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본질은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2008-12-30     추정남

 대학과 교육이 변해야 세상이 달라진다. 금융위기, 적자생존 등 세계화의 거센 파고속에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사회적 가치관을 갖춘 젊은이들이 많다면, 결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본지는 우리 대학과 교육의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의 구상과 철학을 소개하며, 그 첫 순서로 한국외대 박 철 총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전문 지식·지성 겸비한 국제지도자 양성, '세계 최고 외국어 대학'
고객 만족도, 교수 연구 실적, 국제화 등서 '명문 사학' 발돋움

  진정한 대학의 가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뉴욕발(發) 금융위기로 미국식 세계화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현실에서, 한국외대가 그동안 일관되게 쌓아온  성과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한국외대는 교명과 개설 학과에서 엿볼 수 있듯, 여타의 대학들처럼 의학과나 예체능학과의 개설로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처음부터 시선을 국제사회로 돌려, 해외에서 경쟁력 있는 대학을 지향하였다. 70-80년대, 우리나라의 초고속 수출 성장 이면에는 미국은 물론,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를 누빈 한국외대 출신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외대는 90년대, 김영삼 정권 이후 우리 사회에 광풍처럼 불기 시작한 '세계화=미국화' 등식 탓에 지역학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최근 들어 한국외대가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객 만족도, 교수들의 연구 실적, 국제화 등 각종 교육 관련 지표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등 사학 명문으로서의 옛 명성을 점차 되찾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 1월 현재 67개국 239개 대학 및 기관과 교류 중인 한국외대는 조만간 인천의 송도 캠퍼스를 건립해 서울 제1캠퍼스 및 용인 제2캠퍼스와 더불어, 세계의 대학으로 발돋움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국외대의 정문에 들어서자, 신축 본관 건물에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문구의 세로로 된 대형 펼침막이 눈에 들어온다. 총장실로 가는 길목 곳곳의 게시판에 아랍어과, 태국어과, 베트남어, 폴란드어과, 불어과 등 각 언어학과의 행사 안내문이 닥지닥지 붙어 있다. 여느 대학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45개 외국어 과목… 국제화의 상징
 박 철 총장은 세계화를 화두로 말문을 꺼냈다. "세계화라는 것은 세계 각 지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공존과 상호번영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한국외대는 45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국내 최고의 외국어대학으로서 외국어의 이론과 실제는 물론 외국어를 토대로 한 세계 각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아우르는 통섭의 학문을 교육·연구함으로써 국제적 한국인, 창의적 전문인을 길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6년 3월 총장에 취임하면서 박 총장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대학의 국제화다. 총장 취임 2년 남짓 기간에 80여 대학 및 기관과 교류협정을 맺었다.


 - 최근 한국외대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변화와 개혁을 통해 새롭게 위상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대한민국의 국제화를 이끈 한국외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화 시대의 개막기인 지난 90년대에 현실에 안주해 내부 혁신을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이다.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교육 고객인 학생들에 대한 봉사를 최우선으로 했다. 학생감동팀, 학사종합지원센터 신설을 비롯해 행정팀제를 통해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행정 구현을 꾀하는 한편, 학사제도·커리큘럼 개편, 연구업적에 따른 A·B·C 3등급의 교수수당 지급 차별화 및 교수평가제 실시 등은 모두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지난달 전국 대학에서 고객만족도 2위, 교수 논문실적 2위 등을 차지하는 등 전 대학 구성원의 노력으로 외대의 저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2016년까지는 국내 5대 명문사학으로 재진입할 것이다.
 - 국제화 노력이 눈에 띄는데...
 "외국 명문대학과의 거미줄 같은 교류 협정 외에도, 이른바 '30-30-30'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대학의 국제화를 도모하고 잇다. 이는 외국인 전임교수 비율을 30%로, 외국 학생비율을 30%로, 그리고 원어강의를 전체 강의의 30%로 각각 수 년내에 확대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외국인 전임교수의 비율은 26%로 국내 대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를 통해, 한국외대는 국내 여타 대학들과 차별화하고,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핵심적인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는가?
 "글로벌 리더 양성을 위한 한국외대의 교육프로그램은 전문적인 지식과 지성적인 교양을 두루 겸비한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중전공제, 7+1 제도, 2개 외국어 졸업인증제다. 이중전공제는 입학 때 선택한 전공 외에 하나의 전공을 더 이수하게 하는 제도로 지난해 신입생부터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7+1 제도는 학부 재학 기간인 8학기 중 1학기를 외국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것으로, 매년 파견학생 수를 확대해 많은 학생들이 국외에서 직접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2개 외국어 졸업인증제는 학생들의 뛰어난 외국어 경쟁력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이 학위를 받으려면 졸업학점 이수는 물론 논문과 졸업시험에 통과해야 하며, 이에 더해 2개 외국어에 대한 인증을 받아야 한다."
 
 -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중 외국 학생들과의 활발한 상호교류가 인상적인데.
 "세계 최초의 사립 외국어대로 출범한 한국외대가 54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치 않는 정신이 바로 글로벌 정신이다. 그렇기에 다른 대학의 글로벌과는 내용을 달리한다. 학교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외국으로 나간 학생 수는 올해의 경우 1800여명을 예상하고 있으며, 반대로 한국외대로 오는 외국인 학생도 지난해 기준으로 13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송도 제3캠퍼스가 완공되면, 한국외대는 외국의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교육함으로써 한국을 외국에 널리는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본다. 한국외대의 글로벌 방향은 국제 통용어인 영어 외에도 또 하나의 외국어를 마스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랍 사람과 협상할 때 영어로 하는 것과 아랍어로 하는 것은 엄청난 온도차가 있다. 한국외대가 세계 각국의 대학과 실질적인 교류협정에 주안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최근 학제 개편에서 단일 외국어 전공이 학과가 아닌 대학으로 신설된 것은 무척 파격적으로 여겨지는데, 그 배경은?
 "동양어 대학의 중국어과와 일본어과를 각각 별도의 중국어 대학(110명), 일본어 대학(85명)으로 설립해, 2009학년도부터 첫 신입생을 선발중이다. 국제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중국과 경제대국으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글로벌 인재가 절실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으로, 한국외대만이 표출할 수 있는 색깔이다. 새롭게 개설되는 이들 분야는 언어 전공, 문학 전공, 지역학 전공으로 특성화된 단과대학으로 집중 육성된다. 또한 동양어대에는 몽골어과(20명)와 용인캠퍼스에 우크라이나어과(20명)를 신설하는 것을 비롯해 기존 터키어과에 아제르바이잔어를 추가함으로써 45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국내 최고의 외국어대학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여기에 글로벌경영대학(140명), 사회과학대학 자유전공학부(56명)를 신설하는 등 한국외대의 시선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맞춰져 있다."
 
 -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한국 외대의 역할이 많아질 것 같은데.
 "학교와 재학생 차원에서 이주 외국인 조기정착지원 및 사회통합지원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외대는 국가와 세계 번영에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진정한 세계화란 피부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호교류이며, 대학과 그 구성원은 이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
 대담 : 성일권 본지 발행인
 글 사진 추정남 기자 qtingnan@ilemonde.com

인권과 평화의 외교전도사 배출

 한국외대에는 '최초', '유일'이라는 말이 유난히 많다. 더욱이 외국어대 특성상 많을 수밖에 없는 언어 관련 학과를 제외하고도 선도적으로 나가는 분야가 많다. 한국외대는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외교통상부와 협정을 맺고 재외공관이나 재외무역관에서 근무하는 '외교부 인턴십'을 실시하고 있다. 2007년 1학기에 제1기 인턴을 선발해 외교부 사상 최초로 재외공관 인턴 16명이 파견됐다, 인턴 선발은 학기마다 진행되는데, 2기 인턴은 30명이 30개국으로, 3기 36명은 35개국으로 파견됐다. 지난해 1월에는 아시아 최초로 유엔 부설 국제전문가 양성 고등교육기관인 유엔평화대학(UPEACE, 유피스) 석사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한국외대는 유피스 석사과정에 국제법과 인권학과, 미디어와 평화학과를 개설해 관련 분야의 국제 전문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2007년에는 용인캠퍼스 일부 어문계열 학과들을 재편해 국내 최초로 통번역대학을 개설했다. 통번역대학은 서울캠퍼스와의 중복 학과의 독자적 발전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일할 실무 통역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외대는 통번역대학에 철저한 교육과정, 우수한 통번역 관련 교육시설, 다양한 국외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