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를 위한 헌법은?

포스트 피노체트 정권을 향한 새로운 민주화 과정

2022-08-31     빅토르 데 라 푸엔테 외

신자유주의의 오랜 모델, 칠레가 최근 민주화 움직임을 보이며 ‘옛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각한 이 나라에서 몇 년 만에 민중궐기가 다시 시작됐다. 좌파 대통령이 선출됐고, 정부는 군부독재의 흔적을 청산할 새 헌법의 초안 작성을 약속했다. 이런 변화에, 어떤 이들은 열광하고 어떤 이들은 실망하고 있다.

 

2019년 10월 11일 오전, 한 여고생이 산티아고 지하철 개찰구 회전문을 뛰어넘었다. 이내 칠레 수도의 지하철 역사 곳곳에서 수십, 수백 명의 청년들이 그녀를 따라 했다. 소수의 관료주의자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대중교통 요금인상 방침’이 5일 일찍 적용됐고, 이에 칠레 학생들이 반발한 것이다.

 

칠레 최초의 민주헌법으로 제헌의회 탄생

저항의 불이 붙었으나, 폭탄을 터뜨리기에는 약했다. 같은 해인 10월 18일, 신자유주의 요람이었던 나라의 성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친 전국적인 봉기 끝에 마침내 두 가지 성과를 이뤘다. 첫 번째는 칠레 사회에서 권력의 상관관계를 바꾸는 입헌 절차이고, 두 번째는 사회변혁으로 인한 새로운 정부의 출발이다. 2년이 지난 2021년 12월 19일, 젊은 진보후보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새로운 헌법 초안을 위한 국민투표일은  9월 4일이다. 칠레 역사상 최초의 민주 헌법이며, 국민투표로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된 제헌의회가 남녀 동수 시스템, 원주민 대표들의 의석 확보, 다양한 민간단체조직의 참여를 내용으로 하는 초안을 만들었다.

이 ‘혁명의 성공’은 어디에서 왔을까? 장관들도 바뀌지 않고 탄압도 없었지만, 칠레정부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독재가 남긴 경제모델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에 분노한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교육, 보건 위생, 수도 등 대부분의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 불안정한 고용의 증가 그리고 군사정권이 강요한 헌법을 계승하고 있는 엄격한 정치체제를 고발했다.

민중봉기 발발 3주 후인 2019년 11월 13일, 억만장자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en Pinera) 당시 대통령은 ‘평화와 개헌’을 고려해 합의점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전날,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했고 이로 인해 수십 개의 사회단체가 총파업을 선동해 칠레는 마비상태가 됐다. 국가체제가 흔들렸고, 피녜라 정부의 나약함과 고립성이 드러났다.

같은 해 11월 15일 오전, 의회 내 교섭단체들은 새 헌법을 만들 것인지, 군부독재가 만든 기존 헌법을 유지할 것인지 유권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에 합의했다. 이듬해 4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광역 전선(Frente Amplio)’은 좌익과 극좌, 사회당과 자유당 그리고 일명 ‘무소속’이라 하는 시민연합 정당이다. 당시 공산당과 '광역 전선' 일부는 새 헌법이 사회적 시위를 무력화할 것이라 믿고 개헌에 반대했다.

채택된 초안에서는 새로운 기본법 작성을 위한 적용 모델도 제시한다. 제헌의회인가 국회인가? 사회민주당 출신 하이메 퀸타나 상원의원에 따르면, ‘제헌의회’라는 개념은 우익의 민주혁명당(RN) 출신 마리오 데보르데스(Mario Desbordes) 대통령의 요청으로 채택됐다.

2020년 3월 불거진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국민투표는 10월 25일로 연기됐다. 동시에 민중봉기의 효과는 경제지표들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2019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2.1% 하락했으며, 일자리는 7.4% 감소했고, 2019년 경제 성장은 1.1%에 그쳤다. 검역 제한, 자가 격리, 이동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시위대는 남녀 동수와 원주민 대표들, 정당의 당원이든 무소속이든 모든 후보자에 대한 공평한 대우 등을 요구하면서 민선 제헌의회 및 개헌 ‘찬성’ 운동을 벌였다.

피녜라 정부를 포함한 우익은 입장에 따라 두 파로 나뉘었다. ‘찬성파’가 승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반대파’들은 새 헌법 초안 작성을 상원과 하원의 통합 국회가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칠레에서 국회는 민심을 가장 얻지 못한 조직 중 하나다. 또한 기존 헌법, 즉 독재자 피노체트가 만든 헌법의 개정 범위를 제한했다. 피노체트 헌법은 군사정권의 장군 4명이 감독하고 법학자 9명이 7년 동안 만들었으며, 정치적인 정당이 금지된 상황에서 1980년 국민투표로 통과됐다. 당시 소수였던 칠레 거주 외국인 참관인들은 “부정선거”라고 외쳤다. 약 200개의 수정안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의 헌법은 작성 때부터 신자유주의를 국가 경영방식을 채택했으며, 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

이후 대규모의 개혁 시도가 있었다. 사회민주 진영의 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은 권좌에 오르자 과거 피노체트도 누린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특권, ‘종신 상원의원직’을 없애고, 국가원수가 군 통수권자의 임명권과 해임권을 갖게 했다.

2020년 10월 개헌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결정적이었다. 결과는 찬성이 78%, 특히 의회 개입 없이 선출된 제헌의회 ‘찬성’은 80%였다. 몇 달 동안 누적된 사회적 긴장상태가 완화되면서, 국회와 피녜라 정권의 정통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피녜라의 지지도 역시 곤두박질쳤다.

 

“칠레가 깨어나고 있다!”

새로운 제헌의회 선거는 2021년 5월 15일과 16일에 치러졌다. 약 1,400명의 후보자가 155석을 두고 경쟁했으며, 유권자, 각 정당 후보자, 무소속, 원주민 후보자들로 구성된 7개의 명부에서 과반수 표나 의석 2/3을 점유한 진영은 없었다. 새로운 법 규범을 한쪽 진영만 법적으로 인정하고 제재하려 했던 우익의 전략적인 조치였다. 보수진영 역시 이 선거에서 참패했다. 우익연합이 확보한 의석수는 37석에 불과했다. 한편, 광역전선과 공산당이 28석을, 거의 25년 동안 칠레를 통치해 온 사회민주당이 25석을 가져갔다. 남은 의석들은 무소속에 돌아갔다. 1990년대 여당이었고 당원 수가 가장 많았던 기독교민주당은 겨우 1석에 그치는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2021년 7월 4일 오전, 제헌의회 의원들은 집행부를 선출하기 위해 모였다. 수차례의 협상과 연속 투표 끝에 마푸체족(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원주민-역주) 출신 언어학 박사인 엘리자 롱콘(Elisa Loncon)과 헌법 옹호자인 젊은 변호사 하이메 바사(Jaime Bassa)가 의장에 추대됐다. 롱콘 의장은 모국어인 마푸둥군으로 취임 연설을 했다. 전통의상을 착용하고 고유어를 구사하는 원주민 17명이 포함된 남녀 동수 의회로 대표되는 새로운 칠레가 깨어나고 있다고 했다.

제헌의회 최초의 여자 의장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망각 세력인 구 정권은 오랫동안 군림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강한 나라, 단일 국가 및 전진하는 국가라는 착각과 환상 속에서 살았습니다. 결국 그 신기루는 사라졌고, ‘칠레가 깨어나고 있다!’라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깨우침이 우리를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했습니다. 저희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국가의 윤곽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평균 연령 44세의 제헌의회 의원 155명 중에는 변호사 59명, 교사 20명, 엔지니어 9명, 구(舊)의원 6명, 기자 5명, 학생 1명, 해군 제독 1명, 원주민 민간요법 치료사인 ‘마치’ 1명 등이 있다. 의원들은 두 달 반에 걸쳐 윤리, 의원 수당, 일반 시민과 원주민 참여, 기본 규칙의 5개 분야에 관한 규정을 만들 것이다.

7개의 실무단으로 나뉜 의원들은 제헌의회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려는 보수진영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운동과 연계된 좌파 진영은 국가의 절대 권력 해체, 부유한 광산 개발자들의 재산 몰수, 지방회의 설립이라는 자신들의 가장 야심 찬 목표를 새 헌법 안에 집어넣기 위해 분발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남아있는 법안은 우익의 정보 조작을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이로 인해 나라 전체가 작은 땅들로 나누어져 원주민들에게 땅을 제공할 수도 있음을, 국기나 국가가 바뀔 수도 있음을, 임신 9개월 내내 낙태가 허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대기업과 기업체들은 민주화 과정의 옛 주역 몇몇을 영입하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하는 캠페인에 뛰어들었고, 이 중에는 ‘계급 정당‘의 큰 목소리였던 기독교민주당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법학자, 철학자이자 기자인 아구스틴 스켈라(Agustin Squella)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헌의회 의원이 됐다. 그는 “새 헌법은 정부를 민주화하기 위한 진정한 참여에 근거한다”라고 밝혔다. 앞으로 ‘국민투표 또는 국민 법안 발의 형식을 통해’ 대의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추가된다. 그리고 또, 전례 없는 새로운 권리들이 폭넓게 추가된다. 새로운 헌법은 실제로 정당하고 공평하고 충분한 임금, 쟁의권과 노동조합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폭넓은 사회권을 특징으로 한다. 새로운 헌법은 튼튼하고도 보편적인 공중보건 시스템, 성차별 없는 양질의 무상 공교육을 보장한다. 또한, 부모와 지도 교사에게 자녀 또는 학생의 교육 방식을 선택할 권리와 초등학교에서처럼 대학교에서도 교육자의 재량에 따른 수업권을 허용하고 있다.

제헌의회가 제안하는 법안은 구체적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권리, 1973~1990년 군부독재의 역사적 건물에 접근할 권리, 양질의 다원주의적 정보에 접근할 권리 등을 공고히 한다. 그리고 물 등 공공재에 대한 시민의 권리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특히 지방에서 절실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정치체제를 살펴보면, 칠레는 초 대통령 중심제 형태에서 중도 대통령 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입법부는 하원은 유지하고 현재의 상원을 지방의회로 대체하는 비대칭 양원제다.

 

“칠레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프로세스”

국가가 경제를 운영함으로써 생산을 다각화하고 사회통합 부문을 강화한다는 게 이 법안의 골자다. 부정부패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하나의 죄로 규정하고, 이 죄를 지은 사람은 다시는 공무원을 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다. 인권법 위반, 성범죄 또는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특히, ‘보편성, 연대의식, 자존 및 지지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보장 시스템 설치도 그 내용으로 한다. 최종적으로, 기후위기 상황을 받아들이고 국가에 모든 대비책, 적응대책 등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최초의 헌법이 탄생할 수 있다.

7월 4일, 옛 국회 건물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보리치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헌법 서문을 건네받았는데 ‘다민족인 우리 칠레 국민은 적극적인 참여, 양원 동수 및 민주화 프로세스로 만들어진 이 헌법과 자유롭게 뜻을 같이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기념식에는 제헌의회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함께였다.

가스파르 도밍게즈(Gaspard Dominguez) 제헌의회 부의장은 최근 연설에서 “이는 칠레의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혁신적인 프로세스의 하나다.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의외의 방식으로 나타난 프로세스다. (중략) 칠레는 레시피가 없는, 전례 없는 민주화 과정을 통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기로 했다. 우리는 오늘날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칠레는 공화국이며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념식은 9월 4일 국민투표를 향한 캠페인의 시작이며, 이 투표를 통해 칠레인들은 새 헌법에 찬성 또는 반대하게 될지 결정할 것이다.

만일 ‘찬성’이 승리한다면 새 법안이 장기간 시행될 것이다. 정치체제와 규정에 맞추는 것에 관한 것일 것이고 특히, 새로운 권리들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에 관한 것일 것이다. 만일 ‘반대’가 승리한다면 여러 정치 세력이 국회에서 이를 개헌하기 전까지 피노체트 헌법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보리치 대통령은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새로운 입헌 프로세스를 시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어쨌든 2020년 10월 25일의 국민투표에서 78%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칠레 국민 대다수가 개헌을 찬성했다. 당시에 어떤 시간적 제한 같은 건 없었다. 

 

 

글·빅토르 데 라 푸엔테 Victor de la Fuen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칠레판 편집장
리비오 페레즈 Libio Pér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칠레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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