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선 온라인 농담으로도 감옥에 간다
구 소련 시절 사법 권력으로의 회귀
지난 20년간 러시아 교도소 수감 인구는 절반 이상 감소했다. 언론에서는 2015년 이후 정치범 체포가 약 10배로 늘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이는 러시아 형사사법 체계 변화의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형량은 줄었어도 러시아 형법체계는 여전히 처벌 중심이며, 피의자의 변호권은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 2월, 크렘린 궁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다리 위에서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크림반도 병합 직후, 반전·반부패 운동을 이끌다 정부의 탄압을 받은 보리스 넴초프는 세 번이나 체포, 구금된 야권 인사였다. 차디찬 보도 위, 고인의 사진 주위에 전나무 가지와 장미 몇 송이가 놓였다. 러시아의 샹젤리제 격인 트베르스카야 거리로 우리를 안내한 세르게이 다비디스는 “이제 유명 활동가가 아니어도, 경찰의 단속을 받는다”라며 한탄했다. 카자흐인처럼 보이는 50대 남성인 그는 정치범을 후원하는 비정부기구 ‘메모리얼’ 책임자다. 그는 시종일관 주변을 살피며 쫓기는 사람처럼 경계심을 드러냈다.
러시아 기반의 인권단체 OVD-Info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다 체포된 사람은 이미 1만 5,000명을 넘어섰다. 불법 체포 건수가 폭증했다는 소식도 이제는 놀랍지 않다. 박사 과정에서 현대 러시아의 정치범 재판을 전공하는 레나타 무스타피나는 10년 전 푸틴 재집권 때를 짚어준다.
“2011~2012년 푸틴 재집권 반대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전보다 훨씬 많았다. 처음에는 경찰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2012년 5월 6일 볼로트나야 광장 시위 이후 상황이 변했다. 체포된 시민 대다수는 ‘행정 명령 위반죄’라는 죄목으로 체포돼 유죄선고를 받았다. 경찰서에 몇 시간 억류된 이들도 있고, 벌금을 내고 풀려난 이들도 있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며칠에서 몇 주까지 구금됐다. 그 후 야권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도 뚝 끊겼다. 형사재판 20건 중 대다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플래카드도 든 적 없는 사람들
메모리얼 측에서는 현재 420명의 정치범 수감 사례를 파악했지만, 실제로는 그 3배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반체제 인물들이 정치범이 아닌 전혀 엉뚱한 죄목으로 처벌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알렉세이 나발니는 부패 죄로 수감됐고, 스탈린 억압정책 전문가인 역사학자 유리 드미트리예프는 소아성애 죄로 처형됐다. 밀거래 죄로 처벌 받은 경우도 있는데, 모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다비디스가 제공한 메모리얼 측 자료에는, 열성적인 활동가는 없었다. “대부분 플래카드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집회 한 번 참석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정치범으로 수감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스파이나 테러범, 과격 행동 등의 죄목을 씌우는 것이다. 이로써 당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적국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 윌슨 센터 싱크탱크의 러시아 법률 전문가 윌리엄 E. 포메란츠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활동가를 노린 ‘선택적 판결’은 이제 사회 전체로 확산돼 모든 시민을 탄압하고 있다.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적 조치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볼로트나야 사태 뿐 아니라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때 역시 러시아 당국의 권위주의 행보가 본격화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불경죄 관련 법률 신설, 불법집회에 대한 벌금인상, 정부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공권력에 대한 ‘도전’ 행위의 처벌, 국가반역 행위의 적용범위 확대 등이 모두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반역죄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이제는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특정 국가나 조직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지행위”가 모두 반역행위로 간주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외활동 주체에 대한 법률이 강화됐다. 제3국에서 자금을 받는 모든 비정부기구의 활동이 급격히 제한된 것이다.
2020년 하바롭스크에서 세르게이 푸르갈 주지사가 체포되고, 특히 벨라루스나 키르기스스탄 같은 주변국에서 반러 집회가 불거지자 러시아 정부는 다시금 탄압을 강화했다. 이에 2020년 7월부터 개헌을 통해 1인 피켓시위가 제한됐다. 사전승인 없이 반대 의사를 표명할 마지막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유튜브 같은 해외 플랫폼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는 영상물 게시자 등 개인만이 ‘해외 활동 주체’로 인정된다. 따라서 사전에 개인 활동가임을 고지하지 않으면 기소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훨씬 거세졌다. 러시아 군 관련 ‘가짜 뉴스’ 제작 시 최고 15년 형에 처하는 법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대러 제재를 호소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법도 신설됐다.
메모리얼에 따르면, 러시아의 정치범 수감자 수는 2015년 이후 무려 10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마구잡이식 처벌의 급격한 증가는 러시아 형법체계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정치범 수감자는 약 1,30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현재 교정인구 46만 6,000명 중 0.3%미만으로 극히 일부다. 또한, 현재 통계 수치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교정인구가 지난 20년 간 무려 54%나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캐서린 헨들리는 ‘사법체계의 이원화 구조’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처리와 일반적인 사법처리가 별개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어붙은 네바 강을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유럽 대학교의 사회학자 키릴 티타예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키릴 티타예프는 러시아 법률체계 변화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진 법치 연구소의 대표로, 러시아의 범죄율 감소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총괄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는 “언론에서 정치사건을 많이 다루지만, 전체 판결에서 정치 사건의 비중은 적다”며 “모스크바의 정치사건 전담 판사는 30여 명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교정인구 급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인구 고령화다. 범죄율이 높은 청년층 비율이 줄어든 것이다. 그 결과, 마약거래를 제외한 모든 범죄가 지난 20년 간 급속도로 감소했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2008~2019년 법정에 선 피의자 수는 36.6% 감소했다. 여기에, 키릴 티타예프는 놀라운 이유를 덧붙였다. “재판부가 실제 판결을 내릴 때 감형을 해, 가혹한 형법체계를 다소 보완한다”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수감 비율은 인구 10만 명 당 328명으로 미국(358)보다는 낮지만, 프랑스의 약 3.5배에 달한다. 평균 형량도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약 4배에 달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형사 체계는 여전히 징벌 수준이 높다. 그러나, 최근 입법부에서 형 집행 완화법이 통과됐다. 2016년 도입된 법에서는 최대 5년 형에 처할 죄를 지어도 초범일 경우, 피해보상 및 벌금부과를 조건으로 판사가 무죄방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조치는 특히 경제사범에게 적용됐다. 일례로 “심각한 탈세행위를 하는 경우, 법적으로는 12년 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탈세혐의로 기소된 사람 중 실제로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20% 미만이다.”
감옥 아닌 감옥, 강제노역
극동 대학 연구원 알렌산더 코로베예프와 로만 드렘리우가는 러시아의 과도한 형사제도 때문에 소요되는 비용을, 관대한 판결로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 2018년 7월 이후로는 임시구금 1일이 교도소 수감일 1.5일에 해당한다는 법 기준까지 마련돼 이전 판결까지 소급적용됐다. 이후 몇 달 간 모든 형량이 재계산돼 1만 8,000명이 석방됐다.(2) 2017년, 입법부는 강제노역이라는 새로운 제재방식을 만들었다. 이제 10년 미만 징역에 해당하는 모든 죄에 대해 강제노역이 선고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피의자의 공식적인 신분은 수감자가 아니다. ‘노역자 거주 시설’에서 형량을 채울 뿐이다. 낮에는 민간시설에서 복무하고 저녁엔 장을 볼 수도 있으며, 주말에는 외출도 가능하다. 이들의 임금 중 정부에서 징수할 수 있는 금액도 20%까지로 제한된다.
그러나, 러시아 교정시설 관련 비정부기구의 올가 포도플레로바는 “노역자 시설이 교도소에 비해 구속력은 적지만, 감옥임에는 마찬가지다. 시설 직원이 노역자들을 수감자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피의자로서는 같은 노역을 제공하고도 교도소 내에서보다는 급여를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이런 노역시설은 교도소보다 비용도 적게 든다. 마침 러시아에는 인력, 특히 건설인력이 부족하다. 이에 콘스탄틴 추이첸코 법무부 장관은 “노역형 수감자 18만 명을 수용할 공간을 더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3) 현재 노역형 수감자는 10만 명 남짓이며, 불과 1년 사이에 노역형 교정시설 6개가 개소했다.
형사 비용을 줄이려는 러시아의 노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 내 수감율이 세계 최고치를 기록한 1990년대 말,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수감인원 감소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졌다. 교도소 내 과밀 인구와 가혹 행위로 수십만 명의 인권이 짓밟히면서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가 실추됐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쪽 기구와 가까워지려던 러시아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사법개혁 전문가인 페터 솔로몬은 “판사들은 벌금을 늘리는 대신 형량을 줄였고, 공익사업 쪽으로 교정시설 인원을 우회했다. 특히 집행유예를 늘렸는데, 2010년대 초부터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90년대에는 판결 건수의 50%가 구금형이었으나, 현재는 30%에 그치며 평균 형량도 29개월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4)
게다가 정부는 사면조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교정인구를 줄이고 있다. 2000년만 해도 수감자 25만 명이 석방됐다. NGO ‘유럽 교도소 소송 네트워크’ 공동 창립자인 위그 드 쉬르맹은 “최근에야 좀 드물지만 급할 땐 사면 조치를 통해 교정인구를 줄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2014년과 2015년처럼 헌법 제정 20주년 및 2차 대전 승리 70주년 기념으로 두 차례 대대적인 사면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하향세의 교정인구가 약 6~7% 늘어났을 지도 모른다.(5)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재임 시절(2008~2012), 가혹하고 비효율적이며 비용도 많이 드는 형법 체계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페터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0년,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법령을 정해 경제사범 혐의자에 대한 임시구금을 금지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경찰들이 기업 대표를 임시구금에 처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일이 많았다. 경찰들은 지금도 이런 수법으로 낮은 임금을 보충한다.” 게다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60개 위법 행위에 대해서도 자유권을 박탈하는 최저 형기가 없어졌고, 몇몇 고의적인 폭력 행사처럼 경미한 죄에 대해서는 초범에 한해 구금형이 금지됐다.
판사의 실형 선고는 줄었지만, 모든 범법 행위에 대한 선고는 이뤄진다. 판사들의 부패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법원이라는 형사재판 기관이 높은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연방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거대한 관료 조직이라는 점에 기인한다.(6) 망명 중인 러시아 기자이자, 교정시설 비정부기구 소속 회원인 올가 로마노바는 “판사들 사이에서는 부패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경찰과 달리 판사들은 급여수준도 높고, 직원용 아파트 같은 복지혜택도 누린다. 형법 분야의 행정관료들은 업무성과 지표를 높여 예산수준을 높이거나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따라서 사법관료에게 중요한 건 사법정의의 실현이 아니다. 실형 선고가 줄어들지언정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다.
경찰관 헬멧 만지면 징역, 배우자 폭행은 벌금
이런 상황이 가능해진 것은, 두 차례 형법체계 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두 번의 개혁은 지난 20년 간 러시아에서의 사법제도 운용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7) 우선 2001년 형사중재가 대대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2008년부터는 5건 중 1건이 재판 전에 해결됐다. 이어 피의자가 선고받을 형량을 기소행위에 대한 최대형기의 2/3 미만으로 제한하는 ‘특별소송’ 제도도 도입됐다. 특별소송 혜택을 받으려면 피의자가 먼저 본인의 유죄를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 또한 재판도 증거심사 과정 없이 약식으로 진행된다. 2010년 이후 형사사건의 약 2/3가 특별소송으로 처리됐으며, 특별소송 비율은 현재에도 60% 이상이다. 형기가 뚜렷하게 줄어든 이유는 대개 이 특별소송 제도 때문이다.(8)
사법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는 이런 당국의 의지에 따라 경찰 측에서도 쉽게 수사를 중단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듯 경찰의 수사의지가 꺾이자 2017년 입법부에서는 아예 몇몇 폭력죄를 ‘가정 내 폭력’으로 규정하며 벌금형으로 처리했다.(9) 이에 대해, 인권협회 아고라 소속 변화사 키릴 코로테예프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렇게 되면, 경찰관 헬멧을 만진 사람은 2년형을 선고받고, 배우자를 폭행한 사람은 300유로 벌금형으로 끝나는 황당한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경찰에서는 범죄 건수 축소를 위해 피해자를 위협 및 협박해 고소 취하를 유도하고, 고소기록까지 위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10)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사건은 기소된 건의 3~10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식이다보니, 경찰의 사건 해결율은 역대 최고치다. 강간범죄의 경우 러시아 경찰의 사건 해결율은 무려 91%에 달한다(미국은 34%). 효율성에 집착한 형사 당국은 피의자 기소 건수를 축소 및 왜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기도 한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통계수치에 집중한 경찰정책의 폐단을 규탄하고 있다. 사건 해결율을 부풀리기 위해 기소 사건을 조작하고, 심지어 조직적으로 사건을 양산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경찰 내부의 이런 관행 때문에, 러시아 형법 체계는 무수한 양형 사례를 뽑아내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고문으로 강제 자백 받아내기
모스크바 빅토렌코 거리의 스탈린 시대 양식 고층 빌딩 초입에 자리한 갈런드 카페는 벽에 걸린 서핑 보드와 카리브 해안을 담은 대형 벽화로 시선을 끈다. 진중한 눈빛과 2m 장신의 알렉산더 살라모프가 자주 찾는 장소다. 10년 간 모스크바 경찰 수사관 및 체첸 공화국 검사를 역임한 그는 내부의 형벌 작용 기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다들 숫자에만 연연한다”라며, “실적은 유일한 승진수단이다.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적은 필요하다. 경찰들이 죄목을 늘리고 증거를 조작하는 이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 대학 블라디미르 쿠드랴프체프는 “특히 마약사건은 단골 조작 분야”라고 지적하며, “러시아에서 지난 20년 간 유일하게 감소세가 약한 범죄가 마약사건인 이유”라고 덧붙였다. 살라모프는 “경찰들은 증거조작은 기본이고, 폭력이나 고문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 자백을 받아내기도 한다”라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대 테러 수사보다 무슬림을 고문해 테러 시도에 대한 자백을 강제로 받아내는 편이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소 사건의 90% 이상이 피고인이나 피의자 자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된다. 법률 사회학자 엘라 파네야크는 모두가 압박 받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수사관이든 검사든, 신속하게 다음 단계로 이송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면 사건을 맡지 않는다.” 그 결과, 하위직 형사 공무원 쪽으로 압박이 가해지고, 현장 경찰 공무원은 과격한 방식을 써서라도 시간 단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찰 내 폭력 전문 변호사 드미트리 게라시모프는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경찰들 중 최소 5%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자주 고문을 동원한다”라고 주장했다. “끓는 물을 붓거나 담배로 지지거나, 전기고문을 하기도 한다.”
파네야크는 “재력이 되는 피의자라면, 고문 대신 뇌물 요구를 받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형벌제도에 따른 피해는 주로 경제 취약계층이 입는다. 자기방어 수단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88%가 경제 취약계층이다. 법치 연구소의 사회학자 예카테리나 모이세예바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가난한 피의자의 국선변호사는 수사관과 판사들이 직접 선임하는데, 이런 변호사들은 대부분 불법혐의 조작에 협조적이다.(11) 이런 변호사들은 편의를 제공하는 경찰이나 법관 편에서 움직인다. 무고한 피의자가 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론하거나, 심지어는 백지 서류에 피의자의 서명을 유도해 소송절차를 빠르게 진행시키기도 한다.
물론 모든 변호사가 이렇게 비양심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의자의 혐의와 변론과정을 연계하는 것은 아예 관행이 돼버렸다. 관련 서류가 대체로 미비한 상황에서 “쌍방은 재판 전에 미리 상호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형사사건의 법적절차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변론은 무용한 일이다. 재판 전에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때도 이 ‘합의’ 단계다. 가령 변호사가 특별소송을 제안함으로써 판사, 검사, 수사관과 손을 잡고 재판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는 대신 피의자에게는 형량의 경감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경우 판사는 쌍방의 중재자가 아니라, 수사관 및 검사의 압박 하에 서둘러 합의를 도출해내는 공무원에 불과한 셈이다. 아고라의 코로테예프는 “판사 채용도 예전 같지 않다”라며, 현직 판사 중 절반은 법원 행정직에서 선발된다. 10년 전만 해도 그런 식으로 선발되는 판사는 1/3 정도였다”라고 지적했다. “판사들 스스로도 자신이 공권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단계에서도 복종하는 법만 배운다.” 사법부에 대한 경찰 권력의 우위 구조는 법원 내에서도 성과 중심주의와 함께 강화됐다.
판사들은 성공적으로 처리한 판결건수에 따라 높은 직무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성공적’이라 함은, 사건이 종결돼 경찰수사에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면 피의자를 무죄석방하거나 소송을 취하할 경우 판사에게 불리하다. 제재를 받거나, 직위 해제까지 당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무죄석방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법관을 해고할 수 없다. 그러나, 재판소장은 언제든 판사에게 불리한 패를 끄집어낼 수 있다.
결국, 수감자 수가 줄었어도 러시아의 형사 제도는 여전히 비인간적이다. 재판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찰 업무에 호의적이며, 판사들은 경찰의 감시 및 수색업무 요청은 물론 재판 전 임시구금 요청까지도 승인해준다. 공식집계에 따르면, 10년 전에도 이미 낮았던 무죄 판결 및 방면 건수는 약 1/10로 줄어 0.4% 수준으로 떨어졌다. 프랑스의 1/20에 불과한 수치다.
게다가 판사가 무죄석방 판결을 내리면 검사가 즉각 항소를 제기하고, 항소심에서는 대부분 검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이 뒤집힌다. 이런 러시아 사법부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입법부는 2018년 형사 사건에 대한 배심원 제도를 도입했다. 키릴 티타예프는 그 후 “1심 무죄판결 비율이 순식간에 30%로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항소를 제기할 수 있다. 가령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최대 7회까지 항소가 가능하다. 결국, 형사사건에 대한 실질적인 무죄 방면 비율은 약 3%에 불과하다.”
경찰, 실적 부풀리려 법조항 악용
2000년대에 이뤄진 사법 개혁에서는 판사의 종신 임명을 비롯해 판사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경찰 수사에 대한 법관의 통제권도 강화하고자 했으며, 대심 절차가 도입되고 경찰 구속 단계에서부터 변호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 권력과 정부 당국이 서로 연계되면서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12)
페터 솔로몬은 러시아가 1950년대 구 소련의 사법 권력 체제로 회귀했다고 설명한다. “성과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경력제 관료주의”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직권주의 체계’ 하에서는 수사 업무가 소송에 대비한 사실관계의 자료 구성에 쓰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소송 절차가 돼 “옳다고 생각되는 객관적 진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되면 재판은 결정적 권한을 지닌 중요한 절차가 아니라, 수사 업무를 종결하는 형식적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경찰권력에 대한 사법통제 권한이 강화됐지만, 이는 대통령 자신을 위한 일일 뿐이다. 푸틴의 3차 집권(2012~2018) 이후 수사관에 대한 검찰의 통제권이 확대됐지만, 검찰 총장 및 관련 인사를 임명하는 권한은 푸틴에게 있다. 사회적 분란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빠르고 신속하게 직접 사법 제도를 이용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대통령궁 입장에선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검찰은, 제정 러시아 시절 최초로 기관이 설립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고 통치자의 눈’이 된다.(13)
중요한 법률사건의 경우 여전히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푸틴은 형사기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통상적인 범죄행위를 다루도록 했다. 2014년부터는 조세범죄의 경우 ‘약식수사 절차’(14)로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수사관이 형사사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말은 곧 수사관이 얼마든지 사건을 만들어내고 어떤 기업이든 기소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워싱턴 윌슨 센터에서 포메란츠가 설명한 것처럼 러시아 연방 정권은 적시에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지만 평소에는 대체로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러 연방 정부도 형사 관료의 일상 업무에 대한 통제 수단이 없다. 그저 대대적인 사회적 소요 사태를 피하는 등의 몇 가지 구속력만 가졌을 뿐이다. 2018년 12월 러시아 의회가 형법 282조 일부를 개정했을 때가 대표적인데, 이로써 러시아 경찰 그 누구든 ‘혐오 발언’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SNS 게시물 작성자를 수사할 수 있게 됐다.
메모리얼 NGO의 다비디스는 “온라인에서 한 농담으로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경찰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법 조항을 악용했다. 이는 반발을 부른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며 정치화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정부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중단 명령을 내렸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반전 시위대가 경찰의 탄압을 받고 국제적인 대러 제재 조치로 러시아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자 러시아 국회는 2022년 3월 조세 탈루 혐의에 대한 기소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수사 역시 유예 명령을 내렸다.
과거 징역살이를 한 후 현재는 보르도 지역에서 망명 중인 키릴 보브로는 “그렇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침묵하고, 비판도 자제하면 편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중이다.”
글·샤를 페라쟁 Charles Perragin
언론인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Alexander Korobeev & Roman Dremliuga, ‘Current сriminal and legal policy in Russia with regard to penalization and depenalization : between press and compromise’, Proceedings of the XVII International Research-to-Practice Conference dedicated to the memory of M.I. Kovalyov, Atlantis Press, Dordrecht, 2020.
(2) Mikhaïl Zelensky, ‘사상 최대의 교정인구 감소, 근시안적 법률 때문’ (원문 러시아어), <Meduza>, Riga, 2018년 12월 14일.
(3) Maria Litvinova, ‘공사를 하는 게 아니라 형을 치르는 것’ (원문 러시아어), <Kommersant>, Moscow, 2021년 6월 2일.
(4) Marcelo Aebi & Mélanie Tiago, ‘SPACE I — Council of Europe annual penal statistics : Prison populations’, 유럽평의회, Strasbourg, 2020년.
(5) Ella Paneyakh & Dina Rosenberg, 『The Сourts, law enforcement, and politics”, The New Autocracy : Information, Politics, and Policy in Putin’s Russia』, Brookings Institution Press, Washington, 2018.
(6),(10) Ella Paneyakh, ‘Faking performance together : systems of performance evaluation in Russian enforcement agencies and production of bias and privilege’, <Post-Soviet Affairs>, vol. 30, Routledge, London, 2014.
(7),(8) Peter H. Solomon, ‘Post-Soviet criminal justice: The persistence of distorted neo-inquisitorialism’, <Theoretical Criminology>, vol. 19, SAGE Publishing, Thousand Oaks, 2015.
(9) Audrey Lebel, ‘En Russie, le fléau des violences domestiques(한국어판 제목: 재앙 수준의 러시아 가정폭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1월호, 한국어판 2020년 2월호.
(11) Ekaterina Moiseeva, ‘Plea bargaining in Russia : the role of defence attorneys and the problem of asymmetry’,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arative and Applied Criminal Justice>, vol. 41, Routledge, London, 2017.
(12) Peter Solomon, ‘Criminalisation, decriminalisation and post-communist transition: The case of the Russian Federation’, 『Building Justice in Post-Transition Europe?』, Routledge, London, 2014.
(13) William E. Pomeranz, ‘Law And The Russian State : Russia’s Legal Evolution from Peter The Great To Vladimir Putin’, Bloomsbury, London, 2018.
(14) Maria Lipman (ed.), 『Russian Voices on Post-Crimea Russia』, ibidem Press, Stuttgart,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