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차별하는’ 장애인 정책
갈수록 부족해지는 복지예산
프랑스의 장애인 수는 1,200만 명에 달한다. 그중 약 50만 명이 장애인 보호시설에 거주한다. 이는 강한 비판을 불러왔고, 유엔(UN)은 시설의 폐쇄를 종용한다. 기관 수호인가, 포용 정책인가? 토론은 과장된 국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압도하며 다른 문제를 덮는다.
장애 관련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수많은 관련 기관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AAH, AGEFIPH, IME, SESSAD, DITEP 등의 기관은 장애를 개인, 병리학, 제도기관, 사회보조금 등의 기준으로 범주화한다.(1)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언론의 관점, 즉 피상적이고 불완전하며, 둔감한 시선 앞에서 좌절된다. 우여곡절 끝에 장애를 ‘극복’한 영웅, 영웅의 분노, 그리고 이를 ‘포용력 있는 훌륭한 행동’으로 여기는 시선 등. 신문 지면에는 장애와 관련한 사건들과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현실에서는, 장애인 시설에 학대 사건이 일어나며, 승강기 고장으로 이동의 자유가 사라지고, 장애인 출입이 불가능한 건물이 생기고, 장애인 아동들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드물다. 시민의식과 연대의식, 이타성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임에도 말이다. 2021년 7월, 지롱드 지역 내 한 중복 장애인 보호시설 운영진은 장애인 3명이 간호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던 30대 장애인으로, 시설의 인력 부족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몇몇 지역 신문에 보도되는 데 그쳤다. 비슷한 죽음을 맞은 이들이 더 있을까? 몇 명이나 될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17.8%를 차지하는 이들의 삶
2022년 프랑스 장애 인구는 약 1,200만 명, 전체 인구의 17.8%에 달한다. 이들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2)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 운동 장애인, 정신 장애인이나 자폐성 장애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겠는가? 이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제외하면 말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부 분야에서 장애인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무학위자(장애인 29%, 전체 13%)나 실업자(장애인 15%, 전체 8%) 비율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10명 중 3명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고립된 삶을 사는 경우는 2배 이상 많다. 프랑스 인권위원회가 7월에 발표한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는 5년 연속 차별의 주된 이유로 꼽혔다.
과거 법안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1975년 6월,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 인권선언문 채택이 예정된 12월 9일을 몇 달 앞두고 프랑스 입법부는 선언문 전체를 국가 의무로 삼았다. 또한, 1987년 7월 10일 법령은 직원 2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의 6%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쿼터제를 도입했다. 최근 도입된 주요 법안은 2005년 시행된 것으로, 장애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고자 재정적, 인적, 물적 원조를 제공한다. 2019년 장애 관련 공공부문 지출은 510억 유로에 달한다.(3)
이런 조치는 제도 재편성 및 소득계산 개별화에 대한 격렬한 논쟁거리가 된다. 최근 성인장애수당(AAH)에서 도입한 ‘부부소득 개별화’ 캠페인처럼 말이다. 2021년 시민들과 관련 단체의 열띤 사회운동 끝에, 국회는 지난 7월 장애수당 계산 시 배우자의 소득 합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975년 도입된 장애수당은 노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약 122만 명에게 지급된다.(4)
시민단체들의 기나긴 투쟁은 이 결정으로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참여한 단체들의 특성은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1933년 소아마비 장애인들이 창립한 APF 프랑스 앙디캅(APF France Handicap)은 강한 영향력을 지닌 장애인 단체다(과거 ‘프랑스 마비 장애인 단체’로 불렸다). 한편, 장애인 평등해방투쟁연대(CLHEE)는 완전히 반대 성격의 단체다. 장애의 유형이나 주요 대상층이 누군지에 따라 다양한 시민단체가 만들어진다. 인권 보호, 치료 지원, 취업 지원 등 설립 목적도 천차만별이다.
이들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공공기관, 주로 지적 장애인이나 중복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장애인 복지기관에 대한 의견이다. 기관 운영진들은 시설을 현대화함으로써 기관을 계속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폐쇄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쟁점을 이해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몇 세기 동안 장애인 돌봄 의료계와 종교계가 맡아, 주로 자혜병원과 구빈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1901년부터 점차 시민단체에 자리를 내줬다.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지원 아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설립한 장애인 단체는 점점 늘어났고,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주요 단체로 프랑스지적장애인단체총연합(UNAPEI), 아동·성년장애인협회(APAJH), APF 프랑스 앙디캅 등이 있다.
장애인 시설을 둘러싼 딜레마
오늘날 ‘기관’이라는 단어는 20세기 동안 그곳에서 행해진 온갖 종류의 학대를 연상시킨다. 피해자 중에는 2차대전 당시 민간인 부상자도 있다. 몇만 명의 환자들이 제대로 간병 받지 못해 죽거나, 정신병원 담벼락 뒤편에서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 2016년, 인류학자 샤를 가르두와 프랑스 인권위원회 전 부회장 마리본 리아지드의 노력 끝에 파리에 있는 인권 광장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5)
전후 몇십 년 동안 수많은 장애 아동이 정규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아이들은 편의상 보호시설이나 대형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이런 곳은 기숙사 생활이나 학대, 때론 성추행으로 악명 높기 일쑤였다. 교육과정에 등록하거나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성년이 돼서도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몇몇 선구적 기관을 제외하면 19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개방적인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시설에 상주하는 정원은 줄이고 한시적 방문을 늘렸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장애인 해방운동이 전개되던 사회적 시류에 발맞춘 결과였다. 정부가 “의료사회복지의 공급 변화”라고 부르던 현상이 잇따랐다. 의료사회복지 분야의 도움을 받는 장애 아동은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정신 장애인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포용 정책이 고안됐다.
사회사업총감독국(IGAS)은 총 54만 곳에 자리한 1만8000개의 복지기관을 감독한다. 단체의 규모나 주요 대상층, 하는 일은 다양하다. 장애인의료쉼터(FAM)와 장애인전문보호시설(MAS) 같은 곳은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단순한 교육 지원 서비스부터 지속적인 돌봄 서비스까지 폭넓은 업무를 아우른다.(6) 최근에는 장애인들끼리 4~6명씩 모여 사는 ‘포용적 주거’ 양식이 등장했다. 장애인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며 사회에 잘 통합되도록 고안된 주거 방식이다.
인류학자 샤를 가르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삶은 비상식적입니다. 가족을 잃었거나 의탁할 곳이 없는 이들은 집을 대신할 곳이 필요합니다. 장애인 시설을 폐쇄한다면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정말로 더는 갈 곳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기관’이라는 용어에서 벗어나 이제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합시다.” 옹호론자들은 개인의 필요에 맞춰 기관이 변화해야 하며,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점도 있다. 가족에게 모든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 형제자매에게 이곳은 버팀목이자 쉴 곳이 돼준다.
“주는 대로 받아라”는 차별주의에 맞서
하지만 ‘장애인 차별주의(Ableism)’에 맞선 운동가들에게는, 이런 기관은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다. 장애인 차별주의는 앵글로색슨 문화권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규범에 맞지 않는 이들이 겪게 되는 억압을 의미한다. 시민권 운동의 후발주자로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한 운동가들은, 1960년대부터 등장한 장애학 연구의 시발점이 됐다. 1970년대 ‘나쁜 장애인 운동’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시류는 프랑스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SNS, 특히 몇몇 트위터 계정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야당인 시민군단(Archipel citoyen) 소속 툴루즈 시의원 오딜 모랭이 있다. 모랭은 ‘통행료 무상화’ 작전(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주거 비율을 축소하는 새로운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자 이에 항의하고자 툴루즈 인근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요금을 받지 않고 차를 통과시키며 시위했다-역주)을 조직하고, 요구사항을 관철하고자 툴루즈-블라냑 공항 내 격납고와 도로를 가로지르며 시위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다.
장애인 단체 앙디-소시알(Handi-social)의 회장이기도 한 모랭은 이렇게 고발한다. “관련 기관들은 아직도 장애인 분리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의사결정 기관을 종횡무진하며 우리의 대변인인 양 말하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이 나올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장애인독립연대(CHA) 회원 마틸드 푹스가 덧붙인다. “오늘날 장애인 차별주의는 사회가 주는 대로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우리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권리를 지켜낼 것입니다. 각자 필요한 만큼 적절한 도움을 받으려면 단체가 아닌 개인이 보조금을 직접 받아야 합니다.”
투쟁가 세력은 소규모 시민단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2017년 이들에게 강력한 지지세력이 나타났다. 바로 유엔이다. 유엔 특파원 카탈리나 데반다스-아길라르는 장애인 권리 현황을 파악해 유엔에 보고하려는 목적으로 단기간 프랑스를 방문했다. 그가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을 둘러싼 “분리 시스템”을 고발하며 초기에 내린 보고서의 결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9년 최종 보고서는 시설을 점진적으로 폐쇄할 것을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7)
유엔에 고발된 프랑스의 “구조적 장애인 차별”
이 요청은 성적이 좋지 않은 다른 국가(캐나다, 노르웨이 등)(아래 박스기사 참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사항이다. “해당 국가에서 장애인이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더 나은 삶을 살 가능성을 제한하고 특정한 생활 방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2006년 채택되고 2010년 프랑스가 비준한 국제 장애인 협정 제19조에 의거한 판단이다. 협정문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어디서 살지, 누구와 함께 살지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특수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할 의무는 없다.”
2021년 8월, 유엔이 다시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3일에 걸쳐 장애인 인권위원회의 감사를 받으며 진통을 겪었다. 정부가 국제 장애인 협정을 준수하는 조처를 했는지 조사하려는 목적이었다. 유엔 특파원이자 리투아니아 출신 전문가 요나스 루스쿠스는 프랑스 사회복지 시스템에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을 고발했다. 정무차관 소피 클뤼젤과 내각 인사들은 대비를 단단히 한 듯했지만, 인권위원회가 퍼붓는 집중포화를 근근이 방어할 뿐이었다.
“유엔은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고자 충격요법을 택했습니다. 프랑스는 인권 보호의 성지처럼 여겨지지만, 장애인 인권에 대한 현실은 뒤처진 상태입니다. 국가인권보호고문위원회(CNCDH) 사무총장 마갈리 라푸카드의 분석이다. “카탈리나 데반다스-아길라르는 제도기관이 주는 안도감에서 벗어나 다른 모델을 모색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더 포용적인 접근법을 지원하는 거죠.”
장애인 시설 폐지, 대안이 있는가?
장애인 시설 운영을 중단할 경우 필연적으로 뒤따라올 포용 정책은 의료사회복지 분야의 새로운 길잡이가 되고 있다. 복지 서비스에 대한 심도 있고 복잡한 개혁이 필요하다. 주요 운영 단체들은 ‘장애인 차별주의’ 반대파가 왜 자신들을 비난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점차 규정을 유연화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유엔에 맞서 신속하게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했다. 아동・성년장애인협회(APAJH) 회장 장루이 르뒥은 이 점을 인정한다.
“우리 같은 기관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행동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 살길만 찾는다는 비난은 지나칩니다. 우리의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장애인 포용 정책 진일보에 초석이 됐습니다. 또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의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마저 중단된다면 수많은 장애인이 교육, 노동, 여가활동에서 멀어질 겁니다.”
문제의 핵심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엄격한 보호자적 관점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자유가 제한됐던 노인요양원이 대표적인 예다. 외르지역 지적장애인협회(ADAPEI 27) 회장 자크 세르페트가 설명한다. “시민의식이라는 절대적인 원칙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저는 유엔의 원칙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장애인 각자가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사는 것 말입니다. 장애인 보호작업장(ESAT) 같은 기관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1만 9,000명의 장애인이, 비노동자 신분으로 생산활동과 사회사업이 혼합된 구조의 1500개 일터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취업 시장에 통합시키려고 우리가 애를 써도 기업에서 우리 노동자를 고용하려 하지 않으면 어쩌죠? 우리가 돌보는 장애 아동들이 정규교육 명부에 이름조차 오르지 못했다면요?”
앞서 언급된 ‘포용적 주거’ 같은 작은 시설을 포함해 모든 장애인 기관을 폐쇄한다는 생각은 일부 가족들의 눈에 심각한 인권침해로 보인다. 중복 장애를 지닌, 장성한 딸이 있는 아마랑타 부르주아는 “차별받는 쪽의 의견은 빠져있다”라며 한탄했다. “인지 능력과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SNS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목소리는 빠져있어요. 제가 실내에서 지내는 삶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어요.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딸이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전문가들이 아이를 격려하고, 최소한의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회생활도 하며 즐거워해요. 팬데믹 사태로 집에 보호시설에 가지 못하고 집에 격리된 동안, 딸과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은 직접 봤어야 해요. 딸이 죽을 수도 있었어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질식할 위험이 있었는데 저는 딸아이를 들어 올릴 힘이 없었어요. 24시간 내내 병원 기자재 일체가 필요한 사람도 있어요. 가정집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죠.”
‘장애의 조건’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철학자 앙리자크 스티케르는 분열된 장애인 사회를 개탄한다. 각자가 자신이 가진 장애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분열이다.(8)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시야를 넓혀야 해요. 시설에 반대하는 의견도 나름의 이념과 논리가 있지만, 대안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장애인 인권, 프랑스 정치권의 관심 밖
장애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일각에서는 최근 고조된 대립을 우호적으로 해석한다. 파리도핀대학교 사회학 교수 피에르이브 보도는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대안이 나온다”고 믿는다.
“불협화음이 없었던 2010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당시엔 보호기관 폐쇄라는 선택지는 고려대상조차 되지 못했어요. 지금은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에요. 유일한 해결책이라서가 아니라 기본권을 아우르는 대안이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9) 공중보건고등연구원(EHESP) 소속 사회학 교수 에마뉘엘 피용도 의견을 같이한다. “좀처럼 한데 모으기 어려운 이견이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활발한 토론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에이즈의 경우 또한 그랬습니다. 환자가 생의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많은 공개 토론과 논쟁의 결과였습니다.”
사회운동, 과학, 직업에서 나아가 토론의 장을 넓혀보자. 장애인 인권은 정치 지도자들의 관심 밖인 데다, 정부는 유엔과 장애인 단체 양쪽에 충실한 태도로 균형을 잡고 있다. 거금을 들여 캠페인도 벌였지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한편, 전문 인력의 이탈로 돌봄 서비스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시설 운영진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그만두는 인력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결국, 임시직을 뽑는 수밖에 없었는데 비용은 더 비싸지만 숙련도는 낮은 인력이다. 새로운 입소자를 받기 어려워졌고, 시설을 일부 닫아야 할 형편이다.
장황설 끝에 세귀르(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인 자문단 회의)에서 내놓은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재평가는 한발 늦은 감이 있었고, 그마저도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직원 수는 곤두박질쳤다. 2022년 1월에 고용주 연맹 2곳에서 발표한 지표에 따르면, 보건의료, 사회복지, 의료사회복지 분야 비영리기관의 퇴직자 수는 2021년 6~9월 사이 3만 6,000명에 달했다. 관리직 퇴직자는 3만 명으로 추산된다.(10)
시설의 형편이 좋지 않다면, 재택 서비스는 어떨까? 어떻게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독립적인 삶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 돌보미 대부분은 학위가 없으며 저임금을 받는 여성이다. 자택에서 24시간 내내 상주하며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봉급도 적은 힘든 일에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돌보미의 근무환경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또한, 시스템의 무능을 묵묵히 대처하는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를 어떻게 잊겠는가? 개념과 권리, 그리고 그것을 현실에서 적용하는 문제 사이의 괴리는 점점 깊어져 간다.
글·레티시아 들롱 Laetitia Delhon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성인장애수당(Allocations aux adultes handicapés, AAH), 장애인노동사업기금운영회(Association de gestion du fonds pour l’insertion professionnelle des personnes handicapées, AGEFIPH), 의료교육원(Institut médico-éducatif, IME), 재택특수교육돌봄서비스(Service d’éducation spéciale et de soins à domicile, SESSAD), 치료및교육통합기구(Dispositif intégré des Instituts thérapeutiques, éducatifs et pédagogiques, DITEP).
(2) ‘Comment vivent les personnes handicapées 장애인들은 어떻게 사는가’, 프랑스 연구평가통계국(Drees) 문서, Paris, 2021년 2월.
(3) ‘Les comptes de la Sécurité sociale : Résultats 2019, prévisions 2020 et 2021 사회보장 회계: 2019년 결산, 2020년과 2021년 예상안’, Sécurité Sociale, 2020년 9월, www.securite-sociale.fr
(4) Charles Gardou, 『La société inclusive, parlons-en !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말하다』, Èrès, 2018,『La fragilité de source 근거의 취약성』, Èrès, 2022.
(5) ‘Minimas sociaux et prestations sociales 최저 소득과 사회보장 혜택’, 프랑스 연구평가통계국(Drees), fiche 24, 2021.
(6) ‘Mieux répondre aux attentes des personnes en situation de handicap 장애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사회사업총감독국(IGAS) 보고서, 2021년 10월.
(7) ‘Les droits des personnes handicapées en France. Rapport de la rapporteuse spéciale sur sa visite en France 프랑스 장애인 인권. 유엔 특파원 프랑스 방문 보고서’, UN, 2019년 3월.
(8) Henri-Jacques Stiker, 『Comprendre la condition handicapée 장애의 조건 이해하기』, Érès, Paris, 2021.
(9) Pierre-Yves Baudot, Emmanuelle Fillion, 『Le handicap cause politique 장애가 정치를 말하다』, Puf, Paris, 2021.
(10) ‘Crise des métiers du secteur sanitaire, social et médico-social privé non lucratif : premier baromètre des tensions de recrutement 비영리 민간시설 보건의료직의 위기 : 고용경직의 첫번째 지표’, Fédération des établissements hospitaliers et d’aide à la personne privés solidaires (Fehap)-Nexem, 2022년 1월.
‘예산상의 위험 부담’
장애인 복지의 구조적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회계 감사원은 2019년 보고서에서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1) 감사원은 ‘조사’를 확대해 ‘부정수급’을 잡으려 한다. 늘 그랬듯이. “현재 운영 중인 성인장애수당(AAH)은 불확실한 측면이 있고, ‘예산상의 위험 부담’으로 작용한다. 수급자와 지출액은 매년 인구보다 훨씬 높은 비중으로 증가하지만,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장애인담당부서(MDPH)는 대개 신청자가 선정한 의사가 작성한 진단서와 신청서만으로 수급자 선정 및 갱신을 진행하며, 개개인에 대한 조사는 없다. 수당 지급을 담당하는 가족수당기금(CAF)이나 농업공제기금(MSA)에서는 수급자의 소득과 활동만 조사할 뿐 적합성이나 장애 정도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 기관은 결정권이 없고, 의도적 부정수급을 잡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부정수급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글·레티시아 들롱 Laetitia Delhon (1) ‘L’Allocation aux adultes handicapés 성인장애수당’, 공공부문 주제별 보고서, 회계 감사원(Cour des Comptes), 2019년 11월. |
포용정책의 전도사 유엔
유독 프랑스만 장애인 시설을 유지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유엔이 2019년부터 발표한 ‘프랑스 장애인 인권 보고서’만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보고서는 시설이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며 ‘구조적 차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방문한 유엔은 그곳의 시설도 ‘수감소’로 간주하며 폐쇄를 요청했다. 국립 공예원(CNAM)에서 장애인 접근성을 연구하는 세르주 에베르솔드 교수가 “전문시설을 없앤 국가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시설 폐쇄요? 장애인 지원 서비스는 어디에서 제공합니까?” 유럽연합에서 최소 140만 명의 장애인이 시설에 거주한다.(1) “북유럽에서는 스웨덴이 가장 먼저, 1970~80년대에 시설을 폐쇄하고 방문 서비스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그 다음이 영국입니다.” 독립적 삶을 위한 유럽 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n Independent Living, ENIL)의 회장 이네스 뷸릭 코조카리우가 설명했다. “이탈리아, 독일 등 지방 분권화가 된 국가에서는 지역별로 다릅니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는 여전히 가족에 의존하고 공공 서비스의 한계가 큽니다. 시설은 중앙유럽, 동유럽, 발트해 연안 국가에 집중돼 있습니다. 소련 시절 유산이죠.” 세르주 에베르솔드에 의하면, 스웨덴에서는 장애아동 98%가 정규교육을 받는 반면, 벨기에에서는 대부분 특수교육을 받고, 프랑스는 그 중간지대로 50%의 장애아동이 정규교육을 받는다. 장애인 시설을 유지해온 영국은 보건의료 분야의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보건위기 속에 보건의료 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났다. 상당수가 이민자, 임시직인 그들은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에 정착하기 더 어려워졌다. 2021년 말, 영국 정부는 인력수급을 위해 이민정책을 유연화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감옥 같은 환경에 수천 명의 장애인을 방치했던 윌로우그룹(Willowgroup) 사건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미국 30개 주에서 활동하는 단체 뇌성마비연합(UCP)의 홍보 담당자 제임스 가르시아가 말했다. 윌로우그룹의 실태는 1972년 <에이비씨뉴스(ABC News)> 채널에서 방영한 르포를 통해 밝혀졌고, 1987년 시설 폐쇄를 이끌어냈다. 오늘날, 미국의 시설 폐쇄 운동은 예산 부족에 시달린다. 미국 전역에서 주택 임차료가 치솟아 독립생활비가 올랐다. 바이든 정부는 노인과 장애인 복지에 4,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국가발전재건법안(Build Back Better Act)을 내놓았으나,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복지 서비스 신청 대기자도 점점 늘고 있다. 시설 폐쇄로 실직한 돌봄 노동자의 약 80%가 여성이다. 그 중 2/3가 유색인종이며, 이민자가 많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이민을 제한한 것이다. ‘북유럽의 시설 폐쇄 선도국’ 스웨덴에서도 인력 문제가 심각하다. “돌봄 노동자 채용에 어려움이 많아요. 예산 삭감 때문이죠.” 세실리아 블랑크는 장애인이 선정한 돌봄 노동자 400여 명이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민단체 JAG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것은 정치적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해요.” 클레르 샹페는 유럽 돌봄 노동자 단체 유로케어러스(Eurocarers)를 운영한다. “장애인과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인력도 재정도 부족한 현실이지요. 인력 부족을 해결하려면 대우를 개선해야 하고, 유럽연합에서 더 높은 예산을 책정해야 합니다.” 지난 9월 7일, 보건분야에 대한 2021-2030년 유럽 전략이 발표됐다. 유럽위원회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부족하거나,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분류한 서비스의 개선 계획이 담겼지만, 돌봄 노동자에 대한 대우는 언급되지 않았다.
글·레티시아 들롱 Laetitia Delh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