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만 남은 러시아 대학
소련의 자랑, 무상 고등교육
무상 고등교육은 러시아의 오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30년 전부터 대학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오늘날 대학생들 간에 무상교육을 받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졌다. 우크라이나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0년대 대학생들의 투쟁이 재현될까?
9월 말, 러시아 우랄 지역 예카테린부르크는 공기가 차다. 0°C 에 가까운 기온 속에서, 햇살은 완연한 가을빛으로 반짝인다. 모스크바에서 500km 떨어진 이 곳 우랄 지역의 수도는 개강 분위기가 한창이다. 거대한 기둥이 늘어선 우랄연방대학(URFU)의 본관 정면 앞으로 평화로가 길게 뻗어있다. 본관 뒤쪽 기숙사 건물에는 활기가 넘친다.
콤소몰스카야로 70번지에 사는 20세 안팎의 학생이 얼마 전 URFU 학생회에서 8호 기숙사 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앞으로 26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5년 전 지은 이 기숙사에 입주한 약 1,200명 학생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기숙사의 각 호실에는 2개의 방과 공용 부엌, 침실이 있으며 방마다 2~3개의 침대가 놓여있다. 월 기숙사비는 1,000루블(약 17.4유로, 한화 기준 약 2만 3,200원)이다.(1) 각 층에는 휴게실, 독서실, 세탁실 등 공용 편의시설이 있고 벽과 바닥은 깨끗하다. 소박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러시아 대학생의 기숙사 거주율은 약 10%로, 프랑스(약 12%)와 비슷하다.(2)
URFU 학생회는 목소리만 높이는 곳이 아니다. 이들은 학우들의 활기찬 대학생활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학생회 소속으로 급여를 받는 약 30명 학생들과 6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다양한 여가활동과 문화생활을 계획한다. 오이벡 파르토프 학생회장은 “워크숍, 공연, 컨퍼런스, 스포츠, 개강축제, 졸업식 등 매년 600여 건의 행사를 주관한다”라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상고등교육, 전쟁, 변혁의 시대
예카테린부르크에는 50여 개의 대학 연구기관과 약 9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그 중 40%에 달하는 약 3만 6,000명이 우랄연방대학 재학생이며, 해외연수생도 약 4,300명이다. 이 대학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2021년 전국 대학에서 최다 신입생 수를 기록했다.(3) 우랄연방대학은 우랄 폴리텍 대학(UGTU-UPI)과 우랄 공립대(URGU)를 2010년 통폐합해 창립됐는데 이 두 명문대는 1920년 볼셰비키 정권 하에서 설립됐다. 당시 소련 정부는 내전 상태에서도 무상 의무교육을 선언했고 1918년부터 예카테린부르크를 포함해 곳곳에 재정지원을 통해 10여 개 대학을 설립했다. 이때부터 러시아 제국 시절 광산도시였던 예카테린부르크는 산업과학 중심지로 변모했다. URFU 국제관계 담당 부학장 세르게이 쿠로크친은 “기술자 수요가 높았기 때문에, 당시 세계적 규모의 우랄 폴리텍 대학을 설립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1930년대부터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고급인력 수요가 폭증했다. 1927년 90개였던 고등교육기관 수가 1940년에 481개로 13년 동안 약 5.3배로 증가했다.(4) 그러나 교육 연구부 장관 보리스 살티코프는 “학교별로 교육의 질 차이가 컸다”라고 지적했다. 엘리트를 위한 교육과, 대중을 위한 교육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5) 소련 교육제도의 특징은 고등교육과 기초 연구를 분리해 기초 연구 분야는 과학 한림원 소속 전문 기관에 전적으로 위임했다. 대신 서민층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우대 제도를 마련했다.
일례로, 노동자 대학(Rabfak)은 농촌이나 노동자 출신 청년들에게 대학 진학 준비 수업을 제공했다.(6) 반면 부르주아 출신은 이런 혜택에서 제외됐으며 비싼 등록금을 납부했다. 1936년부터 적용된 ‘모두에게 평등한 무상교육’ 원칙은 1940년 전쟁 발발로 무산됐다. 전쟁 때문에 청년들을 공장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6년, 소련은 무상고등교육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는 중요한 사회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해체 후, 국가 재정이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대 학생 1인당 공공지출은 70%나 급락했다. 대학은 교수 급여는 물론 전기요금을 지불할 여력도 없어 재원 마련을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장소 대여, 전문분야 정보 판매, 유료 대입 준비반 개설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LI) 소속 연구원 타티아나 카스투에바-진은 당시 대학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돈으로 환산했다고 설명했다.(7) 결석, 보강, 시험 모두 유료였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유료 특강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암시장에서 위조 학위와 박사 논문이 거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시에 전국에서 재건의 바람이 불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당시 외국인 출입이 불가했는데, 1990년대 초 우랄 공립대학교 사학과 발레리 미하일렌코 교수가 러시아 최초 국제관계학과를 개설했다. 1999년, 이 학과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서 근무하는 이리나 체르네바가 입학했다. 체르네바는 당시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발레리 미하일렌코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 변혁의 시대에 기존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며 혁신적인 강의를 도입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도입했고, 소련시대에 출판된 교과서가 새로운 교재로 바뀌었다. 그리고 학생들과 스탈린의 탄압에 대해 연구했다. 게다가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도입된 후, 얼터너티브 록 그룹과 극단들이 탄생했고 지하실에서 공연을 펼쳤다. 반체제 성향의 작가들은 사회를 뒤흔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 정치를 주제로 글을 썼다. 이는 단순한 정치인 비난에 그치지 않았다. 이에 대학생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가 닥치자 대학 학생회들은 정치적 모토보다는 사회적 슬로건을 외치기 시작했다. 경제위기는 학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직접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2009년 살해당한 저명한 인권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학생회 중 한 곳인 ‘학생 보호회’ 창립 운동에 가담했었다. 2006년 사회학자 알렉산드르 비코프는 이를 ‘아래에서 시작된 운동’이라고 칭했는데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개선사항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수도인 모스크바를 비롯해 상트페테르부르크, 툴라, 노보시비르스크, 로스토프 등 여러 지역 도시에서 1만~1만 5,000명의 학생들이 연합해 참여했다. 그후 1994~1995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이후 결국 기숙사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이동, 기숙사비 납기일 연기 등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다수 관철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나쁜 변화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다시 분란이 포착됐다. 러시아 대학 내 ‘공식적인’ 학생회는 기본적으로 교수와의 분쟁, 행정적 문제, 기숙사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저소득 계층 학우 지원, 그리고 법적 자문 지원 등에 관여하면서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조직과 밀접한 협력관계에 있는 학생 조직들은 특권을 놓고 다툰다. 고등교육기관 교직원 노조 ‘대학연대(University Solidarity)를 창립한 드미트리 트리노프는 학생 조직 간부들이 대학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서로 이익 분쟁을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들은 조직 내 불만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상대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기숙사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끼리 단합해 대학 근처에 캠프를 치고 농성을 벌이는 일도 있다.
URFU 학생회 회원은 무려 대학 정원(3만 6,000명)의 절반에 달하는 1만 7,000명이지만 더 많은 가입자를 모집하려고 회원에게 월 500루블(약 8.7유로, 한화기준 약 1만 1,600원)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적극적인 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보상제도도 마련했다. 학생회가 제안하는 활동에 단순 참여만 한 경우는 5포인트, 조직위원으로 활동한 경우 10~15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매월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학생들을 발표하고 포상을 한다. 대학 로고가 있는 티셔츠, 보온병 등 홍보용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기숙사에서 선호도가 높은 방 배정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높은 포인트를 쌓은 3명은 매월 월 5,000루블(약 87유로, 한화기준 약 11만 6,000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학생회장 파르토프는 “초창기에는 회원활동 관리를 엑셀로 했지만, 지금은 별도로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라고 자랑하며 핸드폰을 꺼내 학생들의 순위를 보여줬다. 점수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교수진도 성과에 집착한다. 사실 교육자들은 진정한 공무원의 지위를 누린 적이 없다. 소련은 1950년대부터 교육자들의 고용 안정성 보장을 원칙으로 정했으나, 5년마다 고용계약을 갱신해야 했다. 지금도 러시아 대학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만 보장하면 교수를 계약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 계약직 고용 형태는 성과 인센티브 제도를 활성화시켰다. 성과가 빈약한 교육자는 교직을 떠나야 한다. 2014~2015년에만 약 2만 7,000명의 교육자가 해고당했다.(8)
수업 형태는 프랑스와 비슷하다. 다수의 학생 대상의 대규모 강의와 주로 15~30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소규모 강의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소규모 수업은 신임교수나 박사과정생, 외부 초빙교수가 담당하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교수 한 명이 대규모 강의와 소규모 강의를 모두 담당한다. 러시아 학생의 40%는 원격수업을 듣거나 야간과 주말 수업만 듣는 ‘파트타임 학생’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2022년 초, 대부분 대학은 대면수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2월 24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학가를 흔들어 놓았고 ‘특별군사작전’ 지지자들과 반대파간 깊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는 전쟁 초기부터 URFU의 학생, 교수, 교직원들이 1,100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통해 이 ‘재앙’을 멈출 것을 간청했다. 이들은 공개서한에서 “모든 총알과 포탄은 러시아의 과학기술을 겨누고 있으며 고등교육의 질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라고 규탄했다.
그러자 URFU의 학술 위원회는 즉각 ‘국가 안보를 위한 대통령의 정책’ 지지 선언을 했다. 대학 지도부는 대부분 연방 정부에서 지명하므로,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학생들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대학생은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지만 언론이 푸틴 대통령이 수차례 했던 약속과 반대로 신병조차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선배들이 곧 징집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서구의 강력한 제재 이후 닥친 경제 위기는 대학생들의 처지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1990년대 정치적 자유주의는 대학 내 학생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는 계기가 됐다. 우선 일부 학생들은 능력주의에 따른 기준에 따라(즉 대입 시험 점수에 따라) 등록금을 면제 받는다. 이들을 ‘무료 학생’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다수의 ‘유료 학생’이 있다. 유료 학생의 수는 점차 증가해 2020년 전체 정원의 1/3에 해당했으며 등록금은 10년 만에 2배로 급증했다.(9) 한 학기 평균 학비는 2021년 15만 5,200루블(약 2,700유로, 한화 기준 약 360만 원)이었는데 평균 월급의 4.3배에 달한다. 그러나 장학금은 고아, 장애인, 미혼모 등 취약계층에 한정돼, 극소수 학생만 수령 가능하다.
무상교육은 사라지고, 치열한 경쟁만 남아
소련 교육 제도의 자랑이었던 무상 교육은 이제 없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의 ‘전통’은 그대로 남아있다. 소련 체제에서는 각 대학별로 입학시험이 있었고 대학 순위에 따라 시험 난이도가 달랐다. 이 순위는 거의 변함이 없는데 명문대 중 1991년 이전에 설립된 학교는 고등경제대학교 뿐이다. 그리고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모스크바 국립대학교(MGU), 바우만 공과대학이 여전히 최상위에 있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는 2009년 대학입학시험에 해당하는 국가통합시험(EGE)을 개설하면서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이제 점수에 따라(100점 만점) 전국 고등학생의 등급을 분류하고 지원 가능한 대학이 정해진다. 2021년의 경우 URFU 장학금 지원 가능 점수는 42점(유료학생은 33점)이상이었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경우는 74.8점(유료학생은 26.8점) 이상이었다.(10)
EGE 도입 목적은 ‘공정하고 투명한 대학진학 기회 제공’이었다. 그러나 명문대 학장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영입하기 위해 ‘올림피아드’라는 특별전형을 만들었다. 이들은 ‘일반적인 지식 평가에 최적화 된’ EGE와 달리 올림피아드는 전문 분야에 필요한 능력을 검증해 인재를 발탁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11) 이때부터 수백만 고등학생들이 교사들의 권유로 올림피아드에 대거 참여했다. 교사들은 올림피아드 수상자 배출 여부에 따라 평가를 받기 때문에 참가를 독려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들도 올림피아드에 사활을 건다. 우승자(1등)가 되면, 대입시험과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메달 수상자(2등, 3등)는 정부 장학금이나 EGE에서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피아드는 중고등학생의 경쟁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스트레스다. 러시아 학생들 대부분은 과외수업을 받는다. 3명의 자녀가 있는 URFU의 졸업생은 “월급의 절반을 자녀들의 사교육비로 쓴다”라고 한탄했다. 이것이 무상 중등교육의 이면이다.
성적 경쟁뿐만 아니라 재정적 부담도 러시아 학생들을 짓누른다. 대학 기숙사 수용 인원이 적어서 학생들은 비싼 자취방을 구해야 한다. 고등경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5년까지 대학생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12) 석사과정부터 낮에 학생들이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수업은 오후 5~9시에 진행한다. 신체문화연구소 학생 이반 비르노코프는 “나는 입학성적이 우수해 등록금을 면제받은 장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세차장에서 일한다”라고 말했다. 비르노코프는 서빙, 바텐더 같은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는 수학이나 IT와 같은 기술 분야 학과를 제외한 다른 학과는 장학금을 받기도 어렵고 학비도 너무 비싸다고 한탄했다.
IRFU 신문방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마리아 드베네바는 예카테린부르크가 고향이고, 부모님 집에서 산다. 그가 원했다고 해도 예카테린부르크 외 지역 대학으로 진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비용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첫해 등록금은 10만 루블(약 1,737유로, 한화 기준 약 232만 원)이었는데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부담이 컸다. 다행히 2학년 때 장학생에 선발돼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학생은 대학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 고등교육제도는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했다. 사회정책이 없는 러시아에서 이 교육제도는 부유층에만 유리하다. 무상교육은 EGE와 올림피아드 대비반 수업료를 대줄 부모를 둔, 일부 우수한 학생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그러나 능력우선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러시아 사회는 현 교육제도의 불공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 알렉산더 비크보프는 소련 시대에 모두가 무상으로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장학금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무상 고등교육’이 사라진 현 시대에는 이런 장학금이 필요하다. 사회가 변화했는데, 변화에 따라 생긴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셈이다.
글·에스텔 르브레스 Estelle Levresse
특파원,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이 기사의 루블 대비 유로·한화 환산액은 2022년 7월 22일 환율 기준.
(2) ‘Repère 2020(2020년 지표)’, <전국 학교생활 실태 보고서>, 2021, www.ove-national.education.fr
(3), (9) ‘Qualité d’admission dans les universités russes : 2021 러시아 대학 입학 자격 : 2021’, 고등경제대학교, 모스크바, www.hse.ru.
(4) ‘Les établissements publics supérieurs 공립 대학’, 러시아 교육 통계, 2008년, www.stat.edu.ru.
(5) Boris Saltykov, ‘Enseignement supérieur en Russie : comment dépasser l’héritage soviétique 러시아 고등교육 : 소련의 유산을 어떻게 뛰어 넘을 것인가’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보고서, 파리, 2008년 4월.
(6) Nicola Fornet, ‘Priorité à l’éducation des masses 대중교육의 우선순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0월.
(7) Tatiana Kastouéva-Jean, ‘Enseignement supérieur en Russie : comment redonner de l’ambition à un secteur en détresses ? 러시아 고등교육 : 어떻게 쇠퇴하고 있는 분야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가 ?’,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2013년.
(8), (11) Carole Sigman, ‘Contourner la compétition par la compétition : les uiversités russes et les olympiades 경쟁으로 피하는 경쟁 : 러시아 대학과 올림피아드’, 프랑스 사회학 연구, vol.62, n°1, 2021.
(10) 뷰조피디아(Vuzopedia) 고등교육 자료 열람 사이트, www.vuzopedia.ru
(12) ‘La jeunesse russe ; éducation et science 러시아 청년 : 교육과 과학’, 고등경제대학교, 통계연구와 지식경제연구소, 모스크바, 2017년, http://issek.hse.ru.
두 개의 러시아 사회과학, 검열의 대상
러시아는 하드 사이언스(생명과학을 제외한 물리, 수학 등의 분야)에서 위상이 높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는 뒷전이다. 사회학자 알렉산더 비크보프는 “국제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러시아의 교육과정은 유럽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러시아 교육자들은 국제 논문을 읽고 유럽과 미국에 적용하는 방법, 이론을 도입하며 그곳에서 관심이 높은 분야를 연구한다. 그러나 서구와 다른 점도 있다. 2013년 ‘미성년자 동성애 확산 금지법’ 제정 후 러시아 대학은 미국과 유럽에서 연구가 활발한 성소수자, 동성애, 젠더 분야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프랑스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알렉산더 비크보프는 몇 년 전만해도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현대 미술관과 시립 도서관, 서점에서 전시할 수 있었지만 이제 이런 기회가 줄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러시아에서는 수도와의 근접성은 물론, 재원과 고용조건이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 주로 모스크바에 있는 명문 대학들은 최고의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조건에 맞춰 고용계약을 제안한다. 프랑스 정치학자 카롤 시그망은 ‘교수들간 치열한 경쟁을 조장하는’ 러시아고등경제대학교는 2015년부터 교수들 중 1/4에게만 ‘더 높은 연봉, 인센티브, 원할 경우 정년보장’ 혜택을 제공했다.(1) 그러나 교수가 논문에 대한 압박에 시달릴 경우, 그의 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크보프의 설명에 따르면, 모스크바 외 지역의 대학에는 젊은 교수가 귀하다. 또한 도서관의 자료도 매우 빈약한데, 학술지나 온라인 자료를 마련할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페름, 블라디보스토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경쟁력을 갖춘 곳도 있으나 드물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매국노 사냥’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교수들이 러시아를 떠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 학계에 탄탄한 인맥이 있는 교수들은 망명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러시아고등경제대학교에 ‘친 전쟁’ 성향의 학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명망 있는 교수 4명이 학교를 이미 떠났고 다른 교수들도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있다. 2020년 사회과학부(문화, 철학 연구)는 이미 대거 개편됐다. 심지어 몇몇 교수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두 번 연속 재임해, 2036년까지 집권할 기회를 주는 개헌을 비난한 이후 헌법학과는 폐지됐다. 모스크바사회과학대학교(Chaninka)와 러시아경제아카데미(Ranepa)의 사회과학연구소도 저격대상이다. 모스크바 경찰청은 지난 3월, 인문학 및 사회과학 교과과정(역사, 정치, 저널리즘 수업 포함)을 두고 “러시아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학생들에게 사회문화, 정신적, 도덕적 가치에 기반해 자기주도성과 사회성 함양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Renepa 사회과학연구소는 교과과정 명칭을 ‘러시아화’해, 다학제 학과로 변경하고 수업 내용도 수정하기로 했다. 게다가 인터넷신문 메디아조나에 따르면 교수들은 공개발언을 금지당하고 과거의 ‘실언’ 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2) Renepa 사회과학연구소장 겸 Chaninka 학장 세르게이 조이예프는 2021년 11월부터 사기혐의로 구속 상태다. 그러나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과학고등교육부는 모든 대학, 모든 전공자들에게 러시아 역사 수업 수강을 의무화하고, 교과서 내용을 개편할 예정이다. 발레리 팔로프 장관은 “교과서는 청년들에게 역사에 대한 자부심 고취, 유구한 문화 계승, 선조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자각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2003년 볼로냐 프로세스에 가입하면서 단일 유럽고등교육제도를 수용했던 러시아는 유럽모델인 학사-석사-박사(LMD)시스템을 더 이상 차용하지 않을 것이며 독자적인 고등고육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서구대학이 러시아 대학과 협력관계를 단절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 과학고등교육부 장관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경제전문지 <코메르산트>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러시아의 과학은 몇 가지 불가피한 이유로 서구에 치중돼 있었다”라고 진단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연구원들에게 러시아행을 권유했다.(3)
글·에스텔 르브레스 E.L. 번역·정수임 (1) Carole Siman, ‘Retour de l’Etat et formes de domination en Russie. Le cas de l’enseignement supérieur 정부의 귀한과 러시아의 지배 형태. 고등교육의 사례’,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프랑스 정치학 학술지>, vol.66, n°6, 2016년. (2)‘Le programme d’arts libéraux de RANEPA rebaptisé licence multidisciplinaire, RANEPA의 리버럴 아츠과를 다학제과로 명칭을 변경’, <메디아조나(Mediazonna)>, 2022년 4월 6일. (3) <Kommersant>, 2022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