조직의 중간간부로 남아 있는 동료 한 명을 만난다. 그 동료는 그를 볼 때마다 5,000~1만 엔(약 37~74유로)를 빌려달라고 한다. “그 동료는 일개 조직원이 아닙니다. 경쟁 조직과 싸움을 벌일 때 공격을 지휘하는 간부급이죠. 야쿠자는 더 이상 사업이 잘되지 않아 거지나 다름없는 처지입니다. 야쿠자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일은 제 평생 절대로 없을 겁니다.” 기노시타 타로가 설명한다. 

서구 언론은 흔히 야쿠자를 매우 강력한 갱단으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야쿠자는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다. 야쿠자가 절정기이던 1960년대에는 조직원이 18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야쿠자의 조직원 수는 2004년에서 2020년 사이에 70%나 감소하였다.(2) 야쿠자의 조직원 수가 이렇게 줄어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수입원을 틀어막아 야쿠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2009년과 2011년 사이에 도입된 법률 때문이다. 

 

현행 헌법으로는 야쿠자 강제해산 불가능

에도 시대(1603~1867)에 등장한 야쿠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혼란한 분위기를 틈타 기승을 부렸다. 그들은 보안요원 등에 진출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늘려갔다. 파업이나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해 야쿠자들과 협력했던 정재계 인사들은, 야쿠자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정재계 인사들과의 오랜 끈끈한 관계 속에서 야쿠자는 항상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마약 밀매, 도박, 매춘과 같은 전통적인 시노기(일본어로 ‘시노기 しのぎ’는 수입원을 뜻하는 은어-역주) 외에도 스위스식 칼을 휘두르며 식당을 난폭한 손님들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기업들의 사주를 받아 채무자들로부터 빚을 받아내는 일도 있다. 

야쿠자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에 따르면, 오랫동안 야쿠자는 ‘필요악’으로 여겨졌다. 경찰이나 정당한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 하려면 야쿠자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쿠자는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지하 경제의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야쿠자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범죄사회학 전문가 히로스에 노보루의 설명이다. 

이처럼 야쿠자가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 것은 헌법 덕분이다.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헌법에 따라 야쿠자의 불법 행위는 처벌을 받지만 야쿠자의 해체를 강제로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언론인 미조구치 아츠시는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조직원 수 3,800명)를 50년간 취재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본처럼 경찰 현장에서 야쿠자 관련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미조구치 아츠시의 설명이다. 조직마다 조직원 수가 몇 명인지, 사무실 주소가 어디인지 같은 정보를 말한다. “이렇게 법망이 허술하다 보니 야쿠자는 사무실 입구나 명함에 조직의 이름을 당당히 내걸 수 있는 것이죠.” 미조구치 아츠시가 덧붙여 말했다.

1980년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야쿠자 조직들을 각각 거느리던 오야붕들은 당시 호황이던 금융을 이용해 일본 경제를 지배하는 왕처럼 군림했다. 1989년에 실시된 경찰 조사(3)에 따르면 야쿠자들이 진출한 전체 산업 분야의 매출액은 연간 1,300억 엔(현재 가치로는 100억 유로 정도)에 달했다. 

 

‘야쿠자 배제 조례’ 도입의 후폭풍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야쿠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 폭력단 대책법이 시행되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의 47개 도도부현에서는 야쿠자와 시민들 사이의 금전적 관계를 일절 금지하는 '야쿠자 배제 조례'를 도입했다. 

이제 야쿠자들뿐만 아니라 야쿠자들과 거래하는 사람들까지 전부 처벌받는다. “요즘 시대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야마구치구미의 6대 보스 시노다 겐이치가 했던 말이다. (4) “다른 평범한 일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희에게도 가족, 친척, 친구가 있습니다. (…)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저희 가족, 친척, 친구들도 이제는 저희와 마찬가지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완전히 비정상이에요.” 11년이 지난 지금, 시노다 겐이치의 이 같은 말은 예언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일본 규슈 오이타현의 전자 설비 회사 규세츠가 2021년 5월에 파산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대표는 후쿠오카시의 한 식당에서 어느 야쿠자 조직의 간부들과 정기적으로 저녁 식사를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지역 경찰은 규세츠의 대표가 ‘야쿠자 조직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죄목을 들며 회사 이름을 공개했다. 그 결과 거래 은행은 이 회사의 계좌를 동결했다. 대표는 자진 청산 절차를 개시할 수밖에 없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처벌은 비교적 가볍지만(징역 1년 혹은 최대 3,800유로의 벌금) 야쿠자 배제 조례는 야쿠자 주변에 일종의 방역선을 그린 것이다. 이에 따라 야쿠자는 항상 피난처로 이용하던 네트워크에서 분리되어 곤경에 처해 있다. 

일본 제3의 도시 오사카에서 다나카 켄타로는 차분하게 맥주를 홀짝거린다. 그는 약 15명의 야쿠자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다나카 겐타로의 조직도 조직원이 많은 곳에 속한다. ‘아우들’로 불리는 조직원들은 손에 맥주잔을 들고 웃으면서 먹고 마신다. 머리를 빡빡 밀고 검은 옷을 입은 다나카 켄타로는 살면서 많은 난관을 헤치고 살아온 남자의 위엄을 보여준다. 약 25년 전에 야쿠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이제 50줄에 접어들었다. 다나카 켄타로는 총 10년을 감옥에서 보냈을 때도, 그리고 출소한 이후에도 주위 분위기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습관이 있다. 그는 조직의 수입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 

다나카 켄타로는 야쿠자 조직에서 고참자로 통한다. 그는 ‘약자를 도우며 강자를 쓰러뜨린다’라는 야쿠자의 행동 강령인 닌쿄도(‘닌쿄 任俠’는 ‘사내답고 용감함’을 뜻한다-역주)의 이상을 따르기 위해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약 거래나 사기에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였으나 마약 거래와 사기는 야쿠자들이 전형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야쿠자 배제 조례로 더 이상 일반 시민들과 접촉할 수 없게 되면서 양심을 지키며 수익을 얻는다는 행동 강령을 지키겠다고 한 다나카 켄타로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제가 빠져주는 게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다나카 켄타로는 겉만 번드르르한 말을 삶의 철학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며 말했다. 

가장 어린 조직원 한 명에 따르면 야쿠자 배제 조례로 확실한 수입원을 안겨주는 사업 건수가 크게 줄어, 결국에는 야쿠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조직원들을 이제 합법적인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트럭 운전사?” 26세의 젊은 조직원이 말했다. “아무리 경찰의 감시가 있어도 위험은 없습니다. 요컨대, 살아남기 위해서는 똑똑해야 합니다.” 한편, 보스인 다나카 켄타로는 경찰의 감시망을 쉽게 피해갔던 예전 시대를 그리워한다.

 

“야쿠자 세계는 가치를 상실했다”

야마구치구미의 한 분파인 기류카이를 진두지휘했던 다케가키 사토루도 다나카 켄타로와 같은 기분이다. 다케가키 사토루는 특히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황금기를 떠올리며 “평범한 야쿠자 조직원들도 지갑에 20만~30만 엔(현재 가치로 약 1,500~2,250유로)을 넣고 다녔습니다”라고 말한다. 일본 경제가 한창 잘나가던 ‘그 아름다운 옛날’을 ‘멋진 자동차에 아름다운 여자를 옆에 두고 다니던 시절’로 표현하는 야쿠자 출신들도 있었다. 야쿠자라는 단어는 한때 이러한 꿈을 안겨주었기에 인기가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야쿠자가 청년 조직원들을 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유다.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야쿠자 조직원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됩니다. 요즘 야쿠자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까요.” 다케가키 사토루가 말한다. 다케가키 사토루는 야쿠자 세계가 가치를 상실했다고 한탄한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조직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한다. 결국, 야쿠자는 탐욕의 길을 택했다.

경찰은 야쿠자 소탕 작전에 나선다. 주요 전략은 무엇일까? 조직원들에게 야쿠자의 세계를 떠나도록 설득하고 이들이 앞으로 확실히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이다. 2016년부터 후쿠오카 지방 경찰은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회사들에게 최대 5,500유로를 지원했다. 2016년부터 2021년 8월까지 경찰은 조직원 593명이 야쿠자를 떠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들 593명 중 81명이 후쿠오카 지방 경찰의 지원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미야하라 오사무 지방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 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야쿠자를 소탕하려면 조직원들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조직원 한 명이 떠나는 것은 오랜 징역형을 받는 것만큼 야쿠자에게 큰 타격이 됩니다.” 조직원들을 설득해 떠나게 하는 작전은 주로 심문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다음 경찰은 조직원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앞으로 가족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야쿠자 세계가 쇠퇴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야쿠자 조직원들을 설득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이미 이들은 언제까지 야쿠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카시타 시로 팀장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의 사회 복귀 전략은 경찰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10년과 2018년 사이에 경찰의 도움으로 야쿠자 세계를 떠난 조직원 5,453명 중에 겨우 3%만이 일자리를 찾았다.(5) 왜 이토록 비율이 낮을까? 일자리를 찾지 못한 다른 전직 조직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화도, 사회 복귀도 힘든 이유

가케코미 데라 협회(일본어로 ‘가케코미 데라 駆込み寺’는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도와주는 사찰’을 뜻한다-역주)의 겐 히데모리 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협회 사무실은 도쿄 중심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겐 히데모리 회장은 동네를 꿰고 있다. 그는 가정 폭력 피해자, 전직 야쿠자 조직원, 은둔형 외톨이(일본에서 ‘히키코모리 引き籠もり’로 불리며 집에 틀어박혀 사회생활을 회피하는 사람들-역주) 등 즉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지원하는 일을 한다. 겐 히데모리 회장은 경찰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야쿠자 생활을 오래 해 그럴듯한 경력이 없는 전직 조직원들을 받아주는 회사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들은 평범하게 살아본 적이 없고 직장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야쿠자 세계와는 문화가 너무 다른 평범한 세상에서 살아온 동료들과 제대로 대화를 하기가 힘듭니다. 전직 야쿠자 조직원은 취업이 되었다고 해도 90%가 6개월 후에 퇴사합니다.” 겐 히데모리 회장이 설명한다.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적어도 감옥과 마약에 대해 의논할 상대가 있는 야쿠자 조직으로 되돌아간다. 경찰의 도움은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이 가장 마지막에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이 정상적인 사회 복귀가 힘든 이유는 조직에 진 빚, 혹은 마약 사용처럼 불법적인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이 회색지대에 개입하는 것은 경찰의 일이 아닙니다. 단체가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을 돕고 싶다면 부모처럼 이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겐 히데모리 회장이 덧붙여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전직 조직원들도 조직을 떠나고 5년 동안은 현역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야쿠자 배제 조례의 적용을 받는다. 전직 야쿠자들이 숨어서 불법 행위에 가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경찰의 작전이다. 은행, 부동산, 심지어 통신사도 조직을 떠난 지 5년이 넘지 않은 전직 조직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은행, 부동산, 통신사는 야쿠자 출신과는 계약을 맺지 않으려 한다. 

“상황이 이런데 일자리를 찾기란 더욱 힘들죠. 결국 전직 야쿠자 조직원들은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며 때로는 혼자, 때로는 집단을 이루며 생존합니다. 감옥은 사실상 이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감옥에 가면 적어도 머물 공간이 있고 옷도 나오고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미조구치 아츠시가 안타까워한다. 

사회학자 히로스에 노보루는 현재의 배제 조례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생산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한다며 지원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야쿠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야쿠자에 들어간 사람들은 열악한 한부모 가정 출신이 많습니다. 필요한 지원이 없으면 이미 인맥과 경험이 있는 무법자들을 낳을 것입니다.” 히로스에 노보루가 힘주어 말한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두려운 일이다. 2011년과 2015년 사이에 야쿠자 조직을 떠난 9,000명 이상의 조직원들 중 2,660명이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전직 조직원이 경찰에 체포될 확률은 일반인보다 평균 60배나 높다.(6) 

 

 

글·야기시타 유타 Yagishita Yuta 
저널리스트 

번역·이주영
번역위원


(1)야쿠자 전직 조직원들의 이름은 당사자들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실었다. 
(2)<2020년 일본의 조직범죄>, 일본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가 발간한 보고서(일본어), npa.go.jp
(3)일본 경찰청 백서, 1989년판, 도쿄(일본어)
(4)인터뷰 내용, <산케이신문>, 도쿄, 2011년 10월 1일 
(5)히로스에 노보루, 『그들이 야쿠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일본 지하 세계의 붕괴』, 신초샤
(6)<2016년 조직범죄 상황 보고서>, 도쿄경시청,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