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카스트로'의 쿠바… 변화냐? 수구냐?

2008-12-30     자네트 아벨 | 사회학자

  1959년 1월 1일, 반군이 아바나를 점령하고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50년 후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공식 이양했다. 이 역사적 전환의 시기, 사회주의 반대자들뿐만 아니라 변화를 바라면서도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학자 아우렐리오 알롱소는 쿠바의 딜레마를 "약육강식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반군이 정권을 잡은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쿠바는 또다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006년 7월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일시적으로' 권좌에서 사라졌던 피델 카스트로는 2008년 정식으로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더 이상 쿠바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다. 그러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2009년 가을로 예정된 다음번 전당대회까지는 여전히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공산당(PCC) 서기장이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권력 승계
 이는 유례가 없는 정치 시나리오이다. 2008년 2월 19일 카스트로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나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상 투쟁을 벌이는 병사로서 싸우고 싶을 뿐이다. 나는 '피델 동지의 견해'라는 제목으로 집필활동을 계속 할 것이다."1) 그로부터 5일 후 라울 카스트로는 국가평의회 의장 취임식에서 국방, 국제정치, 사회?경제적 발전 및 주요 전략 문제에 대해 피델 카스트로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의회 승인을 요구했다. 의회는 거수 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안건을 승인했다.
 어떤 이들은 이 투표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일종의 거부권을 부여한 셈이라고 간주한다. 개혁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델 카스트로는 언론을 통해 계속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동생 라울은 미묘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권력 승계 과정은 시작과 동시에 농산물 가격 상승, 세 차례의 허리케인이 초래한 엄청난 재앙2), 세계 금융위기, 쿠바의 경제성장률 하락 등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 수입 의존적 경제 구조, 낮은 생산성, 통화 이중성3), 과도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라는 구조적 장애물이 공존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2007년 생산 시스템 현대화를 목적으로 시도된 개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재정적 운신의 폭도 좁은 편이다. 2008년 농산물 및 원유 수입은 최소 50억 달러, 즉 대(對) 베네수엘라 서비스 수출을 포함한 쿠바의 현 수출 잠재력의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4)
 
 시장화 후유증, 개혁 장애물
 농산물 유통의 지방 분권화, 소농에게 부여되는 비경작지 용익권, 민간 농업에 기초한 수입대체전략, 새로운 임금정책5)은 신 행정부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중요한 조치들에 속한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베트남의 성공 사례를 본받아 "생산력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시스템은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페드로 몬레알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개혁'의 필요성을 거론한다.6)
 그러나 라울 카스트로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임금은 불충분하고 비공식 경제 및 암시장이 번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부문 지원과 시장경제 확대는 이미 심각한 민심 이반을 야기해온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1990년대의 시장경제 개혁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사회적 계층화를 초래했다. 쿠바의 사회학자 마리아 에스피나는 "삶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도시 빈민 인구 비율은 1988년 6.3%에서 2000년 20%로 급증했다."7)고 주장했다. 그는 "유통 분야 시장 메커니즘 확대, 비공식 경제, 독립 노동을 통해 도시 및 농촌의 소부르주아 계층이 재구성되었다."면서 "비공식 부문의 어떤 활동은 작은 기업처럼 작동하며, 사주나 고용주, 근로자, 심지어 도제에 이르기까지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8)고 말했다.
 혁명 초기의 사회적 동질성과 평등은 퇴보했다. 그러나 동질성과 평등이 여전히 쿠바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예전에는 사회적 기본권의 보편화로 인해 기초 식량, 교육, 의료, 사회보장, 고용, 문화생활 접근이 100% 보장되었다. 쿠바 사회는 비교적 높은 평등 수준을 달성했고, 인종 통합이 이루어졌다.9) 그러나 작금의 위기는 이 같은 성과를 잠식했고, 사회적 긴장을 증가시켰다.
 청년층과 나이든 혁명 세대 간 격차가 이렇게 컸던 적은 없었다. 신 세대들은 1991년 소련 해체로 촉발된 '특별한 시기'의 어려움과, 부모 세대의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를 경험했을 뿐이다. 신세대들은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오래 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번영의 시기는 부모 세대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아련한 추억에 가깝다.
 교육 분야는 퇴보했고, 교사들은 보수가 더 좋은 민간 활동을 위해 교직을 떠났다. 때로 빈자리는 경력도 없고 단기 교육만 받은 신출내기 교사들이 채웠다. <테마스>지가 주최한 공개토론 당시, 한 청중은 "교육은 재앙 그 자체"라고 외쳤다.10) 쿠바작가연맹 총회에 참석해 "교육 분야에 널리 퍼져있는 터무니없는 기준과 관행들"을 비판한 알프레도 구에바라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위원장의 발표와 궤를 같이 하는 비판이다.
 


 젊은 계층, 민주화 욕구 늘어
 한편 정치에 대한 젊은 층의 무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한 젊은이는 "정치는 짜증나요."라고 내뱉었다. 지도층의 일상적인 정치적 '지도'와 '설교'에 짜증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공부를 해봤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감정이 팽배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쿠바를 떠나고 싶어 한다. 2008년 2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어떤 토론회에서 한 학생이 리카르도 알라르콘 쿠바 의회 의장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왜 여행하는데 허가가 필요한가? 왜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는가?"
 수개월 동안 쿠바의 세대 간 격차를 조사한 미국의 역사학자 미쉘 체이스는 젊은 층이 주로 비판하는 것은 토론의 결여와 제도의 경직화라고 지적했다.11) 어떤 대학생들과 연구원들은 '권력 사회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12) 2007년 이들은 아바나 대학에서 10월 혁명에 대한 공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강연회에는 6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을 다시 읽는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이 '피델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현 시스템이 문제가 있고, 임금이 불충분하며,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많은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라울 카스트로는 국민이 국가적 논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면서 차이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개방했다. 아직 토론 결과를 종합한 어떤 보고서도 발표되지 않았지만 활동가들이 더욱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원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국민과 특히 반대자들은 무엇보다 일상적인 삶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언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쿠바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현 모델은 흔들리고 있죠." 젊은 연구원 아리엘 다칼의 지적이다. 2년 전부터 현재의 기능 장애나 과거의 평가에 대한 비판이 집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007년 1월 피델 카스트로의 회복기 동안 1970년대 검열관들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묘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집단 청원 사태를 초래했다. 이 집단 청원은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상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메일 전쟁'이라고 불렸다. 라울 카스트로의 딸 마리엘라 카스트로와 알프레도 구에바라를 비롯한 많은 정계, 문화계 인사들과 카를로스 마뉴엘 추기경 같은 종교계 인사들도 참여했다. 집단 청원 사태 이후 일련의 학술회의가 열렸으며 70년대의 '탄압의 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도 출판되었다.13)
 <크리테리오스>지의 데지데리오 나바로 편집장은 "유례없는 방식으로 구축된 공적 영역이 주요 언론을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4월, UNEAC 총회, 도서전시회, <테마스>지 주최 대담, 또는 마틴 루터 킹 센터 같은 교육센터에서 논쟁은 계속되었다. 관련 자료를 보급하는 인터넷 사이트 'Kaosenlared'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전달하고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안적 사회주의, 베트남·중국 주목
 무엇을 논할 것인가? 무엇에 대한 이견인가? 활동가, 연구원, 지식인, 심지어 학생들까지 대안적 사회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대안적 사회주의 모색은 현실 사회주의와 소련 해체의 결과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수반한다. 사실 소련 해체의 결과를 분석하는 것은 작가 암브로시오 포르넷의 말처럼 "단결을 유지하고 적에게 무기를 주지 않기 위해" 언제나 거부되었다. 그러나 이는 '만장일치의 시뮬라크르'에 다름 아니다.14) 알프레도 구에바라는 "관료들과 기회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사상의 의례, 설교, 의식으로의 전환"을 비판한다.
 두 가지 문제가 논쟁의 핵심이다. 첫째는 경제 문제이며, 둘째는 대중의 참여부족이다.
 왜 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사회주의 이행 경제에서 국가와 시장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에서 쿠바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상의 질문에 대해 '라울주의자'들의 답과 '피델주의자'들의 답은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라울 카스트로와 피델 카스트로의 해법이 실제로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추종자들의 해법이 다르다는 것은 두 지도자 간의 차이를 증명한다.
 라울 카스트로는 어디까지 개혁을 진행할 수 있고 진행하기를 원하는가? 실용주의자인 라울 카스트로는 경작 가능지의 50% 이상이 비경작지로 남아있는 상황을 고려해 농업 수익성 향상과 경제적 구습 타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피델 카스트로가 자주 무시했던 제도적 질서를 존중하는, 좀 더 조직화된 경제를 주장한다. 라울 카스트로는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 개혁을 통해 정치 시스템을 영속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경제 개혁이 정치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시스템 및 일당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효율적인 것만을, 즉 시장 경제를 차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로 보이는 베트남의 경험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개혁'·'반개혁' 첨예한 대립
 그러나 베트남의 경험이 쿠바에 치환 가능한 경험인가? 쿠바 국민은 벌써 수년 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모든 충격 요법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완만하고 점진적인 이행이 해법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라울 카스트로는 77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반대로 시장경제 개혁 반대자들은 그 같은 개혁 때문에 시스템이 감수해야 할 위험을 비판한다. 피델 카스트로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의문을 한 번도 감춘 적이 없었고,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정치적 결과를 두려워했다. 그는 언제나 개입주의, 국가적 동원을 강조했다. 정치학자 후앙 발데스 파즈는 양자 간의 차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어떤 이들은 혁명을 도약을 통해 전진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진보를 위해서는 불가능을 시도해야 한다. 이는 매우 강력한 사조로 아마 혁명사상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사상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혁명주의자들은 좀 더 현실적이며, 혁명의 수단이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결국 이 논쟁은 주체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이상주의자들과, 상황을 고려하고 구체적 목표를 고민하는 좀 더 현실적인 활동가들 간의 흥미로운 논쟁이다."
 최근 PCC 중앙위원회의 정치 및 이론 잡지, <쿠바 소시알리스타>가 피델 카스트로의 예전 연설문을 재발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15) 그중 하나는 1988년 발표된 연설이지만 편집자의 평가에 따르면 '여전히 시사성 있는' 연설로, 사상 투쟁과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때로 이 모든 에너지와 노력과 자원을 사회주의 건설과 국가 발전에 할애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자문해 본다. 그러나 이들은 커다란, 심지어 사악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과 자유와 독립을 누리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스트로 연설 당시는 위기 발생 이전이었지만, 쿠바 경제는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 권력 승계, 젊은층 중심 민주화와 변화 욕구 점증

'기존체제, 혁명과 자유·독립 대가' 반발도…'새 사회주의 모델'모색


 중국식 발전의 '위험' 경계
 누가 쿠바를 지도하는가? 이 위험한 질문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이 어떤 '당파'의 지도자도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난 11월 19일자 <그란마>지 기사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1면 상단에는 '피델, 후진타오를 만나다'라는 붉은 색의 굵은 표제어가 게재된 반면, 현 쿠바 최고 지도자와 중국 주석의 회동을 알리는 검은 색의 작은 표제어 '라울과 후진타오 공식회동'은 1면 하단에 배치되어 있다. PCC 중앙위원회가 검열을 얼마나 엄격하게 하는지를 감안하면, 이를 단순한 조판상의 실수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기구 내에서 동질적인 부문을 식별하는 것은 어렵다. 우선 혁명군은 반드시 고려해야하는 요소다. 라울 카스트로는 거의 반세기동안 국방장관 자리에 있었고, 혁명군은 직간접적으로 경제의 3분의 2를 통제한다. 혁명군의 기업은 많은 변화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군인들은 자본주의 경영 방법을 실험했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이들이 개혁을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 노조, 시민단체의 간부들 중에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노조 지도자는 중국의 놀라운 발전 이면에 내재하는 위험 즉,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 빈곤, 도시와 농촌간의 뚜렷한 격차, 환경파괴"를 강조한다. 피델 카스트로에 호의적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한 세실리아 하트는 2008년 8월, "쿠바가 중국의 전철을 밟을까봐 두렵다"고 선언한 바 있다.16) 쿠바의 한 고위 공무원도 전 폴란드 총리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의 말을 인용했다.
 "누구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만약 18%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개혁의 속도를 늦췄을 것이다."

 '낡은 역사' 종식되려나
 비록 지도층 누구도 정치적 변화를 제안하는 사람은 없지만,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영향 아래 참여 민주주의와 자주 관리 사회주의에 대한 갈망도 커지고 있다. 후앙 발데스 파즈는 "쿠바 국민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인 제도를 비판하고, 아래서부터의 광범위한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식인들이 이론화한 이 요구는 PCC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수반한다. 어떤 활동가는 "당은 국가를 이끌 수 없다"며 "국가를 이끄는 것은 인민"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우리가 과도하게 국가적이고 관료주의적이며, 인민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가 너무 제한적인 프로젝트를 구축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말로 예정된 PCC 6차 전당대회를 대비해 사상 처음으로 '실용주의적 제안'이 <Kaosenlared>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쿠바는 참여 민주주의의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이 강령은 '쿠바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제안했으며, 외교관 출신의 페드로 캄포스가 추진한 강령이다. 캄포스는 과거에 내무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17) 현재 캄포스는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대체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사람들은 캄포스의 집에서 13개 '제안'을 담고 있는 강령을 구할 수 있다. 이 강령은 권위적인 '국가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강령에 따르면, 작업장에서 결정을 통제하는 노동자위원회를 설립해야 하고, 참여 민주주의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수정해야 하며, 정치범을 양산하는 형법의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표현 및 결사의 자유를 법제화하는 한편, 외국정부가 체제전복 목적으로 특정 국내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불법으로 선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강령은 공산당 내에 다양한 사조의 존재를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매우 대중적인 몇몇 요구를 추가해 전체를 보완하고 있다. 특히 해외여행 허가제 폐지와 인터넷 접근 제한 철폐가 그것이다. 쿠바의 유력 인사들은 이제 인터넷이라는 토론 공간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국가와 소유권, 자주 관리와 시장,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논한다. 그야말로 낡은 역사의 종식이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포함한 시대 변화에 직면해, 분위기도 조금씩 미묘하게 변하고 있으며, 정치적 이견이 표현되고 있다. <테마스>의 라파엘 에르난데즈 편집장은 "어떻게 합의를 구축할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가 최고위층에서 단절이 발생할 경우 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떻게 지금까지 '대체 불가능한' 카리스마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했던 조정을 대체할 것인가? 라울 카스트로는 좀 더 합의제에 가까운 통치 방식을 제기하면서 제도 작동의 규칙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미 자신의 형이 최근 몇 년 동안 중용했던, 피델 카스트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탈레반'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을 전부 솎아냈다.
 여전히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세대가 자신들이 구축했던 것을 개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변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수구주의를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사실 현 지도부는 예전 지도부보다 더 젊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더 고령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뢰성 있는 변화를 위해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1) '최고사령관의 메시지', <Granma>, 하바나, 2008년 2월 19일.
2) 2008년, 허리케인 구스타프, 아이크, 팔로마가 차례로 쿠바를 덮치면서 4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5만 5천 헥타르 이상의 농경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3) 일반 페소와 태환 페소가 있다. 일반 페소는 임금 지불과 기본 생필품 구매에 사용되는 반면에 2004년 달러를 대체한 태환 페소는 관광객들이 사용하며 주택 같은 여러 재산 인수에 필요하다.
4) 'Philippe Colombani', <하바나 뉴스레터>, n° 82, 프랑스 대사관, 2008년 6월.
5) 이제 노동자들은 성과급을 받는다. 기본임금은 국가 임금 조견표와 상관없이 결정되며 기업 내에 다양한 보수체계가 공존할 수 있다.
6) <에스파시오 레이칼>, 하바나, 2008년 2월.
7) 마리아 에스피나, CLACSO, 부에노스 아이레스, 2008.
8) 마리아 에스피나, 하바나, 2008년 7-8월.
9) 알레한드로 데 라 푸엔테, <21세기 쿠바의 인종, 불평등, 정치. 모두를 위한 국가>, Chapel Hill & London, 2001.
10) 쿠바작가연맹의 7차 총회, 2008년 4월 1일.
11) 미쉘 체이스, '쿠바의 세대간 격차', <Nacla Report>, 2008년 11-12월.
12) 줄리오 세자르 구안체, 2008년 9월 15일;
http://www.kaosenlared.net
13) '크리테리오 이론문화 연구원이 개최한 학술회의', 하바나, 2007.
14) 'El quinquenio gris: revisitando el termino', Ibid, in La politica cultural, op. cit.
15) <쿠바 소시알리스타>, 2008년 4-6월, N°47
16) 'Pagina 12', 부에노스 아이레스, 2008년 8월 25일. 아르만도 하트와 하이데 산타마리아라는 쿠바 혁명의 양대 지도자의 딸인 세실리아 하트는 쿠바 공산당에서 일시 당원 자격을 잃었고, 자동차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17) 이메일 :
perucho1949@yaho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