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예술가들
2022년 3월, 포르투갈 연극계의 거물 조르즈 실바 멜루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 안 가 실바 멜루가 창립한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 극단이 작품을 제작하고 공연할 만한 장소를 새로 물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Artistas Unidos) 극단이 자리 잡고 있던 리스본의 폴리테크니카-파울루 클라루 극장은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단원들은 짐을 싸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야 한다. 리허설과 공연을 하고, 다른 극단에 장소를 대관하며, 전시회나 독서 홍보 회견이나 책 발표회를 열기 위해서, 수습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극단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단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끌어낼 수 있는가?’ 조르즈 실바 멜루(Jorge Silva Melo, 1948~2022)는 소위 말하는 ‘독립 극단’의 고질적인 불안정성과 재원 고갈에 대응하는 방법, 배우들을 감독의 전횡에서 해방해 ‘현대적’인 작품을 창작하고 선보이는 방안 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실바 멜루는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연극, 영화, 저술 활동뿐 아니라 문화, 사회, 정치 참여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는 말의 힘을 알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반향과 변화가 생기는지 알았으며,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연극을 만들 때 부딪히게 되는 난관이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지는 현실을 세상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도 알았다. 실바 멜루의 목소리는 극장뿐 아니라 언론과 페이스북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기성 언론이 비판 의식과 반성이 부족하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는 공연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73년에 루이스 미구엘 신트라(Luís Miguel Cintra)와 코르누코피아 극단(Teatro da Cornucópia)을 창단한 데 이어, 1995년에는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Artistas Unidos)를 창단하면서 새로운 10년을 열었다. 이 극단의 젊은 예술가들은 실바 멜루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잠재된 역량을 펼쳐 보였다. 하지만 공연계에서 배우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것은 점점 더 힘든 일이 됐다.
실바 멜루가 만든 작품의 시의성과 빛나는 지성은 나라 안팎에서 널리 인정을 받았다. 그는 배우와 연출가와 단체를 꾸려서 협업을 제안했고, 간행물과 연극 레퍼토리(그중 상당 부분은 직접 번역했다), 극작가와 시인 낭독회를 도입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실바 멜루는 특유의 문화적 배경과 경험, 현실과 참여의 필요성을 날카롭게 인식한 포르투갈 예술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코토비아(Cotovia) 출판사에서 내놓은 실바 멜루의 저서 세 권, 『삶을 남기다(Deixar a vida)』(2002), 『지난 세기(Século passado)』(2007), 『판은 차려졌다(A mesa está posta)』(2019)를 보면 감정 못지않게 윤리나 정치적 선택이 잘 드러나서 작가의 자유로운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가 런던 영화학교에서 공부한 영화와 문학부에서 접한 연극과 같은 예술 창작과 연계해 저술 활동을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다. 이 세 가지 창작 형태는 1980년대에 들어 불가분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실바 멜루는 파리에서 장 주르드외이(Jean Jourdheuil)와 배우로 활동하고, 베를린에서는 피터 슈타인(Peter Stein)과, 밀라노에서는 조르지오 스트렐러(Giorgio Strehler)와 견습 기간을 거친 후, 비로소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중도에서(Passemor A Meio Caminho)>(1980), <두 번 다시는(Nguem duasvees)>(1983), <8월(Agosto)>(1986~1988)을 제작했다.
1994~1995년에는 연극계로 복귀했다. 무용의 유연한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연극 제작 방식을 개편하고, 연출자의 권위를 탈피해 배우가 진정한 창작자로서 작품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내세웠다. 본격적으로 탈바꿈을 시작한 포르투갈 사회는 유럽중심주의와 자유주의를 열망했지만, 청년들에게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실바 멜루는 ‘대중적인 언어’로 현실과 대화하는 연극을 만들고자 했다. 2017년 <시나이스 드 세나(Sinais de Cena)>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한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을 좋아한다. 하지만 11월 25일의 역쿠데타의 여파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편으로는 정부 기관과 국고 보조금에 의존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행위로써 연극을 만들면서 불협화음과 갈등을 보여 주는 무대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포르투갈 대표작가 멜루가 남긴 극단, 문 닫을 위기에…
그렇게 해서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 극단은 정치적인 성격이 뚜렷한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세이샬시의 문데트(Mundet) 공장이 있던 건물에서 ‘무신론·무정부’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라 카피탈르-파울루 클라루 극장(La Capitale-Teatro Paulo Claro)에서 2년 반 동안 활약했다(이 극장은 2000년 8월 29일 리스본시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 극단은 리스본 대학교의 폴리테크니카(Teatro da Politécnica) 극장을 설립하기도 하고,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서 극단 본연의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처럼 강렬한 창작기를 거치면서 극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여러 관행이 탄생했고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텍스트 중심주의와 함께 각국의 현대 작가(이탈리아, 남미, 스코틀랜드, 북유럽, 그리스어)의 작품들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좀 더 최근의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아서 밀러(Arthur Miller) 같은 작가의 대표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밖에도 포르투갈의 조제 마리아 비에이라 멘드스(José Maria Vieira Mendes), 후이 길례르므 로페스(Rui Guilherme Lopes), 미겔 카스트루 칼다스(Miguel Castro Caldas), 프란시스쿠 루이스 파헤이라(Francisco Luis Parreira), 마누엘 위보르그(Manuel Wiborg)도 무대 안팎에서 글쓰기와 창작 혁신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 작품 중 일부는 전국에서 공연됐고, 출판으로 이어지면서 연극 레퍼토리로 자리 잡거나 대중 서가를 장식하기도 했다.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 극단의 행동 강령은 ‘자유의 한계’에 도전하고 배우의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실바 멜루의 저서 『삶을 남기다(Deixar a vida)』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배우가 자신을 소외시키고 그 안에서 하나의 장치가 돼 버린 생산의 수단을 쟁취해 낸다면 극장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배우가 저자를 직접 만나서 텍스트에 나오는 세상과 대사를 마주하게 된다면 말이다. (…) 왜 연극을 하는가? 답은 오직 하나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자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이다.”
폴리테크니카 극장이 사라지면서 리스본 문화생활에서 리스본 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아르티스타스 우니두스가 27년 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독특한 조직 형태는 대단한 유산일 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도 리스본시는 정말 이 극단이 운영을 중단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글·마리아 주앙 브릴랸트 Maria João Brilhante
리스본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