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조끼’가 남긴 흔적, 분노한 민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겨우 20%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제5공화국 기관들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2019년에 있었던 ‘노란 조끼’ 저항은 일종의 경고 포격이었다. 하지만 노란 조끼 운동이 남긴 고충민원서들은 상자 안에 처박혀 있었다. 몇몇 연구원과 시민들은 이 서류들을 면밀히 검토했다. 과연 여기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직후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여러 형식을 통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시민과 선출직 공무원들 간의 골을 메움으로써 자신의 두 번째 임기는 ‘민주적 쇄신’의 성격을 띨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형태의 국민 협의가 도출됐던 ‘노란 조끼’ 운동을 계기로 첫 번째 임기 동안 진행됐던 여러 제안에서 교훈을 얻은 듯하다.
몇몇 제안은 노란 조끼 시위대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했다. ‘고충민원 목록’이라는 아이디어가 가장 먼저 나온 곳은 노란 조끼 운동이었다. 2018년 11월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주 리부른, 시위 첫날부터 노란 조끼 운동가들은 원형 교차로와 다른 집회 장소에 모인 참가자들에게 불만과 건의사항들을 서면으로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프랑스농촌지역시장연합은 그 아이디어를 채택했고 2018년 12월~2019년 1월 자체적으로 고충민원 목록을 접수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정부는 온라인으로도 개최된 ‘대국민 토론’의 일환으로 2019년 1월~3월 각 시청(여당 하원의원들이 고정 사무실을 갖춘 경우가 드뭄)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 목록’을 시작했다. 프랑스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기대를 파악하려는 목적이었다.
대국민 토론의 결과를 신속하게 전달할 방법을 고심하던 마크롱 대통령은 민간 기업에 디지털 데이터 처리를 위임했다. 20일 만에 68만 페이지에 달하는 ‘시민들의 자유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해당 자료를 정보화하자 반복되는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의견이 나온 주제인 ‘부유세 재도입’은 배제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별 고민 없이 ‘객관적 평가’를 약속했지만, 막상 그 결과가 예상과 다르자 결과 발표를 은밀하게 진행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희망은 사라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민들의 의견을 사회 운동의 ‘표현’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노란 조끼 운동 측은 이 ‘협의’가 쇼처럼 보일 수 있다며 대통령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다. 2019년 1월 5일 보르도에서는 “대국민 토론, 거리에서 진행되다”라는 그래피티가 발견됐다. 주로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된 이 협의에 참여하려면, 최소한의 컴퓨터 사용 능력과 효율적인 인터넷 환경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응답자 중에는 운동의 핵심에 있던 농촌 주민들보다 대도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퇴직 후에라도 품위 있게 살고 싶다”
시청에 제출된 ‘고충민원 목록’은 노란 조끼 운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노란 조끼 운동을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틀림없다. 노란 조끼 운동은 정밀한 분석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다. 2020년 2월 연금개혁 반대 운동이 진행기간, 시앙스포 보르도에서 ‘대체 원형극장’이 조직됐다. 온더릭(On-the-Ric)이라는 단체와 함께 ‘시민 발의안 국민투표제(Ric: 국민이 발의한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쳐 새로운 법안으로 만드는 제도-역주)’ 도입을 요구했던 마르셀 길랑베는 대중에게 “고충 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후 자원봉사팀이 조직됐다. 해당 팀은 2019년 2월부터 지방 기록보관소가 고충민원을 받아서 꼼꼼하게 분류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협업이 이뤄졌다. 노란 조끼 운동가와 연구원들이 팀을 조직해 지롱드주 지역 기록보관소에 보관된 고충민원을 디지털화한 후,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건을 모두 전사하고 최종적으로 문건에 나타나는 단어를 집계해 빈도를 분석했다(지롱드주 지역 기록보관소가 해당 작업에 협조했다).(1) 품질 유지를 위해 모든 문건 전사는 수동으로 진행됐고, 이를 분석해서 유사한 종류의 용어나 표현을 식별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일련의 정치적 의견을 바탕으로 핵심 주제를 도출하고 다양한 집단과 정치적 방향성을 모두 나타낼 수 있었다.
고충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별이나 연령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했다. 분석된 2,000건의 고충민원 중에서 남성이라고 밝힌 사람은 458명뿐이었고 여성이라고 밝힌 사람은 355명에 불과했다(각각의 비율은 22.9%과 17.7%다). 하지만 남녀의 어투에는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의견 표명에, 여성은 경험 표현에 치중했다(박스 기사 참조). 직업을 밝힌 사람은 160명(8%)에 불과했고, 그 중에는 퇴직자가 120명(75%)으로 가장 많았다.
자원봉사팀이 ‘노란 조끼’라는 이름으로 지정한 단어 종류(전체 말뭉치(언어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역주) 중 8.4%)는 노란 조끼라는 사회운동이 제기하는 용어와 주제였고, 국가 원수의 ‘경멸’과 ‘거만함’, 심지어 폭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마크롱 대통령은 ‘독재’와 구정권의 폭정을 상징했다. 어떤 민원인은 “폐하, 폐하의 오만과 국민에 대한 경멸로 인해 더 이상 폐하는 노란 조끼 운동을 통제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했고, 다른 민원인은 “프랑스 대통령은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국민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연설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이라는 용어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매우 부족한 자질인 ‘용기’, ‘선량함’과 관련이 깊다.
사회연대세 폐지, 불공정한 조세제도로 지적돼
가장 많은 요구 사항은 “일을 하는 동안은, 그리고 퇴직 후에도 품위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것이다(전체 말뭉치 중 15.4%). 메리냑에 사는 한 주민은 “21세기에 인간이 노동을 하면서도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비단 이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민원이 강제적인 지출과 특정 사회부담금(사회보장 분담금 등)의 증가는 부당하다고 지적했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아지면서 벌금이 지나치게 많이 부과돼 부당하다는 민원도 있었다. 복지 정책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특히 주거 지원의 감소)은 불평등의 요인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플로자그에 거주하는 부부는 심지어 “소셜 미니마(Social minima: 사회 전체적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보장돼야 할 최소한의 욕망 기준–역주)를 재평가해서 거의 800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선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적절한 조건에서 살 수 있게 하고, 가계와 개인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서 직접적으로든, 면세 혜택을 제공해서든, 최저 임금을 200유로로 인상하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장애인과 그들의 친지들은 소외받거나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으로 그리고 접근성 면에서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곳 주민에게 애로사항이다”라고 오당주의 주민은 설명했다.
고충민원은 사회 정의를 이루는 주요 수단 중 하나로 나타나는 조세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부유세로 불리는 사회연대세(ISF)의 폐지는 조세 문제에서 불의가 팽배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상징했다. 고충민원은 또한 대기업의 탈세와 부유층의 연대의식 부족을 지적했다. 서로 적대적인 계급의식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직업 자체보다는 일을 해서 생활하는 사람들인 ‘우리’와 임대료 수익을 얻거나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인 ‘그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민원은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노동자, 종업원, 상인, 경영자, 공무원, 엔지니어, 예술가)은 게으른 소비자(주주, 대기업 대표, 은행가)에 대해 실제적이고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정치 참여’다(전체 말뭉치 중 14%). ‘대국민 토론’이나 고충민원서 같은 시민 참여 장치에 대한 평가는 감사(보르도에 사는 여성은 “고마워요 알랭 쥐페!!!”라고 썼다)부터 불신까지 다양했다.(2) 리부른에 사는 한 남성은 “경의를 표할 만한 이니셔티브다. (하지만) 나는 순진하지 않다. 불행히도 당신들은 정치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그럼에도 이런 다양한 조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라는 느낌을 주는 등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민주주의 관련 문제는 냉혹한 사실 확인이자, 노란 조끼 시위대에서 나온 제안이다. ‘시민 발의안 국민투표제’는 선거 제도 개혁이라는 쟁점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고충민원서에 등장했다. 라바르데 코뮌에 사는 한 주민은 “투표를 의무화하고 무효투표와 백지투표를 고려해서 민주주의를 개선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국회의원들을 위한 비례 투표제 도입을 요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무원들을 향한 거센 비판도 쏟아졌다. 그들이 누리는 ‘특권’과 ‘생활수준’에 대한 추문을 두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반대로 시장을 비롯해서 지역 선출직 의원과 지방 공무원들을 향해서는 크게 염려하는 고충민원이 많았다.
보건과 교육, 고용 정책, 국토 계획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 문제도 많이 언급됐다(전체 말뭉치 중14%). 많은 민원인들이 공공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세롱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마을 같은 곳에서도 공공서비스를 충분하게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은 공공서비스가 폐지되는 것만큼이나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방 마을 주민은 “공공서비스를 유지해달라. 민간에 공공서비스를 매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특히 공항과 고속도로 관련 민원이 많았고, 실제로 보르도에 있는 병원 두 곳은 폐쇄가 예정돼 있다. 라바드에서 나온 고충민원에서도 지적했다시피 “불행히도 공공서비스가 항상 수익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서비스는 국가 연대에 속한 사항이다.”
화이트칼라 금융범죄에 엄격한 처벌 요구도
다음으로 많은 것은 ‘에너지전환(화석연료와 원자력 중심의 기존 에너지 체계에서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역주)’에 대한 민원이다(전체 말뭉치 중 13.2%). 에너지전환은 운송과 에너지, 폐기물, 농업을 포괄하는 문제이면서, 불공정 비용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분야다. 특히 교통망이 제대로 확충돼 있지 않아서 자동차가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와 직업을 좌우하는 지역에서는 불공정 비용에 대한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시속 80km 속도 제한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보르도 메트로폴에 속하는 작은 마을에서는 공공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는 고충 민원이 있었다.
“적절한 공공 교통수단이 부족해서 출퇴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젤이든 휘발유든) 자동차를 타야 하는 개인에게 에너지전환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무공해 철도를 이용하지 않고 도로와 고속도로로 화물을 운송하는 운송 회사로 눈을 돌려야 한다.” 같은 마을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철도 선로를 화물이나 버스를 위해 재사용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 일부 주제(이민과 범죄, 이슬람, 정체성 등)는 지롱드주의 고충민원에서 매우 미미하게 나타났다. ‘안전’ 문제도 전체 말뭉치 중 2.6%에 불과했는데, 민원인들이 더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경우는 화이트칼라 금융 범죄와 관련이 깊었다. 대국민 토론에서 쏟아졌던 주제들과 시민들이 바라는 주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글 ·고충민원서에 대한 연구원 및 시민 모임
나탕 가보리 Nathan Gaborit
리서치 엔지니어
마르셀 길랑베 Marcel Guilhembet
단체 ‘온더릭(On-the-Ric)’ 공동설립자
마갈리 델라 수다 Magali Della Sudda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책임자
니콜라 파탱 Nicolas Patin
보르도 몽테뉴 대학 강사
다니엘 르페브르&지베르 르페브르 Danielle et Gilbert Lefebvre&스테판 메스트르 Stéphane Mestre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IraMuteQ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텍스트 말뭉치에 대한 통계 분석을 했다.
(2) 알랭 쥐페는 2006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보르도 시장을 역임했다.
“엄마는 왜 당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걸까요?”
리부른 주민의 대통령 탄원서
대통령님, 다섯 살 난 제 딸에게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엄마가 왜 집안 곳곳에 난방을 하지 않는지, 왜 매일 빵을 사지 않는지, 왜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남은 음식이나 커피 한 잔으로 때우는지, 왜 매월 15일 이후에는 면 요리를 자주 만드는지를요. 왜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구했을까요? 대통령님은 길 하나만 건너면 충분하다고 했는데요. 왜 길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빈 집들도 많은데요. 왜 산타클로스는 엄마가 만든 선물을 가져올까요? 엄마는 왜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연체 위약금과 주거세와 시청각세를 낼까요? 왜 아이들의 물건을 정리해서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까요? 왜 집 밖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실 때 행복하다고 말할까요? 왜 밤마다 계좌 잔고를 확인하고 침대에서 울면서, 발이 아파서 운다고 하는 걸까요? 왜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드는 공부를 시켜줄 수 없다고 하는 걸까요? 증조할머니는 부잣집에서 평생 가정부로 평생 일했는데, 왜 올해도 연금은 750유로일까요? 증조할머니는 왜 보일러에 기름을 넣지 않고 가족과 함께 겨울을 나려고 오신 걸까요? 부자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부스러기를 계속 얻는 걸까요? 엄마는 왜 화가 나도 불평하지 않고 우리가 가난하다고 하는 걸까요? 대통령님, 국민들의 우려가 당신의 머리를 스쳐갈 때, 제 아이에게 엄마는 어떻게 품위와 겸손을 유지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엄마가 왜 당신을 부끄럽게 여기는지 말씀해주세요, 제 딸에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신 후에도,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으신다면요.
다른 이들과 같은, 한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