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 희망은 시민사회뿐

2011-12-12     트리스탕 콜로마

콩고민주공화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열리는 자유선거를 위해 3천만 명의 콩고인들이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11월 28일, 대통령과 5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졌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18명이 숨지고 100명이 다쳤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콩고 국민의 열망은 강하다. 선거를 앞둔 지난 10월, 현지를 취재했다.

콩고민주공화국(RDC)의 수도 킨샤사는 아스팔트와 붉은 흙, 그리고 가난으로 뒤덮인 도시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배고픈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13일, 킨샤사 ‘6월30일 대로’(1)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11월 28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이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제1야당인 사회진보민주연합(UDPS)은 이날도 어김없이 주간 집회를 열었다. 우체국 앞에 모인 50여 명의 시위자들은 거의 순교자 같은 결연한 표정으로 무장한 경찰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리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선거기간에 금지된 기본권

곧바로 진압이 이어진다.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한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해산하시오, 해산하시오!” 연이은 총소리와 함께(다행히 이날은 공중 사격이었다), 최루탄이 발사되고 곤봉질이 시작된다. 곤봉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시민들이 쓰러진다. 누군가가 경찰들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친다. “체포하지 마세요, 기자예요!”

2006년 재선된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은 선거기간에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2) 다른 기본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11월 7일, 콩고 정부는 또다시 <라디오 리장가 TV>(RLTV)의 방영을 금지했다. 그 전날, 역사적인 야당 지도자이자 대통령 후보인 에티엔 치세케디가 <RLTV>에 출연해 “감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시위 중에 체포된 UDPS의 활동가들을 구출하라”고 선동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비관용적 조처는 알렉시스 탐브웨 외무장관이 9월 22일 뉴욕에서 벨기에 외무장관 스테픈 파타케레에게 공언한 것과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모범이 될 선거를 치러 보이겠다.” 카빌라 대통령은 “자유롭고 투명하며 평화로운 선거를 위하여”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만 반복하고 있다.

카빌라 대통령은 7%대 성장률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22.9%의 연간 인플레율, 고부채최빈국(HIPC) 지원(3)에 의한 부채 탕감 등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한다. 또한 2006년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건 사업들(인프라 건설, 일자리 창출, 수도·전기 공급 확대, 교육·보건 개선)이 실제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과연 국민의 삶은 예전보다 나아졌을까?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실업률은 90%에 이르고, 어린이 2명 중 1명만 학교에 다닌다. 전체 국민의 4분의 3이 절대빈곤 상태에서 살며, 58%가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은 2011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 평가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은 아랑곳없이 카빌라 대통령은 9월 14일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오늘 나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신흥국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여러분의 협조와 신의 가호가 있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책임 있는 예산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모이브라임재단(4)이 실시한 국가경영 평가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 53개국 중 50위를 기록했다.  

최악의 가난에 프로파간다뿐

아폴리네르 말루 말루 신부는 그랑호텔 수영장 옆 초가지붕 밑에 앉아 한창 대화 중이다. 그의 명료하고 대담한 발언 사이로 오케스트라의 탱고 연주가 계속된다. 2003년~2011년 2월 독립선관위장을 맡았던 그는 오랫동안 정치에 관여해온 공화주의자다. 아코디언 소리 사이로 그의 목소리는 다소 슬프게 들린다.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국민은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어요.” 이곳에 사는 프랑스인 프랑크 메리오가 거든다. “레오폴드 2세 식민 지배 때처럼 정부는 착취와 억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더 이상 정부나 제도정치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국민과 대표자들 사이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기만 한다. 지난 1월 대통령 선거를 한 번의 투표로 결정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5)이 통과된 것이 한 예다. 카빌라 대통령은 행정기관들과 여당인 재건민주인민당(PPRD) 소속 주지사 11명 전원을 동원해 재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는 이상 야당은 불리한 처지에 몰리게 됐다. 11월 28일 선거에서 누가 당선이 되든, 득표율 50% 이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득표율로 누가 당선되든 과연 국가 통합을 이끌 대표자를 자임할 수 있을까?

민심 이반은 동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2006년 대선 때만 해도 카빌라를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한 지역이다. 당시 카빌라 후보는 두 차례의 전쟁(1996~97, 1998~2003)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재건과 평화를 약속했다. 지난 9월 14일 킹가카티-부에네에서 열린 연설에서, 그는 “동부 지역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소규모의 분쟁만 몇 차례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유엔 콩고임무단(MONUC)- 2010년 말 임무 종결- 에서 일한 한 관리는 카빌라 대통령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내전이 끝난 나라에서 매년 385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주민들은 거리의 아이들(Shege)이나 킨샤사의 폭력배들(Kuluna), 시골의 노상강도와 약탈자들, 동부 지역의 무장세력들에게 갖은 방법으로 희생당하며 일상적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성폭력이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고 25배까지 차이가 난다. 유엔에서는 1만6천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메리칸 저널 오브 퍼블릭 헬스>는 2006~2007년에만 총 40만 명의 여성이 성폭력에 희생됐다고 주장한다.(6) 또한 무력 충돌로 17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난민 신세가 됐다.(7)

오지 않은 평화… 일상이 된 성폭력

이런 상황에서 순조로운 선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조제프 모부투 독재정권 30년과 그 뒤 10년 동안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콩고인들은 각종 모임, 공동체, 직업조합, 노조, 종교단체, 언론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왔다. 각 정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단체들이 ‘평화를 위한 카빌라 지지 엄마들’, ‘카빌라 지지 실내축구회’ 등 정체불명의 특이한 이름을 내걸고 활동한다. 그 외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을 모두 합치면 50만 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유엔 콩고안정화임무단(MONUSCO)- MONUC의 후신- 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공식적으로 활동 중이거나 등록된 단체 수는 총 3천여 개다. 사회학자 프랑수아 폴레는 “엄청난 수의 단체들이 존재함에도 정부의 독단적 정책, 심화되는 빈곤과 불평등은 막지 못했다”(8)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콩고 사회의 놀라운 저력을 방증한다.

키부 호숫가에 자리잡은 고마시 자문위원회(Baraza La Wazee)의 조그만 사무실 안에는 북키부주의 각 부족을 대표하는 10명의 대표자가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 바라자(스와힐리어로 아프리카인들이 모임을 여는 ‘정자나무’를 뜻한다)는 1993년 분쟁을 피하기 위해 ‘북키부의 간디’(9)라고 불린 이들에 의해 설립됐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자 협소한 사무실은 화분 하나 들어갈 공간도 남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이 ‘마을 광장의 교회’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부위원장인 데오 투지 비카나바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자기 의사에 따라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무장단체들이 후보를 낸 지역의 경우 경쟁 후보들이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곳도 있다. 이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없으며, 무장단체들은 주민들에게 자신의 후보를 강요하고 있다. 분쟁 해결과 평화 정착이 그토록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바라자는 북키부주의 선거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수많은 풀뿌리 단체로 열망 표출

그런데 선거인 명부 작성과 카드 발급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지역마다 등록된 선거인단 수가 예전과 너무 다르게 집계되자, 유권자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독립선거관리위원회(CENI)에서 집계한 선거인 수는 총 3202만 명으로, 5년 전의 2570만 명보다 무려 25%나 많다. 인구 증가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선거인 수가 급격히 증가한 곳은 대부분 카빌라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다. 더욱이 선거인 명부가 발표되었을 때, ‘투명하고 평화로운 선거를 위한 행동본부’(AETA)는 잘못 기재된 11만9941명을 추려냈다.(10) 지역 비정부기구들은 주민들이 선거인 명부에 적극적으로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실망으로 많은 콩고인들은 선거 카드조차 거부하고 있다. ‘새로운 콩고 시민사회’(NSCC·인권단체 네트워크)는 일일이 주민들을 만나 선거 참여를 권유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NSCC 산하 ‘발칸화에 대항한 콩고 공동전선’(FCCB) 대표 가넬리 엔콩골로가 말한다. “그 결과 킨샤사에서만 선거인 등록자 수가 250만 명에서 320만 명으로 늘었다. 시민사회의 개입이 없었다면 선거인 수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기술적 문제 외에 물류 문제가 남아 있다. 투표함은 독일에서, 기표소는 레바논에서, 투표도구는 중국에서, 투표용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수해올 것이다. 일단 이 물품들이 도착한 뒤에는 거의 서유럽에 맞먹는 면적에 흩어져 있는 전국의 6만2천 개 투표소로 운반해야 한다. 문제는 비행기가 부족할뿐더러 도로 사정도 부실한 것이다. 심지어 아예 도로가 없는 곳도 있다.

정상적인 선거는 애초 불가능했다

멤링호텔에서 열린 공개 강연회에서 AETA 회장 제롬 봉소는 CENI에 대한 기술적 평가 결과를 언급한다. 열띤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은 호화로운 호텔의 조용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예정대로 선거를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니엘 엔고위 물룬다(CENI위원장)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CENI를 요리사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가령, 정전(靜電)처럼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 요리사에게 식재료를 너무 늦게 사다줄 경우 손님들은 맛없는 요리를 먹거나 제시간에 식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CENI의 중립성 문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시점에서 정곡을 찌르는 발언이다. ‘중앙아프리카 기초공동체지원위원회’(SERACOB) 사무총장 조르주 치온자 역시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우리는 이미 CENI 쪽에 지금까지의 과정대로라면 결코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과 상원, 대통령 모두 책임이 있다. CENI는 중립적 인물들로 구성돼야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중립적인 15명을 추천했을 때 모두 거부당했다.” 민주주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콜라나무 열매처럼 씁쓸한 상황이다.

이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정치적 삶을 재정의하고, 독재정권 시절 무너졌던 공동의 이익을 되찾는 학습의 기회로서 콩고 사회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이들 중에는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얻은 경우도 있다. 말루 말루 신부는 “2006년 시민들은 전국 순회 유세에 참가하면서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것이 변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적 삶이 선거 전, 선거기간, 그리고 선거 뒤에도 지속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위기와 교육 시스템 부족으로 시민들은 선거를 위안과 안심, 면책을 위한 종교적 제의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랍의 봄’에서 찾는 희미한 영감

킨샤사의 붐부 지역은 쓰레기 하치장 위에 세운 마을 같다. 길 곳곳에 버려진 자동차의 잔해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물이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넘보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정부의 관심 못지않게 원활한 전기 공급도 절실하다. ‘약속된 땅’과 같은 부흥교회들이 희망을 설파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대예언자’ 미셰는 파란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서 유치한 ‘메이드 인 차이나’ 플라스틱 꽃으로 부자연스럽게 장식된 연설대 앞에 서 있다. 발전기 고장으로 음악은 들을 수 없지만, 뙤약볕에 달궈진 양철 지붕 밑에서 어린 양들은 미셰 목사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토해내는 설교를 얌전히 듣고 있다. 여기서도 화제는 역시 선거다. “이 나라가 종교 중립을 지키는 한 평화로운 선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선거를 위해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헌금은 신의 나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아멘.” 부흥교회는 성경을 자본 삼아 돈을 버는 영리단체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 예언자들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거나 헌금을 불려서 배당금을 줄 능력이 없다. 신자들에게 공동의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목사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를 지급하고 개인 상담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콩고 사회에 만연한 심각한 개인주의의 폐해다. “가족끼리도 자발적인 연대가 불가능해졌다.” 콩고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프랑크 메리오의 설명이다. ‘평화·안전 연구홍보 그룹’(GRIP) 연구원 미셸 룬툼부는 “콩고 사회의 원자화와 종족주의 경향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운동의 형성을 막고 있다”(11)고 지적한다.

카사부부 지역 NSCC 사무실 안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NSCC 활동가 한 명이 확성기를 붙잡고 열변을 토한다. 이미 수없이 해본 연설이다. 마르티르 스타디움 근처의 이 사무실도 전기가 자주 끊기는 바람에 확성기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NSCC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의 목적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설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몇몇 국회의원 후보들과 한 대뿐인 카메라를 바라보며 조나스 치옴블라는 비타협을 촉구한다. “후보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던지는 소중한 한 표가 이런 값어치밖에 안 됩니까? 콩고의 유권자들은 더 이상 공허한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제공하는 티셔츠나 맥주, 일자리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경고이자 호소입니다. 유권자들은 여러분이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투명하고 평화로운 선거에 동참할 것을 촉구합니다.”

강한 부족주의도 민주주의 걸림돌

현역 국회의원들이 연루된 부정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표결 과정에 금품이 오고 간 사건들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치온자는 “정부가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매수하고 있다”며 분노한다. 이런 극심한 무질서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새 정당들이 생겨나는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정당 수를 민주주의의 척도로 삼는다면 아마 콩고민주공화국은 세계 제1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 터이다. 정당 수가 총 417개에 달한다. 그러나 선거기간에만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다. CENI에 등록된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 수는 총 1만8386명을 헤아린다. 전체 의석수는 500석에 불과한데 말이다. 의석 5개가 할당된 킨샤사의 창구 선거구에만 1548명이 입후보했다. 북키부주 농업장관을 지낸 조시아 바타비하 부쇼키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곳에서 정치는 장사나 마찬가지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국회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임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바로 세울 걱정은 안 하고 모두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 시민사회가 ‘민중의 편’에 서서 부패한 지배계급에 대항해 공동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다.

총리실 부국장 장클로드 마시니는 “1997년 콩고의 디아스포라가 정계 진출을 위해 대거 귀국했지만, 나라의 재산을 독점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디아스푸리’(Diaspora와 Pourrie(부패한)의 합성어)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부족주의에 의존하는 전통적 정치 전략을 사용했지만, 본래의 부족주의와 달리 재산 분배에 인색했다. 마시니 부국장은 화려한 소파에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지휘봉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전통의례를 통해 넘겨받은 그 지휘봉을 그는 석장(錫杖·종교 지도자의 지팡이)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 고향인 반둔두 지역을 방문했을 때 한 지역 촌장에게서 받은 것이다. 이것은 그곳 주민들이 정권을 지지한다는 상징과 같다. 어떤 이들은 이게 다른 지역에 대한 차별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지만, 그보다 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매고 있는 붉은색 넥타이 역시 내 정치적 원칙을 상징한다.”

정체성의 균형을 찾으려는 콩고인들의 성향이 국가 통합을 내세우는 정치적 전통을 가능케 했지만 결과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각 부족의 정체성은 손쉬운 정치적 수단이 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오직 같은 부족 사람만 자신을 대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콩고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일상적인 빈곤 속에서 누구를 뽑아야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올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경향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처럼 부족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소극적이나마 존재하는 국가주의와 대비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선 후보 11명이 콩고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총 365개 부족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콩고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구걸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역사학자 장마리 부탐바는 콩고인들이 “국가를 방어하고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여줄 영웅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그들은 해묵은 부패를 일소해줄 엘롱브(링갈라어로 ‘용감한 사람’이라는 뜻)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학자 필리프 비요야는 현재의 불분명한 상황이 “완전한 독립을 위한 준비가 덜 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콩고인들은 민주적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현재 그들은 국가와 사회를 재건하는 단계에 있지만, 아직 둘 사이의 만남은 힘든 상태다.”

폐허 위에서 일어서는 시민사회

2006년 개정된 헌법은 정치와 시민사회의 화해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개헌 뒤 지방선거는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공공 의제들이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좋은 기회였을 텐데 말이다. 현재 지방선거는 2012년 3~4월로 예정돼 있지만, 이를 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

부카부는 킨샤사보다 한참 동쪽에 있는 지역임에도 좀처럼 해가 뜨지 않는다. 열대성 폭우가 황폐한 도시 전체를 휩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쏟아진다. 남키부주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강당 지붕에도 어김없이 빗발이 쏟아진다. 플라스틱 창을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가 선거기간 안전 문제를 토론하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집어삼킨다. 중재 역할을 맡은 한 여성이 활동 계획서(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 안전한 선거 보장을 위한 사회적 대화,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 해결을 위한 토론 등)의 재검토를 주장한다. 보고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남키부주 지역 중재자인 대안발전연구소(DAI)의 샤를 사디 오마르가 대화를 중단시킨다. 그는 이미 CENI와 협의를 거쳐 확정된 계획이므로 이제 와서 변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점심 한 끼와 교통비를 제공받고 모였건만 오전 내내 한 일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UK에이드(영국 대외 협력단체)에 제출할 보고서에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쓰면 그만일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임무를 완수하는 셈이다.

브레턴우즈 기구들(IMF와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개혁 바람이 아프리카에 불어닥치면서, 국제 투자자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모태가 될 시민사회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시민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국가 주권은 약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분석가들은 지방분권화와 민영화, 외부 협력단체들의 개입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성장을 건강한 민주주의의 척도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필연적으로 시민단체가 협력기구에 의존함으로써 종속적 관계를 맺게 만든다. 비정부기구(NGO)들 간의 경쟁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통치 관행을 바꾸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 단체, 국제기구 등에 대한 로비 활동, 혹은 공공사업의 대행 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정부와 직접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 법안 작성에 참여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길 바라고 있다. 조르주 치온자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다. 시민사회는 국가가 약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국가가 제몫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브레턴우즈 기구들이 제시하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거부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국가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 트리스탕 콜로마 Tristan Colom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1960년 6월 30일은 벨기에령 콩고의 독립기념일이다.
(2) Prosper Nobirabo, ‘민주주의를 잉태하려는 콩고민주공화국의 힘겨운 노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6월호.
(3) 최빈국 부채 탕감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공동 프로그램.
(4) 통신 재벌 모이브라임이 ‘아프리카의 리더십 강화’를 천명하며 창설한 재단이다.
(5) 개정된 헌법 71조에 ‘공화국 대통령은 단순다수결에 의해 선출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6) Amber Peterman, Tia Palermo, Caryn Bredenkamp, ‘Estimates and Determinants of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vol.101, n°6, pp.1060~1067, 2011년 6월.
(7) 유엔인도지원조정국(UNOCHA), 2011년 3월 31일.
(8) François Polet, ‘남반부 국가에서의 저항활동- 아프리카’, Alternatives Sud- Centre tricontinental- Syllepse, 루벵라뇌브- 파리, 2010.
(9) Josiah Batabiha Bushoki(Nyanga), Sinzi Kiramuka(Hutu congolais), Musumba Mathe(Nande), Azile Tanzi(Ituri), Mpirikanya Forongo(Tutsi congolais).
(10) 벨기에 회사 Zetes의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70만 명의 유권자 이름이 허위 기재됐다고 한다.
(11) 미셸 룬툼부, ‘콩고민주공화국: 활발한 사회운동’, ‘남반부 국가에서의 저항활동’, op.cit. 


콩고민주공화국(RDC) 연표

1996~97: 제1차 콩고 전쟁
르완다 후투족 난민 200만 명이 콩고의 난민캠프로 몰려들자, 르완다 투치족 정부는 후투족 민병대(Interahamwe)가 대규모 학살을 일삼으며 난민캠프를 근거지 삼아 정권 탈취를 기도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뒤 세세 세코 모부투  독재 치하의 자이르(RDC의 옛 이름)와 르완다, 브룬디가 분쟁 상태에 돌입하면서 총 20만 명의 시민이 희생된다. 1997년 5월 20일, 콩고해방민주동맹(AFDL)의 승리로 32년 독재는 막을 내리고, AFDL의 지도자 로랑데지레 카빌라가 스스로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1998~2003: 제2차 콩고 전쟁
1998년 8월 2일, 르완다 출신의 콩고 투치족(Banyamulenge)이 키부주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킨다. 1999년 7월, 분쟁 당사국(콩고민주공화국, 나미비아, 앙골라, 짐바브웨, 르완다, 우간다) 간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이듬해 휴전협정 준수 감시 임무를 띤 유엔 평화유지군 5500명이 파견된다. 2001년 1월 16일, 암살된 로랑데지레 카빌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조제프 카빌라가 대통령에 오른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앙골라는 2002년 여름 평화협정에 서명한다. 콩고 영토 위에서 9개국이 충돌한, 근대 역사상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가장 참혹한 종족 분쟁이다. 희생자 수는 최저 20만 명에서 최고 540만 명까지 집계가 엇갈린다.
 
2003년 6월 30일
‘국가 통합’을 내건 과도정부가 구성된다. 카빌라가 대통령을 맡고 주요 정파를 대표하는 4명의 인사가 부통령에 임명된다.
 
2006년 10월 29일
유엔콩고안정화임무단(MONUSCO)에 의해 조직된 첫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11월 27일 조제프 카빌라 카방게가 대통령에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