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들의 새로운 금광, 디지털 보건의료 산업

공공 서비스 민영화를 지원하는 공적 자금

2022-06-30     질 발바스트르 l 기자, 영화감독

의료인력 부족으로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고 의료 서비스가 감축되는 현실에 맞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스마트 진료소’라는 해결책을 찾았다. 원격 진료, 의료 데이터 추적 기능의 의료적 실효성은 확실치 않다. 재계의 막대한 투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새로운 금광, 디지털 보건의료를 조사했다.

 

2022년 1월 말, 새로운 스타트업 창립 소식은 몇몇 경제 전문지를 제외하면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2년 전부터 재조명되기 시작한 보건의료 분야의 신생기업은, 구독자들에게는 별로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계는 달랐다.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Échos)>는 ‘조이(Zoï), 투자자들을 긴장시키는 젊은 새싹’이라는 기사(2022년 1월 25일자)에서 조이가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지침을 디지털화한다”라고 설명했다. 기사 제목처럼 투자자들은 긴장한 기색이다. 막대한 금액을 내놓은 투자자 행렬에 합류한 거물급 백만장자 목록은 독자들의 부러움을 살만했다.

프랑스 재계순위 13위이자 프리(Free)의 최고경영자 자비에 니엘, 재계 19위의 세계적인 물류운송 기업 CMA-CGM (la Compagnie Maritime d’Affrètement-Compagnie Générale Maritime)의 수장 로돌프 사데, 모더나의 최고경영자이자 재계 25위의 스테판 봉셀, 마다가스카 재계 10위 악시안(에너지, 부동산, 핀테크, 금융 및 통신 서비스 분야)의 공동경영자 하산 히리지, 최고급 보르도 와인 양조장 페트뤼스의 공동소유주 장 모엑스, 수에즈 주식공개매수 당시 베올리아의 고문이었던 기업은행가 장마리 메시에, 모건 스탠리 프랑스 회장 에마뉘엘 골드스타인, 마지막으로 다국적그룹 에파드(Ehpad)의 계열사이자 경영모델로 연초에 화제를 모았던 오르페아(Orpéa)의 창립자 장클로드 마리앙이 있다.

 

200만 유로를 모은 “젊은 새싹”

대체 조이에 뭐가 있길래, 보건의료 분야와 무관한 재계 거물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일까? “젊은 새싹”은 빈껍데기를 보기 좋게 포장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젊은 새싹”이 무슨 일을 하길래 200만 유로라는 기록적인 자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이 황금 새싹을 틔운 이스마엘 에믈리앵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할까? 이스마엘 에믈리앵은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의 대선후보 시절 정치 고문을 맡았으며, 후에 에마뉘엘 마크롱이 재정경제부 장관에서 엘리제 궁에 입성할 때까지 그의 고문이었다. 게다가 정당 전진!(En Marche!)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끝없는 백만장자 행렬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인맥을 갖춘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에믈리앵이 아무리 유명한 홍보 전문가일지라도 보건의료 분야에서 이렇다 할 이력은 없다.

조이의 성공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최근 팬데믹 사태 동안 응급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했고, 국립병원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언론은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불만, 줄어든 병상, 부족한 의료물자를 집중조명했다. 이 때문에 팬데믹 만큼이나 우려스러운 사실이 가려졌다. 우리는 공공의료와 마찬가지로 사기업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칭 혁신적인 디지털 시스템을 내세우며 약탈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르는 스타트업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런 변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첫 임기 5년 동안 각종 계획안, 선언문,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디지털을 향한 방향전환을 가속화 하고자” 2018년 6월 발표한 ‘나의 보건의료 2022’ 프로그램, “프랑스가 보건정보 산업의 세계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 2020년 12월 발표한 ‘파리상떼 캉퓌스(PariSanté Campus, 디지털 보건의료 개발 센터)’ 프로그램, “유럽 보건의료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하고자” 2021년 6월 발표한 ‘보건의료 혁신 2030’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의료분야의 3차 산업혁명

마크롱의 전임자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통령 시절 보건·사회연대부 장관 마리솔 투렌과 합심해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물꼬를 텄다. 2016년 1월 23일, 보건정보 혁신의 날을 맞아 마리솔 투렌은 이렇게 선언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다름 아닌 디지털 의료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면서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혁명의 출발점입니다.”(1) 특히 정치인들의 연설 뒤에는 “고결한 목적을 위한 모금”에 관한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른다. 기업계의 주요 불만사항 중 하나는 장애물 철폐, 즉 모든 분야에서 행정적인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마크롱의 바람이기도 하다. “장치와 제약을 없애 속도를 내야 합니다. 우리는 일을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습니다.”(2) 언론의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이 정부는 2018년 사회보장제도 자금조달법 51항에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조달된 자금으로 새로운 보건의료 조직을 시범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조처'를 도입했다. (3) 물론 의료보험에서 몇몇 특정 물자, 의약품, 전자기기, 감시카메라, 원격진료를 환급해주는 의료제도 고유의 구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이로써 기업들의 활로가 보장된다. 원래 이 환급대상 목록에 이름을 올리려면 출시된 제품이 환자패널들을 상대로 일정기간 일련의 임상시험을 거쳤음을 증명해야 했다. 이는 고등보건당국(HAS) 산하의 의료기기 및 의료기술 평가위원회(CNEDIMTS)에서 성문화한 절차다. 그런데 이 절차도 ‘유연’해졌다. ‘혁신 패키지’, 혹은 ‘일시적 공적 부담’ 등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평가위원회에서 승인 예정인)환급금을 받으려고 임상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과도기에 청신호가 켜지자, 매혹적인 배당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임상시험은 추후에 결국 승인된다.

이런 상황이 보건의료 분야의 변화에 일조했다. 일명 ‘BIG BPI’로 불리는 프랑스 공공 투자 은행(Bpifrance, BPI)이 2021년 10월 개최한 연간 발표회를 살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둥근 탁자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걸려있다. “디지털 보건의료의 범위 확대, 프랑스 시장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발판이 되다.” 자유주의 경제로의 변화를 반기는 기색이 역력한 공간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스타트업 바이오세레니티(BioSerenity)에서 특정 스마트기기(수면안대, 스마트 의류)를 사용하면 의료보험에서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

 

위험의 공공화, 수익의 민간화를 돕는 ‘경제간섭주의’

바이오세레니티의 최고경영자 피에르이브 프루앵은 단호히 제도적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이 분야에서 임상시험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일입니다. 우선 위험부담이 있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투입해야 하죠. 임상시험도 환자집단의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비용을 줄입니다. 대규모여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의료기기 및 의료기술 평가위원회 위원장 이자벨 아드노는 이런 행정적 규제 완화를 적극 지지한다. “우리는 극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배후에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이죠. ‘혁신 패키지’에서 한 사례라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투자 거부로 이어집니다.” 마르세유 병원장도 같은 입장을 표했다. 마리솔 투렌 전 장관(임기 2012~2017)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프랑소아 크레미유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2020년 2월) 거의 모든 행정적, 경제적 규제를 없애는 순간부터 얼마나 비약적인 혁신을 이뤘는지 생각해보면 흥미롭습니다. (…) 모든 규제를 없앴을 때 우리는 신속하게 발전했습니다. 또한, 몇 년 후 혁신기술을 우리 생태계 내에 적용하려면 어떤 상태를 유지해야 할지 시사합니다.”(4)

이상적인 ‘생태계’에 도달하려면 기업에 한층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프랑스 공공 투자은행(Bpifrance, BPI)이 그 역할을 맡았다. 2012년 올랑드 대통령 시절 설립된 이 은행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접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9년 마크롱이 신탁은행(CDC), 프랑스 우정공사 그룹, CNP 아쉬랑스 그룹과 연합시킴으로써 BPI는 공공부문의 대표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투자자를 찾는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리는 곳이 BPI다. 이때 기업은 아직 경제적 주체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더 가깝다. 

“민간자본 부문의 안전망 같은 개념입니다.” 노동총연맹(CGT) 신탁 은행 지부 사무국장 필립 가스파로토가 설명한다. “투기성 자금은 BPI가 투자한 분야로만 흘러 들어갑니다. 위험부담이 크지 않으니까요. 다시 말해 BPI를 통해 투입된 공적 자금은 큰 위험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반면 수익은 주로 민간자본에 돌아갑니다. 수익률은 30% 내외입니다. 사실상 대규모 횡령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민간부문 지원은 BPI의 사명이기도 하다. “사익을 추구하는 은행과 금융시장을 공권력으로 대체하는 것은 명백한 신자유주의입니다. 프랑스에서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것처럼 말입니다.” 사회학자이자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CNRS) 원장 프랑소아 드노르가 지적했다. “이는 결코 자유방임주의가 아닙니다.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면서 경쟁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경제간섭주의’입니다.”(5)

 

백만장자 군단을 유혹하는 투자처

민간부문을 향한 기류는 디지털 보건의료(e-santé) 분야의 자본화가 세를 불린 결과로 보인다. BPI가 만들어준 안전망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오익스(NaoX)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종의 금융 기업 산하 연구소 같은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은 결과, 투자회사 마쥑 이상테 앵베스트(Majycc eSanté Invest)도 투자를 결정했다. 최고경영자 이브 주르넬은 프랑스   재계 135위에 오른 인물로, 노년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계 2위 기업 도뮈스 시스(Domus VI)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마르게리트 베라르가 이끄는 BNP 파리바 데벨로프멍도 나오익스 투자에 참여했다. 베라르는 마크롱과 국립행정학교 동기동창 사이다. 쿠르마 파트너스(Kurma Partners)를 통해 투자한 유럽 최대 투자회사 유라제오(Eurazeo)도 있다. 유라제오 감독이사회 의장 미셸 다비드바일은 라자르 은행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BPI와 라포스트 상테(La Poste Santé)가 나란히 투자한 누베알 이상테(Nouveal e-santé)의 사례도 있다. 라포스트 상테는 프랑스 우정공사 그룹 계열사로, 현실과 가상공간에서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외래 진료의 비중을 늘리고 환자들이 거치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공헌한다(6)고 한다. 공공부문에 남을 완벽한 서비스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공공 서비스는 이보다는 민영화를 더 선호한다. 백만장자 군단이 디지털 보건의료 산업에 홀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대규모 금융거래들은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BPI 직원 대표들이 BPI계좌 중에서 특정거래를 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가스파로토가 설명한다. “수많은 투자처는 BPI가 허가한 경우 오직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일부 공개됩니다. 이사회 소속 인물도 해당 정보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산업기밀 보장원칙으로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카피(Sécafi)에 의뢰한 경우처럼 노사협의회의 요청을 받은 전문가들조차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안전장치

이런 상황이니, 디지털 보건의료 산업이 자본계의 새로운 금광으로 부상한 것도 놀라울 일이 아니다. 기록은 매년 경신된다. “프랑스 디지털 보건의료 스타트업 2020년 투자금 4억 유로 달성”, “프랑스 디지털 보건의료 스타트업 2021년 한 해 투자금 9억 2,940만 유로”, “디지털 보건의료 스타트업 2022년 1분기 투자금 6억 4,400만 유로”(7) 시장이 반길 만한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의료비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다. 2020년도 보건의료 관련 지출총액은 2,092억 유로로 추산된다. 이는 프랑스 국내총생산의 9.1%에 달한다. 지출액은 2011~2019년 연 평균 1.9%씩 증가했다.(8) 보건의료 산업의 디지털화가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

부분적으로 사기업의 손에 놓인 보건의료 산업의 경제구조에서, 디지털 보건의료 스타트업은 늘 영향을 받는 쪽인 중소기업, 영세기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 혹독한 자유주의 정책에 시달려온 공공 서비스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보건의료의 상품화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이 디지털 보건의료 스타트업이다. 디지털의 몇몇 특성은 정부가 장려하는 외래진료정책을 촉진하고, 병상 수 및 보건의료인력 감축을 정당화한다. 

“공공기관에서는 ‘디지털 의료’를 이미 한계에 이른 시스템 규모를 더 줄이려는 명분으로 사용합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파리병원연합(AP-HP) 산하 비샤 병원에서 근무하는 심장전문의이자 병원 공동체의 대변인 올리비에 밀레롱 박사가 말했다. 밀레롱 박사의 이런 지적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례가 바로 스타트업 위팅스(Withings)다. 이 회사가 다수의 투자를 받자 이윽고 BPI, 유라제오(이댕베스트 파트너스), BNP 파리바 데벨로프멍이 투자에 합류했다. 위팅스는 사물인터넷(체중계, 혈압측정기, 센서, 시계)을 통해 의료 데이터를 원격추적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위팅스는 공공의료 부문에서 파리병원연합 및 다른 4개의 스타트업과 함께 미래의 디지털 병원을 구상하는 파리시립병원(Hôtel-Dieu)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르피가로>에서 밝힌 것처럼(2021년 10월 5일자), “병원 시스템에 디지털 혁신 기술을 더 빨리 적용하기 위해서”다. 위팅스와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으로는 부동산 투자기업 노박시아(Novaxia), 그리고 1만㎡에 달하는 보건의료 스타트업 협업공간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 바이오랩스(BioLabs)가 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의 상당 부분이 사기업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는 파리병원연합 홍보담당자에 따르면, 바이오랩스는 “바이오 및 의료기기(온라인 진료 예약, 수술용 로봇 등 치료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포함) 분야에서 유럽 최대 규모 인큐베이터 중 하나”다. 위팅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로비에 착수해, 자사 상품을 의료보험 환급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밀레롱 박사가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우리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파는 셈입니다. 당신이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으면, 우리가 당신의 심장을 지켜볼 겁니다. 그것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국민의 의료비용 지출만 늘어날 뿐,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는 적합성이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의료기기에 대한 주의사항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의사들이 심장 박동의 이상 징후를 감지해준다고 광고하며 애플 워치를 판매하는 애플 같은 기업에 맞서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애플은 내부적으로 진행한 연구를 서둘러 발표해 기기의 적합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기업들은 자사 상품이 승인을 통과하고 환급도 받을 수 있도록 엄청난 로비 활동을 펼칩니다.”

그렇다고 의료계와 기술진보가 대립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인터넷은 MRI나 스캐너와 비슷합니다. 우리 업무를 도와줄 보조기술이죠. 하지만 전통적인 개념의 진료소, 의사와 환자 간 관계, 환자의 상태와 거동을 보며 진단하는 의사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합의 대변인이자 노동총연맹 보건의료 부문 대표 크리스토프 프뤼돔 박사가 지적했다. 

이런 스마트기기들은 국립병원이 쇠약해진 틈을 타고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베르됭생미엘 병원이 렌 출신 스타트업 비오상시(Biosency)와 함께 몇 달 전부터 진행 중인 폐렴환자 대상 실험이 일간지 <라뫼즈(la Meuse)>에 보도됐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상태 데이터를 병원으로 전송하는 스마트 팔찌를 착용했다. 호흡기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모드 빌맹에게 스마트 팔찌는 환자와 간호인력, 모두를 안심시켜 주는 물건이다. “환자들이 자택에서 더 차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간단한 대답을 들으려고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됩니다. 환자와 우리 모두에게 요긴하죠.” 

 

최악의 차별, 의료 불평등

 

노동자의 힘 보건의료(FOS) 부문 노조 위원장 마리엘렌 르그로의 의견은 좀 더 미묘하다. “진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호흡기내과 병동의 병상 수는 급감했습니다. 2010년대에 공식적인 병상 수는 36개였지만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21개였습니다. 의료서비스는 포화상태입니다. 이 새로운 스마트기기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나요?” 호흡기내과 병동 과장 코르뉘 박사가 지역신문 

<레스트 레퓌블뤼캥(L’Est Républicain)>(2022년 1월 9일)에서 상황의 모호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병상 수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병원으로서 스마트기기라는 해결책은 의료서비스를 원활히 하거나 더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적절한 듯하다.”

환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건강증진에 관한 관심 때문이든, 돈벌이 주의에 대한 우려 때문이든 간에, 다수의 스타트업이 보이는 태도는 보건의료 분야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의문을 안겨준다. 위팅스는 서슴지 않고 자사의 시계와 체중계를 대형할인점(모노프리, 프낙, 카르푸)의 ‘건강용품’ 코너에 제안한다. 보건의료 분야의 새로운 활로라고 보기 때문이다. “2026년까지 건강용품이 우리 쇼핑몰 상품의 15%를 차지할 전망입니다.”(9) 카르푸 그룹 계열사 카르밀라의 최고경영자 마리 슈발의 귀띔이었다.

기술과 정치, 경제가 얽혀있는 디지털 의료 산업은 공공의료를 무력화하며 자리를 잡고 점차 세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판가름 난 것은 아니다. 프레데리크 피에뤼는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 연구원으로, 의료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모든 국민이 소득과 무관하게 의료서비스, 특히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피에뤼는 이렇게 덧붙였다. “의료 불평등은 차별 중에서도 최악으로 인식되죠. 마찬가지로 국립병원은 국민 절대다수가 가장 빈번히 드나드는 공공기관 중 하나입니다. 정부가 우회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마크롱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마크롱 정부는 기술적, 재정적 ‘해결책’을 모색하며 간접적으로 공공부문을 변화시키려 한다. 피에뤼는 갈등은 화를 부른다고 생각한다. 2021년 10월, “행정적, 제도적, 경제적 규제를 무너뜨린” BPI의 행보에 경탄하던 마르세유 병원 원장 크레미유도 말미에 결국 이렇게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점이 너무나 많지만, (이런 규제 철폐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보건상으로나 사람들의 권리와 규정 면에서 재난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재조정이 필요한 제약이나 예방규정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글·질 발바스트르 Gilles Balbastre
기자, 영화감독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2016년 1월 23일 개회사. 
(2) ‘Présentation de la stratégie Innovation Santé 2030 par le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대통령의 2030 보건의료 혁신 전략 발표’, 2021년 6월 29일, www.elysee.fr 
(3) ‘Article 51 : Un dispositif pour favoriser l’innovation en santé 제 51항 : 보건의료 부문의 혁신 장려를 위한 조처’, Agence régionale de santé (ARS) Provence-Alpes Côte d’Azur, Marseille, 2022년 2월 28일.
(4) ‘Changement d’échelle en Santé numérique : faire du marché français un tremplin pour l’international 디지털 보건의료의 범위 확대, 프랑스 시장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이 되다’, <Bpi-France>, 2021년 10월 13일.
(5) François Denord, 『Le néo-libéralisme à la française. Histoire d’une idéologie politique 프랑스식 신자유주의. 어느 정치 이데올로기의 역사』, Agone, Marseille, 2007.
(6) La Poste et La santé 공식 홈페이지 서문, https://www.lapostegroupe.com
(7) Mind Health, 차례대로 2020년 1월 26일, 2021년 1월 24일, 2022년 4월 11일.
(8) Lucie Gonzalez, Geoffrey Lefebvre, Myriam Mikou et Mickaël Portela, ‘Les dépenses de santé en 2020, résultats des comptes de la santé - Édition 2021, 2020년 보건의료 지출, 보건의료 총결산 – 2021년판’, 프랑스 연구평가통계국(Drees), Paris.
(9) <Le Parisien> 홈페이지, 2022년 1월 3일.

 

 

기적의 스타트업? 엇나간 기술주의와 민영화 

 

BPI는 에마뉘엘 마크롱의 첫 번째 임기부터 (이노비오2 기금, 대규모 벤처 기금, 환자 독립 기금 등을 조성해)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꾸준히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1) 이들은 의료 시스템이 직면한 문제들에 기적 같은 해결책을 내놓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의사 수를 줄이는 정책 때문에 의료공백이 발생하면? H4D는 “환자와 의사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독자적 기술, 안전하고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한다.(2) 이 ‘원격진료 부스’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부스 안에서) 환자가 직접 검사에 참여한다.”(3)

보건 의료 인력 부족으로 내원 환자 응대 서비스가 악화되면? 누베알 이상테는 “입원부터 사후관리까지, 환자가 거치는 모든 절차를 디지털화해 해결하자”라고 제안한다. 서비스 사용료는 절대 적지 않다.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과 질환 의료 서비스는? 독톱시(Doctospy)는 “정신과 질환, 중독 치료, 식이 분야 전문 화상 진료 플랫폼”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할 때는? 메다비즈(Medaviz)는 “누구나 원하는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경상 환자의 진료 규제, 원격상담, 원격진료, 지역 병원 간의 연계 시스템 등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병실 수익률이 낮다면? 해피탈(Happytal)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보내는 일상을 개선하는 서비스다. 특급 호텔에서 영감을 받은 일종의 컨시어지 서비스(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비서 서비스)는 국립 병원의 개인실을 ‘판매’한다.(4)

국가가 노인 돌봄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문제는? 텔레그라픽(Telegrafik)은 “노령자가 안정감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건강을 관리해주며, 의료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원활한 대인관계 유지를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계에 다다른 간호 인력은? 봇디자인(Botdesign)은 “간호 인력의 시간을 절약하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자의 데이터를 간병인에게 바로 전송하는 서비스”를 제안한다. 

질식 상태에 빠진 병원 서비스는? 나오익스는 “와해성 기술을 적용해 병원 밖에서도 신경성 질환을 추적하는 이어폰”을 개발 중이다. 

또한, BPI는 아동들을 위해 윌로(Willo)도 지원한다. “가장 효율적인 아동용 치아 세정 로봇 윌로는, 100% 자동화됐으며 전동칫솔보다 4배 빠르게 작동한다.”

위 상품들 중 몇 가지는 실제로 유용할 듯하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쇠락을 틈탄 발전은 엇나간 기술주의와, 민영화의 길목에 들어선 공공의료를 부각할 뿐이다.  

 

 

글·질 발바스트르 Gilles Balbastre
번역·정나영


(1) ‘Bpifrance renforce sonsoutien au secteur de la santé 보건의료 분야 지원을 강화하는 BPI’, 2021년 4월 6일, www.bpifrance.fr
(2) 인용된 문구는 BPI 홈페이지에 기재된 각 스타트업에 대한 소개글이다.
(3) Serge Halimi, ‘Maltraitance institutionnelle(한국어판 제목: 행정 서비스의 비대면화 - 제도적 학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3월호
(4) ‘Le business caché d’Happytal, la société qui renfloue les caisses des hôpitaux 해피탈의 틈새 사업, 병원의 재정난을 해결하다’, <France Info>, 2019년 9월 19일, www.francetvinfo.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