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파괴의 상징, 벼랑 끝의 아마존 횡단도로
아마존 횡단 고속도로 ‘트랜스 아마존 하이웨이’는 브라질에서 가장 긴 도로로, 유럽 남부 리스본에서 북부 헬싱키까지의 거리에 맞먹는다. 하지만 도로구축 사업은 미완성 상태고, 아스팔트 포장이 되지 않은 구간도 있다. 1970년대 초 시작된 이 대규모 사업은 원래 브라질과 태평양을 잇는 장대한 도로구축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도로의 건설과 함께 화염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남미의 대규모 산림을 집어삼키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우림 한가운데의 라브레아에 도착하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주변 행인들에게 종착점 안내 표지판 위치를 묻고 있었다. 4,260km를 달려온 사람들은 표지판 옆에서 오랜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듯했다. 하지만 표지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존 횡단도로는 원래 이 벽지에서 끝날 예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브라질의 군사정권은 이곳 라브레아 마을의 푸루스 강 위에 교량 하나를 설치하고, 이어 660km 더 멀리 떨어진 아마조나스 주 벤자민 콘스탄트 시까지 도로 공사를 지속할 예정이었다.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아마존 횡단도로의 총 길이는 4,920km가 됐겠지만, 4년간의 공사 끝에 결국 그로부터 638km 못 미치는 지점에서 작업이 중단됐다. 여행객의 기념 촬영을 위한 종착점 안내 표지판이 그 어디에도 설치되지 않은 이유다. 비록 미완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아마존 횡단도로는 그 자체로 군사정권의 자부심이었다. 오래 전부터 해외 열강이 아마존의 무한한 자원을 탐내던 상황에서,(1) 브라질 군사정권은 20년 간 단 하나의 구호에 열중했다. “국토를 통합해야 빼앗기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즉, 아마존 우림을 브라질 내 다른 지역, 특히 북동부 지역과 연계하는 것은 국토통합 계획의 첫 단추였다.
이를 주도하던 에밀리우 가하스타주 메디시 장군(군사정권 대통령 1969~1974)은 1970년 대통령령을 제정해 사업을 추진했다. 1970년 10월 8일 마나우스에서의 한 연설에서 그는 이 사업이 “광산을 개발하고 불모지를 개척해 이를 막강한 경제적 무기로 만드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아마존 우림을 점유할 수 있으며, 이는 조국의 번영을 위한 필수 과제이자 브라질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첫 걸음”이라고 강변했다.
가건물과 폐기물, 흙탕물로 가득한 촌락
라브레아 지역까지 이르는 마지막 도로 구간을 작업한 것은 브라질 제5공병대대였다. 당시 13세였던 안토니우 모레이아 데 알메이다는 “군인들이 처음 보는 기구를 가지고 숲에서 나왔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7,000명 정도에 불과한 마을 주민들은 공병대대를 보고 흥분했다. 다들 이제야 우리 마을도 세상과 연결됐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강을 통해서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숲 쪽으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메이다의 부친은 1930년 이곳으로 이주했다. 소위 ‘검은 금’이라 불리던 ‘고무나무’의 시대였다. 1920년대 말에는 헨리 포드도 이곳에 공장을 지었다.(2) 하지만 현재 브라질의 고무 생산은 아시아와의 경쟁에서 밀린다. 고무나무 유액을 채취하던 인부들도 대부분 숲을 떠나 라브레아 같은 도시로 가서 일할 기회를 찾았다. 인구 4만 2,000명, 소 32만 마리의 이 도시에는 빈민구역 천지다. 강가에 조성된 촌락은 가건물들이 즐비하고, 이곳으로 통하는 긴 다리 옆에는 매일 저녁 사람들이 태우는 폐기물로 가득하다.
우기에는 이미 흙탕물로 넘쳐나는 강물에 도시의 생활하수까지 더해진다. 하수 처리는 물론 없다. 이곳 라브레아 시의 개발지수(0.531)는 브라질 도시들 중 가장 낮다. 아마존 횡단도로를 통해 도시가 근대화하고 세상과 ‘연결’되리라는 꿈은 무산됐다. 도로가 약속했던 미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도로는 여전히 자갈밭 천지의 비포장도로 상태다. 6개월간 지속되는 우기가 되면 통행도 불가능하다. 곳곳에 도랑과 웅덩이가 생기며, 도로 위 포장까지 소실된다. 건기에 이뤄지는 보수작업은 상황을 악화한다. 새로 생긴 물웅덩이 구멍을 메우기는커녕 배가 불룩해진 도로를 평평하게 만들려고 가운뎃길을 깎다보니 지반만 더 취약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길에서 사고 한 번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리가 무너지는 것은 예사이고, 물건과 가축을 잔뜩 실은 트럭도 전복되기 일쑤이다. 비가 많이 와서 진흙길이 반들반들한 빙판길처럼 미끄러워진 탓에 가운뎃길로만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옆 고랑으로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마주 오는 차량과의 교행도 불가능하다. 인근에서 4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조르지 카투수는 “그럴 때 대부분 사고가 난다”라고 설명했다.
라브레아에서 도로를 따라 세워진 대다수 가옥과 마찬가지로 카투수의 식당 또한 창과 입구가 큼직하게 뚫린 목조 건물로 지어졌다. 층고가 높고 지붕이 앞으로 길게 뻗어 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구조다. 곳곳에서 선풍기와 팬이 돌지만 내부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뜨겁다. 트럭 운전사가 대부분인 식당 손님들은 이곳에서 식사와 샤워를 한다. 주차장에서 잠을 잘 때도 있는데, 며칠씩 식당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먼지 구름 뒤를 쫓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앞에 대형 화물차라도 달려가는 것 같다. 물론 비가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간혹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빗물이 거세게 차창을 때릴 때도 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변함없는 것은, 숲이 보이지 않을 때면 소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을 타고 이끄는 사람을 따라 소떼가 도로를 통해 방목장으로 향한다. 소떼가 지나가면 도로는 다시 한산해지며, 천천히 길가로 빠져나간 소들은 소몰이꾼의 고함소리와 함께 우르르 몰려간다.
아마존 도로구축 사업은 1970년대부터 인구 이주 정책과 병행해 실시됐다. 땅이 없는 사람들, 특히 북동부 지역 주민들을 아마존 무인 지대로 이주시키는 것이다.(3) 당시의 브라질 군사 정부는 라디오와 극장에서, 혹은 대도시 버스 광고판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 운동을 벌였다. 아마존 횡단도로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쓴 에리카 카르발류에 따르면 “냉전이 한창이던 그 당시 브라질에는 ‘적’이 우리 땅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공산주의자라는 ‘내부의 적’과 북미라는 ‘외부의 적’이다.”
아마조나스 연방 대학의 인류학자 마리아나 비에이라는 “그 당시 정부와 군대는 아마존 우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당국이 이곳을 “쓸데없는 불모지로 인식하는 오판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주민들에게 절단기를 나눠주면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 상당한 수확이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에스테방 앙기노니는 브라질 남부에 있던 고향 파라나에서부터 줄곧 이런 말을 들어왔다.
1983년 그는 영세 농민과 이타이푸 댐 이주민의 연대조직 MST(Mouvement des Sans-Terre, 땅 없는 노동자 연대)’에 가담했다. 1975~1982년 브라질 군사정권은 파라과이와 함께 공동으로 또 다른 대규모 사업 ‘이타이푸 댐’ 건설 작업을 진행했는데, 댐이 범람해 1,500㎢ 규모의 부지를 집어삼켰다. “국립 토지 개발 및 농지 개혁 연구소(INCRA, 이하 ‘토지개발청’)에서는 회의를 소집해 수십 개의 토지 개발 계획을 선보였다. 가령 ‘아푸이 프로젝트’의 경우, ‘말라리아 박멸, 농지 개선, 도로 설비 구축’이 기본 모토였다. 사람들은 토지 개발청에서 전세 낸 버스를 타고 현지로 떠났는데, 이동하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렸다.”
현장에 도착한 신규 이주민들은 곧바로 현지 실태를 깨달았다. 각자 60헥타르 규모의 토지 두 곳을 부여받았지만, 모두 도로(그나마 샛길에 불과한 수준)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 그 무엇도 이주민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앙기노니는 “커다란 천막 하나가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으며 수개월간 함께 기거했다. 모든 것을 맨땅에서 일궈야 했으며, 주변 도로도 손수 구축했다.” 당초 토지개발청은 7,000가구와 함께 아푸이를 ‘남미 토지 개발 중심 도시’로 만들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은 1,200호를 넘은 적이 없다. 당시 정착민 대다수는 소규모 농가였고, 다들 나무를 벌채한 뒤 식량 재배를 했으나 거기에서 얻은 수익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주민들은 “쌀과 강낭콩, 커피, 과라나 등 키울 줄 아는 작물을 심었으나 수확을 해도 농산물을 판매할 수가 없었다.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다수가 땅을 팔아 남부로 떠났다. 1990년대 말쯤 저리로 대출받아 목축업으로 전향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그나마 소를 키우는 게 이 불모지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자도, NGO도 달갑지 않아!
현지 목축업자들은 숲이 줄어든 책임을 자인했다. 그들 중 대다수에게는 상당한 벌금까지 부과된 상황이다. 인구 2만 2,000명의 아푸이 지역에서만 소 18만 두를 키우는데, 목축업자의 95%는 환경감시단(브라질 천연 재생자원 및 환경 연구소, Ibama) 측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 벌금 액수가 너무 커서, 벌금을 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법적으로는 80%의 산림을 보존하는 게 원칙이며, 20%만 벌목이 허용된다. 에스테방의 아내 바닐다 앙기노니는 “작물을 키우든 소를 기르든 땅값도 들어가고 투자금도 필요한 상황이라 토지의 20%만 사용하는 것은 수익이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은 마을의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골짜기가 많은 이 지역에는 산봉우리 몇 개가 눈에 보일 뿐, 푸른 방목장과 젖소만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만난 목축업자들은 척박한 토양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풀이 한 겹 사라지면 즉시 토양이 메마르기 때문이다. 비료는 워낙 비싸 목축업에 쓰기에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고, 새로운 방목지를 찾으려면 어쩔 수 없이 또 한 곳을 벌목해야 한다. 그러면 또 이 새로운 방목지가 고갈되고, 또 다른 벌목이 이어지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근 발표된 통계치에 따르면 2020년 7월~2021년 8월 이런 식으로 파괴된 아마존 우림의 면적은 1만 3,000㎢로, 2019~2020년 동 기간 대비 22% 증가했다. 이로써 2021년은 아마존 산림 파괴에 있어 또 한 번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아푸이 지역에서 200km 떨어진 산투 안토니우 데 마투피 역시 아마존 횡단도로 상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아푸이처럼 산림 파괴가 나타나는 지역이다. 취재진이 지나가자 수십 개의 제재소에서 작업을 멈췄으나, 이미 다수의 벌목 차량이 눈에 띄었다. 차량 화물칸 위에는 나무들이 가득 적재됐으며, 트럭 운전사들은 인터뷰에 비협조적이었다. 그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 역시 벌목에 관한 부분은 함구했다. 그는 원주민 마을에 가스를 배달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벌목을 허용해준 대가로 주민들에게 가스를 운반하는 모양이었다. 벌목업체 중 한 곳의 운영자는 “이곳 사람들은 정부의 환경감시단은 물론 기자도 NGO도 반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달 간 환경감시단의 단속으로 약 40개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다. 무단 벌목을 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도착하기 전날도 경찰은 산투 안토니우로부터 약 50km 떨어진 국립공원구역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하던 벌목 인부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인부들은 압류된 차량을 한밤중에 회수해 돌아갔고, 다음날 아침에는 중앙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도심에서 대문짝만한 광고판에 실려 웃고 있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곳에서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었다.
급여도 보상금도 받지 못한 사람들
인부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또 한 번 정부가 단속을 나설 수도 있었기에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나마 어떤 상점 구석에서 한 사람이 익명을 전제로 조용히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들려줬다.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1990년대에 토지개발청으로부터 땅을 조금 부여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땅에 있던 나무를 무단으로 벌목해 제재소에 되팔았다. “이따금 정부단속이 있지만, 경찰이 가고 나면 작업은 재개됩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고, 목재는 쏠쏠한 수입원이죠. 현재 이페 나무(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수종) 한 그루는 1만 2,000헤알(약 2,000유로)에 판매됩니다.”
아마존 횡단도로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의 주민들도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거리는 비포장 상태에 폐가가 즐비하며, 상점도 드물다. 그럼에도 이 마을의 임금 수준은 이 지역 내에서는 높은 편이다. “무단 벌목이 위험한 만큼, 관련 인부들의 임금이 꽤 높기 때문”이라고 이 익명의 제보자가 귀띔했다. 마을에서 점포 몇 개를 소유한 이 제보자에 따르면, 벌목과 운송 일꾼 외에도 필요한 인력이 있다. 그것은 ‘망보기 일꾼’과 ‘중개인’이다. 망보기 일꾼은 아마존 횡단도로에 경찰의 단속차량이 뜨는지 감시하고, ‘중개인’은 화물이 가짜 송장으로 합법화될 때까지 맡아준다. 목재의 밀거래 수입은 짭짤하지만,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나무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투 안토니우에서 벌목 및 판매되는 목재는 이제 대부분 브라질 국립공원과 테나림 원주민 거주지에서 나온다. 아직 온전하게 산림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들이다. 아마존 횡단도로에서 보면 캐노피 레이어(나무꼭대기 층) 곳곳에 구멍이 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입구에서 숲길로 들어가 보면 바닥에 출구 쪽으로 길이 난 것이 눈에 띄며, 진흙길 위로 트럭 바퀴 자국이 남아있다. 50만 헥타르에 달하는 테나림 족 구역은 도로가 나면서 둘로 나뉘었는데, 그 때문에 마을 사람 여럿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브라질 인권 침해 진상 규명 위원회(CNV, Commission nationale de la vérité) 의 대략적인 자료에 따르면,(4) 테나림 족의 1/3은 도로구축 사업 이후 사라졌다. 이 지역의 공사 주체는 군인이 아니라 ‘파라나파네마(Paranapanema)’라는 민간 건설토목 기업이었는데, 이 업체는 도로구축 원안에서 단 1cm도 변경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아직 남아있는 마을들 중 한 곳의 부족장인 70세의 마세두는 “업체는 묘지든 사당이든, 주민들의 재배지든 무조건 그 위로 도로를 내고 지나갔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런 기계를 생전 처음 봤기 때문에, 잔뜩 겁에 질렸다. 나는 주민 몇 명과 함께 1년 이상 인부로서 공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급여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식량만 약간 주면서 ‘당신들은 인디언이니 돈이 필요 없지 않냐’라고 했다. 우리는 포르투갈어도 할 줄 몰랐고, 부족을 지켜낼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들의 말을 거스르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70세의 이 노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원주민들이 어떻게 정찰대로 이용됐는지 설명했다. 벌채용 칼 한 자루를 들고 공사를 위한 작업공간을 마련했던 이들의 ‘노예 노동’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밝혀졌다. 하지만 브라질 인권침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권고한 보상금은 단 한 번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라나파네마 사는 여전히 건재하다.
4년 만에 콩 생산량 3배로 뛰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곳에서 백인은 물론 가난에 허덕이는 원주민에게도 인기가 높다. “원주민이 달라졌다. 원주민도 변화하고 있고, 이제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됐다. 원주민은 사회 안으로 편입돼야 하며, 자기 땅의 실제 주인으로서 이 땅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5)라는 대통령의 말은 특히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존 횡단도로 주변에서는 콩 재배가 급격히 늘었으며, 다른 지역으로도 콩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테나림 구역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후마이타 시는 이제 자체적인 항구와 보관 창고까지 갖추어 마데루 강을 통해 이 ‘녹색 금’을 운송한다.
아마조나스 농업 개발 연구소(IDAM, l’Institut de développement agronome d’Amazonas)에 따르면, 인근 3,000헥타르 부지의 2020~2021년 콩 생산량은 4년 만에 3배로 뛰었다. 콩과 작물의 재배는 2019년 이후 이 지역의 새로운 개발 사업이다. 아마조나스(Amazonas)와 아크레(Acre), 론도니아(Rondônia)의 앞글자를 따서 ‘아마크로(Amacro)’라 명명한 이 사업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경제 발전을 함께 이룰 프로젝트로 알려졌으나, 실질적으로는 대두 중심의 단작 육성계획에 불과하다. 생산자들은 대부분 콩 재배 중심지 마투 그로수 출신으로, 생산된 콩을 보다 빠르게 출하할 도로 설비를 요구하고 있다.
이 지역의 콩 재배를 주도한 조셀리투 폴레투는 “제2의 아마존 횡단도로가 필요하다. 특히 마나우스를 기점으로 삼는 도로가 있어야 하고, 해당 주정부는 길을 닦을 역량이 된다”라고 단언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는 정부가 이 지역 발전을 위해 수행한 모든 일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사실 도로나 다리가 놓이면 대통령이 와서 각 구간을 개통한다. 이 나라에서 도로 사업이 그만큼 굉장한 정치적 선전 수단이라는 증거다.
1976년, 어린 나이에 브라질 남부 산타 카타리나 주를 떠나 이곳에 온 카투수는 지금도 아버지가 토지개발청에서 받은 땅에 남아 살고 있다. “우리는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스스로 일궈내야 했다. 산부인과에 갈 여건이 되지 않아, 출산할 때 자기 손으로 아이를 받아냈다는 여성이 21명이다. 학교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후마이타에 가려면 바나나와 마니오크(카사바)를 잔뜩 들고 버스에 타야 했다.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중간에 먹을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포장 문제는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다. 사람들의 의견은 찬반양론으로 갈린다. 누군가는 열성적으로 환호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신중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BR230, 즉 아마존 횡단도로는 결코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 도로를 아마조나스 주도 마나우스와 연결하는 BR329 도로가 20년 넘도록 비포장 상태이기 때문이다. 환경 허가를 받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든 아니면 기술적 문제로든 도로는 20년간의 숱한 시도 끝에도 여전히 비포장 상태로 남아있다.
산과일 채집 사업 조합 책임자인 소코루 호드리게스에 따르면 “아마존 횡단도로의 포장은 주민들의 숙원이다. 그래서 지방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지만, 권한 밖의 문제라 저들에겐 결정권이 없다.” 그는 강을 통한 상품수송을 더 선호하는데, 급하면 항공을 이용하고 도로로는 물건 출하를 하지 않는다. “배로 운송하면 마나우스까지 일주일이 걸린다. 도로에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지면 12시간 만에 마나우스까지 당도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3~5일이 소요되며, 사고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사실 도로 인근의 숲은 그저 에메랄드 녹색 빛깔의 방목지에 불과할 때가 많다. 보기 드물게 아직 남아있는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는 젖소들이 햇빛을 피한다. 간혹 땅이 시커멓거나 연기가 피어날 때도 있는데, 이는 해당 지대가 ‘청소’되고 난 흔적이다. 금지된 방식이지만, 이렇게 화전 개간을 하면 토양이 비옥해지고 산림 벌채가 용이해진다. 대부분 벌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내는데, 나무 가격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 위험이 높아진다. 위성사진을 보면 군사정권 시절 토지개발 지점으로 선정돼 대규모 벌채가 이뤄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강줄기를 중심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근대화를 가져다줬어야 할 도로가 젖소와 산불만 가져다준 꼴이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Main basse sur l’Amazonie(한국어판 제목: 나비족을 자처한 아마존 지역의 약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0월호, 한국어판 2019년 11월호.
(2) Greg Grandin, ‘Le rêve amazonien de Henry Ford(한국어판 제목: 헨리 포드의 엇나간 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1년 8월호.
(3) Thiago Oliveira Neto, ‘Cinquante ans après, la Transamazoniénne 아마존 횡단도로 건설 50년 후’, <Hérodote>, n° 181, Paris, 2021년 2월.
(4) Marcos Simoes & Juliana Valentini, ‘Memorias invisiveis. A construcao da Transamazonica nos relatos dos povos tradicionais’, <Revista Temporis>, vol. 20, n° 2, Goias, 2020년 7-12월.
(5)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SNS 주간 직접 브리핑, 2020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