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건재 VS. 우크라이나의 디폴트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6개월의 힘의 불균형

2022-08-31     강태호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주춤한 러시아의 돈바스 공세와 포화에 갇힌 우크라이나의 반격

지난 7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루한시크(Luhansk) 지역 전체와 도네츠크(Donetsk), 자포리지아(Zaporizhzhia) 및 헤르손(Kherson) 지역 일부를 장악했다. 러시아로서 특히 큰 전과는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돈바스에서의 승리’다. 몇 주 동안의 치열한 공방 끝에 7월 초 두 핵심 도시인 세베르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를 함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전쟁은 소강 내지는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다. 인터넷 매체 <Bne IntelliNews>(8월 19일)의 베를린 특파원 벤 아리스(Ben Aris)는 러시아 독립 인터넷 매체 <메두자(Meduza)>를 인용해, “러시아가 돈바스의 마지막 도시를 함락시킨 이래 지난 40일 동안 7마일(11.27km) 이상 점령지를 확대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메두자>(8월 18일)는 러시아는 도네츠크 지역의 60.25%를 장악한 상태로, 한 달 전의 59.7%에 비해 점령지 확대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앞서 <월스트리트 저널>(7월 22일)은 “서방의 무기 지원 덕택에 러시아의 돈바스 공세가 느려졌다”라며, 군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작전 중단’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러시아 국방부는 군인들의 휴식시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신문은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의 보고서를 인용해, “러시아는 잠시 작전을 중단한 후, 지상 공세를 재개했으나 전진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의 전략 연구 교수인 필립스 오브라이언(Phillips O'Brien)은 이 신문에서 “러시아의 힘이 한계에 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7월 31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3단계라고 진단했다. 러시아군이 크이우를 집요하게 노리던 1단계,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점령에 몰두한 2단계를 지나,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하는 3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엘리엇 코언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이 신문에 “헤르손 탈환은 뱀섬(즈미니섬) 탈환이나 모스크바함(흑해 함대 기함인 순양함) 침몰보다 의미가 크다”라며, “서방의 군사·경제적 지원 덕택에, 모멘텀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8월 11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국가들의 회의에서 러시아가 ‘흔들리고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깊이 개입해온 영국의 군 정보기관 수장이나 관계자들의 발언은 우크라이나군의 주장과 비슷했다. 이런 낙관적인 주장들과, 현실은 차이가 크다. 앞서 벤 아리스는 8월의 우크라이나 전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러시아는 공세를 가할 병력이, 우크라이나는 헤르손을 탈환할 무기가 없다.”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름반도와 가장 가까운 헤르손은, 마리우폴과 함께 동부 돈바스를 연결하는 자포리지아의 핵심 거점이다. 우크라이나는 7월부터 헤르손 탈환을 위해 반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이 ‘여름 캠페인’은 지금까지 헤르손 지역의 주요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러시아 지휘부, 탄약고 및 교량 철도 등 공급 라인 일부를 제한적으로 파괴했을 뿐이다. 남쪽의 우크라이나 전선군은 대부분 참호에 갇히고 러시아의 포격에 직면했다.

폴란드에 ​​기반을 둔 로찬(Rochan) 컨설팅의 콘래드 무지카(Konrad Muzyka)는 러시아의 독립언론 <모스크바 타임스>(8월 18일)에 “러시아군은 헤르손 주변에 배치된 10~15개 대대 전술 그룹을 2배로 늘렸다”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가 동부지역 병력을 헤르손에 재배치하면서 돈바스 공세가 둔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8월 12일)는 러시아의 진지에서 1마일 미만 거리의 참호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러시아 포병의 맹공격에 위축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8월 4일)는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에 대한 반격을 철회했다고 익명의 고위관리의 입을 빌어 보도했다. 그 관리는 “우크라이나군에는 필요한 무기의 30%도 없으므로, 무기를 최대한 비축 가능한 내년 초에 반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뉴욕타임스>(8월 12일)는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보유 무기고와 동유럽 동맹국들이 제공한 옛 소련제 포탄을 거의 다 소진했으며 크이우가 곧 나토 무기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은 무기뿐만이 아니다. 영국 왕립 통합 군사 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의 잭 월팅(Jack Walting) 지상전 분야 선임연구위원은 <이코노미스트>(8월 14일)에 “가장 어려운 전투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숙련된 군인으로 구성된 5개 여단이 맡았으나, 이들은 지쳤다. 그리고 (돈바스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여단을 훈련하고 공세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의 ‘여름 캠페인’과 미국의 대대적인 무기 지원

미국은 8월 대대적인 무기 지원에 나섰다. 8월 1일부터 19일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세 번에 걸쳐 지원한 무기 원조는 모두 23억 2,500만 달러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2021년 8월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총 군사원조 규모는 총 19번, 총 106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며 이는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다.

8월 19일 발표한 7억 7,500만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미 국방부가 공개한 내역만을 놓고 보면 AGM-88 초고속 대 레이더 미사일(High-speed Anti-Radiation Missile:HARM), 스캔 이글(Scan Eagle) 정찰 드론(15기), 지뢰방호 장갑차(MRAP, 40대) 이동식 다연장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용 탄약, 장갑차, 곡사포 등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곡사포 탄약을 제공했지만 16개 무기체계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원 패키지에는 대전차 미사일 1,500발, 자벨린 미사일 1,000발, 레이더 시스템을 공격하는 HARM 미사일도 포함돼 있다. 스캔 이글 정찰 드론은 처음 포함했다. 공대지 HARM은 러시아 방공 체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포병대를 탐지하는 러시아의 레이더까지 표적으로 삼는다. 

8월 5일엔 단일 지원 분으로는 최대인 10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HIMARS, 첨단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NASAMS) 탄약과 M113 장갑차(50대)가 포함됐다. 또 8월 1일에도 HIMARS와 155㎜ 포탄 등 5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 지원을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남부 지역 탈환을 위한 ‘여름 캠페인’을 지원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무기 지원 발표가 바로 전장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뉴욕타임스>가 밝혔듯이 옛 소련의 무기(포탄)가 바닥이 난 우크라이나의 무기고를 채우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겨울까지 남쪽을 탈환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듯이 남부 지역 탈환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가을 또는 겨울 공세’를 위한 지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8월 18일)는 백악관 고위 관리의 입을 빌어,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로 크름반도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파이낸셜 타임스>(7월 14일)는 바이든 행정부가 푸틴의 전쟁 의지가 서방의 결의보다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꿰뚫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러기 위해서 “워싱턴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와 헤르손 주변에서 러시아에 타격을 가하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다른 대규모 결전을 앞둔 일시적인 교착 국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8월 18일)이 우려했듯이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3개월 안에 돈바스 지역과 헤르손에서 의미 있는 반격에 성공하지 못하면, 서방의 대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 약화할 것이다. 경제 위기에 따른 유럽 유권자들의 불만은 예상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대 러시아 제재 조치를 재고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다. 

미국의 <CNN> 방송(8월 22일)도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가 반년을 맞이하면서 유럽의 관리들은 유럽 대륙이 식량 가격 상승, 주택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 제한, 경기 침체의 실제 가능성이라는 암울한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지원의) 합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크 맥기(Luke McGee) CNN 기자는 이 분석 기사에서 “서방의 관리들과 외교관들이 익명을 전제로 정부 간에 이뤄지고 있는 민감한 대화를 솔직하게 말해줬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에 따르면 나토의 한 관리는 “점점 우리가 지원하는 무기 유형과 사용 훈련이 복잡해졌다. 이 무기로 우크라이나군이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무기 공급은 감소할 것이고 우크라이나군은 힘들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미 <폴리티코>(8월 17일)는 서방의 대 우크라이나 군사 및 재정, 인도적 지원 등을 추적해온 키일(Kiel) 세계 경제 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4월 말부터 유럽의 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유럽 주요 6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7월에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CNN>의 루크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무장시키려는 서방의 전략은, 종착점이 없는 전쟁의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젤렌스키도 느낄 것이다. 전쟁이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서방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 하우스의 커일 자일스(Keir Giles) 선임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아마 그것이, 젤렌스키가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러시아 유럽 아시아 연구 센터(the Centre for Russia Europe Asia Studies)의 테레사 팰런(Teresa Fallon) 소장은 <CNN>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비싼 무기를 계속 공급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왜 좋은 돈을 나쁜 쪽에 던지고 있는가? 이 의문은, 주요 동맹국들이 다가올 격동의 정치적 시기에 직면할 핵심 문제가 될 것이다.”

영국은 9월 5일 새 총리를 선출하며 우크라이나 문제로 연정이 붕괴한 이탈리아는 9월 25일 총선을 치른다.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는 바이든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좌우할 것이다. 바이든은 적어도 이 중간선거 이전에 푸틴의 대대적인 공세로 우크라이나에서 ‘제2의 돈바스 패배’가 전개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가늠할 ‘경제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작부터 두 개의 전쟁이었다. 하나가 미국 유럽 등 서방의 대대적 무기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라면, 다른 하나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유례없는 대대적인 제재로 촉발된 ‘경제전쟁’이다. 이제 6개월을 넘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이 된 상황에서 전쟁의 향방, 즉 힘의 균형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이 경제전쟁에 달려있다. 워싱턴과 브뤼셀은 러시아 탱크가 국경을 넘은 지 불과 며칠 만에 대규모 제재로 러시아를 겨냥한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과소평가했듯, 서방은 러시아를 과소평가했다. 초기 제재는 예상보다 훨씬 ‘극단적’이었고, 러시아에 타격을 주기 위해 추진됐으나 정작 러시아는 견고하게 대응했다. 러시아만 선택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방적 제재는 어렵다. 

예컨대 푸틴 대통령이 8월 5일 서명한 대통령령은 ‘비우호국’ 투자자가 에너지와 은행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지분 매각을 연말까지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인 미국의 시티그룹과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호주의 라이페센 등은 러시아 금융 당국의 심사에 따라 지분 매각이 중지될 위기에 처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극동 지역의 '사할린 1' 프로젝트가 주요 대상으로, 미국의 엑손 모빌, 일본의 사할린 석유가스개발(SODECO) 등의 지분 변동이 금지된다. 엑손 모빌은 이 프로젝트 지분 30% 매각을 추진 중이다. 대통령령 규제 대상에는 사할린-2 프로젝트와 시베리아 하랴긴스코예 유전도 포함된다. 미국 등 서방 대기업이 러시아에서 빠져나오려면, 러시아에 주는 타격보다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서방의 무기로 여겼던 에너지 제재는, 이제 푸틴의 무기가 됐다. 일방통행의 맞춤식 제재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으며, 제재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쌍방향으로 전방위적으로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예상치 못한 규모의 고통을 초래했다. 에너지 위기의 파장은 반도체 공급망 혼란이 자동차 생산에 타격을 주고, 천연가스가 비료생산에 타격을 주고 있듯이 파장은 더 광범위하다. 

제재의 효과는 먼 훗날을 기대해야 했고,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는 미미했다. 워싱턴은 점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그래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유가 상한제’와 같은 방안을 내놓으면서 추가 제재의 수단이 고갈되고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추가 제재로 제시된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여행비자 발급 제한도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방은 제재의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는 문제를 더 민감하게 여기게 됐다. 유럽연합은 6월 말 7번째 제재 패키지를 내놓았지만 비료를 비롯해 티타늄 농축우라늄 등 일부 전략물자와 식량 및 에너지(노르트 스트림용 가스터빈) 등과 관련한 제재에 스스로 구멍을 뚫는 예외적 조처를 취했다. 

러시아 뉴스를 전하는 국내 인터넷 매체 <바이러시아 21>에 따르면, 러시아 육상 화물 운송을 막았던 리투아니아가 철도 화물 운송을 허용했고, 캐나다도 수리를 마친 독-러 해저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1’ 터빈을 돌려주기로 했다. 미국은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독일 법인(GmbH)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고, 알파방크의 카자흐스탄 자회사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또 비료와 식품, 종자, 의약품, 의료 장비 등의 러시아 거래를 허용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40명에게 개인적으로 부과한 제재 해제를 검토 중이다.

이 경제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더욱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크라이나는 무기 고갈에 이어 돈이 고갈됐다. 지난 7월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져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우크라이나는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전시 인플레’ 위기와 채무 불이행의 구제금융에 빠진 우크라이나

8월 11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196억 달러(약 25조 6,000억 원) 규모의 해외 채권 중 약 75%를 보유한 투자자들이 원금과 이자 지급을 2024년까지 연기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7월 20일 유로본드 상환과 이자 지급을 8월 1일부터 24개월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2023년 5월부터 2024년 8월까지 국내총생산(GDP) 연동 보증금 지급도 연기하겠다고 했다. 사실상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선언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6개국 정부(이른바 파리 클럽)은 채무 상환을 유예하기로 했고 이런 방침에 따라 8월 9일에 금융기관 등 민간 채권자들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는 절차를 거쳤다.

또 채무 이행 연기 요청에 앞서 영국 일간 <가디언>(7월 26일)은 킬릴로 셰브첸코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가 IMF에 150억~2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세브첸코는 앞으로 2~3년 동안 대기성차관(SBA)이나 확대 금융지원(EFF) 형태로 최대 200억 달러(약 26조 2800억 원)를 받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서 우크라이나는 IMF의 강도 높은 채무구조조정 계획을 수용해야 한다.(1) 우크라이나의 이번 구제금융 요청은 아르헨티나 이후 역대 2-3번째로 큰 규모다. (IMF 역사상 최대 규모 구제금융 지원은 2018년 아르헨티나의 당시 중도우파 정부가 받은 570억 달러 규모(약 69조 원)의 금융 지원이다.) IMF는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 3월에 14억 달러 규모의 긴급 자금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7월 29일 우크라이나의 신용 등급을 세 단계 하향해 CCC+에서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가까운 CC로 강등했으며, 8월 12일 신용등급을 또 한 단계 낮춰 우크라이나의 채무 재조정 협정이 "채무불이행(디폴트)과 다름없다"며 이른바 선택적 디폴트(SD)로 강등했다. S&P는 BB+ 이하 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채권으로 보고 있으며 CC에서 2단계 더 내려간 ‘D’ 등급은 디폴트다.

S&P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거래가 부실화되고 채무불이행과 다름없다고 본다”며 “우크라이나의 채무 재조정은 전쟁으로 인한 거시경제적, 대외적, 재정적 압박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전쟁 6개월째를 맞는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빈사상태다. 시장에서는 경제 규모가 올해 35~40%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매월 약 50억 달러의 재정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런던 블루베이 자산운용(BlueBay Asset Management)의 티모시 애쉬(Timothy Ash) 선임 정부 부문 투자전략가는 <bne IntelliNews>(8월 15일)에 기고한 ‘서방의 자금지원 부족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의 곤경(The West is short-changing Ukraine)’이라는 글에서 “우크라이나는 예산을 조달할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계속 유지하는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쉬에 따르면 8월 12일 워싱턴과 브뤼셀이 우크라이나의 채무 상환 연기를 승인해 잠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대외 채무 상환액 약 125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애쉬는 “채무상환 동결에 대해 외국 채권자들과 합의했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충분한 규모와 시기적절한 방식으로 서방의 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꽤 균형 잡힌 예산을 수립했다. 그러나 전쟁 비용이 월 40억~50억 달러에 달했고, 그만큼 재정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8월 12일)은 우크라이나 정부 지출에서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불과하며, 그에 반해 정부가 지출하는 전쟁 비용은 예산의 60%에 달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비군사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약 5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젤렌스키의 경제 고문인 올레그 유스텐코(Oleg Ustenko)는 <파이낸셜 타임스>(7월 14일)에 예산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한 달에 9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재무부(MOF) 데이터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은 270억 달러였다. 

그러나 이 중 약 절반만이 서방의 자금 조달을 통해 충족됐다. <파이낸셜 타임스>(7월 13일)는 EU 재무장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거시 재정 지원으로 10억 유로를 승인했지만, 이 금액은 5월에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90억 유로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7월 10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느닷없이 베를린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앤드리이 멜니크(Andryi Melnyk)를 교체한 데는 독일이 90억 유로의 재정지원을 지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의회(최고라다)도 8월 18일 예산 편성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외국의 지원 자금 부족이라며 “재무부가 8월 외국으로부터 60억 달러 지원을 예상했다가 50억 달러로 낮추었지만, 8월 18일 현재 15억 달러도 받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게다가 이 서방의 지원이라는 것은, 실상 약 60%가 채무다. 애쉬에 따르면 이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이같이 높은 융자 비율은 전쟁을 수행할 책임을 우크라이나가 떠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빚더미를 떠안게 될 것이다. 이는 그러지 않아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지만 우크라이나 총리가 제시한 7,50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우크라이나 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위태롭게 하는 부채의 구조 조정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둘째, 서방의 자금 조달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우크라이나 재무부(MOF)는 약 80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중앙은행의 자금 조달에 의존해야 했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메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NBU)은 6월에만 외환보유고의 9.3%(약 70억 달러)를 소진시켰지만, 달러 고정환율제로 묶여 있는 자국 통화인 흐리브냐의 통화가치 하락을 막지 못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7월 21일 통화가치를 25% 이상 평가절하해 고시했다. 또한 기준 금리를 25%까지 올렸다. 그러나 압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예산 적자를 통화 발행으로 메꾸는 것은 더 높은 인플레이션, 통화가치 하락, 준비금 손실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애쉬는 서방이 약속한 자금 지원이 너무 느리고 관료적인 어리석음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어쩔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인출사태로 은행이 마비되는 ‘뱅크런’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전시라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방의 시기적절한 자금 조달이 이뤄지지 못하면 인플레이션-통화 평가 절하-인플레이션 확대의 악순환 사이클이 소용돌이치며 만연할 위험이 있다.

 애쉬는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총보다 경제, 은행 및 금융 시스템을 계속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금 지원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실패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의 ’폭풍‘과 금융시장의 ‘대혼란’에서 건재를 과시하는 러시아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인 엘비라 나비울리나(Elvira Nabiullina)는 7월 22일 금리를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 이하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 러시아의 기준 금리는 9.5%였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9.5%에서 8%로 인하한다고 발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5월 17.1%에서 6월 15.9%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나비울리나 총재는 올해 말까지 인플레이션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4월 8일 금리 인하를 시작한 후 4회에 걸쳐 금리를 내렸다. 

 

이번 조처는 4월 8일 20%에서 17%로, 4월 29일에 14%로, 5월 26일에 11%로, 6월 10일 9.5%로 인하한 것에 이어, 다섯 번째로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투자회사 르네상스 캐피털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1.5%p(150bp) 금리 인하는 “시장의 모두에게 큰 놀라움”이라고 말했다. 또 인플레이션 예상치도 애초 18%~23%보다 12%~15%로 크게 하향 수정했다. 이는 루블화 가치의 반등을 반영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7월 22일)은 러시아의 경제 전망이 개선돼 러시아 관리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월의 –8%~10%에서 그 절반 가까운 수준인 –4%~6%로 수정했다면서 하지만 내년까지 경제성장률은 –4%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8월 11일 내놓은 러시아의 경제성장 전망에서 2023년 GDP는 –1%~4% 감소하나, 2024년에는 +1.5%~2.5%로 회복할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Rosstat)이 발행한 <2022년 상반기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서방의 제재와 전쟁 상황에서도 2022년 2분기 러시아 가계의 실질 가처분 현금 소득은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불과 0.8% 감소했다. 이런 러시아 경제의 견고함은 서방의 제재로 인한 가스 원유 판매수입 증가 덕택이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8월 17일 2022년 에너지 수출이 3,3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21년 2,44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전년 대비 40% 이상)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유럽연합의 러시아 석유 가스에 대한 금수조처 등을 고려할 때 2023년에는 2,558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전히 전쟁 전 수준보다 높다. 

러시아 가스의 평균 수출가격은 올해 1,000㎥당 730달러, 전년 304.6달러의 약 2.5배다. 최근 예상치인 523.3달러보다도 약 40% 오를 것(750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유가는 중국 등의 경제성장 둔화 등 수요 위축으로 80달러 후반의 전쟁 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8월 16일 1,000㎥당 2,700달러를 넘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2) 경제개발부는 가스 가격이 내년에는 1,000㎥당 471.8달러로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코메르상트> 등 러시아 언론은 내부 문서를 인용해 러시아 경제개발부가 2022년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4%~6%의 감소폭 중 가장 낙관적인 -4.2%로 조정할 것으로 전했다. 러시아 통계청이 8월 12일 발표한 러시아의 2분기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였다.

특히 러시아의 경상수지는 2022년 상반기에 1,385억 달러로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으며, 올해 2,000억~2,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6,700억 달러 가운데 서방 제재로 동결된 3,0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을 만회하는 것이다. 7월 13일 국제금융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Finance)의 엘리나 리바코바(Elina Ribakova)에 따르면 6월에만 경상수지 흑자는 280억 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무역수지 흑자가 230억 달러였다. 이같은 무역(에너지) 서비스 등의 경상수지 증가가 현실화되면, 푸틴은 임금과 연금을 인상할 수 있다. 에너지 수출은 러시아 연방 예산 수입의 약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IMF도 러시아 경제가 예상보다 ‘폭풍우’를 잘 견디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IMF는 7월 2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올해 러시아의 GDP 전망 추정치를 2.5%포인트 상향 조정해 애초의 -8.5%가 아닌 -6%로 수정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가 둔화되고 있는 반면, “러시아의 2분기 경제는 원유와 비에너지 수출이 예상보다 양호하게 유지돼 이전 예상보다 적게 위축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2022년 러시아 수출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IMF 세계 경제 전망은 △러시아가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가스 원유 판매대금이 늘어나고(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연초 대비 25% 상승), △‘핵폭탄급’ 제재가 될 것이라던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라는 제재에도 원유 가스 판매대금의 루블화 결재 등으로 이를 피했으며, △우려했던 러시아 국채의 디폴트(상환 불이행)도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러시아가 금융시장의 ‘대혼란’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IMF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성장률 전망 하락 폭이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4월의 3.7% 경제성장 전망치에서 1.4%p 하락한 2.3%로 조정됐다. 반면, 러시아는 ‘금융시장의 대혼란’에서 벗어났고 독일 영국 등은 ‘폭풍우’ 에 직면해 있다. 독일의 7월 생산자물가(PPI)는 전년 동기간보다 37.2% 급등했고 전월 대비 5.3% 올랐다. 두 수치 모두 1949년 조사 시작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탓이다.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1년 만에 105% 올랐다.

 

영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영국 통계청은 8월 17일, 7월 소비자 물가 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10.1% 상승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소비자 물가가 두 자릿수로 치솟은 것은 1982년 2월(10.4%) 이후 처음으로 40년 만이다. 또 독일시장조사기관 GfK의 영국의 8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44까지 떨어져 1974년 조사 시작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내다본 연말 물가 상승률은 13.3%다. 그러나 벤저민 나바로 시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일간 <가디언>(8월 18일)에 “(물가 상승을) 상쇄 요인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내년 1분기에는 영국 소비자 물가 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15%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IMF는 영국을 G7 중 내년 경제 성장률 최악의 국가로 꼽았다. 2022년 7월 기준 물가 상승률은 미국이 8.5%로 2위, 그 뒤를 이탈리아(7.9%), 캐나다(7.6%), 독일(7.5%), 프랑스(6.8%)가 이었다.

‘헝가리의 트럼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주장을 들어보자. 유럽연합의 대러 제재 에너지 금수 등에 반대하며 독자적 행보를 보여온 그는 7월 23일 루마니아 방문 중 대학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려면, 평화 회담에 주력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전략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무기로 전쟁에 승리할 수 있고 △대러시아 제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도력을 불안하게 할 것이며 △제재 효과는 유럽보다 러시아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세계는 유럽을 지원할 것이라는 4개의 바퀴 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마치 자동차 타이어 4개가 모두 구멍이 난 것처럼, 이 기둥들이 무너졌다.” 

 

 

글·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1) 전쟁 상황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IMF 구제금융 사태와 마찬가지다. 1997년 12월 3일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받았다. 1998년 국내 경제 성장률은 기업파산 합병 등 구조조정의 대량해고와 함께 - 6.9%를 기록했다. 
(2)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며 1 Mhw 전력생산에 필요한 천연가스량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8월 15일 전쟁 전인 2월 초 ㎿h당 약 70유로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약 220유로로, 약 3배로 인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