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와 불화 끝낸 스페인, 알제리의 화를 돋우다

2022-08-31     이그나시오 셈브레로 l 기자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는 서사하라 분쟁에서 모로코의 편을 들어 국민과 내각을 놀라게 했으며, 알제리 당국의 분노를 샀다. 알제리는 일련의 대 스페인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반면, 스페인-모로코 외교분쟁은 종식된 듯하다.

 

‘스페인을 처벌하라’ 이 구호가 알제리 소셜미디어를 휩쓸자, 6월 8일 알제리 정부는 2002년 스페인과 체결한 우호 및 협력 조약의 효력을 즉각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알제리 은행×금융기관협회는 스페인과의 상거래 관련 출자의 동결을 결정했다. 스페인이 알제리의 5위 수출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조치다.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 스페인의 알제리 수출액은 27억 유로였다. 알제리 또한 스페인의 3위 수출국이다. 스페인이 알제리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 금액만 23억 유로에 달한다.

알제리의 보복 조치에 천연가스 무역은 해당사항이 없다. ‘아직은’ 말이다. 이 같은 갈등의 격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원인은 바로 서사하라 지역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있다. 1976년까지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이 지역은 오늘날 모로코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UN이 예상했듯) 알제리는 사하라 지역민의 자결권을 옹호하며 분리독립주의 세력인 폴리사리오 전선을 지원한다. 서사하라의 분리독립을 원치 않는 모로코는 그 대신 폭넓은 자치권을 제안했다. 하지만 영토의 주권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로코의 세 가지 보복조치

이때까지만 해도 옛 식민지 강대국 스페인은 “UN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며 양쪽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듯했다. 유럽연합에서 모로코의 외교적 노력을 넌지시 강조했지만 실제로 모로코에 득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8일, 스페인은 돌연 모로코 편에 서서 서사하라 자치화 계획을 지지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알제리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 갈등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20년 12월 10일, 트럼프는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했다. 그 대신 모로코는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이런 제안을 한 서구 강대국은 미국이 처음이었다. 미국의 결정에 모로코는 대담해졌다. 2021년 1월 15일, 모로코 외교부 장관 나세르 부리타는 미국을 예로 들며 유럽 국가들에 “안전지대” 밖으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로코가 내놓은 서사하라 자치화 계획을 지지한 국가는 프랑스가 유일했다. 다만 프랑스 정부가 미국처럼 해당 영토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모로코는 스페인이 자신의 편에 서면 다른 유럽 국가, 그리고 남미까지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과연 그랬을까?

 2020년 12월, 트럼프가 지지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모로코는 대수롭지 않은 핑계를 대며 일주일 후로 예정돼 있던 스페인-모로코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2021년 4월 18일, 폴리사리오의 수장이자 사하라 아랍민주공화국 대통령 브라힘 갈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독했을 때 그가 로그로뇨(스페인 북부 지역) 국립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도 모로코가 언성을 높일 이유가 됐다. 스페인 정부는 “어디까지나 인도주의 차원에서” 알제리 정부의 요청을 승낙했다. 스페인은 모로코와의 마찰을 우려해 초반에 갈리의 입국 사실을 숨겼다. 모로코에게 갈리는 제1의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로코 정보국은 브라힘 갈리가 스페인에 체류 중이라는 기색을 눈치챘다. 작년에 인터넷 사이트 ‘금지된 이야기(Forbidden Stories)’에서 폭로된 것처럼 모로코 정보국이 페가수스 프로그램으로 수천 명의 전화를 염탐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1) 아니면 스페인 정부가 암시적으로 인정했듯 외교부 장관 아란차 곤잘레스 라야의 휴대전화도 감시당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당시까지 무명의 인터넷 사이트였던 <엘노티시아리오(El Noticiario)>에서 갈리의 입원이라는 특종을 최초 보도했고, 모로코 정부와 가까운 두 언론사가 그 뒤를 이었던 건 사실이다.

양국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주 모로코 스페인 대사 리카르도 디에스 호치레이너가 모로코 정부에 소환됐다. 이윽고 모로코 외교부는 공식성명을 통해 “동반자 정신에 반하는 행동”을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5월, 결국 주 스페인 모로코 대사 카리마 벤야이치가 상담 명목으로 본국으로 송환됐다. 

모로코는 일련의 보복 조치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불법이민’이었다. 2021년 5월 17~18일, 48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1만여 명의 불법이민자들이 스페인 세우타에 도착했다. 그중 20%는 미성년자로, 대부분 프니데크 인근 해변에서 헤엄쳐서 왔다. 부리타 장관은 EFE통신사를 통해 이민자 쇄도 현상을 “라마단이 끝나고 모로코 경찰에게 피로가 쌓였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불법이민자의 2/3는 며칠 후 모로코로 돌아갔다. 모로코가 제대로 실력행사를 한 사건이다.

한편, 카나리아 제도는 지속적으로 이민자가 유입되는 지역이다(2021년 불법 입국자 수는 2만 2,316명이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갈등을 해소하고자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스페인 해변에 도착한 불법 입국자들은 다시 떠났다. 그럼에도, 스페인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1~2월 사이 입국자 수는 작년 대비 135% 증가했다. 두 달 동안 카나리아 제도에 들어온 5,496명의 ‘하라가스(마그레브 지역 출신 불법이민자)’ 중 대부분이 모로코 남쪽, 그리고 모로코령 사하라 지역 출신이다. 

3월 초에는 모로코의 두 번째 보복 조치가 일어났다. 2,500명의 사하라 이남 지역민들이 멜리야(아프리카 모로코 북부에 위치한 스페인의 고립 영토-역주)를 두 번이나 공격했다. 그중 900여 명이 철조망을 넘어 자치도시로 진입했다.

모로코의 세 번째 보복조치는 2021년, 지브롤터 해협을 비롯해 세우타와 멜리야의 육로 국경 통행을 봉쇄한 것이다. 작년 여름, 모로코 정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해상 교통을 정상화했다. 코로나 사태로 통행이 중단될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스페인은 예외였다. 2019년까지 이곳은 고국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모로코인 330만 명과 차량 76만 대가 안달루시아 지역 항구에서 출발해 모로코에 도착하는 관문이었다. 모로코의 대 스페인 제재는 수익이 쏠쏠한 주유소 사업과 스페인 항구를 앗아갔다. 

이 보복의 최대 피해자는 유럽에 사는 모로코인들이다. 지난 4월에서야 간신히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페리가 다시 운항되기 시작했다. 세우타와 멜리야의 육지 국경은 5월 17일에야 다시 열렸다. 

 

알제리-모로코-스페인의 삼각관계

이 봉쇄조치 기간, 스페인 당국은 모로코에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려 애썼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여름부터 여러 차례 모로코에 화해 의사를 표시했다. 그 중 첫 번째는 2021년 7월, 내각을 개편하면서 갈리가 로그로뇨 병원에 입원하도록 허가한 외교부 장관을 교체한 일이다. 장관은 모로코에 불편한 존재가 됐다. 5월 말, 사라고사지역 예심판사는 비밀리에 사하라 지도자를 입국시킨 것에 대한 배임죄 혐의로 장관을 고발했다.

알제리와 모로코 사이가 악화될수록 스페인이 모로코와 관계를 회복하는 데 유리해졌다.(2) 2021년 10월 31일, 알제리 정부가 마그레브-유럽 가스공급관을 잠그자 모로코 발전소 두 곳에 공급되던 가스가 끊겼다. 스페인 정부는 즉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스페인 정부가 시중에서 구매한 가스를 재가스화해 가스관을 통해 다시 모로코로 보내는 협정이 체결됐다. 상황을 수습하고자,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까지 나섰다. 지난 1월, 외교사절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국왕은 “양국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을 모로코에 공식적으로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효과가 없었다. 주 스페인 모로코 대사는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화해의 손길은 모로코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스페인은 사하라 지역 자치계획을 지지하고자 중립을 포기해야 했다.

모로코가 요구한 화해의 대가는 컸다. 산체스 총리는 결국 그 대가를 치루기로 결심했다. “스페인은 모로코가 2007년 제안한 자치계획을 (서사하라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믿을 만하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간주한다.” 3월 14일 모로코 국왕 무함마드6세 앞으로 보낸 편지에 담긴 내용이다. 3월 18일 왕실 공식성명을 통해 편지의 대목 일부가 발표됐다.

스페인 정부 인사 대부분은 사하라 분쟁에 대한 자국의 입장이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로코 왕실을 통해 알게 됐다. 스페인의 우파 야당, 그리고 연립정부 내 소수 정당(포데모스당, 극좌파)과 온갖 민족주의 정당들을 포함해서, 외교적 돌변을 향한 시선은 차가웠다.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가 모로코의 라바트로 향한 날, 이들은 하원의회에서 사하라 분쟁에 대해 스페인의 정책상 원칙을 환기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산체스 총리에 대한 명백한 반기였다. 사회노동당 의원들만이 반대표를 던졌고, 극우파는 기권했다.

산체스 총리는 이토록 강력히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15개월 동안 지속된 불화를 종식시키고 모로코에 몇 가지를 양보받을 심산이었다. 4월 7일, 산체스가 라바트에 방문해 무함마드 6세와 ‘이프타르(라마단 기간 해질녘에 먹는 저녁 식사)’를 함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같은 날, 양국은 공식성명을 통해 해상 및 항공 전담반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2018년에 모로코가 스페인에 알리지 않고 폐쇄한 멜리야 세관의 재개, 그리고 세우타에 두 번째 세관 설치의 가능성도 슬쩍 내비쳤다. 그렇다고 모로코 정부가 두 자치도시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모로코는 여전히 세우타와 멜리야 지방법원의 체포권 및 해당 지역에서 발행된 공증문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여세를 몰아 불법이민, 특히 카나리아 제도를 통한 입국이 크게 감소했다. 1~2월에 93명을 기록하던 일 평균 불법 입국자 수는 4월 들어 25명으로 떨어졌다. 

 

‘스페인의 배신’, 알제리 몫을 차지한 미국

산체스가 모로코와의 마찰을 종결시켰다면, 알제리와의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됐다. 산체스가 보낸 편지에 대한 모로코 왕실의 공식성명이 있었던 다음날, 알제리는 주 스페인 알제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언론은 ‘스페인의 배신’을 집중보도했다. 알제리 당국은 이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고, 감정이 격앙됐다. 한 달 후 알제리 대통령 압델마지드 테분은 스페인의 돌변한 입장을 “윤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해당 주제를 다시 언급했다.

모로코가 스페인에 대한 보복조치를 거둘수록, 알제리의 조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작은 무르시아와 알메리아 해안으로 들어오는 알제리 불법이민자들의 본국송환을 중단한 일이다. 두 번째로 알제리 국영석유회사 소나트락(Sonatrach)의 최고경영자 투피크 하카르는 4월 1일, 가스 수입국들 중 스페인에만 가격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넌지시 흘렸다. 마지막으로, 알제리 에너지부는 4월 27일,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흘러가는 가스가 알제리산이 아님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할 것을 스페인 당국에 요구했다. 만약 알제리산 가스라면 스페인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그 결과, 스페인은 연초부터 알제리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상 최초로 알제리는 스페인의 제1 가스 수출국 자리에서 내려왔다. 2021년에 스페인에서 소비된 가스의 44%는 알제리산이었다. 반면, 올해 1~3월 이 수치는 26%로 떨어졌다. 알제리 몫은 미국이 차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은 460%까지 치솟은 것이다. 스페인이 수입하는 천연가스 중 미국 셰일가스 비중은 37%를 차지한다. 셰일가스는 심지어 바스크와 나바라 지역의 소규모 가스관을 통해 프랑스로 재수출되기까지 했다.

스페인은 알제리 없이 괜찮을까? 6월 중순, 관계가 나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6월 20일, 알제리 관광부 장관은 알제리 여행사들에 “스페인과의 모든 관광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를 유럽 위원회에 호소했다. 알제리의 제재 조치가 2005년 유럽연합과 체결한 EU-알제리 제휴 협정에 반한다는 논리로 알제리 당국을 설득해보려는 심산이다. 혹시라도 알제리가 정말 가스관을 잠글 경우 스페인은 국제 중재 소송을 벌일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나 사건이 불러온 스페인 내부분열을 이용해 산체스 총리의 ‘배신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알제리 당국의 태도는 확고하다. 스페인 장관 두 명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알제리 제재조치 배후에 러시아의 영향이 작용했다고 고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페인이 취한 제재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알제리와 협력해 스페인을 공격하려 한다고 말이다. 이 같은 고발은 알제리의 화만 더 돋웠을 뿐이다.(3) 

알제리-스페인 외교갈등은 2023년 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 입법부의 임기가 끝나는 시기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알제리는 화해를 고려하기 전에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정권을 내려놓게 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글·이그나시오 셈브레로 Ignacio Cembrero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Madjid Zerrouky, ‘“ProjetPegasus” : l’Algérie très surveillée par le Maroc 페가수스 프로젝트 : 알제리를 철저히 감시하는 모로코‘, <Le Monde>, 2021년 7월 20일.
(2) Lakhdar Benchiba etOmar-Lotfi Lahlou, ‘Bras de fer entre le Maroc et l’Algérie 모로코와 알제리, 팽팽한 힘겨루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월호. 한국어판 2022년 2월호.
(3) ‘Madrid officialisel’insultante campagne ‘‘main de Moscou’’ à Alger 스페인 정부,  ‘러시아가 배후세력’ 알제리 고발 공식화’, <24hdz.com>, Alger, 2022년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