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위기는 어떻게 오는가?
인플레이션, 이례적 호황을 누리는 산업분야, 에너지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 러시아 제재는 특히 유럽대륙에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은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오히려 경제의 숨통만 더 조이려 한다. 유로존의 경제는 점차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번번이 엄격한 신자유주의 기조의 정책들이 다가오는 태풍의 덩치를 키우곤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2년 여름,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1) 워싱턴에 소재한 이 기구는 2023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지난 1월에 견줘 2%p 더 낮춰 잡았다(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조정 때 보다 훨씬 더 큰 폭이었다). 경제 손실 규모만 1조 7,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가히 캐나다 전체의 경제 규모와도 맞먹는 충격파다.
경기 전망 변화는 프랑스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풍요의 종말’을 각료들에게 경고했다. 수개월 사이, 대통령의 어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 대선전 때만 해도, 마크롱 후보는 2027년 완전 고용을 실현하겠다며 큰소리쳤다. 밝은 경제 지표도 낙관론에 무게를 더했다. 2021년 3·4분기, 프랑스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분기별 GDP 규모를 회복했다. 2021년 말, 고용률도 기존 최고기록 대비 견줘 3%p 상승했다. 팬데믹 사태의 충격이 급격하고도 돌발적이었던 만큼, 이후 경제의 회복속도 역시 가팔랐다. 전 세계에 희망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회복에의 기대, 그러나 균열의 조짐
세계는 조화롭고 강력한 경제정책, 새로운 기술(신세대 백신 개발, 기업의 디지털 기술 등), 새로운 노동형태(재택근무 등)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충분히 경제를 보호하는 버팀목이 돼줄 것이라 판단했다. 코로나로 인한 제한조치가 해제되면, 서서히 경제성장률도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21년, 여기저기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산이 정상화되고 경제가 활기를 찾자, 문제의 심각성이 다소 덮였지만 말이다. 잇따른 유행은 지구촌 각 지역을 동시다발이 아니라 각기 시차를 두고 강타했다. 매번 새로운 변이가 유행할 때마다 세계경제의 한 축이 고통을 받았고, 이어 생산사슬의 고리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으로 위기가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수십 년간 진행된 세계화로 오늘날 생산사슬은 훨씬 길고 복잡해졌다. 그런 만큼 공급난 문제는 심각했다. 일부 부품만 공급난을 겪어도, 생산 프로세서 전체가 멈췄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다.(2) 생산에 문제가 없을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항구 봉쇄나 항공운송 지연으로 인한 상품 운송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다국적 운송회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공급제한, 운송료 인상으로 이례적 호황을 누렸다. 해상운임지수(FBX)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한 대의 평균 운임료는 2020년 1월 1,400달러(3)에서 2021년 9월 1만 1,000달러로 급등했다. 2022년 9월 중순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코로나 사태 이전(4,700달러)보다 높은 운임료를 기록했다. 중간투입(=중간소비) 가격 인상은 생산 프로세서 전 단계로 확산됐다. 설상가상으로 투기세력이 설치면서 원자재 가격도 폭등했다. 2021년 12월, IMF가 추산한 중간투입(=중간소비) 가격지수는 2019년 동월 대비 56% 치솟았다.
한편, 미국의 재정정책마저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했다. 프랑스가 추진한 ‘얼마의 비용을 치르더라도’ 정책에 해당하는 미국판 정책은 미국인의 구매력을 유지시키는 것을 넘어 확대시켰다. 높은 실업률에도 미국의 가계소비는 놀라울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미국의 재화 소비 수요, 특히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다국적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미국 시장에 몰려들었고, 지구촌 다른 지역에는 공급난이 심화됐다.
글로벌 충격파로 직격탄을 맞은 프랑스
전 세계 지도자들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 안심했다. 일상이 정상화되면 공급망도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새로운 충격파가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먼저,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하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더욱 강화됐다. 각종 공격적인 제한조치로 중국 경제의 심장부(특히 청두와 선전)가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에너지자원의 가격의 폭등을 부채질하고, 가스를 비롯한 일부 중대한 에너지원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했다. IMF가 추산한 에너지자원 가격지수는 2022년 1·4분기 동안 43% 상승했다. 코로나 이전 대비 무려 162%가 높아진 셈이다.
고립된 섬이 아닌 프랑스도 글로벌 충격파로 직격탄을 입었다. 소비자물가지수로 측정한 인플레이션은 2022년 8월 5.9%에 달했다. 심지어 연말에는 7%에 육박할 것이라고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는 전망했다. 1970년대 이후 유례가 드문 물가상승률이다. 최근 수개월 간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은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다. 올해 정부가 에너지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실시한 각종 보조금 지원 및 가스 전기 요금 인상 제한조치에도 불구하고, 연중 에너지 비용은 23%나 급증했다.
또한, 가격 상승은 다른 소비 품목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식료품 가격 폭등은 빈곤층의 고달픈 나날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INSEE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은 미래 경기 전망에 비관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가계 지출에서부터 그 여파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22년 1・4분기 가계 소비 위축의 여파로 GDP가 0.2% 감소했다.
에너지 위기에 내몰린 프랑스, 원전 보수에 촉각 곤두세워
아직 세계 경제의 위기는 절정에 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비교적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상황에서조차, 현재 에너지 위기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다. 수년간 원자력 설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까닭에 일부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단된 원자로의 유지보수 작업이 얼마나 제때 이뤄지는가에 따라 향후 프랑스 경제의 활력도가 좌우될 것이다. 프랑스 송전공사(RTE)는 “단전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4)라고 경고했다. 정부 당국까지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가운데, 혹독한 겨울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공공 에너지 서비스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각 가정의 전기·가스 요금 부담이 앞으로 훨씬 더 높아질 것이란 점이다. 현재도 이 요금 부담은 총 가계 지출의 5%를 차지할 정도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3년 에너지 정책은 지금보다 다소 느슨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정부는 2022년 4%였던 전기·가스 인상 상한률을 2023년 15%로 완화하기로 했다.
왜곡되는 부가가치 분배
이런 상황에서,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는 산업분야가 있다. 에너지, 정유, 운송이 그것이다. INSEE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이 세 가지 부문이 올린 누적이익은 2022년 2·4분기 프랑스 경제가 창출한 총 부가가치의 6.6%에 달했다. 팬데믹 발생 이전에는 3.8%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5) 사실상 대대적인 자본 이동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노동자 임금을 비롯해 다른 산업분야의 수익이, 날로 지대추구 경제를 닮아가는, 세 가지 산업분야로 줄줄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 세 분야가 누리는 수익은 혁신에 의한 것도, 특수한 리스크를 감수한 대가도 아니다. 소수 독점자가 지배하는 상당히 중앙집중적인 분야에 불과하다.
해당 기업들은 대개 특수한 지위를 누리는 한편, 종종 나머지 경제에 불이익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실 향후 대다수 국민의 구매력이 약화되고 공급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 이례적 호황을 누리는 부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올해 1·4분기 프랑스에서 이 세 부문이 올린 수익은 2019년 동기 대비 무려 400억 유로나 증대됐다.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정부가 2023년 에너지 가격 급등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애한 예산이 180억 유로라는 사실을 기억해보길 바란다.
부가가치 분배의 왜곡 외에도 또 다른 문제점이 또 있다. 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수입품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국내 구매력 손실이 내수 경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해외사업자의 지갑만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INSEE에 따르면, 에너지를 비롯한 수입품 가격의 부정적 추이는 프랑스 GDP의 1.5%p에 해당하는 국가소득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추산됐다.(6) 이런 상황은 재화 및 서비스 부문에서의 무역수지 적자(이미 2022년 2·4분기 GDP의 4%p를 넘어서며 최악을 기록)를 훨씬 더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적인 측면에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두 화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훨씬 더 강력한 정책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이차적으로는 실업을 억제해야 할 임무를 띤 두 기관은 소비자 물가 상승 추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속한 기준금리 인상조치를 단행하며 강력한 통화 긴축정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잭슨홀에서 열린 중앙은행 연례회의에서, FED 의장은 곧 단행할 금리 인상에 대해, “가계와 기업에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치러야 할 유감스러운 대가”라고 설명했다.
현재 위기, 세계를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시각은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중앙은행의 정책적 지렛대는 결코 공급난이나 에너지 가격 폭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ECB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공신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응에 나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무조건 목표로 삼은 물가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경제부문의 가격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려면 임금 인상 요구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침체된 경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임금-물가가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악순환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현재 그와 같은 악순환의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각국은 대출 비용을 높이는 바람에 결국 가계 구매력을 지탱할 만한 정책적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그동안 저리의 유동성으로 도박을 즐기던 금융투기꾼들은 이제 역전된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처지다.(7) 대표적인 예로 암호화폐 대폭락 사태가 이런 현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만일 현 위기가 재정위기로까지 비화된다면, 향후 경기침체의 규모는 지금의 예상과는 전혀 차원이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서브프라임’ 위기 때는 중국 경제가 동력이 돼준 덕분에 신흥국이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위기는 전 세계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 진정한 세계화의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화는 이미 여기저기 균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을 보라. 팬데믹 사태의 대표적 원인은 시스템적 환경위기, 특히 신흥국의 무분별한 자연환경 착취다.(8) 이렇게 시작된 위기는 현재 공급망 봉쇄로 인해 세계 곳곳으로 여파가 확산되고, 일부 다국적기업들이 누리는 시장 권력에 의해 악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십 년에 걸쳐 추진된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거버넌스의 토대들 역시 위기의 규모를 더욱 증폭할 위험이 크다. 한 마디로, 이제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글·라울 상포냐로 Raúl Sampoganro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OFCE) 분석·전망팀 소속 경제학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Un horizon sombre et plus incertain 암울하고도 불투명해진 전망’, <Perspectives de l’économie mondiale 세계경제 전망>, IMF, (Washington), 2022년 7월.
(2) Evgeny Morozov, ‘Les semi-conducteurs au centre de la bataille planétaire 글로벌 전쟁의 중심부가 된 반도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8월호.
(3) 2022년 9월 20일 환율 기준, 1달러는 거의 1유로에 가깝다.
(4) 2022년 9월 14일 기자회견.
(5) INSEE가 발표한 국민계정.
(6) Victor Amoureux, Nicolas Carnot, Thomas Laurent, ‘Termes de l’échange et revenu intérieur réel : mesurer le pouvoir d'achat de la nation 무역과 실질국민소득의 관계 : 국민 구매력 측정’, INSEE 블로그, 2022년 9월 9일.
(7) Frédéric Lemaire, ‘Cette dette dont les créanciers raffolent 채권자가 열광하는 채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9월호.
(8) Andreas Malm, 『Le chauve-souris et le capital : Stratégie pour l’urgence chronique 박쥐와 자본 : 만성 긴급성을 위한 전략』, La Fabrique,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