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목소리
우루과이 출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남미의 대표적인 현대작가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콩트 작가이자 사학자이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잊힌 일상의 촌극을 담아내며, 때론 짧은 이야기 하나가 지루한 연구결과 만큼이나 많은 것을 시사함을 보여준다.
태양
반세기 전,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했다. 그 뒤, 그녀는 여러 곳을 전전했고,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았고, 엄청난 양의 알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치료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지.
모범 은행가
장 피어폰트 모건은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은행의 주인이었고, 88개 기업의 주인이었다. 얼마나 바빴던지, 그는 세금을 내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는 1929년 경제공황 발생 뒤 3년 동안 아무런 세금 신고도 하지 않았다. 월가의 몰락으로 피폐해진 군중은 이 소식에 분노했고, 온 나라가 비난으로 들썩였다.
그는 탐욕스러운 은행가의 이미지를 벗으려 링글링브러더스 서커스쇼의 홍보 담당관을 고용했다. 그는 자연이 낳은 희귀함을 활용하라는 조언을 받고, 키는 68cm에 불과하나 얼굴과 몸은 전혀 소인 같지 않은, 30살의 여성 리아 그라프를 고용했다.
대대적인 광고가 펼쳐졌다. 인자한 아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왕좌에 앉은 그가, 무릎에 이 작은 여성을 앉힌 모습이었다. 자본의 힘이 경제위기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광고는 철저히 실패했다.
의학 수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딘가의 중환자 대상 수업에서 루벤 오마르 소사는 막시밀리아나 사례를 공부했다. 몇 년의 의학 공부 중에서 가장 중요했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환자의 상황을 설명했다. “막시밀리아나, 평생 휴식이라곤 없었던 그녀는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매일매일 똑같은 것을 묻는다.”
“의사 선생님, 맥 좀 짚어주세요.”
그녀의 손목을 지그시 누른 뒤, 의사는 말했다.
“맥박수 78, 매우 좋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제 맥 좀 짚어주실 수 있나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맥을 짚은 뒤 맥박 수가 아주 좋다고 다시 말했다. 똑같은 일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의사가 막시밀리아나의 병실을 지날 때마다 갈라진 작은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우며, 앙상한 잔가지 같은 팔을 내밀었다. 매일매일.
그는 막시밀리아나의 말에 따랐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에게 끈기를 갖고 대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 노인네, 정말 귀찮게 하는군. 어디 한 곳의 나사가 빠졌어.”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의사는 깨달았다. 막시밀리아나는 단지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던 것임을.
말
파라나강 상류 정글, 트럭 운전사는 내게 조심하라 일러준다.
“야만인들을 조심하시구려. 아직도 곳곳에 살고 있수다. 다행히도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야만인들을 동물원 구역에 몰아넣기 시작했수다.”
그는 스페인어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어를 늘상 써왔던 것은 아니다. 구아라니, 즉 그가 야만인이라며 무시하고 두려워하는 파라과이 원주민들의 언어인 구아라니를 썼다. 이상하게도 파라과이에서는 정복당한 사람들의 언어를 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들은 말을 신성하다고 믿으며, 또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거짓말은 말이 지칭하는 사물을 욕되게 하지만, 참말은 사물의 영혼을 드러낸다. 정복된 사람들은 영혼이 자신들이 지칭하는 말 속에 산다고 믿는다.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은 바로 나를 주는 것과 같다. 말은 쓰레기통이 아니다.
세계시장
피색 나무와 황금빛이 도는 열매. 짙은 갈색 손이 하얀 빛깔의 카카오씨들을 커다란 초록색 나뭇잎으로 싼다. 햇빛에 카카오가 발효된다. 나뭇잎을 제거하면, 햇빛에 자연건조되어, 카카오가 구릿빛을 낸다. 카카오는 이제 푸른 대양을 건너 여행을 시작한다. 카카오가 농장의 손에서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캐드버리·마르스·네슬레·허시 공장에서 가공 과정을 거쳐, 세계 곳곳의 슈퍼마켓에 진열된다. 판매비용 1달러당 3.5센트가 카카오를 재배한 마을로 돌아간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기자 리처드 스위프트는 가나의 한 카카오 재배 마을의 농장을 방문했다. 잠시 쉬려고 앉은 그가 초콜릿바를 꺼냈다. 채 한입 베어 물기도 전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이 아이들은 한 번도 초콜릿바를 먹어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매우 맛있어했다.
출생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가장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공립병원은 하루에 1천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거의 대부분 빈곤층이거나 극빈층 사람들이었다. 당직 의사는 후앙 베도이앙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 나는 갓 태어난 여아 2명 중 1명을 택해야만 했지. 산소호흡기가 1대밖에 없으니 말일세. 거의 숨이 넘어가려는 상태로 두 아기가 동시에 도착했지. 그중 누가 살아남을지 결정해야만 했네.”
의사는 ‘이 아기들의 목숨은 내가 아니라 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침묵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의사는 한 생명을 버리는 죄를 짓는 것이었다.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으면, 그는 두 생명을 버리는 죄를 짓는 것이었다.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었다. 두 아기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 있었다. 의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 아기는 살아남았고, 다른 하나는 죽음에 처해졌다.
건강
버스 정류장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버스에 오른다. 책이며 노트며 이것저것 팔에 한 아름 안은 아이들은 쉬지 않고 웃고 떠든다. 다들 한꺼번에 떠들어대고 소리치고 돌아다니고, 서로 밀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와락 웃음을 터뜨린다. 한 어른이 소란스러운 아이 중 하나인 앙드레 브라리슈를 꾸중한다. “얘야, 웃는 병에라도 걸렸느냐? 왜 이리 소란이냐?”
버스 승객들을 힐끗 한 번 쳐다만 봐도 안다. 승객들은 이미 치료가 끝나, 병에서 완전히 회복됐다.
노동력
모하메드 아샤라프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모하메드는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해가 뜬 다음 달이 뜰 때까지 자르고, 구멍을 뚫고, 봉합하고, 꿰매는 일을 한다. 파키스탄의 우마르콧 마을에서 생산되는 축구공은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간다. 모하메드는 11살이다. 5살 때부터 이 일을 했다. 글자를 알았다면, 영어를 배웠다면, 자신이 만드는 축구공마다 쓰인 글귀를 이해했을 텐데. “이 축구공은 아동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닙니다.”
시대 흐름을 거슬러
주간지 <마르차>가 어느 정도 ‘빨갱이’ 성향을 띠었지만, <마르차>의 재정 상황은 확실히 ‘적자’(빨갱이와 적자는 빨간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였다. 기자이면서 <마르차>의 관리자 역할까지 하던 우고 알파로는 ‘돈 관리’라는 위험한 일까지 해치워야 했다. 그가 기쁨에 겨워하는 일은 드물었다. “다음주에 발행할 수 있게 되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말이다. 광고란이 팔렸다. 저널리즘 독립과 연관된 전체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순간은 신의 기적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카를로스 키하노 국장은 이 소식에 창백해졌다. 끔찍한 일이 아닌가. 희소식지만 동시에 비보라니. 광고란은 한 페이지, 심지어 몇 페이지를 차지해버린다. 주간지의 작은 공간 하나는 신성하고 매우 중요하다. 참이라 믿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가식을 폭로하며, 서로 헐뜯는 루머를 파헤치고, 오늘의 일이 다시 내일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신성한 공간이다.
우루과이를 점령한 군사독재 정권은 다른 몇몇 시위를 진압하면서, 34년의 <마르차> 역사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감옥
1984년, 인권단체를 대신해 루이스 니뇨는 리마의 루리강초 교도소를 조사차 방문했다.
죄수로 가득 찬 고독한 감옥에서 루이스는 넝마를 걸쳤거나 헐벗은 죄수들 사이를 그럭저럭 뚫고 지나갔다. 그는 교도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자리를 비웠기에 의료 담당이 대신 그를 맞았다. 루이스는 피를 토하고 고통에 힘들어하는 죄수들을 보았고, 상당수가 고열에 시달리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지만, 의사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놀랐노라고 말했다.
의료 담당은 대답했다.
“우리 의사들은 간호사들이 호출할 때만 죄수를 보러 갑니다.”
“그럼, 간호사들은 어디 있지요?”
“예산이 없어 간호사가 없습니다.”
강도로 돌변한 피해자
남미의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불온문서들이 불태워졌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태워지는 것은 회계장부다. 군사독재 아래 실종되는 것은 사람들이었지만, 금융독재 아래에서 실종되는 것은 돈이다. 아르헨티나 은행들이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기를 거부한 일도 있다. 노르베르토 로그리슈는 쥐가 갉아먹거나 도둑맞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저축금 전액을 은행에 예치했다. 그가 은행에 강도짓을 당했을 때는 병약해진 상태였다. 나이를 먹어 몸도 노쇠했고, 연금만으로는 약값을 댈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절망한 그는 누구의 허가도 묻지 않고, 은행이라는 성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지점장실까지 갔다. 한 손에 수류탄을 쥔 채.
“당장 내 돈을 내놓지 않으면 다 같이 죽게 될 거야!”
수류탄은 가짜였지만, 기적을 일으켰다. 은행은 그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16년형에 처해졌다. 물론 은행이 아닌, 노르베르토가 말이다.
여론 조작
1964년 ‘국제공산주의’라는 괴물이 칠레를 삼키기 위해 7개의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언론은 매일같이 불타는 교회, 강제수용소, 러시아군의 탱크, 산티아고 한가운데 세워진 베를린장벽과 수염이 덥수룩한 게릴라들이 아이들을 납치하는 모습만을 내보냈다. 그리고 선거가 실시되었다. 결국 두려움이 승리했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패했다(아옌데는 1952년 처음 6년 임기의 칠레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을 때는 5.5%라는 미미한 득표에 그쳤지만, 1958년과 1964년에는 각각 28.5%와 38.6%의 득표율로 모두 2위를 차지했고,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마침내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를 출범시켰다. 여기서는 1964년 아옌데의 세 번째 대선 패배를 말한다). 이 힘든 시기에 가장 큰 상처가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프로비덴시아 동네의 바로 옆집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으며 요리사, 가정부, 유모 일을 모두 해내느라 지쳐버린 여자가 자기 옷을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 주인집 정원에 묻었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의 적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며 말이다.
글로벌 정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몇 달 뒤, 이스라엘은 제닌을 폭격했다. 제닌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무너져내린 폐허 밑에 깔린 주검들로 가득한 큰 구멍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제닌에 남겨진 구멍은 뉴욕에 생겨난 구멍만큼이나 컸다. 가족의 주검을 찾으려 구멍을 파헤친 생존자들 말고는 폐허가 된 제닌을 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글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duardo Galeano
우루과이 출신 작가. 최신작 <시간의 목소리> 프랑스어판에서 발췌(뤽스·몬트리올·2011).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