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 글자
IMF의 규정은 정치적 이유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무한한 관대함을 보인다. 이 미스터리를 벗기기 위해 직접 이곳에 들어가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자 두 명이 나왔다. 이들이 동유럽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사원증을 보니 불가리아인 이코노미스트이다. 곧 팔레스타인 출신 홍보 담당자가 우리를 맞이하고 조직의 역사를 소개해 줄 직원에게 안내했는데 그는 인도인 이코노미스트다. 그 다음 만난 전략부장도 역시 터키인 이코노미스트다. 이곳을 방문하는 동안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이코노미스트와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마주친 한 일본인은 이 기구의 로고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그도 이코노미스트다.(1)
전 세계 이코노미스트가 모이는 이 파라다이스는 바로 미국 수도 워싱턴의 중심부에 있다. 이곳으로 걸어오는 길에 거대한 헬리콥터를 보았는데 우리는 이런 광경에 눈길을 떼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 듯 헬리콥터가 내는 소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헬리콥터는 링컨 기념관의 잔디밭을 따라 가다가 백악관 앞 잔디밭 위에 착륙했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갈 길이 1 km나 더 남아있었다. 오는 길에 재무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세계은행, 그리고 공산주의 희생자 박물관을 지나쳤다. 곧 권력의 심장부에 우리의 목적지가 보였다.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1950~1970년대 유럽에서 르코르뷔지에 영향을 받아 거친 콘크리트를 이용한 현대건축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드디어 IMF 본부에 도착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IMF는 세계은행과 함께 국가 간 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창설됐다. 이 기구의 주 역할은 전후 재건을 위해 통화 정책을 조율하고 회원국들이 납입하는 공동 기금으로 외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 기관은 거대해 지면서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변질됐다. 관리 감독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민영화, 규제완화, 긴축재정과 같은 개혁은 의료, 교육, 의식주와 같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이 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의를 받는 기관 중 하나가 됐다.
해독이 어려운 IMF식 신조어
그래서 IMF는 기자들과의 접촉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이 기관은 ‘투명성’과 ‘공개’를 위한 성실한 자세를 강조하지만 모든 대화 내용은 ‘오프 더 레코드’(보도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정보 제공)이며 인용을 할 경우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터뷰 중에는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홍보 담당자가 배석한다.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던 중 이들의 눈길이 계속 책상 위에 노골적으로 놓여있는 녹음기로 향할 때마다 이 기계는 기자를 감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직원을 감시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 고귀한 조직에 대한 반항심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보스턴 대학교 산하 국제 정책 개발 센터의 라라 멀린 연구원은 IMF는 ‘연차’로 정해지는 위계질서가 중요한 조직이라고 지적한다. 서열을 거슬러서 승진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낙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찼다.
IMF 직원 수는 2,400명이며 이코노미스트의 연봉은 1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9,600유로에서 19만 5,000유로)로 격차가 크다. 고위직의 경우 32만 달러에서 40만 달러 사이다. 가장 낮은 비서직 연봉이 4만 2,000달러에서 6만 3,000달러다. 게다가 미국 국적이 아니라면 소득세를 면제받고 사회보험, 퇴직연금, 재택근무, 안식년, 가족 체류비, 명상실 제공과 같은 복지 혜택도 함께 누릴 수 있다.
190개 회원국 중 약 160개국 명문대 출신(프랑스의 경우 그랑제콜, 폴리테크니크 또는 국립행정학교)들이 모인 이 작은 세상에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는 듯하다. 대략 영어처럼 들리지만 알아듣기 힘들다. 독특한 영어로 신고전파 경제가 구상했던 사회에서 쓰일 법한 문장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내부 관계자와 외부인이 구분 된다. 게다가 줄임말 형태의 신조어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 언어가 IMF와 외부 세계를 가르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외부인들은 ‘MD가 CSO와 함께 CFM, MPM에 관한 IV를 논의했다(총재는 비정부기구와 함께 자본통제와 거시건전성 정책에 관한 IMF의 입장을 논의했다)’와 같은 문장을 해독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글 번역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2007년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레이몬드 브릴랜드는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금융 기관으로 꼽히는 IMF에 관한 저서에서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IMF를 잘 알지만 선진국에서 이 기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2) IMF는 존재의 위기에 빠졌다. IMF의 가혹한 태도 때문에 대부분 국가가 등을 돌렸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선에 출마한 페론주의자 후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크네는 TV광고에서 “당신의 아이들과 손자들은 IMF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IMF는 불공정, 가난, 기근의 약칭?
이 상황에서 IMF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구제금융의 규모마저 급락했다. 2003년에서 2007년 사이 이 기금이 제공한 차관은 1100억 달러에서 18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오래 전부터 IMF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비난했던 미 경제학자 마크 웨이스브롯은 “옛 영광을 잃었다”고 평가했다.(3) 그리고 2007년 9월 28일 프랑스 사회당 소속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IMF 총재로 임명되었을 때 바로 인원 감축을 단행해야 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쳤다. 우리에게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익명 요구는 빈번했다.) 당시를 “매우 웃긴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퇴직을 유도하려고 막대한 위로금을 제공했는데 퇴사자들을 바로 복직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폭풍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고 그리스를 흔들었다. 그러자 IMF는 다시 전면에 나섰고 경제 위기에 빠진 선진국에서도 활개를 치자 개도국에서만큼 그 이름이 ‘친숙해’졌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IMF는 전 세계적으로 성탄절에 못된 행동을 한 어린이들을 벌주는 채찍 할아버지 ‘페르 부타르’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유럽의 수도에서도 이전에 제 3 세계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라피티를 볼 수 있다. 2011년 포르투갈이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았을 때 리스본 길거리에는 IMF 이 세 글자가 ‘불공정(Injustice), 가난(Misery), 기근(Famine)’의 약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IMF 직원들은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이 부당하다”고 불평했다. IMF는 이 기관의 출범을 결정했던 1944년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합의했던 결집과 상호 부조의 대원칙을 내세우며, 이 가치를 80년이 지난 지금도 감독과 지원 활동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독일인 이코노미스트이자 홍보부 부장 크리스토프 로젠버그에 따르면 IMF의 정관 제 IV조항은 매년 IMF협의단이 회원국에 방문하여 재정 상태를 논의함으로써 감독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협의단은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만나 경제 전반에 관한 협의 과정을 거친 다음 재정 상태 분석과 IMF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다. IMF는 2022년 1월 26일 프랑스에 관한 83페이지 분량의 연례협의결과 보고서에서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연금제도 개혁(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음을 지적했다), 재정 건전화(공공 지출 감소를 의미), 그리고 비영리 서비스의 자율화(공공 서비스 포함) 추진을 권했다.
로젠버그 홍보부장은 IMF 협의단이 심각한 문제를 예견하는 경우 철저한 감독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형식적 절차라고 했다. 2007년 그리스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했다. 당시 IMF의 보고서는 “은행의 수익률이 높고 자본과 유동성이 안정적이므로 건전하다고 판단된다...그리스의 성장률은 유로존 평균치보다 높을 것이다...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2년 후 유럽 재정 위기는 그리스의 취약한 경제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IMF는 회원국에게 기초적인 기술 지원도 한다. 이런 지원이 필요한 국가에서는 식민지의 잔재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독립을 쟁취한 주권국이 되었으나 정상적인 정부가 없는 상태다. 아프리카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한 직원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영어 수업을 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엑셀을 국민계정 도구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컴퓨터조차 갖추지 않은 곳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IMF 직원이 대신 연례 보고서를 작성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젊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수준의 나라에서 지원업무는 아예 후견을 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칸 전 총재, “IMF는 자선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IMF가 회원국에게 제공하는 핵심 지원은 바로 정시에 정량만큼 제공하는 차관이다. 회원국은 누구나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금융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가 닥친 이유는 부채를 상환하거나 국민이 필요한 식량 등을 수입하는데 필요한 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로 현재 스리랑카가 대표적인 예다 (XX페이지 기사 참조). 구제 금융을 신청하려면 우선 지역 당국이 해당 국가의 IMF 사무국에 전화를 해서 “논의할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 사전 협상이 시작되는데 이 때, IMF는 지원을 대가로 요구하는 전제 조건을 대략 설정한다. 왜냐하면 IMF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 프로그램에 따라 금융 지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원은 위기 극복 의지가 갈수록 무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분할 지급되며, 만약 IMF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중단된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총재는 자선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말하기도 했다.(4)
IMF는 창립 초기 운영방식과 달리 ‘조건부 차관’을 철칙으로 삼는다. 1954년 페루와 체결한 첫 번째 협정서는 단 2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0년 그리스와 체결한 협정서 분량은 무려 63페이지에 달했다. 이제 IMF는 공무원 수, 공기업 개혁,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등으로 요구조건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미셸 캉드쉬 전 총재(임기 1987~2000년)는 “마취를 할 시간도 없을 만큼 초강력 대책을 단행해야 한다. 마치 전쟁터에서 하는 응급수술과 같다”고 말했다.(5) IMF는 금융 ‘질환’이 이미 쇠약한 대상만 공격하기 때문에 바로 이것을 수술로 도려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IMF 실무팀은 약 2주 동안 중앙은행 총재, 경제부, 통계청 대표단을 만나 사태를 정밀하게 파악한 후 지역당국과 함께 IMF에 제출할 차관 도입을 위한 ‘의향서’를 작성한다. 로젠버그는 이 문서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일종의 계약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1998년 1월 15일 찍힌 매우 유명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이 사진 속에서 정장 차림의 캉드쉬 전 총재는 팔짱을 끼고 매서운 눈으로 모하마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이 의향서에 서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둘의 분위기가 서로 확연히 상반된다. 세계은행 부총재직을 역임했고(1997~2000년)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 장면에 대해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필요한 지원을 받는 대가로 IMF에 경제 주권을 무력하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6) 사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당국도 조인한 서류에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의향서는 ‘일종의 계약서’일뿐 국제 협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즉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IMF는 피하고 싶은 절차이다. 이 때문에 1979년 3월 2일 IMF 이사회는 모든 문서를 작성할 때 강제성을 띈 계약서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구제 금융을 요청하는 나라는 ‘자발적으로’ 혹독한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시작했다. 로젠버그는 이를 통해 강력한 의지와 지도자들의 결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회가 반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IMF의 문을 두드리는 나라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 무엇이든 수용할 기세다. 심지어 어떤 정부 당국은 IMF와의 비밀 협상을 기회로 삼아 그동안 미루었던 개혁 대책을 IMF에게 대신 마련해 달라고 요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IMF의 한 직원은 “동료들은 악역을 맡아주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는 농담을 한다”며 비꼬듯 말했다.
최종적으로 IMF 집행이사회가 의향서를 받는다. 이곳은 UN 총회처럼 ‘1국가 1투표권’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IMF의 창립이후 줄곧 각국의 출자금 규모에 따라 투표권 지분을 할당한다. 미국의 지분은 주요 결정을 반대할 수 있는 최소 투표권 15%를 항상 초과하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집행이사회는 총 24개국으로 구성되며 이 중 독일(1960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1978년부터), 중국(1980년부터), 미국, 프랑스 일본(1970년부터) 그리고 영국 등 7개국은 단독 집행이사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반면 나머지 17개석은 어떤 지리적 일관성 없이 임의적으로 묶인 그룹을 대표하는 집행이사국에게 배분한다. 예를 들어 2022년 아일랜드는 에메로이드 섬,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리즈, 도미니카 공화국, 그레나다, 자메이카, 세인트 키츠 네비스,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그리고 캐나다를 대표하는 집행이사국이다.
IMF에서 신화가 깨진 만장일치제
집행이사회는 만장일치가 보장될 때까지 표결을 미룬다. 캉드쉬 전 총재는 “관계부서의 철저한 사전 준비, 집행이사와 최고의결기구인 총회 간 지속적인 소통덕분에 만장일치가 가능하다. IMF의 운영에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집행이사들은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공동의 지혜와 관점을 공유한다”고 분석했다.(7) 하지만 조다난 브리란드 연구원은 이 ‘전통’에 대해 다르게 해석했다. 미국과 다른 의견은 투표로 표명할 수 없기 때문에 구두로만 전달할 뿐이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이 의견 표출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8)
이 단계에서 집행이사와 총회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필요한 경우 일부를 수정해서 상호 합의점을 찾는다. 그리고 집행 위원회가 승인하면 2시간 후 바로 1차 구제금융 분할금을 수혜국의 계좌로 지급한다.
그런데 이렇게 빈틈없이 준비된 환경에서도 IMF 조직원 모두가 언급하기 싫어하는 ‘끔찍한 사고’는 발생한다. 집행이사회 내부 마찰이나 결론이 나지 않는 뒷거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최종 투표에서 집행이사 한 명이 다른 23명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아예 기권을 해 버리는 것이다. 이 사태는 가히 집행이사회에 핵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다. 한 명 정도는 별일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만장일치의 원칙은 수호했으나 구제 금융을 위한 단합의지로 뭉친 ‘국제 공동체’의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다. 균열은 점점 커지기 때문에 기권은 탐탁하지 않다.
2007년에서 2015년까지 브라질이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가이아나, 타이니 파나마, 수리남, 트리니다드 토바고, 카보베르데, 니카라과, 동티모르 그룹을 대표하는 집행이사국이었을 때 파울루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 이사는 “IMF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기관이다. 체계적으로 수립한 절차에 따라 차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임의적인 선택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대국의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 대두되면 돌연 IMF는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어긴다”고 비난했다. 그는 2번 기권을 행사했다. 바로 그리스와 우크라이나의 구제 금융에 관한 투표였다.
IMF, 우크라이나와 그리스에 원칙 무시하고 금융지원
2008년과 2010년 우크라이나는 IMF에 ‘도움’을 요청한다. IMF는 강력한 긴축재정을 요구했는데 친 러시아 성향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2010~2014년 재임) 전 대통령은 2013년 결국 IMF 프로그램을 중단한다. 곧 IMF도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 이 사태가 지정학적 갈등으로 변질되자 러시아가 개입해 2013년 12월 20일 우크라이나에 30억 달러 차관을 제공했다. 그런데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EU가입을 요구하는 유로마이단 사태 발발 후 야누코비치 탄핵이 결정되고 친 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자 갑자기 IMF는 마치 아량이 넓어진 듯, 우크라이나에 180억 달러 차관을 승인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차관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전시중인 국가에는 지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은 무력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IMF가 요구하는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 이사는 당시 모두가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침에 했던 맹세도 오후가 되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상환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IMF 조차도 상환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래서 결국 2015년 IMF는 우크라이나 민간 부채의 20%를 감면하고 상환 기한을 연장했다. 당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를 ‘아주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논평했다.(9)
IMF가 자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2015년 12월 20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지고 있는 채무를 갚지 않으면 ‘공공차관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IMF의 규정은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지면 자금 지원을 금지한다. 그런데 운명의 날을 며칠 앞둔 12월 8일 게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집행이사회는 오늘 공공차관 모라토리엄에 관한 비관용 정책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12월 2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다. 그러나 IMF는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2010년 그리스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을 때 그리스의 부채는 우크라이나 상황만큼 심각했다.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재정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IMF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회원국들은 그리스의 채권자였던 자국 은행을 보호하려고 그리스가 채무상환을 완료할 때까지 구조조정을 연기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IMF가 유럽이 자국의 은행을 보호하도록 눈을 감아준 것이다.
2015년 그리스는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총리로 선출했다. 그러자 상황은 정치적으로 변모했다.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당시 IMF내부에서도 그리스 국민들이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반대표를 던진 것과 같다는 견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국민들도 민주적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떠안지 않는 냉철한 정부를 선출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와 그리스는 책임의 의미를 훼손하고 의무도 다 하지 않았다. 그러나 IMF는 우크라이나는 중요하므로 반드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 또한 IMF의 회원국이다. 사실 IMF는 두 회원국 간 분쟁에서 개입 없이 중도적 입장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IMF는 실제로 베네수엘라에 관해서는 정당한 권한을 쥐고 있는 자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인지 아니면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안 과이도인지 결정할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한 발 물러서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 반미 성향의 차베스 대통령 축출을 위한 쿠데타가 발생하자 드디어 IMF는 베네수엘라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차베스 민주 정부가 전복되자마자 IMF는 쿠데타 가담자의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10)
스티글리츠의 비판, “IMF 활동은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어”
아무도 강력한 무기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래서 IMF내 투표권 지분 분배는 ‘서방 국가들’외 다른 나라들도 만족할만한 결론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2010년 집행이사회는 투표권 지분을 ‘대폭’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지분을 16.7%에서 16.5%로, 중국의 지분을 3.8%에서 6%로, 인도의 지분을 2.3%에서 2.6%로 변경하고 유럽 국가의 지분은 큰 폭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는데 6년이나 걸렸다. 우리에게 익명을 요구한 한 집행이사는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관장하던 업무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맡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고 분석했다. 즉 경제 문제가 지정학적 문제로 변질된 것이다. 미국은 미・중 G2체제 구성, 경제 협력 포럼, 위안화를 외환보유고 통화로 격상, IMF 내 불평등 감소와 함께 투표권 지분 재협상을 중국에 제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비해 하급 지위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임기 2017~2021년)이 시작한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쓴 약을 삼키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앞으로 투표권 지분을 대폭 조정할 수 있는 기회는 요원해졌다.
결국 개도국들은 2008년 G20에서 유럽과 미국이 약속한 IMF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등 새로운 통화기구를 창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개도국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지 않다. 중국이 급부상하자 미・중 관계는 마치 TV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부르주아 가족 간 경쟁을 보는 것 같다. 현재 중국이 창설한 기구들은 대부분 미숙한 단계여서 IMF의 ‘조건부 지원’을 제외한 다른 운영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 휘둘리는 IMF
그런데 2020년 세계부채(공공, 민간)가 28%나 증가해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6%까지 치솟은 심각한 상황에 부딪혔다. IMF의 차관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며 지원 자금도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한 내부 직원은 “수년 동안 IMF가 주장한 금융자유화가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켰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IMF에서는 회원국이 납입하는 재원이 증가하면 투표권 지분도 조정된다(회원국의 납입금액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권 지분 조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금지원 규모도 증가시킬 수 없다. 화재의 규모가 두 배로 커졌는데 소방관이 물을 뿌리는 반경은 그대로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부채 부담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전문으로 하는 IMF는 채권국들에게 부채 조정을 위한 협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빈국이 지고 있는 부채의 절반이 중국에서 빌린 차관이다. 그런데 중국이 지금껏 사이가 껄끄러웠던 기관과 이 부채의 조정을 위한 협상을 할지 의문이다. 중국은 이제 독립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에 자금 지원 조건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미국의 표정이 어둡다.
2000년 미국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IMF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시켰다고 비난하면서 “IMF의 목적은 금융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 이들의 활동은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한탄했다.(11) 20년이 지난 지금도 IMF는 여전히 금융 공동체를 수호하고 있지만 이제 다른 나침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바로 선진국의 지정학적 우선순위다. 이를 지키려다보니 IMF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2021년 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로 재임하던 당시 중국에 우호적으로 문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 사퇴 위기에 몰렸다. 언론에서도 총재 사임 가능성을 연일 보도했다. 이 사태에 관해 경제학자 스티글리츠와 웨이스브롯은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영국 경제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 총재는 미국 데이비르 립튼 수석 부총재가 IMF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자신은 IMF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다.(12) 미국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립튼을 IMF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담당하는 자문관으로 승진시켰다. IMF 조직도를 보면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여전히 물러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그녀의 잘못을 덮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IMF는 미국 재무부가 되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저자는 조사 기간 동안 도미니크 피뇽의 적극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
(2)Jamea Raymond Vreeland,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Politics of conditional lending』, Routledge, 뉴욕, 2007년.
(3)Mark Weisbrot, ‘The IMF has lost its influence’, <뉴욕 타임즈>, 2005년 9월 22일.
(4)‘Tiz Khan – Does the IMF help or hurt the poor nations?’ 프로그램 인용, 알자지라 잉글리시, 2010년 10월 9일 방영.
(5)Michel Camdessus, 『La scène de ce drame est le monde. Treize ans à la tê̂te du FMI 이 비극적 장면이 바로 세상이다. IMF 수장으로 있었던 13년』 Les Arènes, 파리, 2014년.
(6)Joseph E. Stiglitz, 『La grande désillusion 깊은 환멸』, Fayard, 파리 2002년, ‘FMI, la preuve par l’Ethiopie IMF, 에티오피아를 통해 보는 증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02년 4월.
(7) Michel Cadessus, 『La scène de ce drame est le monde 이 비극적 장면이 바로 세상이다』,op.cit.
(8)James Raymond Vreeland,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op.cit.
(9)<르몽드> 2015년 9월 1일.
(10)Ignacio Ramonet, ‘Un crime parfait 완전범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6월.
(11)Joseph E. Stiglitz, 『La grande désillusion 깊은 환멸』, Fayard, 파리 2002년,
(12)‘The IMF undergoes structural reform’, <더 이코노미스트>, 런던, 2020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