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癌), 노동자 생명을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

2022-05-31     셀림 데르카위 | 기자

사회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은 석면 폐해와 달리, 노동자 건강에 유해한 다른 물질의 존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실상 노동자는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센셍드니의 연구원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종양학자 등이 자문 조직을 결성해 산재 노동자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

 

파트릭 D.(1)는 72세에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내인 엘렌, 그리고 그의 아들 앙투안은 사회학자 플라비엔 라나로부터 “고인의 노동이력을 상세히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사회학자가 소속된 단체 ‘지스코프93(Giscop93)’은 센생드니 소재 과학단체로, 직업성 암을 조사하고 있다. 지스코프93 소속의 다른 연구원 미셸 에리는 “이런 종류의 질병은, 애초에 산재 여부를 확신하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규 발병자 38만 2,000명, 연간 사망자 15만 7,000명에 달하는(2018년 통계 기준)(2) 암은 남성 사망원인 1위, 여성 사망원인 2위 질병이다. 게다가, 여성 사망자 수는 전염병처럼 늘고 있다. 지난 3월 4일, ‘세계 암의 날’을 맞이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향후 프랑스의 국가 암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정부가 앞으로도 이 질병을 지속적 국정우선과제로 삼을 것”(3)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직업성 암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 병은 네 탓”이라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암의 원인을 흡연, 음주, 식습관 등 개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찾는다. 정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조금만 신경 써서 관리한다면 “암의 40%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4)라고 선전하고 있다. 즉, 노동환경이 암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직업성 암 발병자는 최소 5만 700명에서 최대 8만 400명에 달하지만(5), 그들 중  정작 건강보험기금(CPAM)으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은 환자는 단 2,000명에 불과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려면, 환자가 직접 산재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어디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됐는지 알기 어렵다. 일터와 병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신고시점으로부터 몇 년, 또는 몇십 년 전 유해물질에 노출된 경우라면 더욱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의료진은 산재심사에 필수적인 진단서 작성에 소홀하다. 시간부족을 핑계로 삼거나, 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한 경우다. 또한, 발암물질 노출이 ‘통상적인’ 업무 수행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드물다. 업무범위를 명시한 직무규정 서류는 작성 의무가 없으며, 설혹 작성했더라도 실제로 수행한 업무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2002년, 피해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는 이 험난한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지스코프93’이 결성됐다. 현재는 소르본파리노르(보비니) 대학교의 연구팀도 협업중이다. 이들은 직장 내 발암물질 노출 위험을 찾아, 더 많은 피해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또한, 이 연구팀은 CPAM의 산재심사 방해요소를 미리 파악해, 피해 노동자나 상속권자가 제대로 피해보상을 받게 하려 한다. 나아가, 직업성 질병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려 예방하고자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지스코프93’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는커녕 도리어 삭감했다. ‘지스코프93’의 공동 대표인 사회학자 안 마르샹은 “2002년 20만 유로에서 2021년 7만 유로로 대폭 삭감됐다”라고 지적했다. 예산 축소의 여파로 ‘지스코프93’은 연구 영역을 대폭 축소해야 했고, 기존에 호흡기내과와 진행하던 협업을 잠정 중단해야 했다. 대신 모든 연구를, 센생드니 비뇨기과병원연합 소속 의사들과의 협업 하에, 방광 및 신장 등 비뇨기계 암(발병자가 적으며, 업무상 발병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질병)의 연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스코프93’과 협업하는 비뇨기과 의사들은 대상 환자를 찾는 일을 한다. 센생드니에 거주하는 비뇨기암을 진단받은 환자들 중 동의서를 작성한 이들을 대상자로 선정하는 일이다.

이 업무를 진두지휘한 에마뉘엘 반 글라베크 박사는 협업관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우리 의사들은 ‘지스코프93’의 지원을 받을 비뇨기 암 환자를 취합하고 있다. 그러면 ‘지스코프93’에서 최대한 부드럽게 환자에게 접촉해 허락을 받아낸다. 이런 방식은 일처리를 매끄럽게 해준다. 이미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암 선고를 하는 무거운 책무를 맡고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산재처리 관련 상담을 해줄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의료진은 산재신고 등 직업성 질병에 관한 전문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 의사 대부분이 직업병 문제를 무시해버린다!”

‘지스코프93’ 소속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장 미셸 스테르디니아크는 “의사들은 환자를 진단할 때 직업병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그들은 그런 관행에 익숙하지 않으며, ‘직업환경과 건강’관련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따라서 직업환경의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 글라베크 박사는 의료진이 지스코프와 협업한 이후, 산재인정 환자가 약 1/3 늘었다고 밝혔다. ‘지스코프93’은 2002년 처음 문을 연 이래 1,400여 명 환자의 노동이력을 재구성했다. 연구 결과, 대개 수십 년 이후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미 퇴직한 저소득층 출신의 공장직이나 사무직(82%) 남성(80%)이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다.(6) 또한 단기계약 노동자들이 많은 탓에, 직업환경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생각났어요!”

파트릭 D.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1948년부터 프랑스 전역의 토질을 측정하고, 실험실에서 화학성분을 다루는 일을 해왔다. 플라비엔 라나는 고인의 유족 및 전 동료들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고인의 직업생활을 최대한 상세하게 재구성하려 노력했다. “고인이 했던 말 중 인상적인 게 있나요?”, “땅을 샌딩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이 장비는 어떤 작업을 하는 데 쓰이나요?”, “장갑 같은 보호장구를 요구한 적은 없나요?”  

조사는 2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해물질에 노출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어떤 직무와 업무를 맡았는지, 어떤 장비를 사용했는지, 보호장구를 착용했다면 어떤 종류의 장비를 사용했는지 등 모든 것을 낱낱이 캐물었다. 조사대상자들은 차차 기억을 되살렸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고인의 전직 동료 한 명이 외쳤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생각났어요! 당시 백혈병과 방광암 등 암 사망자들이 발생하자, 노동조합 측에서 회사 측에 일부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적이 있어요. 물론 경영진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의도적으로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무관한 사회학자가 맡았다.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가급적 다양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에 응했던 이들은 사회학자와 대화하며, 점차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해냈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정보가 때로는 발암물질의 존재 확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수요일은, 마침 ‘지스코프93’의 자문단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스코프93’은 소르본파리노르 대학교 1층에서 어두운 룸 3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우리 존재를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광암 환자, 모하메드 S.의 서류를 탁자 위에 꺼내놓기 전, 미셸 에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와 산업위생전문가, 예방관리감독관, 사회학자 등 총 5인으로 구성된 자문단회의는 산재여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절차를 담당한다. 이 날 전문가들은 총 2시간에 걸쳐 노동자 6명의 노동환경 이력을 낱낱이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직업별 유해물질 노출위험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자 본인이나 친지가 인터뷰에서 설명한 것에 부합하는 발암물질의 존재 여부를 판단했다. 1(의심)~3(확실)단계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 1(20분 이하)~4(4~8시간) 단계로 노출 기간을 판정한다. 한편, 노출 빈도나 강도를 (미약에서 매우 강함까지)평가한다. 그리고 이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CPAM의 산재요건에 충분히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직업성 암’이라고 하면, 흔히 석면과 분진 흡입을 떠올린다.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7) 석면과 관련해서는, 비록 한계는 있지만(10년 이상 노출된 피해자에 한해) 중피종, 폐·기관지암 등 수많은 질환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지스코프93’의 방광암 환자들 중에서도 29%가 석면에 노출됐다. 그 밖에 규토, 다환방향족탄화수소(다핵방향족탄화수소), 염소계 용제, 용접 연기 등에 노출된 사례도 존재한다. 어떤 보호장구도 없이 발암물질에 노출된 노동자가 최소 200만 명에서 최대 500만 명에 이른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여기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8)

 

목숨을 위협하는 잦은 이직과 불안정한 노동

 

‘지스코프93’ 자문팀은 각 직업 분야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분야별로 어떤 성분의 제품이 사용되는지, 해당 물질의 화학적 구성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금지물질 지정일은 언제인지 등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존재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스테르디니아크 박사가 지적했다. “고인이 야간작업을 했다고 하나 장기간은 아니었다.” 미셸 에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삼염화에틸렌 용제는 극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주흐라 슬리마니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자문단회의는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덕분에 전문가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정말 고역이다.” 자문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미셸 에리가 볼멘소리를 했다.

한편 ‘지스코프93’의 연구는 직업성 질병 목록(9)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118개 항목들 중 암 관련 항목은 24개에 불과하다. 그 중 비뇨기암을 언급한 항목은 단 2개뿐이다. ‘지스코프93’의 보강작업으로 더 많은 사례가 산재 승인을 받는다면, 유해물질과 인과작업에 대한 정보를 더욱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직업성 질병 목록도 한층 현실에 맞게 개선될 것이다.

 

상담환자 절반 가량이 탈식민지 시대 이주민들 

1963년 튀니지에서 출생한 모하메드 S.는 각종 물류창고와 공사장을 단기계약으로 전전해왔다. 하지만 판정은 엄혹했다.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실 그의 경우, 입증자료 수집이 무척 어려웠다. 모든 것을 개인의 기억이나 노동증명서 등 일부 자료에만 의지해야 했다. 사실상 그는 시시때때로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병행하는 불안정한 노동을 단기계약으로 전전해왔다. 현재 은퇴한 모하메드 S.는 일생에 거쳐 저숙련 일자리를 15개 이상 거쳐왔다고 증언했다. 안 마르샹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우리의 연구사례만 봐도 환자 1인당 평균 5개 이상의 일자리를 거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49개 일자리를 전전한 환자도 있다. 기절초풍할 수준이다!”

이렇게, 임시직과 하청 계약직 등 이직이 잦은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고숙련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에 비해, 직업생활 중 고위험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10) 안 마르샹은 “일자리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최근에는 잦은 이직이 더욱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상담한 환자들 중 약 절반이, 탈식민지 시대 이주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환자의 경우 직업 환경 이력을 조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데다, (병이나 치료로 인해)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불안정한 거주지와 정리 공간 부족으로 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더욱이 CPAM은 행정 자료를 통해 재직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해서만 산재 심사를 한다. ‘비합법적’ 노동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아픈 노동자가 회사와 싸운다는 것

 

직업상 질병이 인정되는 경우, 가해기업이 한 곳인 경우, 해당기업은 환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또한 환자에게, 또는 환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한다. 그 결과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ATMP)’ 보험료로 기업이 납부해야 할 비용이 더욱 상승한다. 반면 과징금은 물지 않는다. 

한편, 대부분의 사례가 그렇듯, 다수 기업이 문제가 되는 경우, 비용은 기업들이 공동부담한다. 그런 이유에서, ‘지스코프93’은 유해물질 노출 문제가 가장 심각한 기업들의 명칭을 공개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했다. 지리학자 벤자맹 리자니우크는 박사후 과정 논문 주제로, 도내 석면 노출 지역을 지도화하려고 했지만,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로부터 승인을 거절당했다. “국가정보자유위원회는 문제의 책임을 한 기업에만 지울 수 없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절했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시 단위별 통계방식을 선택했다. 어떤 시에 오염기업이 몇 개 존재한다는 식으로 표기했다.” 

1919년 10월 25일자 법률에 따라, 매우 구체적인 절차를 통해 직업성 질병에 대한 정률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도입됐다. 자문단이 산재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 ‘지스코프93’의 연구 책임자들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해당 노동자(혹은 친지 1명)와 종합병원 비뇨기과 의사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비뇨기과 의사가 직업성 질병 관련 1차진단서를 작성한다. 이는 물론, 이론적인 이야기다.

실제로는 절차가 몹시 복잡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의사가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이어 피해자는 건강보험공단 사이트(AMELI)에 접속해 유해물질 노출과 관련한 구체적 작업내용을 명시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일단 산재 승인을 받으면, 피해자는 치료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또한 일당보다 높은 수준의 휴업급여를 지급받는다. 이 비용은 오로지 사업주 혼자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산재보험(ATMP)을 통해 지급된다. 그런 만큼 향후 사업주가 직원들의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 마르샹은 이미 노동자 200명의 산재신청을 지원해왔다. 그는 “일단 CPAM에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그 다음 진행상황은 알기 어렵다”라고 털어놓았다. 안 마르샹의 설명에 따르면, 대개 서류는 사업주와 노동감독관, 자문 의사, 공단 내부 조사관에게 전달된다. 물론 공단에서 파견한 내부 조사관은 고용주와 노동자, 양측 모두의 견해를 청취해야 한다. 양측이 제출한 자료나 서류를 상세히 검토하고, 직업성 질병 목록을 바탕으로 엄격한 기준에 근거에 산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안 마르샹은 “하지만, 이 단계에서 고용주와 노동자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병에 걸려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노동자는 입증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고용주는 전문팀을 대동하고, 사회비용 감축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절차상의 허점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대개 피해 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충돌상황을 사전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다. 일부는 “사장이 거짓말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피해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적 충돌’을 경험한다. 피해자나 가족들은 철저히 상반되는 두 계급 간의 충돌상황을 상당히 폭력적으로 당하게 된다. 종종 어떤 이들은 “사장이 잘 해줬는데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산재신청을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라고 스테르디니아크 박사가 털어놓았다. 대부분은 자신의 병이 노동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노동자를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노동자는 자신의 건강을 해친 그 일자리 덕에 살아나가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검토한 사례들 중에는, 12년 간 항공엔진제조사에서 주조공으로 일한 메흐디 R.도 있었다. 그는 2017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뒤에 남긴 채 비뇨기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양한 행정절차는 형 압델이 맡았다. 때맞춰 압델에게 ‘지스코프93’ 측에서 연락해, 동생의 사망관련 정황을 확인하고, 행정절차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압델이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런 황망한 일을 겪을 때는 경황이 없다. 행정적 문제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압델은 한 배달회사의 인사과에서 근무했다. 그는 정보를 얻고자, 동생의 회사에서 일하던 다른 인사과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부서, 저 부서로 그를 떠넘겼다. “그때 그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몇 가지 정보만 물었을 뿐인데, 날더러 ‘너무 신경질적’이라며 꼬투리를 잡았다.” 압델은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분통을 터뜨렸다. 

 

승소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그러던 가운데, 도움을 준 것은 메흐디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압델에게 “회사에서 주조공이 죽은 것은 메흐디가 처음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메흐디의 동료들은 “메흐디가 월요일마다 마스크나 방호복도 착용하지 않은 채 가마를 청소했다”라며, “아마 그때 발암물질에 속한 세라믹 섬유를 흡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알려줬다. 이런 정보를 접한 ‘지스코프93’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메흐디는 분명 직업성 질병의 희생자였다. 

하지만 공단의 판단은 달랐다. 공단은 결국 산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안 마르샹은 압델을 전문변호사에게로 인도했다. 그즈음 압델은 동생의 동료들로부터 회사가 가마를 교체한 사실을 알아냈다. “다들 희망이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깊이 다짐했다. 끝까지 가보자고. 비용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매번 새로운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낙담한 동생의 아내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일단 산재 판정이 나면, 피해 노동자나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유가족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중대과실’ 혐의로 고용주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 이 경우 고용주는 정률이 아닌, 전액 보상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 만큼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 그러니 기업은 어떻게든 CPAM이 애당초 산재 판정을 내리지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압델이 험난한 투쟁에 나선지 어느덧 4년이나 흘렀다. 압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해보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압델은 하루 빨리 메흐디와 가족들이 이 사건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이제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늘에 대운이 들었다. 드디어 동생이 산재 승인 판정을 받았다.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압델의 변호사도 확신에 찬 어조로 “고용주의 ‘중대과실’이 인정됐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회사가 항소를 했다.” 취재진은 회사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는 회사측 답변만 돌아왔다. 압델은 씁쓸한 얼굴로 급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결코 이번 재판결과를 ‘승리’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죽은 동생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이 있다. “최종판결이 나면 동생의 동료들도 똑같은 절차를 활용할 수 있다. 동료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회사에게 경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뷰에 응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그들 대다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도 바로 이런 믿음일 것이다. 적어도 안 마르샹은 그렇게 확신한다. 온갖 방해와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연대가 지속되고 있다. 

 

 

글·셀림 데르카위 Selim Derkaoui
기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익명
(2) 국립암연구소, ‘2014~2019년 암 계획’, 2021년 2월 5일, e-cancer.fr.
(3) 암퇴치10개년국가전략에 관한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 2022년 2월 4일. 
(4) 기사 제목, 2019년 2월 4일, www.gouvernement.fr.
(5)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병 신고로 인한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해야 할 실질적 비용 추산’, 의회 및 내각 제출 보고서, 2021년 6월 30일.
(6) Emilie Counil, Mélanie Bertin, Annie Thébaud-Mony, Giscop93 연구팀, ‘Expositions aux cancérogènes dans l'activité réelle du travail 실제 수행 작업 중 발암물질 노출’, 국립암연구소(INCa)의 최종활동보고서, 2013년 ; Michel Héry, Pierre Coutet, ‘Construire en permanence la prévention des cancers professionnels 상시 직업성 암 예방 활동 구축하기’, 국립연구안전연구소(INRS), Nancy, 2015년.
(7) Josette Roudaire, Annie Thébaud-Mony, ‘Amisol : quarante années de lutte contre l'amiante et ses conséquences 아미솔 : 40년 석면 퇴치 투쟁과 그 결과’, Annie Thébaud-Mony 외, 『Les risques du travail 노동의 위험성』, La Découverte, Paris, 2015년 ; Annie Thébaud-Mony, ‘Construire la visibilité des cancers professionnels. Une enquête permanente en Seine-Saint-Denis 직업성 암의 가시성 구축하기. 센생드니에 대한 상시 연구’, <Revue française des affaires sociales>, Paris, 제2/3호, 2008년.
(8) Dares, 노동 조건과 노동자 건강 관련 통계 수치, 2021년 8월.
(9) INRS, 직업성 질병 목록
(10) Emilie Counil, ‘Inégalité des parcours de travail et histoires d'exposition aux cancérogènes 노동 이력의 불평등성과 발암물질 노출의 역사’, Annie Thébaud-Mony 외, 위에서 언급한 저서. 

 

 

센생드니에서 보클뤼즈까지

 

지스코프(Giscop)가 센생드니 도(道)에 소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스코프(Giscop)는 프랑스 최초의 직업성 암에 대한 과학적 이해 관계자 단체다. 이 단체가 센생드니 주에 자리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의료기관 지방 분권화가 시작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4년에 들어선 이 공업지대를, 사회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 공중보건 정책의 쇼케이스로 활용하려는 확고한 정치적 의지가 있었다. 당시 보건부 장관이었던 공산주의자 자크 랄리트(Jack Ralite)는 다양한 연구를 지원해, 이 지역 인구에 관한 여러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 결과는 자명했다. 센생드니는 전국에서 결핵과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지역이었다. 밀집된 공업지대에서, 결핵과 암 사망자가 많은 주된 원인이 ‘개인’에게 있을 리는 없었다. 사회학자 아니 테보모니(Annie Thébaud-Mony)는 1990년대 초에 암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직업성 암 발생 원인의 ‘사회적 비가시성’을 알렸으며, 감시단체를 발족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2002년 협회 형태로 창설된 ‘지스코프93’은 2006년, 과학적 이해 관계자 단체로 거듭났다.

파리 13대학에 소속된 이 단체에서는 현재 6명의 연구원이 활동 중이다. 이 중 계약직이 4명, 무기 계약직이 2명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재정이 어려워졌다. 프랑스 노동부 산하 노동 총국(DGT)은 지스코프93에 연간 3만 유로를 지원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노동 총국은 통상적으로는 지역 단위 사업을 지원하지 않지만, 국가 차원의 사업이기에 지원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2021~2025년 직장 보건 계획 4>에서 설명하듯, 직업성 암 예방과 관리를 중점적인 우선순위로 꼽는다.”

지스코프93이 센생드니에서 탄생한 지 몇 년 후, 보클루즈에서 지스코프84가 생겨났다. 이 단체는 2017년 1월부터 아비뇽 종합병원의 혈액종양내과에서 진단된 암 발병률에 집중해왔다. 혈액암은 지난 30년 동안 발병률이 가장 높아진 암 중 하나다. 프랑스 신규 혈액암 환자는 연간 약 3만 5,000명으로, 전체 신규 암 환자의 10%에 달한다.

이 모든 것은, 보란 슬라마(Borhane Slama) 박사를 비롯한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이 주도한 ‘보건 경고’ 운동에서 시작됐다. 지난 10년, 혈액암 발병률은 높아졌고 환자들의 연령대는 낮아졌다. 아니 테보모니와 사회학자 모리츠 훈스만이 만나 지스코프93이 있는 공업 지대와는 매우 다른 시골 지역에서 지스코프84를 창설했다. 보클뤼즈는 프랑스 전국에서 가장 원전이 많은 지방인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내에서도 수천 명이 일하는 3개 주요 원전시설의 교차지점에 있다. 또한, 살충제 사용량이 가장 많은 ‘도(道)’로 꼽힌다.

보클뤼즈는 노동자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곳이다. 특히 모로코에서 이주한 농업 노동자들, 최근에는 중남미에서 이주한 농업 노동자들과 원전 임시 노동자들이 이 지역에 많이 거주한다. 지스코프84의 공동 운영자 모리츠 훈스만은 계절노동, 원자력 하도급 계약 등 임시계약 형태로 이주하는 경우가 흔해, 암이 발병하는 시점에는 이 지역에 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병 원인을 규명할 방법은 있다. “프로방스 내 농업 이주 노동자들의 고향, 모로코의 우지다에 소재한 병원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면 그들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다. 이렇게, 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 산재 인정 및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결단력과 긍정적인 열정을 보여준 모리츠 훈스만은 “다만, 이런 파트너십을 수립할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글·S.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