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수집이 주는 ‘무익함’의 깨달음

2022-08-01     토마스 프랭크 l 언론인

우표수집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가장 인기 있는 취미였다. 우표 수집가들은 클럽에서 만나 우표를 교환하고 매매도 했다. 그들이 모은 우표 한 장 한 장에는 ‘액면가’ 이상의 정서적 가치가 담겨 있었으며, 추가 이득에 대한 희망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코로나 격리기간은 필자에게 우표수집이라는 취미를 재발견할 기회가 됐다.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하던 시기, 나는 캔자스시티 교외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서 연로한 아버지를 돌봤다.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는 않는 아버지 덕택에,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집에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긴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 중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우표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우표첩을 넘겨보니, 1982년 무렵 내가 우표수집을 그만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값을 아껴 동네 우체국으로 달려가 새로 나온 우표를 사는 걸 멈춘 것이다.

 

우표수집의 오래된 매력과 쇠퇴 이유

17세 소년이던 내가 열심히 모았던 수백 장의 우표들을 보며, 오랫동안 방치했던 이 프로젝트를 이제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과 이베이의 시대에 말이다. 수십 년 전에 인쇄된 알록달록한 작은 직사각형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오래된 매력이 다시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우표수집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한때, 미국에서 우표수집은 흔한 취미였다. 각지에서 아이들이 우표 동아리를 만들고 우표를 우표첩에 붙이곤 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회의 중간에 자신의 우표첩을 들여다보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한다. 1940~1950년대에는 우표 전시회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기록은, 당시 대중의 우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아직도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요즘 미국의 청년들은 우표수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한때 꽤 열성적인 우표수집가였던 아버지도 흥미를 잃은 지 꽤 됐다. 우표수집 취미가 쇠퇴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추론이 있다. 그 중 보편적인 한 추론은, 1970년대에 미국 연방우정국이 아마추어 우표수집가들의 돈을 쥐어짜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우표를 발행하면서 오히려 이 취미를 쇠퇴시켰다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보다 좀 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추론이다. 국가 관료가 만들어낸 종잇조각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감상하는 것은 냉소적인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취미다. 우표수집은 그 애호가들에게 일종의 맹목적 순진함, 국가의 공식 서사에 대한 무분별한 믿음을 요구한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이라크 전쟁, 구제금융, 트럼프 집권을 거친 지금, 그런 순진함은 기억하기조차 민망한 것이다. 오래된 우표첩을 넘길 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역사적 평온함을 보면 현기증이 느껴진다.

여기에 경제적 측면에서의 실망감이 더해진다. 당시 모든 우표수집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이 역사의 귀중한 한 조각을 수집하고 있으며, 자신의 취미가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즉, 저렴한 우표도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경매에서 믿을 수 없는 가격에 팔리는 희귀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이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우표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우표수집은 다시는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실제 시장가치가 한두 푼에 불과한 물건이라면, 귀중한 보석처럼 다루며 작은 비닐 케이스에 보관하는 정성을 기울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만화책, 음반, 야구 카드, 맥주캔 등 내 어린 시절 유행했던 모든 수집 아이템에 해당된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미국의 제도와 심지어 미국인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한 코로나 시대에 되짚어보며,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무용한 취미를 갖는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활동이 이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적절한 때에 찾아온 것이다. 평소 나의 문화비평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수집하는 일에, 다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우리 가족이 다함께 살던 옛집의 다락방을 뒤져 오래된 우표 상자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수집해둔 우표를 구입하고, 심지어 1930~1970년대 발행된 미사용 우표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계획대로 몇 달 후 예전 우표첩의 빈 공간을 거의 채웠다. 그리고는 어렸을 때 늘 하고 싶었지만 해본 적 없는 외국 우표수집에 착수했다. 

왜 그랬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우표수집은 무의미한, 무용한 활동이다. 이 취미에 빠지면 강박적일 만큼 철저히 정리하는 성향을 기르게 된다. 이 취미는 각 요소를 식별하고 분류하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면서 무한해 보이는 것에 일종의 반복되는 질서를 만들어주는 활동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작업 정신은 미국 우표수집가라면 누구나 배우고 심지어 경외해야 마땅할 연방우정국 직원들의 작업 과정에서 비롯됐다. 

그 과정은 이렇다. 우선 우편물이 들어있던 버려진 봉투를 꼼꼼히 분류한 다음, 봉투에서 우표가 붙은 부분을 찢어내 물에 적셔서 느슨하게 만들고, 떼어낸 우표를 돋보기와 천공 게이지를 사용해 판독한다. 그리고는 미국에서 사용된 다양한 인쇄 법(가능하면 인쇄기까지) 중 어느 방법(어느 인쇄기)으로 인쇄된 것인지 알아내고, 우표첩에서 해당 우표와 그림이 일치하는 우표를 찾아낸다. 이때 가능하면 모든 주제를 다룬 다양한 유형의 우표와 그 변형까지 꼼꼼히 분류해둔 우표첩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표를 특수 비닐 케이스에 넣은 다음, 마치 예술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표첩 한 면의 인쇄된 프레임 한가운데에 깔끔하게 붙여 넣는다. 복제 우표는 별도의 우표첩이나 (내 경우에는) 이런 용도로 제작된 작은 봉투에 넣어둔다. 

이런 활동은 모두가 자신만의 박물관을 만들어, 그곳에 귀중한 작품을 걸어두고, 자신이 전시 큐레이터가 된 것 마냥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시 안내를 제공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런 정리정돈 성향은 길러두면 좋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결국 과학사회이고, 선별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행위는 대량 전산화가 이뤄지기 전부터 중요했던, 아니 오히려 대량 전산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던 기술이기 때문이다.

 

‘무익함’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취미

하지만 우표수집가가 강박적으로 우표를 사서 모으다 보면, 자신이 그처럼 세심하게 처리하고 보관한 우표들이 공식 우표 카탈로그에 버젓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보물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연구하고, 조심스럽게 모아온 우표들은 이미 수억 장 인쇄돼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투에서 우표를 떼어내고, 물에 담근 다음 말리고, 천공을 측정하고, 우표첩의 작은 프레임에 넣고, 작은 봉투에 저장하는 등 까다로운 작업을 열심히 수행한 아이들 덕분에 한 종류의 우표의 사본도 아직까지 수백만 장 남아 있다. 

무익함. 이것이 바로 우표수집 취미의 핵심 교훈이며, 우표책이라는 개인 박물관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깨달음이다. 억만장자들이 우주로 날아가고 공화당이 국회의사당을 파괴하는 동안, 한 우표수집가는 어린 시절 침실로 슬그머니 들어가 1932년에 발행된 액면가 3센트짜리 보라색 우표에 인쇄돼 있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표는 가족 및 과거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산층의 황금기인 1930년대에 우표수집은 미국 가정의 현명하고 훌륭한 취미로 장려됐다. 탁자에 둘러앉아 우표첩에 우표를 붙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이 종종 이상적인 미국 가정의 모습으로 제시되곤 했다. 

그런데 주로 미국 우표의 주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영웅적 행위다. 물론 우표 자체는 역사적인 물건이자, 수십 년 전 인쇄돼 우편물에 부착돼 발송된 종잇조각이다. 1908년부터 1922년까지 14년 간 미국 우정국에서 발행한 거의 모든 우표를 장식한 것은 조지 워싱턴이나 벤저민 프랭클린의 표준화된 초상화다. 나는 연방우정국 당국이 매년 100가지가 넘는 새로운 디자인을 발행하는 오늘날의 전략과는 반대로 그 당시에 그처럼 단호하게 단조로운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표수집의 무익한 측면을 부각시키거나 우표수집의 열풍을 식히기 위한 것이었을까? 

여하튼 당시 발행된 모든 우표에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인쇄돼 있다. 약간의 변형이 있을 뿐, 같은 문양에 둘러싸인 같은 사람(가끔 벤자민 프랭클린이 등장하기도 했다)의 같은 초상화가 1센트짜리 녹색 우표, 2센트짜리 빨간색 우표, 3센트짜리 보라색 우표에 무한 반복으로 찍혀 있다. 그래서 나는 워싱턴-프랭클린 우표 시리즈를 싫어한다. 1957년 미국 정부에서 발행한 ‘미국 우표 안내서’에서 연방우정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표수집은 분명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국가유산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이 취미를 현명하게 누릴 수 있다.”

우표수집에 열광하던 어린 시절이었다면, 나도 이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우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면서 각종 전투, 대통령, 탐험가, 발명가, 국립공원의 이름을 익혔다. 성인이 돼서도 이렇게 얻은 지식이 인터넷이 도래하기 전에, 특히 위키피디아가 등장하기 전에 때때로 내게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우표에서 배운 것이 국가 선전을 위한 큰 속임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우표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1982년 이전에 발행된 미국 우표를 연구하는 것은 미국 역사의 다른 측면은 교묘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미국의 영웅주의, 미국의 독창성, 미국의 제도, 미국의 건축, 미국의 야생동물, 미국의 여러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지도자들의 고귀함에 대해 끊임없이 피상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개척도시의 설립. 저명한 정치가들. 주요 발명품. 국립공원.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 각 주의 깃발, 각 주의회 의사당, 각 주의 새, 각 주의 모토, 각 주가 미연방에 가입한 일자. 전문협회. 명문대학. 철도. 댐. 운하. 여러 부대. 우주 탐험. 또다시 영국을 상대로 거둔 수많은 승리 등이 미국 우표를 장식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산토도밍고 상륙을 기념해 제작된 16부 기념우표 세트에는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빠져 있다. 

 

우표에 찍힌 지배적 사고의 역사

미국 우표는 강박적일 만큼 ‘조지 워싱턴’이라는 주제를 반복한다.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조지 워싱턴이 우표에 등장한다. 때로는 약간의 변화를 줘서, 조지 워싱턴의 아내, 조지 워싱턴의 집, 조지 워싱턴의 동료 애덤스, 해밀턴, 제퍼슨,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이 머물렀던 곳, 조지 워싱턴이 승리한 전투, 조지 워싱턴이 패하고 간신히 탈출한 전투, 그리고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수많은 건물들이 우표에 등장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졸업하고 역사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진부함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다. 우표 발행의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위인들은 정말 위대하다고. 전투와 조약은 우리 국민의 삶의 전부라고. 법적 절차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국가 상징은 존중돼야 한다고. 승리는 기념해야 한다고. 영웅이 중요하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회운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패자는 잊히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화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할리우드 서부극보다 더 신뢰할 수 없는 서사를 풀어내는 것이 우표다. 오래 전 사건을 그럴싸하게 미화한 우표든, 노예제를 운영한 대통령을 기리는 황당무계한 우표든, 모든 우표는 그것을 인쇄한 사회의 인공물이다. 미국인들이 믿었던 과거의 위대한 연설을 되짚어보는 식으로 우표수집이라는 취미에 접근하면 이 취미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오래된 우표를 수집하는 것은 지배적 사고의 역사를 알아보는 매혹적인 관문이다. 이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교훈을 준다. (대략) 1933년에서 1980년 사이 발행된, 주요 공공사업, 오래된 깃발, 단체교섭 등을 기념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우표는 우리에게 민권법, 강력한 노조, 환경 보호 조치, 복지국가의 기틀을 제공한 정치질서를 보여준다. 모든 지배적 사고는 결국 종말을 맞게 돼 있다. 우표는 이런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디자인되고 인쇄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미화(미국의 36대 대통령인 린든 존슨의 부인 클로디아 레이디 버드 존슨 여사가 추진한 공공 미화 프로젝트-역주)” 홍보용으로 발행된 우표 시리즈에 반영된 전후 시대의 자유주의적 합의는 오늘날 ‘각성’의 이데올로기가 명문대 출신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처럼 그 시대의 존경받는 이들에게는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에 발행된 초상화 우표에 반영된 그 시대의 엄숙한 진지함도 그런 우표를 사 모았던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우표첩을 펼칠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순간들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우표가 가르치는 모든 교훈 중 가장 위대한 교훈은 이념의 무상함이다. 아무리 확고해 보이는 이념도 영원히 존속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이 시대의 이념을 아무리 선전해도, 언젠가는 쇠퇴하고 사라질 것이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언론인. 정치평론가. 최근 저서로 『The People, No: A Brief History of Anti-Populism』(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20)이 있다.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