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프랑스 사회 모델은 없다

친기업적 규제완화 고강도 노동·낮은 임금…

2022-09-30     마르틴 뷜라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마크롱 대통령의 말처럼, ‘풍요의 종말’이 도래했다. 그런데, 마크롱은 과연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자신들의 급여 상한선 월 3만 7,500유로(한화로 약 5,211만원, 2022년 9월 16일 기준)가 너무 적어서 올리기를 원하는 공기업 사장들의 세상? 아니면 주주들의 세상?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가정들이 많다. 이번 여름 대책으로는 이 문제를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지원은 있지만, 임금 인상은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서 발표하고 8월 3일 여당, 우파, 국민연합(RN) 의원 중 2명만 제외하고 대다수가 찬성해 통과된 ‘구매력 보호법’은 이 문장 하나로 요약된다. 줄곧 생계지원 대상자들을 비난하며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전은 흥미롭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말이다. 특히 생필품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 상승률(올해 전망치는 6.8%), 매년 3%씩 떨어지는 실질 임금,(1) 모든 보고서에 등장하는 ‘노란 조끼’ 운동. 마크롱 대통령이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크롱은 물가연동 임금제를 부활시켜 물가 상승률에 비례해 임금 인상을 하는 방안을 의회에 요청했다. 이 강렬한 제스처는, 그에게 두 번째 임기의 시작을 가능케 했다. 1952년 우파 인사인 앙투안 피네 전 총리가 발의해 관행으로 정착시킨 이 법은, 프랑수아 미테랑과 사회주의 여당 정부가 폐기한 1982년까지 시행됐다. 이 법은 불완전했고 실제로 임금이 인상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측면은 존재한다. 정통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자 알랭 코타는 이 법의 폐기를, 고용주들에게 주는 ‘들로르의 선물’(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전 프랑스 경제부 장관 자크 들로르의 이름을 인용)이라고 칭할 것이다.(2) 이 법을 폐기하면, 부의 분배방식은 노동자에게 더욱 불리하고 기업에는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생산된 부, 즉 부가가치 중 임금 비중은 1982년 74.1%에서 1998년 63.5%로 감소했다. 이후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으나, 198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2019년에는 65.4%를 기록했다.(3)

반대로 마크롱은, 임금의 전반적 인상을 피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선호했다. 공무원 임금만 유일하게 예외다(임금산정 지표 3.5% 상승). 물가상승률을 한참 밑도는 구매력은 2010년 이후(2016~2017년만 제외하고) 회복된 적이 없으며, 현재까지 17.6% 하락했다.(4) 다시 말해, 2010년의 1,000유로는 2022년의 820.4유로에 해당한다. 유럽 내 최저임금 노동자들 중 더 이상 간호사와 교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프랑스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장관들과 평론가들은 이 ‘역사적’ 물가 상승에 맞춰 임금을 올리려면 75억 유로라는 ‘거액’이 들 것이라고, 비장한 말투로 강조한다. 반면, 흥미롭게도 80억 유로라는 ‘거액’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80억 유로는 지난 7월 6일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국회 종합정책 연설에서 발표한 기업 생산세 인하 규모다. 기업들에게는 ‘횡재’가 될 이 80억 유로라는 거액의 의미와 용도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즉,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들에는 임대료, 가스요금 등 몇 가지 ‘세금 방패’가 포함돼 있다. 10월 말까지 휘발유 1리터당 30상팀을 인하하고, 이후 두 달 동안 10상팀을 인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휘발유 가격에 연동된 간접세나 석유회사가 거둬들이는 ‘거액’에는 손대지 않았다. 또한 연말까지 전기세 인상폭을 4%로 제한하면서,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사용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생산량의 40%를 경쟁사에 저렴하게 공급하도록 했다. 

2019년 한 해에만 구매력의 1.1%가 하락한 기초연금을 4% 인상하고, 지자체가 기본적으로 지급하는 RSA(le Revenu de Solidarité Active: 적극적 연대소득, 생계보조금의 한 형태)도 인상한다. APL(l’Aide Personnalisée au Logement: 개인 주거보조금)은 3.5% 올랐다. 그러나 아베 피에르 재단이 ‘낙후된 주거시설 관련 연례보고서’에서 지적했듯, 이 인상액은 마크롱 집권 이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쥐어짠 100억 유로”를 벌충하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5) 

그 밖에 마크롱은 ‘노란 조끼’ 운동에서 빠져나올 무렵 2018년의 정책을 재개하면서, 현재 ‘가치 공유’라는 명분을 앞세운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고용주들을 독려했다. 3배 인상(3,000유로)이라는 파격적인 발표는 마치 허위광고 같다. 2019년 임금 노동자 총 2,700만 명 중 상여금 혜택을 받은 1,500만 명이 실제로 수령한 평균 총액은 당시 허용된 총액의 약 절반인 542유로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와 노동시간 단축(RTT) 대신 시행된 시간에 비과세 혜택을 확장하기로 한 결정은 전부 속임수다.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이 조치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퇴보다. 임금 노동자들은 휴일을 저임금과 바꾸라는 압력을 받는 셈이다. 이런 조치는 고강도 노동을 하며 저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먼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마크롱은 이렇게 ‘민생 대통령’ 연기를 하며, 경영자가 절대 수용하지 않을 주 35시간 근무제를 살짝 피해 가는 것이다. 

더욱 기만적인 것은, 상여금에 체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상여금이 임금 인상분을 대체할 수 없으나, 현실은 또 다르다. 그러나, 상여금은 전적으로 고용주의 선의와 역량에 달린 것이므로,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당연히 지속성이 없다. 또한, 상여금은 병가나 출산 휴가, 퇴직연금이나 실업급여 산정 기준에서 제외된다. 사회보호 기금과 국가기금에서 상여금은 수입 부족과 동의어다. 임금 인상에 따르는 비용을 걱정한다면서, 상여금을 통해 적자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현재 중소기업이 분배 가능하며, 당연히 사회보장제도 납입금(노동자의 급여를 기준으로 노동자 및 고용주가 부담하는 비용-편주) 부담이 없는 상여금도 마찬가지다. 2019년부터 임금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부담 및 세금이 감면됐던 초과근무를 비롯해, 마크롱은 니콜라 사르코지(대통령 임기 2007~2012년)가 시행했고 프랑수아 올랑드(2012~2017년)가 폐지한 조치를 부활시켰다. 공적 자금 이면에 있는 이 ‘관대한 조치’는 몇 달 전 ‘근무 시행명령’을 발표했을 때 고용주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선물을 감추고 있다. 

 

국민들을 기만하는 ‘면세구멍’

근무 시행명령의 내용을 살펴보면, 최소 초과근무 수당은 50%(첫 8시간에 대해)에서 25%로 떨어졌고, 협의에 따른 초과근무의 경우 10%까지 낮출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유효하며, 고용주는 사회보장제도 납입금까지 감면받는다. 2022년부터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된 이 중복 감면 혜택은, 사회보장과 실업보험의 적자를 늘린다. 즉, 대다수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면세로 생긴 ‘구멍’들은 특히 저소득층에 고통을 전가하는 방식, 수당 축소로 벌충하게 될 것이다. 오늘 양보한 것을 내일 회수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다. 경영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들은 1993년, 우파 정치인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정부 수반이던 시절 시작됐다. 이후 총리 11명과 좌우를 오가는 공화국 대통령 4명이 이 정책을 계승했다. 그들 중 일부는 불만을 드러냈지만, 이런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제 고용주는 직종별로 금액이 다른 상해보험을 제외하고, 최저임금에 관해 어떤 사회보장제도 납입금도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정도의 미미한 임금 인상으로 회사가 파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선 13개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전문가 위원회’(노동조합원이나 혁신적 성향의 경제학자는 한 명도 없는)의 14번째 보고서는 최저임금이 프랑스 경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있는 최저임금의 안전장치인 ‘자동 연동 메커니즘(물가와 평균 임금에 연동시키는 구조)’의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른다.(6) 또한 ‘빈곤한 노동자’의 범람을 예상해, 노동장려금에 주력할 것을 권고한다. 

 

프랑스 최저임금, 영국보다도 낮아

또 다른 제안은 올랑드의 발상으로, ‘저임금 일자리 장려 정책’이다. 저임금 일자리라도 얻거나 유지할 수 있도록 장려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여성이 우선적으로 희생되는 극단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최저임금은 물가와 평균 임금 수준에 연동돼 있다. 그럼에도 국내총생산이 비슷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2022년 4월(최신 유럽 통계) 총액 수준은 1,603유로다. 이는 룩셈부르크(2,257유로), 아일랜드(1,775유로), 네덜란드(1,725유로), 벨기에(1,685유로), 2015년이 돼서야 최저임금을 도입한 독일(1,621유로)보다도 낮은 수준이다.(7) 지난 8월 1일 소폭 증가했지만, 사회보장 수준이 별로 진보하지 못한 국가로 알려진 영국보다도 낮다. 

무력해진 노동조합을 보며, 경영자들은 자신들과 겨룰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법정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속칭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 일람표를 설정했다.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에 해당되는 직종의 비중은 2020년 총 16%였는데, 2022년에는 무려 70%에 달했다! 물론 (법적으로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근속연수나 자격증 등을 통해 최저임금보다 더 받을 수 있는 모든 승급 가능성을 차단시켰다. 이렇게, 우리는 임금 체계의 붕괴를 목격한다. 아래로는 합의된 최소 금액이 너무 낮고, 위로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는 상황을 말이다. 

전체적으로 민간 부문과 공기업 노동자의 절반은 월 순수입이 2,005유로 미만이고, 80%는 3,000유로 미만이다. 모두 최저임금의 2.4배까지 낮아지는 고용주의 사회보장제도 납입금 경감 대상이다.(8) 고용주들은 어떻게든 이 선을 넘지 않고자 한다. 이 저임금화는 명백히 사회 문제의 결과지만, 경제 문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례로 노인이나 아동 대상의 필수 서비스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은, 첨단기술의 발전 속에서 해당 산업의 쇠퇴를 보여준다. 

이 인력난 앞에서, 마크롱의 행정부는 두 가지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노동장려금을 늘려서라도 실업 보험을 개정해 구직자들이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일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 직위에서는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22년 8월 4일 관보에 ‘학위나 경력을 적용하지 않는’ 법령이 발표됐고, 덕택에 어린이집에서는 자격증이 없는 보육교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암울한 그림에는 임금 노동자들만 등장한다. 여기에, 200만에 달하는 1인 사업자들의 상황까지 담아야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 월 평균 수입이 900유로도 되지 않으며, 주문고객에 생계를 거는 기업들이다. 주로 플랫폼, 서비스 업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분열되고 압축된 고용시장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자본의 가격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노동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9)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질수록 최종 주주의 배당금은 높아진다. 이것은 규제완화, 세금면제,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재정지원 중단’, 그리고 이런 상황들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상여금으로 구성된다.(10) 수입은 부족하고 혜택은 줄어든다. 상호기금, 추가 연금 등으로 대비할 여건이 된다면 대비해야 한다.

중간계층은 그럭저럭 버텨낼 것이다. 빈곤층은 저가제품, 대형마트의 할인쿠폰,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적 연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기초한 프랑스 사회 모델은 내부에서 공격받고 있다. 서서히 이 모델은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공공병원의 상황처럼, 파산 상태가 진행되면서 내부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다. 미래 세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답은, 공공부채의 무게보다 프랑스 사회 모델을 어떻게 지키고 혁신하는지에 달려있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Jérôme Hananel, ‘Évolution des salaires de base dans le secteur privé. Résultats provisoires du deuxième trimestre 2022 민간부문의 기본급 변화. 2022년 2분기 잠정 결과’, Dares indicateurs, n° 38, ministère du travail, du plein-emploi et de l’insertion, 2022년 8월 12일. 
(2) Serge Halimi, ‘Ne rougissez pas de vouloir la lune : il nous la faut ‘불가능’을 원했다고 부끄러워 마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1년 7월호. 
(3) «Indicateurs économiques et sociaux de la CGT/ CGT 경제 및 사회 지표», Confédération générale des travailleurs, Montreuil, 2022년 4월 6일. Sophie Piton et Antoine Vatan, «Le partage de la valeur ajoutée : un problème capital 부가가치의 공유: 자본의 문제», dans L’Économie mondiale 2019, La Découverte, Paris, 2018도 참조. 
(4) Céline Mouzon, ‘Rémunération des fonctionnaires : un dégel ne fait pas le printemps 공무원 수당: 얼음이 녹는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니다’, Alternatives économiques, Paris, 2022년 6월 30일.
(5) Guillaume Jacquot, ‘La réforme des APL a fait plus de perdants que de gagnants, selon un rapport du Sénat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APL 개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았다’, Public Sénat, 2021년 11월 26일. 
(6) ‘Rapport annuel du groupe d’experts SMIC 최저임금 전문가 그룹 연례 보고서», direction générale du Trésor, Paris, 2021년 12월 15일. 
(7) « Salaire minimum dans les pays de l’Union européenne en 2022 / 2022년 유럽연합 국가들의 최저임금», Eurostat, 2022년 4월 21일. 
(8) Insee Première, n° 1898, Paris, 2022년 4월. 
(9) Laurent Cordonnier, ‘Coût du capital, la question qui change tout ‘자본비용의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3년 7월호.
(10) Michaël Zemmour, ‘La “prime Macron” creuse volontairement le déficit de la Sécurité sociale ‘마크롱 프리미엄’이 사회보장 적자를 고의로 악화시키고 있다’, <르몽드>, 2022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