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통령은 기업가들의 노리개인가?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전진, 타협, 만찬
2022년 6월로 예정된 미주정상회의에 대표적 반미 국가인 쿠바와 니카라과가 초대받지 못하자, 멕시코는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정상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박수를 받고 있지만 다른 분야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특히, 기업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국민을 배신했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치필린 허브가 뿌려진 옥수수 구이, 강낭콩과 플랜틴 바나나 튀김… 대통령의 고향, 타바스코 주의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2021년 11월 21일, 멕시코 근대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은 ‘기업가 위원회’ 위원들을 초대한 자리에 이 식사 메뉴를 준비했다. ‘기업가 위원회’는 멕시코 내 영향력 있는 기업가들의 조언을 얻기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일명 ‘AMLO’) 대통령이 취임식 며칠 전, 알폰소 로모(Alfonso Romo) 전 비서실장을 앞세워 조직했다. 2018~2020년 비서실장이었던 알폰소 로모는 몬테레이시의 경제 엘리트 출신인 농산업 분야 기업가다.
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한 기업가는 “위원회는 선출직이 아니어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정치 참여 방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초대로 옥수수와 강낭콩, 바나나를 맛본 이들은 누구일까? 대통령이 2000~2005년 멕시코시티 시장이었을 때 ‘우정’을(1) 나눴다는 멕시코 최고 갑부 카를로스 슬림(2), 방송국 <TV 아즈테카>(3)의 소유주이자 세금 26억 멕시코 페소(1억 2,300만 유로)를 미납해 ‘판도라 페이퍼스’(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가 전 세계 정・재계 인사, 연예인 등의 해외 탈세 정황을 폭로한 문건-역주)에 오른 리카르도 살리나스 플리에고, 2006년 대선 당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부정선거에 가담했던 스페인어권 최대 방송국 <텔레비사>의 베르나르도 고메스 부사장 등이다.(4)
가난한 자를 위해, 그러나 기업과 함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내세운 “가난한 사람들 먼저”라는 슬로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과거 그 자신이, 나라를 ‘약탈’하는 ‘권력 마피아’라고 비판하던 이들과 이런 식으로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서민층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빈곤 전문 연구가이자, 집권 여당 MORENA(Movimiento Regeneración Nacional, 국가재건운동)의 옛 당원이었던 훌리오 볼트비니크 교수는 “대통령은 우리를 속였다”라고 주장했다. 2018년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부 좌파는 과거 시스템의 악습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후보였던 로페스 오브라도르 역시, 멕시코의 ‘4차 변혁’을 이끌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1810년 멕시코 독립, 베니토 후아레스 전 대통령의 정교 분리 개혁 그리고 1910년 독재정권에 대항한 판초 비야의 혁명 당시와 동일하게 정부를 구성하겠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는 선거에서의 승리가 곧 집권을 말하지는 않는다. 부정부패, 마약 밀매, 미국의 간섭 때문에(5) 자국 영토의 일부에 대한 통제도 어렵고, 경제도 이웃 선진국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멕시코가 주권 국가로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사회혁명이 성취되던 때의 상황이 훨씬 나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전략에는 협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러나 ‘기업가들과 함께’하는 전략이다.
역사학자 로렌소 메예르는 이를 모순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실용주의자다. 경제 권력과 직접적인 대립을 원치 않는다. 그의 계획은 거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현실적이다.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서 충돌을 줄이자는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기업가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정책 공약을 강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기업가들은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멕시코에 위험한 인물”(6)이라고 칭하며 독재자로 알려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비교했다. 이에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공약을 조금씩 완화했다. 2012년 두 번째로 대선에 나섰을 때,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부유층 증가는 미미한 반면, 빈곤층 증가가 두드러지는 현재의 경제모델을 바꿔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2017년, 정치학자 에르난 고메스 브루에라는 “매우 드문 발표라 눈에 띈다”라고 했다. 한편, 그는 410쪽에 달하는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정책공약집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증세 없는 부패 척결, 과연 가능할까?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당선 후에도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18년 7월 1일, 멕시코 힐튼 호텔 연설에서 “정부는 독단적인 방식을 쓰지 않을 것이다. 강제적인 몰수나 수용은 없을 것이다”(7)라고 발표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재협상의 결과물)을 비준하고, 예산을 엄격히 통제하며,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세금 인상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증세나 국채 없이, 부패 척결을 통해 ‘4차 변혁’을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OECD에 따르면, 멕시코의 부패 규모는 매년 멕시코 GDP의 5~10%에 달할 만큼 심각하다.(8)
대통령은 “다행히도 세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 예산은 충분하다. 부패를 막고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된다.”(9)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대통령은 취임 즉시 공무원들의 월급 상한을 정하고, 공공기관의 예산을 줄였으며, 대통령실의 과소비를 없앴다. 대통령 전용기를 매각하고 민간 항공사의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했고, 호화 관저 ‘로스 피노스’를 박물관으로 바꿨다. 이런 노력 끝에,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임기 중반까지 1,880억 멕시코 페소를 절약했다. 그리고 도스 보카스 정유공장, 마야 관광열차, 멕시코만과 태평양을 잇는 테우안테펙지협 횡단열차 건설 등 3가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포함한 수많은 사회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대통령은 ‘제복 차림 국민’은 대체로 청렴하다며, 사업 운영을 군대에 맡기며 논란을 일으켰다.
재계에서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공화주의 긴축정책’을 환영했다. 카를로스 슬림은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올바르다”라고 평가했고(10), 또 다른 주요 기업가는 멕시코에 있는 그의 대규모 사무실에서, 부패 척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라며, “대통령은 나보다 더 신자유주의자이고 구두쇠”라고 꼬집었다. 사실, 멕시코의 대부호들은 잘 지내고 있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에 따르면, 2019~2021년 코로나19 유행으로 GDP는 8.5% 감소한 반면, 멕시코 억만장자 13인의 자산은 11% 증가했다.(11)
“조종석은 항상 민간기업의 몫”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이런 ‘유연함’에 실망한 이들도 있다. 2019년 4월 9일, 카를로스 우르주아 재무부 장관은 “명백한 이해충돌이 있는 현 정부 실세들”과의 이견을 이유로 사임했고, 한 달 뒤에는 사회보험청(IMSS)의 헤르만 마르티네스 청장이 대통령의 ‘과도한’ 예산삭감을 비판하며 물러났다.(12) 2020년 9월에는 언론에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사건도 있었다. 빅토르 톨레도 환경부 장관이 로페스 오브라도르 내각의 전 비서실장이자 GMO 곡물 기업 소유주인 로모를 가리켜 “생태농업을 막으려 애쓴다”라고 비난한 것이다.(13)
MORENA의 일부 활동가들은 당이 ‘제도혁명당(PRI)'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한다. PRI는 사회변화를 목표로 설립됐지만, 대표적인 권위주의 및 집단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AM)의 존 애커먼 교수는 “MORENA 내에서, 내부 지지를 토대로 후보를 선정하는 등, PRI 정권의 오래된 관행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애커먼 교수는 2월 5일, 4,000명 이상의 MORENA 지지자들과 함께 “정당의 설립 이념을 지키고, 당의 기반을 다시 다지기” 위한 전국 규모의 전당대회를 열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경제 엘리트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지는 않는다. 루이사 마리아 알칼데 노동부 장관이 말했다. “우리는 항상 경영자들과 대화해왔다. 이제 강제가 아닌 동등한 협상이 중요하다. 예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조종석에 앉은 것은 민간기업들이었고, 그들이 명령을 내렸다.”
멕시코에서 이런 변화는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부호들이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정부의 특혜를 따라 부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멕시코 역사 지구에 위치한 국립 궁전 대변인실에서 헤수스 라미레스 쿠에바스(Jesús Ramírez Cuevas) 대통령실 대변인은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국가 역할의 축소가 아니다. 국가가 대기업들에게 조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명의 멕시코 부호들 중 6명이 민영화된 국영기업들의 소유자 또는 주주다. 이들 기업은 1988~1994년 신자유주의 성향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고르타리 대통령의 6년 임기 동안 민영화됐다.
슬림은 1990년 국영 통신기업 텔멕스를 인수하고, 살리나스 데고르타리 대통령이 부여한 6년간의 통신 분야 독점사업권 덕분에 그들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 슬림은 텔멕스 인수 1년 만에, 예상대로 <포브스>의 부호 리스트에 올랐다. 몬테레이의 사업가 호르헤 사다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조하는 이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서 하루아침에 그런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들이다.” 호르헤 사다는 “기존의 기업가 단체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중소기업 단체 ‘4차 변혁과 함께하는 기업가들’을 만들었다.
교도소에서 호텔 객실료 뽑아내기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런 ‘정실 자본주의’가 끝나길 원한다. 라미레스 대변인이 말했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대화는 솔직하다.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단언했다. 기업운영에는 어려움이 없겠지만, 예전처럼 기업이 쉽게 공공계약을 수주하지는 못할 것이며, 이전 정부들과 체결한 계약들 중에서도 법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계약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상징적인 결정을 내리며 이런 메시지를 소리 높여 전했다. ‘친구’인 카를로스 슬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국민 투표를 거쳐 2018년 10월 29일, 이미 건설이 시작된 ‘텍스코코(Texcoco) 신공항 사업’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라미레스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간기업들은 공항이 민간 투자로 건설됐다고 주장했으나, 투자금의 대부분이 공공자본임을 확인했다. 다른 수많은 기간시설(도로, 상하수도, 전기·가스·통신·지역난방 시설 등-역주) 사업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돼 왔고, 이를 통해 민간기업들은 지출을 줄이며 이익을 극대화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후,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는 민관협력사업(PPP)들을 찾아내 재협상에 돌입했다. 의약품 공급 사업의 경우 10개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의약품을 생산조차 하지 않는 기업도 포함돼 있다. 현재 중단된 7개 가스 공급관 건설 사업의 경우, 공공자본을 투입한 사업을 민간기업들이 25년간 운영한 후,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받을 예정이었다. 민간기업들이 건설을 맡은 8개 교도소 건립사업도 마찬가지다. 전 정부는 20년 동안 이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기업들에 교도소 건물까지 내어주기로 약속했다. 국가가 재소자 1명당 1일 4,336페소(약 206유로, 한화 약 28만원)를 지출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최근 출간한 저서(14)에서 “교도소에서 5성급 호텔 객실료를 받는 셈”이라며 분노했다.
대통령이 끝장낸 또 다른 권력 남용 사례는 바로 탈세다. 2019년 5월 20일, 대통령은 “화이트칼라의 절도”(15)라고 칭한 이 관행을 금지하는 법령에 서명을 하면서, “지난 12년 동안, 고액 납세자들에게 약 4,000억 페소의 세금 환급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에는 기업들의 인력 아웃소싱을 금지해, 기업이 직원들의 사회보험 비용 및 일부 세금 지불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했다. 알칼데 장관은 “아웃소싱 개혁은 무척 어려웠다. 지난 10년간 민간 분야에 깊이 자리 잡은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영향력과 개혁의 당위성 덕분에 변화가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행정부의 실력행사, 기업들의 반응은?
행정부의 이런 실력행사에도, 경영자 단체들은 지금까지는 대화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멕시코 부르주아 상류층이 드나들던 웅장한 식민시대 건물인 아시엔다 데 로스 모랄레스에서 우리를 만난 호세 메디나 모라 멕시코 고용주 연맹(Coparmex) 회장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았다”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자신과 정부의 관계를 언급할 때에는 “서로 다른 점들이 있지만, 대화를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메디나 회장의 이 발언은 몇 주 전 ‘기업가 연합 위원회(CCE)’가 기획한 한 행사에서, ‘국가적인 연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슬림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CCE는 멕시코 고용주 단체들의 연합이자, 2006년 대선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반대하는 선거운동에 자금을 조달한 단체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동안, CCE의 카를로스 로멜린 대표는 일부 기업들에게 압박을 받았다. “적자경감 요청을 거부한 정부에 더욱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라는 것이 이 기업들의 주장이다. 이를 로멜린 대표로부터 전해 들은 슬림은 말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면, 우리는 그 정부를 존중해야 한다. (…) 우리가 할 일은 함께 일하고 투자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저개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6)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에너지 분야를 국유화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타협’은 불확실해 보인다. 2021년 3월, 의회는 국가의 에너지 생산 증대를 위한 법안을 가결했다. 2013년,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PRI)이 에너지 분야를 민영화한 이래, 국영기업의 에너지 시장 점유율이 38%로 급감했다. 공공 부문에 우선적으로 전력 사업권을 주는 이 법안은, 전력 시장을 잠식했던 외국계 다국적 기업들의 분노를 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분야 기업인이 말했다. “이 법안을 중단시키고자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법안에 대해 400건에 가까운 소가 제기됐다. 정부와의 대화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에너지 주권 회복을 임기 내 우선 과제로 설정한 대통령 역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업들의 소송에 법적 근거를 없애기 위해 헌법 개정을 제안했는데, 그렇게 되면 멕시코 전력 생산량의 절반뿐만 아니라, 전기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리튬 개발권 전체가 공공 분야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의 연이은 압박, 그러나…
과유불급이었을까? 미국 정부 인사 여럿이 서둘러 멕시코를 찾았다. 1월에는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이 멕시코를 방문해 “멕시코 정부의 에너지 개혁이 미국 민간기업들의 투자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랜홈 장관은, 이번 개혁으로 “청정에너지 및 기후위기와 관련한 양국 공동의 노력에” 장애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17) 4월 초에는 존 케리 기후 특사가 미 기업가들과 함께 다섯 달 만에 세 번째로 멕시코 대통령 궁을 방문했고, 그보다 3일 앞선 시점에는, 미국 무역대표부의 캐서린 타이 대표가 타티아나 클루티에르 멕시코 경제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멕시코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부가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자, 급진적 기업가 진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20년 초, 다국적 기업 킴벌리 클라크의 후계자인 클라우디오 X. 곤잘레스와 전 멕시코 고용주 연맹 회장인 구스타보 데호요스는 ‘Yes for Mexico'라는 활동을 시작했다. “야권을 단결시켜, 2024년에 대통령을 대통령 궁에서 내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들의 계획은 웃음거리였고, 대통령조차도 이들이 ‘귀엽다’(18)며 재미있어 했지만, 사람들의 비웃음은 염려로 바뀌었다. 곤잘레스는, 2021년 6월 총선에서 국가재건운동당이 의회 과반을 잃게 만든 야당 연합 가운데 민주혁명당(PRD, 중도파), 국민행동당(PAN, 극우파), 제도혁명당(중도우파) 등 주요 세 정당의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멕시코 4위 정당인 시민운동당(MC, 중도파)에도 에너지 개혁 투표 때 반대 진영으로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대통령의 첫 번째 패배
결국,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4월 17일, 부활절 일요일에 임기 중 첫 번째 패배를 경험하고 말았다. 멕시코 하원이 12시간 이상 이어진 토론 끝에 헌법 개정안을 부결했기 때문이다. 열흘 뒤, 국립 궁전에서 열린 일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의원들이 어떻게 클라우디오 곤잘레스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라고 분노하며, 야당이 “조국을 배반했다”라고 비난했다. “클라우디오 X. 곤잘레스야말로 대표적인 경제권력이다. 그런 그가 정당들과 무슨 용무가 있는가? (…) 클라우디오가 누구의 이익을 생각하겠는가? 이베르드롤라(스페인 다국적 에너지 기업), 민간 전력 회사들이다.”
고용주들은 승리를 축하했다. 행정부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보다 ‘강경하게’ 하려고 CCE 위원장 후보로 나섰던 농업 분야 기업가 보스코 데라베가는 “선거로 부활했고, 행정부 견제에 성공한 일요일이었다”라며 기뻐했다. 멕시코의 부촌, 폴랑코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의 환한 테라스에서 오렌지주스를 홀짝이던 보스코 데라베가는 “우리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의 첫 3년 동안 복종했다”라고 말했다. 투표 다음날, 압도적 과반으로 통과된 새로운 법안 덕분에 대통령은 리튬 국유화에 성공했지만, 데라베가에게 이번 일은 전환점이었다. 그는 선거 시스템 개정 및 국가 수비대 무장 등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계획한 다른 두 건의 헌법 개정안 역시 차례로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데라베가의 말처럼 대통령의 계획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19세기와 20세기,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우상인 자유주의 성향의 베니토 후아레즈, 프란시스코 마데로 전 대통령이 ‘보수주의자들’의 이익에 도발했다가, 두 사람 모두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현재, 멕시코의 부호들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나머지, 그들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경제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
정부는 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라는 전략을 택했을까? 한 기업가의 다음 대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세금을 인상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자, 그 기업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본에는 모국이 없다. 투자금을 포함한 내 돈을, 단 5초 만에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다. 나는 멕시코에서 사는 것이 아주 좋다. (…) 하지만 부당한 세금 규제를 받는다면, 멕시코를 떠날 것이다.”
모레나(MORENA) 정치교육연구소 라파엘 바라하스 소장은 ‘엘 피스곤(El Fisgón, 염탐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유명 만화가이기도 한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누구에게 이런 전략을 배웠을까?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신자유주의 반혁명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멕시코에서 발전에 성공했을까? 반발이 없는 곳에서 전진을 했기 때문이다. 저항이 생겨나면 멈추고 다시 전진할 조건들을 마련했다. 우리에게는 전투를 하고, 그 전투를 우리만의 속도로 이어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정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서두르면 모든 게 무너진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지금까지는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주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야당 언론들도 그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지도자”(19)라고 인정했다. 2022년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62%에 달한다. 4월 10일 일요일, 대통령의 임기 지속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야당의 기권 호소에도 1,500만 명(유권자 중 17.7%)이 투표에 참여했고, 그 중 91.8%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를 원했다. 기업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임무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글·안도미니크 코레아 Anne-Dominique Corre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Carlos Slim, tout l’or du Mexique 카를로스 슬림, 멕시코의 모든 재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4월호.
(2) ‘Cómo surgió la amistad entre Carlos Slim y AMLO’, <Infobae>, 2021년 12월 27일자.
(3) Benjamin Fernandez, ‘Au Mexique, la presse au service d’une tyrannie invisible 멕시코,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을 섬기는 언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1월호.
(4) Ignacio Ramonet, ‘Le Mexique fracturé 조각난 멕시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8월호.
(5) Luis Alberto Reygada, ‘Le Mexique secoue la tutelle américaine(한국어판 제목: 멕시코, 미국의 감시에서 벗어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5월호, 한국어판 2021년 6월호.
(6) ‘López Obrador acusa nueva campaña de miedo en su contra’, <Expansión>, México, 2017년 4월 9일자.
(7) 2018년 7월 1일 연설
(8) ‘Estudio de la OCDE sobre Integridad en Méxic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Paris, 2017.
(9) Claudia Guerrero, Rolando Herrera, ‘No habrá reforma fiscal para 2022’, <Reforma>, México, 2021년 7월 8일자.
(10) ‘Diálogo entre Carlos Slim y Carlos Salazar, en el marco del Seminario “Visión de futuro: #México2042”’, Youtube, 2022년 3월 2일.
(11) ‘Panorama Social de América Latina 2021’, 유엔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 경제 위원회 (ECLAC), Santiago, 2022년 1월.
(12) Alberto Nájar, ‘Carlos Urzúa : la explosiva carta con la que renunció el secretario de Hacienda del gobierno de AMLO en México’, <BBC News Mundo>, 2019년 7월 9일자.
(13) Pablo Ferri, ‘El secretario de Medio Ambiente que luchó contra el glifosato sufrió un ataque con polvo blanco en su casa’, <El País México>, 2020년 9월 4일자.
(14)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 mitad de camino 길의 중간에서』, Planeta, Mexico, 2021.
(15) ‘AMLO firma decreto que elimina la condonación de impuestos’, <El Financiero>, Mexico, 2019년 5월 20일자.
(16) ‘Diálogo entre Carlos Slim y Carlos Salazar, en el marco del Seminario “Visión de futuro: #México2042”’, Youtube, 2022년 3월 2일.
(17) Isabella Cota, ‘EE UU manifiesta “preocupaciones reales” sobre la reforma eléctrica tras la reunión con López Obrador’, <El País>, 2022년 1월 21일자.
(18) ‘Ternuritas, les dice AMLO a Sí por México ; “hay tiro”, responde Gustavo de Hoyos’, <Proceso>, México, 2021년 10월 22일자.
(19) <El Financiero>, 2021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