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마지막 원전의 운명은?
원자력을 지지하는 환경운동의 역설
과연 탈원전이 정답일까?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환경운동가 사이에서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가뭄, 화재 등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닥치자, 그토록 단단했던 확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환경운동’과 ‘친핵’.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헤더 호프(43)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능하다”라고 답한다.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자전거 타기와 걷기를 선호하며 중고 전기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헤더 호프는 캘리포니아의 마지막 원전이자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2025년 폐쇄할 예정인 ‘디아블로 캐니언’에서 원자로 운전원으로 일한다.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원전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중간 지점에 있다. 원전 주변을 둘러싼 고요하고 광활한 계곡에는 누런 소떼가 한가로이 거닌다. 디아블로 캐니언의 원자로 2기는 큰 농장만한 부지에서 캘리포니아 전력의 10%를 생산한다. 이는 무탄소 전력의 절반 이상 되는 생산량이다.
“100% 재생에너지는 허황된 꿈이다”
“원자력에너지야말로 환경에 유익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래 등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싶었다. 원자력에너지를 지지하는 것은 결국 그 길로 연결된다.”
자칭 ‘궁극적 환경운동자’, 헤더 호프는 샌 루이스 오비스포 중심가의 한 주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일터를 사수하고자 고용주인 PG&E에 반기를 들었다. 또한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환경운동의 원칙에 맞서 미국 원전의 재활성화를 주장했다. 그녀는 목에는 토륨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토륨은 미약한 방사선을 내뿜는 형광성 물질이다. 그녀가 나눠준 스티커에는 ‘I ♡ U235’라고 적혀있고, 작은 전자들이 하트 주변을 맴도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원전이 폐쇄되면 화석연료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나도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16년, 운영기간이 40년에 이르는 다른 원전과 마찬가지로 디아블로 캐니언도 가동을 연장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PG&E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전 가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PG&E는 재생에너지를 전력망보다 우선시하는 캘리포니아 규정으로 인해 원전이 절반만 가동되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아블로 캐니언은 2013년에 폐쇄된 산 오노프레에 이어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폐쇄되는 원전이다. 2013~2025년, 캘리포니아는 에너지 믹스에서 원자력 비중을 약 20%에서 0%로 완전히 없앨 계획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비중을 3배로 늘릴 예정이다.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디지털산업(애플, 구글, 페이스북, 우버 등)의 요람인 캘리포니아는 환경보호의 선두주자가 되길 원한다.(1) 따라서 몇 년 전부터 탈원전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다. 2045년까지 전력을 무탄소화하고, 2035년부터 엔진 차량 판매를 중단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양의 추가 전력이 요구된다.
헤더 호프는 미래의 전력수요량과 무탄소화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원전폐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엔지니어 동료인 크리스틴 제이츠와 함께 지구의 날을 맞이해 ‘마더즈 포 뉴클리어(Mothers for Nuclear, 원자력을 지지하는 엄마들)’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여성 시위대가 지구온난화를 막고 아이들이 살기 좋은 미래를 위해 원자력에너지가 불가피함을 주장하고 있다. “원전 운영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드물다. 환경운동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이야말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녀는 강조했다. 헤더호프는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도 함께 가야 하지만, 이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밀도가 낮고 공급량이 일정하지 않다”라며, “이 두 가지만으로 현재는 물론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마더즈 포 뉴클리어 간부이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제니퍼 클레이가 설명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훌륭한 에너지원이지만,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쬘 때만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원자력에너지는 24시간 내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 클레이의 설명에 따르면, 디아블로 캐니언을 폐쇄하고 전력 공급을 100% 재생에너지로 바꾼다는 계획은 허황된 꿈이다. 헤더 호프는 원자력에너지를 캘리포니아 에너지 믹스의 ‘탄탄한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에너지는 한산한 시간대의 전력수요를 전량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를 재생에너지(수력, 태양광, 풍력, 지력)가 채우면 된다.
마더즈 포 뉴클리어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탄생했다. 심지어 원자력 업계에서도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기후변화, 가뭄, 화재가 캘리포니아의 최대 위험요소로 등극했다. 이에 따라 원전폐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더즈 포 뉴클리어는 든든한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작년 11월에 발표된 MIT와 스탠퍼드대학과의 합동 보고서는 강력한 첫 방을 날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아블로 캐니언 운영기간을 10년간 연장할 경우, 탄소배출량이 10% 감소하고 캘리포니아의 가스 의존도도 덩달아 낮아진다.(2)
원전 운영을 2045년까지 연장할 경우, 전력망 비용을 210억 달러까지 절감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에 필요한 토지면적을 364㎢ 줄일 수 있다. 또한 보고서는 디아블로 캐니언을 활용해서 담수화 공장에 전력을 공급해, 캘리포니아의 만성적인 식수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올해 2월 초, 과학자 75명이 원전 수명을 연장해달라는 내용으로 공동서명한 서신을 민주당 출신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보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에너지 장관으로 일했으며,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추도 이에 동참했다.
기후운동을 위해 원자력을 지지한다?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무작정 전진하기에 기후변화 위기는 너무 긴급한 현실이다. 디아블로 캐니언을 폐쇄한다면, 2045년까지 전력 100% 무탄소화 목표는 실현시키기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비용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기환경국(CARB)에 따르면, 산 오노프레 원전폐쇄 이후 전력 생산으로 인한 캘리포니아 온실가스 배출량은 35% 증가했다. 만성적인 가뭄 때문에 수력발전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서, 화력발전소가 부족한 전력수요를 충당했기 때문이다.(3)
수도 워싱턴DC에는 원자력협회(NEI)가 버젓이 존재한다. 원전을 소유한 전력회사들이 협회에 대거 포진해있다. 그러나 이 회원사들은 화력발전소(가스, 석탄 사용)도 보유하고 있다. 원자력에너지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키는 “회원사들이 원자력에너지를 중요시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에드워드 키는 정부 및 기업 고문이자『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저자다.(4)
협회는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만큼,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모순이 뒤얽힐 수밖에 없다. 마더즈 포 뉴클리어는 그 틈을 뚫고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단체를 설립한지 6년 만에 트위터 팔로워 수가 5,600명에 달했다. 그 후광은 독일의 한 여성 환경운동가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2020년 9월, 그녀는 유럽 지부 창설을 제안했다. 2022년 7월, 마더즈 포 뉴클리어 유럽 지부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모였다. ‘지속가능한 환경프로젝트 목록’에 원자력에너지를 포함시키겠다는 유럽연합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놀랍지만 캘리포니아가 처음부터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원자력은 수력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수력발전소가 수생 동물군을 파괴하고 저지대를 범람시킨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석탄이 그나마 덜 유해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와 위협에 대한 인식이 바뀜에 따라 입장도 달라졌다. 1970년대 초, 원자력에너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캘리포니아 환경운동가의 관심사는 발전소 부지를 축소하는데 집중됐다(본래 디아블로 캐니언에 원자로 6기를 지을 예정이었다). 펜실베이니아의 스리마일 섬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1981년, 2천 명 가량이 디아블로 캐니언 건설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이는 미국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원전 반대 시위로 기록됐다. 그러나 올해 4월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집회에 참석한 디아블로 캐니언 반대자들의 연령을 보면 알 수 있듯, 그토록 완고했던 반핵 활동가들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가는 레몬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축복받은 지역이었다. 영화 <시민 케인>의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됐던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20세기 초반에 로스앤젤레스 북부 근교에 그 유명한 ‘재너두’ 대저택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캘리포니아는 어김없이 건조한 여름을 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에 전력 소비량(주로 에어컨)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태양에너지가 생성되지 않는 저녁시간대는 전력공급에 큰 부담이 된다. 결국 캘리포니아는 대규모 정전사태를 피하기 위해 화석에너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5)
몇 년째 지속되는 ‘밀레니엄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전대미문의 급수제한 조치도 시행됐다. 전력망은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형 화재의 원인이 돼버렸다. PG&E도 2018년 ‘캠프파이어’ 산불 사건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장비 관리 부주의가 화재 원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당시 화재로 인해 캘리포니아 지도에서 파라다이스 마을이 사라졌고, 건물 1만 9,000채가 무너졌으며, 85명이 사망했다. 2019년 1월, PG&E는 배상금 30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6)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 개발로 전력 생산망이 분산화됐지만, 캘리포니아 전력망은 이에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디아블로 캐니언 폐쇄 이후 수력에너지에 의지할 계획이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원자력과 더불어 무탄소 에너지의 주축’이라 일컫는 수력에너지도 미래에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서부 전역의 강과 댐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수력발전 생산량은 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기후운동가 사이에서 원자력을 지지하는 행위는 ‘배신’ 또는 ‘신성모독’이다. 폐기물 처리, 안전사고, 관리 부실, 토지 오염, 원료 공급 등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7)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영국 환경단체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대변인이었던 시온 라이츠와 같은 ‘전향자’는 점점 늘고 있다. 채식인이자 금주운동가인 그녀는 극단적 비관론자의 주장과 구체적인 대안의 부재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결국 멸종반란과 멀어졌다. 그녀는 “현안에 맞는 규모와 속도로 탄소배출을 줄일 현실적인 대책은 원자력에너지가 유일하다”라고 주장한다.(8)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위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세웠는데,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리는 시나리오 말고도 전 세계 원전을 늘린다는 계획도 이에 포함돼 있다. 시온 라이츠는 기후변화 해결책 모색에 ‘논리적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화석 대 원자력, ‘차악’은 무엇인가?
독일에서는 지난 20년간 시행해온 에너지 정책을 두고 녹색당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 독일 역사학자이자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아나 베로니카 벤드란트는 한때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했지만, 현재는 “녹색당의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은 불합리하다”고 비난한다.(9) 이런 ‘배신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민심을 어느 정도 뒤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기후운동가를 포함해서 이런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원자력에너지 대신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원전을 굳이 폐쇄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는 화석연료가 충분하다. 특히 수압파쇄법이라는 혁신적인 석유·가스 추출법으로 2000년대 말부터 생산량이 폭증함에 따라 세계 최대 석유·가스 생산국으로 등극했다. 이에 따라 20년간 포기하다시피 했던 10여 건의 원전 프로젝트는 모두 백지화됐다. 에드워드 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천연가스는 매장량이 엄청나고, 가격도 저렴하다. 가스발전소도 순식간에 지을 수 있다. 원전을 짓는 것보다 저렴하고 쉽다. 현재 미국은 석탄발전소를 가스발전소로 대체한 것만으로도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했다. 가스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만만치 않지만, 석탄발전 배출량의 절반에 불과하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전체 배출량이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 상태다.”
원자력에너지에 우호적인 국가들도 셰일가스의 풍부한 매장량과 낮은 가격에 혹해서 원전 건설을 망설이는 추세다. 미국은 가동 중인 원자로가 93개인 세계 최대 원전 보유국이지만, 정작 원자력산업의 실정은 좋지 않다. 미국 전기 생산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며, 이 방면에서 세계 최고인 프랑스와 격차가 심하다. 특히 민간부문의 비중이 높은데, 원자로 폐쇄와 기술자의 은퇴와 함께 노하우가 사라지고 있다. 현재 유일하게 건설 중인 두 원자로(조지아의 보글 3호, 4호)도 늘어나는 추가경비와 함께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워싱턴주는 2019년에 ‘청정에너지 전환법’을 채택했는데, 이 환경법에 따라 전기회사들은 2030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한 내에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수력발전이 한계에 다다르자, 워싱턴주는 새로운 타입의 원자로를 개발하기로 한다. 바로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다. 우선 컬럼비아 강변에 SMR 4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스타트업 회사도 와이오밍주의 케러머에 있는 석탄발전소 부지에 SMR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구에 새로운 원전을 짓는 비용은 상당하다(그에 비해 아시아는 훨씬 저렴하다). 반면 디아블로 캐니언처럼 오래된 원전은 건설비용의 감가상각이 이미 오래 전에 완료됐다. IEA에 따르면, 이처럼 ‘오래된’ 원전은 유지비용을 감안해도 미국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무탄소 전력 공급원이다. 그 다음으로 저렴한 전원은 태양발전과 지상 풍력발전이다. 그 다음은 신규 원전인데, 이전 공급원에 비해 훨씬 비싸다. 가장 비싼 무탄소 전원은 해상 풍력발전이다.(10) 이 통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바이든 정부는 지난 4월 19일, 폐쇄위기에 놓인 원전들의 수명연장을 위해 6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주에 보조금이 배당된다면, 원전폐쇄를 재고하겠다고 마지못해 대답했다.(11)
원자력산업은 대부분 민영화됐지만, 폐기물 관리는 여전히 공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1982년, 미국 의회는 연방정부가 민간 원전 운영사들에 폐기물 매립 해결책을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원전에서 멀리 운송된 폐기물은 거의 없다. 연방정부는 일시적으로 네바다 주의 유카 산을 매립지로 선정했으나, 라스베가스에서 북서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서 현재 보류된 상태다.
그 결과, 폐기물은 40년째 60여 개의 원전부지에 그대로 묻혀있다. 연방정부는 계약위반을 이유로 원전 운영사들에 매년 수억 달러를 징수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는 현실성 없는 문제로 여겨지며, 영속적인 해결책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더즈 포 뉴클리어는 맹목적일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페기물은 원전부지에 매우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폐기물 저장용기는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자도 될 만큼 안전하게 밀폐돼 있다. 이처럼 폐기물을 외부로부터 완벽히 격리시킬 기업이 또 있는가?” 제니퍼 클레이는 이렇게 반문했다.
한편 원전 반대자들은 디아블로 캐니언의 주변에 지진 단층이 있다고 경고한다. 원전 주변을 가로지르는 3개의 단층 중 하나가, 원전 완공 이후 발견됐다. 디아블로 캐니언은 애초에 규모 6.5도의 지진을 견디도록 설계됐는데, 이후 7.5도까지 견딜 수 있도록 리모델링 됐다. 2003년, 산 시메온에서 6.5도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디아블로 캐니언은 버텼다. 그러나 후쿠시마처럼 9.1도의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몰려온다면?
기자 출신인 데이비드 와이즈맨은 디아블로 캐니언 폐쇄를 요구하는 ‘책임감 있는 원자력 사용을 위한 연맹(Alliance for Nuclear Responsability)’의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원전의 단점으로 시설낙후와 안전사고 이외에도 경제적 문제를 지적한다. “원자력에너지는 너무 비싸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원전 운영자인 PG&E가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는 에너지 절감 정책과 전력 추가 수입으로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와이오밍주의 풍력발전단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1,500킬로미터 이상에 달하는 고압 송전망이 구축되면, 몇 년 후에 캘리포니아까지 전기가 공급될 것이다. 세계 8위 부자인 워렌 버핏과 석유부자인 필립 앤슈츠가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수력은 친환경 에너지?
‘녹색 원전을 위한 캘리포니아인(CGNP)’의 법률고문인 진 넬슨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와이밍주의 새로운 전력원이 ‘청정하다’고 기대하는 건 산타클로스를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풍력발전단지는 바람이 거세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설립될 예정이며, 오바마 정부가 도입한 세금공제 혜택 덕분에 수익성도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총 전력량은 석탄발전소의 어마어마한 생산량에 비하면 훨씬 적다. 참고로 와이오밍주의 석탄발전소는 미국 에너지 소비량의 1/4을 공급하고 있다.
환경보호와 원전수호를 인생의 숙명으로 삼은 진 넬슨의 설명에 따르면, 워싱턴주처럼 석탄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더럽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하는 주도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는 그렇지 않다. 2009년, 캘리포니아주 입법부는 ‘상세불명의 수입품’이라는 완곡한 법적 표현을 써서 수입 에너지가 탄소발자국에 기록되지 않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와이오밍주가 캘리포니아주에 팔기로 약속한 친환경 풍력에너지는 ‘그린워싱’된 전기인 것이다. 진 넬슨은 “캘리포니아는 두 가지 면에서 패자다. 하나는 디아블로 캐니언을 잃는 것, 다른 하나는 원자력에너지보다 훨씬 반환경적인 전기를 더 비싸게 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은 태양광과 풍력처럼 에너지 발생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서, 에너지 저장 문제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낮 시간대에 생산한 태양광에너지를 다른 주에 손해를 보고 판매한다. 태양광발전소를 보유한 다른 주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리튬전지의 경우, 너무 비싸고 몇 시간 만에 방전되며 배터리 수명도 5~10년에 불과하다. 또 다른 선택지는 ‘양수발전’이다. 상류에 저수지를 만들어 잉여전력으로 물을 끌어올린 다음, 원하는 시간대에 물을 하류로 방출해서 터빈을 돌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캘리포니아주에는 헬름스와 캐스테익에 이미 양수발전소가 있다. 양수발전소를 추가로 지으려면 대대적인 공사와 대규모 부지 확보가 필요하며,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 나머지 방법들은 아직 실험단계이며, 투자규모도 미미하다.(12)
“원전이 사라지면, 가스업계에만 좋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는 재생에너지 개발에 여전히 열정적이다. 올해 봄에는 샌 루이스 오비스포 주민들과 언론을 대상으로 풍력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풍력단지는 디아블로 캐니언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건설될 예정인데, 원전폐쇄 이후 기존 전력망을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최초의 해상 풍력발전 계획의 일환이다. 설비용량은 3기가와트로, 세계 최대 해상 풍력단지인 ‘혼시1’보다 세 배 더 크다. 또한, 텍사스 발전 기업 ‘비스트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전지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위치는 석탄발전소가 있던 모로 베이로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다. 설비용량은 600메가와트이며, 리튬이온전지 18만 개를 건물 세 곳에 나누어서 보관할 계획이다. 지역언론은 이번 프로젝트가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고, 원전폐쇄 이후 손실이 불가피한 캘리포니아주에 새로운 수입원이 돼줄 것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PG&E는 원전 주변의 자연보호구역은 북부 추마시 부족에게 돌려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주민 입장에서 원전폐쇄는 뜻밖의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스콧 라스롭 부족장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때까지 원전 운영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해상 풍력단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수백 개의 터빈을 만들어서 바다 한가운데로 운반하려면 항구를 건설해야 한다. 이미 보유한 원전보다 에너지 생산량도 적은 풍력단지를 짓기 위해, 1부터 10까지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한다. 디아블로 캐니언을 대체할 태양광단지와 풍력단지를 짓는데 필요한 토지면적을 생각하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그는 “캘리포니아에 원전이 사라지면, 결국 이익을 보는 건 가스업계”라고 예견했다.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Guillaume Pitron, ‘Quand le numérique détruit la planète(한국어판 제목: 지구를 파괴하는 디지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10월호.
(2) ‘An Assessment of the Diablo Canyon Nuclear Plant for Zero-Carbon Electricity, Desalination, and Hydrogen Production’, <Stanford Energy>, 2021년 11월, https://energy.stanford.edu
(3) ‘California Emissions Rise in 2012 on Gas-Fired Power Output’, <Bloomberg>, 2013년 11월 4일.
(4) Edward Kee, 『Market Failure : Market-Based Electricity is Killing Nuclear Power』, <Nuclear Economics Consulting Group>, Washington DC, 2021년.
(5) ‘To avoid blackouts, California may tap fossil fuel plants’, <Associated Press>, 2022년 6월 30일.
(6) ‘California Regulators Back PG&E Bankruptcy Plan’, <The New York Times>, 2020년 5월 28일.
(7) Gilles Balbastre, ‘Sécurité nucléaire, les risques de la dérégulati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4월호; Cédric Gouverneur, ‘Déchets radioactifs, angle mort de la relance du nucléair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5월호 / Teva Meyer, ‘Moscou et Pékin se partagent la planète électronucléaire(한국어판 제목: 긴장 모드의 세계 원전 시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6월호.
(8) ‘Extinction Rebellion : Nuclear power “only option” says former spokeswoman’, BBC.com, 2020년 9월 10일.
(9) ‘“Irrationale Atomangst”: Kernkraft-Expertin entlarvt die Doppelmoral der Grünen’, 2022년 7월 13일. www.focus.de
(10) ‘Levelised cost of electricity in the United States, 2040’, 2019년 11월 18일, www.iea.org
(11) ‘California promised to close its last nuclear plant. Now Newsom is reconsidering’, <Los Angeles Times>, 2022년 4월 29일.
(12) ‘The Renewable-Energy Revolution Will Need Renewable Storage’, <The New Yorker>, 2022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