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EU 디지털서비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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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정글 규제는 EU 집행위원회가 열성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밝힌 어려운 과제들 중 하나다. 올 여름 유럽의회 표결을 앞둔 디지털서비스법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대상으로 불법 콘텐츠의 신속한 삭제 등의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결과적으로 인터넷 검열의 민간위탁을 제도화하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 절대론자’로 잘 알려진 한 억만장자의 트위터 인수 소식에, 세계의 각종 매체가 불안감에 빠졌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6일, 당시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내부시장 담당)은 문제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일론 머스크에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모든 기업은 우리의 법률을 준수해야만 한다.” 당연한 말을, 대단한 도전과제를 천명하듯 선언한 것을 보면, 수년째 유럽당국이 ‘빅테크’ 규제에 얼마나 무력했는지 알 수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장이 추진한, 수많은 최근 규제책들 중 디지털서비스에 관한 법안이 있다. 세간에는 영문 약자 ‘DSA’로 더 널리 알려진 이 디지털서비스법안과 관련해, 지난 4월 2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유럽이사회가 큰 틀의 잠정적 합의를 이뤄냈다. 한편 기업 경쟁과 관련해 유럽연합의 규제수단을 더욱 강화할, ‘디지털서비스법’의 쌍둥이 격인 ‘디지털시장법’도 함께 마련됐다.
최근 유럽이 이처럼 디지털 규제 법제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구대륙이 미국의 거대 플랫폼에 점령되는 사태를 막아내겠다는 유럽연합의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이 규제 법안이 추진되는 약 1년 반 동안 유럽연합 기구와 회원국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졌다. 디지털 산업은 2021년 거의 1억 유로를 로비 활동에 쏟아 부으며,(1) 법제화를 저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례로,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유럽의 정관계 인사들 간 활발한 만남이 치열한 로비전의 존재를 여실히 증명한다.(2)
민간기업이 공적 공간을 보호할 수 있을까?
사안은 중대했다. 2016년, 20년 전의 법안을 대체하며 ‘일반개인정보보호법’(RGPD)이 도입된 데 이어, 이번 디지털서비스법이 제정됨으로써 2001년 전자상거래 EU 지침을 개정·보완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특히 인터넷 중개사업자(인터넷 플랫폼 기업 등)의 콘텐츠 ‘관리’ 책임과 의무에 관한 규정을 손볼 수 있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유럽연합은 수년 전부터 때로는 테러 선동 콘텐츠 확산 방지,(3) 또 때로는 저작권 콘텐츠 보호를 명목으로(4) 유럽의 이익을 더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는, 일견 유익해 보이는 각종 규제를 확대해왔다. 특히 이 법률은 불법 콘텐츠를 확실히 퇴출하도록 한층 더 엄격한 의무를 부여하는 한편, 규제 위반 시 무거운 과징금(위법 기업이 기록한 글로벌 연 매출의 최대 6%까지)을 부과하는 등 회원국의 이익에 한층 더 부합하는 유럽법을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디지털서비스법은 알고리즘 투명성 제고나 민감한 정보의 광고 활용 금지 등 여러 유익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가 애초에 가졌던 야심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물론 프랑스 언론은 디지털서비스법이 “무법천지의 인터넷 플랫폼을 규제”(Francetvinfo.fr, 4월 23일)하는 한편, “혐오 발언, 허위정보, 저작권 침해 등 인터넷의 각종 폐해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방지”(LeMonde.fr, 4월 23일)할 수단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실상 유럽대륙 내 온라인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먼저 디지털서비스법은 디지털 공룡 기업이 누리는 신성한 자율규제의 원칙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새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콘텐츠 삭제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오로지 민간기업의 손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공적 공간 보호’라는 미명 하에 법제를 마련했지만, 실제로 법 집행은 민간에 위탁하고 있는 셈이다.(5) 표현의 자유를 감독하는 임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규정은 사실상 혐오성 발언 근절을 위한 EU행동규범에서 널리 영향을 받았다.
2016년 이후 EU 집행위원회는 ‘민간’을 중심으로 한 해법을 널리 지지해왔다. 한 마디로, 트위터, 유튜브 등의 기업이 스스로 자신들의 허물을 처리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의 검열은 자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특징을 지닐 수밖에 없다. 대개는 디지털 사업자들이 관련 권한자라는 명목 하에, 유럽 시민의 기본권 준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감독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해 콘텐츠 규제 VS. 언론의 자유
한편 디지털서비스법은 몇 가지 새로운 내용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신뢰 기반 신고자’라는 지위를 신설해, 불법 콘텐츠 신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고자 지위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허위정보 근절을 위해 활동 중인 시민단체, 혹은 국가단속기관이다. 특히 후자가 플랫폼 기업에 콘텐츠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 기업은 지체 없이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당연히 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현 정권이 자신들의 세계관에 반대되는 모든 주장을 무조건 ‘페이크 뉴스’로 치부하는 오늘날, 야권 진영의 우려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원활한 콘텐츠 관리를 위해 아마도 모든 디지털서비스 제공자는 유럽연합 내에 법적 책임자를 지명함으로써 위법 시 책임을 지게 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콘텐츠가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인가? 치열한 협상 끝에, 입안자는 자국법이나 유럽법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모든 메시지를 규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원국마다 불법이라고 간주되는 콘텐츠의 범주는 상당히 다르다. 가령 헝가리의 경우, 다른 회원국들과는 전혀 달리, ‘공산주의’나 성소수자(LGBTQI)의 발언이나 상징까지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서비스법은 그런 규범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6)
한편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단순한 불법 콘텐츠만이 아니라 가짜뉴스 등 허위정보, 심지어 ‘급진적인 발언’에 이르는, ‘유해’ 콘텐츠까지 디지털서비스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정부가 줄곧 제안해왔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그 주장처럼 말이다.(7) 여기서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독립 매체들은 결국 페이스북 등 상업 플랫폼이 정한 규율에 비굴하게 복종하게 되지 않을까?
일부 언론매체와 의원들은 플랫폼 기업들이 직접 언론 활동을 감독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미디어 부문을 디지털서비스법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EU집행위원회와 프랑스 정부는 일부 해외 미디어의 인터넷 퇴출 필요성을 거론하며 이런 시도를 강력 저지했다. 그 결과, 디지털서비스법은 유럽연합 및 개별국 관할 당국의 통제 하에, 일종의 사법외적 인터넷 검열을 합법화하는 길을 열고 말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직면해, 유럽의 입법자들은 더욱이 새로운 위기 대응 메커니즘을 도입하기도 했다. 특수한 상황에서 온라인 정보 조작을 막는다는 명목 하에, 평상시 표현의 자유에 저촉되는 조치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이로써 얼마 전 법적 논란을 야기한,(8) 러시아 국영매체 RT와 스푸트니크에 대한 금지조처와 관련해 유럽연합이 직면했던 사법적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좀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새로운 법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인터넷 플랫폼들이 총체적으로 콘텐츠를 감시하는 행위를 전격 금지하면서도(2001년 온라인상거래 지침을 통해 이미 규제), 정작 일부 규정에 근거해 온라인 플랫폼 전체에 대한 자동 필터링 시스템을 종용하거나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디지털서비스법은 IT 공룡기업을 상대로 ‘맞춤형’으로 구상됐다. 유럽연합 소속이든, 개별 회원국 소속이든, 협상가들은 언제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와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을 모델로 상정했다. 디지털서비스법은 모든 디지털서비스 사업자가 자사 서버 내 불법 콘텐츠의 존재를 직접 관리하도록(즉 구체적으로 말해 모든 소통을 감시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이미 콘텐츠 자동 인식 기술을 갖춘 공룡 기업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됐다. 결국 새 법은 대기업과 영세기업 간 권력과 자원의 비대칭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애당초 디지털서비스법이 근절하기를 원했던 방향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브뤼셀 효과’는 힘을 발휘할까
새 법은 ‘검열’ 자동화를 더욱 강화하면서도, 정작 거대 플랫폼의 경제 모델에 정면으로 칼날을 겨누는 것은 피하고 있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트위터를 통해(2022년 4월 23일) “신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도입됨에 따라 앞으로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너무 커서 관리가 어렵다’는 식의 행태를 보이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면, EU집행위원회는 문제의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문제의 결과만을 최소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브르통이 예찬하는 디지털서비스법은 ‘매트릭스’나 ‘마스토동’과 같은 플랫폼처럼, 분산적이고 자유로운 모델을 활성화하는 대신, 애당초 미국의 IT 공룡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한 관리감독 방식을 정식 승인함으로써 이를 전 업계로 서서히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6년 이후, 유럽연합이 디지털 규제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새로운 유럽 규제 모델이 등장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과는 차별화된 규범을 마련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양국 규제의 기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몸집 불리기에 환호하며 디지털 경쟁력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감독하는 공적영역을 무조건적으로 민영화하고 있다. 2016년 일반개인정보보호법(RGPD)이 도입된 이후, 유럽의 이익에 더욱 부합하는 규범의 초석을 마련해줄 몇 가지 제안이 등장했다. 가령 지난 4월 6일 유럽의회가 기업의 정보 접근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채택한 ‘데이터거버넌스법’이나, 2021년 4월 ‘인공지능법’ 초안에 대해 최근 마련된 절충안이 바로 그 사례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로 EU집행위원회는 이른바 ‘브뤼셀 효과’(9)로 인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다. 법학자 아누 브래드포드가 창안한 ‘브뤼셀 효과’란, 유럽연합이 전 세계 규범을 주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가령 유럽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RGPD)을 바탕으로, 여러 국가들이 국내정보보호법을 제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편, 온라인 내 혐오성 발언 규제를 위한 독일의 SNS위법규제법(NetzDG, 2017년 통과)도 온두라스, 베트남, 벨라루스 등 10여 개 국가에 부분적으로 채택됐다.(10)
과연 신규 디지털서비스법도 그런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미 중국, 인도, 미국 등 여러 강대국이 디지털 규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법제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만일 브뤼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유럽은 역풍을 맞을 위험이 크다. 다른 강대국이 자국의 디지털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래 미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을 겨냥했던 규제의 칼날이, 엉뚱하게도 유럽 기업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글·클레망 페라르노 Clément Perarnaud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VUB)-거버넌스스쿨 연구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The lobby network : Big Tech’s web of influence in the EU’, Corporate Europe Observatory, 브뤼셀, 2021년 8월, https://corporateeurope.org.
(2) ‘Big Tech brings out the big guns in fight for future of EU tech regulation’, Corporate Europe Observatory, 2020년 12월 11일, https://corporateeurope.org.
(3) 온라인 테러 조장 콘텐츠 전파 근절에 관한 2021년 4월 29일자 유럽의회 규정 제2021/784호.
(4) 유럽이사회 지침 96/9/CE와 2001/29/CE를 개정한, 디지털 유럽단일시장 내 저작권 및 그 파생권리에 대한 2019년 4월 17일자 유럽의회 및 이사회 지침 제2019/790호.
(5) Félix Tréguer, ‘Les deux visages de la censure 검열의 두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7월호.
(6) ‘EU : Put Fundamental Rights at Top of Digital Regulation’, Human Rights Watch, Brussels, 2022년 1월 7일, www.hrw.org.
(7) ‘EU : Free speech under attack : French Presidency proposes action against “radical rhetoric”’, StateWatch, 2022년 3월 24일, www.statewatch.org.
(8) ‘The European Union’s RT and Sputnik Ban : Necessary and Proportionate?’, DSA Observatory, Amsterdam, 2022년 4월 22일, https://dsa-observatory.eu.
(9) Anu Bradford, 『The Brussels effect : How the European Union rules the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년.
(10) Jacob Mchangma, Natalie Alkiviadou, ‘The digital Berlin Wall : how Germany accidentally created a prototype for global online censorship - Act two’, <Justicia>, Copenhagen, 2020년 9월, https://futurefreespee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