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주의운동이 예언한 세계는?

2022-09-30     장바티스트 말레 | 기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전 세계의 과학, 지성, 영성, 스포츠 분야 엘리트들이 모인 세계 도시 건설을 목표로 세계 평화주의 운동이 발족됐다. 장바티스트 말레는 최근 저서에서 부르주아 박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벨기에 국왕의 운명을 바꾼 이 유토피아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1911년 9월 초, 미국의 전직 외교관 어바인 르두(Urbain Ledoux)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개최된 UIA(Union of International Associations, 국제협회 연합) 총회에 참석해, 폴 오틀레(Paul Otlet)와 앙리 라퐁텐(Henri La Fontaine)을 만났다. 폴 오틀레는 벨기에의 서지학자로서 평화주의 운동을 이끌고 있었고, 앙리 라퐁텐은 벨기에 노동당 상원의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평화주의 단체 IPB(International Peace Bureau, 국제평화국)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르두는 오틀레와 라퐁텐에게 미국인 예술가 부부 올리비아 앤더슨과 헨드릭 앤더슨이 세계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프랑스 건축가 에르네스트 에브라르(Ernest Hébrard)도 이에 참여 중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서류 가방에서 ‘로마의 가치’라는 제목의 세계 커뮤니케이션 센터 설립안을 꺼내 보여줬다.(1)

라퐁텐은 그 문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오틀레는 이 프로젝트에 열렬한 지지 의사를 표하고는, 자신도 지난 몇 년간 모든 국제기구를 결집하는 센터 건설을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라퐁텐 상원의원과 저는 그 모든 국제기구의 본부, 소장자료, 업무를 하나의 국제센터에 유치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앤더슨과 에브라르가 건축물로 구현할 이 국제센터의 기능을 상상해봅니다.”

이어서 라퐁텐은 르두에게 벨기에의 ‘로열 도네이션(Royal Donation)’에 대해 설명했다. 1900년, 65회 생일을 맞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와 콩고를 통치하며 획득한 수많은 토지, 성, 건물 등의 막대한 재산을 벨기에 국가 소유로 남기기를 원했다. 이 중요한 유산의 관리를 위해 설립한 독립적 공공기관이 바로 ‘로열 도네이션’이다. 레오폴드 2세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영원히 공공의 재산으로 남기는 조건으로 이 기관에 유증했다. 라퐁텐은 ‘로열 도네이션’의 책임자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이 기관은 브뤼셀 외곽의 테르뷰렌에 100헥타르가 넘는 숲을 소유하고 있다고 르두에게 설명했다.

20세기 초 벨기에는 유럽 대륙의 경제 중심지였다. 1900~1910년 세계 최고의 주철 및 강철 생산국이었던 벨기에 왕국은 같은 기간 프랑스, 독일보다 많은 면화를 수입했다. 철광석이나 석탄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 비옥한 농경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철도망, 앙베르 항구, 콩고라는 거대 식민지, 그리고 당시 번창하는 모든 산업의 집산지였던 벨기에의 경제는 산업자본주의의 선두에 있었다.

20세기 초, 벨기에 노동당을 위해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가 설계한 ‘민중의 집(Maison du Peuple)’을 비롯해,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이 들어선 브뤼셀은 유럽 문명의 교차로였다. 이곳에서 번성하는 상업자본은 예술, 과학 등 지적 영역의 혁신도 이끌었다. 브뤼셀에서는 1897년과 1910년, 두 차례 만국박람회가 열렸고 파리, 런던, 뉴욕보다 국제회의가 많이 열렸다. 이런 배경을 보면, 폴 오틀레와 앙리 라퐁텐이 브뤼셀에서 어떻게 평화주의 사업을 실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인류의 전환기에 위대한 발견이 속출했다. 또한 과학 문헌도 풍부해졌으며, 국제적인 지적 교류가 가속화됐다. 그런 한편, 지식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협력하는 상황에서 연구자가 관련 문헌을 신속하게 검색할 수단은 전무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온라인 카탈로그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대형도서관의 소장자료를 검색하고, 전 세계 과학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물의 국제적 검색이 불가능했던 벨에포크 시대(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평화시대)의 연구자들에게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20세기 초, ‘구글의 종이버전’을 완성하다!

오틀레와 라퐁텐은 브뤼셀 회의에 참석한 후,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담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 구상이란 바로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발행된 모든 책, 신문, 잡지 등의 목록을 수록한 거대한 카탈로그, 일명 ‘국제서지목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 대대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1895년 전 세계 도서관 네트워크와 협력할 국제서지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벨기에 왕립 도서관 부속으로 설립된 이 기관의 중심부에는 주로 브뤼셀의 부르주아지 여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이 있었다. 이들은 폴 오틀레가 개발한 혁명적 분류법을 적용해 매일 세계 모든 지식의 목록화 작업을 수행했다.

오늘날 디지털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 처리 및 저장 센터에는 대규모 컴퓨터 서버가 설치돼 있다. 1910년대 초의 ‘국제서지목록’은 이와 유사한 정렬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오틀레가 상상한 설치물은 전자 보관함이 아닌 수천 개의 작은 서랍이 달린 대형 목재가구였다. 각 서랍에 들어있는 가로 12.5cm, 세로 7.5cm의 표준 색인카드 수백만 장은 당시 ‘구글의 종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오틀레와 라퐁텐은 국가의 지식, 과학, 외교 및 기술 협력을 가속화하고자 인류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는 것을 꿈꿨다. 그들은 전례 없는 서지 사업을 통해 세계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오틀레와 라퐁텐은 모든 분야에 걸쳐 전 세계 과학자들 간의 국제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대회를 조직했다. 이를 위해 1907년에 국제협회 중앙사무소를 설치했고, 이 사무소는 1910년에 국제협회연합이 되었다. 오틀레는 또한 ‘세계 박물관’, ‘국제 도서관’, ‘국제서지목록’을 통합하는 센터를 설립했다. 센터 소개 책자에서 오틀레는 이 기반 시설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단일 국가의 힘을 넘어 보편적 이익이라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문명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 인류가 더 큰 공동체로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기관을 제공하는 것, 인간 활동이 최대한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오틀레와 라퐁텐의 이런 사상은 19세기 말 이 두 사회주의자의 과학적이고 세계주의적인 사상으로 독창성을 지닌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 클로드앙리 드 루브루아 드 생시몽(1760~1825), 샤를 푸리에(1772~1837) 등 이전 사상가들로부터 이어져온 오랜 계보의 일부라 해도 말이다. 이 두 인물의 실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94년 벨기에 노동당이 사회주의 이념의 원칙으로 채택한 <콰레뇽 헌장>에는 “부(富), 특히 생산수단은 천연자원이거나 이전 세대뿐만 아니라 현 세대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이므로 인류의 유산으로 간주돼야 한다”라고 기술돼 있다. 

앙리 라퐁텐은 1913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를 주재하고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 이전에, 『집산주의(Le Collectivisme)』(1897)의 저자이기도 하다. 라퐁텐은 이 저서에서 이 사회주의자 상원의원은 부의 생산, 분배, 유통의 세계적 집산화를 옹호했다. 또한 인류의 발전은 전신망, 우체국, 철도, 은행 등 모든 통신 및 무역 기반 시설의 통합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1910년대 초, 많은 지식인들이 그 같은 발전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고, 또 많은 이들이 그 같은 발전은 보편적 사회주의의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앙리 라퐁텐 같은 열성적인 집산주의자가 암벽등반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 같은 악명 높은 진보적 군주와 친하게 지냈다는 것은 전혀 모순된 일이 아니다.

 

글로벌 정보망을 예측한 오틀레의 상상

벨리노그래프(Belinograph)라는 전신기로 정지화면을 전송할 수 있는 최초의 장치가 발명된 후, 폴 오틀레는 전자 도서관을 상상(예측)했다. 책의 각 장을 화면에 표시하고, 전 세계 도서관을 연결하며 지식 접근에 혁명을 일으키는 기술을 말이다. 오틀레는 “서지, 도큐멘테이션, 지식의 조직화”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집대성한 저서 『도큐멘테이션의 특성(Traité de Documentation)』(1934)에서 “집에서 전자망원경으로, 대형 도서관의 텔레룸에 전시된 책을 읽는 상상을 해본다. 이 망원경을 통해 사전에 요청한 부분을 읽을 수 있다. 책은 원격전송된다”라고 썼다. 인터넷이 발명되기 100년도 더 전에, 오틀레는 미래의 전화기에 대해 상상했다. “코드가 달려있지 않고,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원뿔형이며, 모든 종류의 정보를 수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틀레의 발상에서 기술적 예언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평생 꿈꿔온 방대한 정보망에 대한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접근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이 글로벌 시스템은 인류에 봉사하고 비영리 국제 공공기관에 의해 통제되는, 여러 나라의 공동자산이 돼야 한다. 또한 데이터는 "사회학적 예측"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필요를 설계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틀레는 전적으로 이성과 진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꿈꿨다. 이를 위해 인류가 세계주의와 전 지구적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 단계 및 국가 간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13년 11월 20일, 세계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디자인을 맡은 올리비아 앤더슨과 헨드릭 앤더슨은 벨기에의 국왕 알베르 1세가 이틀 후인 11월 22일 오전 11시 45분에 만나길 바란다는 전보를 받았다. 전보를 받은 즉시 이들 부부는 벨기에 행 기차를 탔다. 오틀레와 라퐁텐은 브뤼셀에 도착한 앤더슨 부부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 네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세계의 수도가 건설될 광대한 땅 테르뷰렌으로 향했다. 11월 22일 헨드릭을 만난 알베르 1세는 이 조각가를 호의와 환대로 맞이했다. “꿈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헨드릭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꿈을 꿔야 합니다.” 알베르 1세는 친절하게 답했다. 헨드릭은 그동안 이 프로젝트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터라 벨기에 국왕의 장난기 어린 어조에 다소 놀랐다.

“이 계획은 실용적인 것입니다.” 이 미국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도시 프로젝트에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뤄질 것입니다.” 국왕은 대답했다. 헨드릭은 믿을 수 없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알베르 1세는 이미 그런 도시 건설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왕은 이미 라퐁텐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덕분에 헨드릭은 국왕으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알베르 1세는 사회주의 상원의원 라퐁텐처럼 인류의 미래가 국제주의와 모든 형태의 진보적 발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헨드릭 앤더슨은 올리비아 앤더슨에게 국왕과의 접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국왕이 얼마나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는지 강조했다. “알베르 국왕은 우리 프로젝트를 믿고 있소. 우리가 계획하는 도시를 유치하면 벨기에에도 도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는 겁니다.”

2주 후인 1913년 12월 6일, <르피가로>는 이전에 <뉴욕타임스>와 <일러스트레이션>에 게재된 기사와 함께 세계 커뮤니케이션 센터 설립 계획을 칭송하는 기사를 1면에 내보냈고, 그날 오후 9시 헨드릭 앤더슨은 청중으로 가득 찬 소르본의 거대한 원형극장의 단상에 올랐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건축가 오토 바그너,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 시인 에밀 베르하렌, 사회학자 W. E. B. 뒤부아, 노벨 평화상 수상자 폴앙리뱅자맹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샤를 리셰... 이 모든 벨에포크 시대의 인물들이 세계 센터 건립을 위한 국제 지원 단체인 ‘세계적 의식(Conscience mondial)’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 단체의 명예회장은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2유로 동전에 새겨져 있는, 1905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베르타 폰 주트너가 맡았다. 

헨드릭 앤더슨은 자신이 설계한 도시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온 천 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몽상가로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러나, 저는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글·장바티스트 말레 Jean-Baptiste Malet 
기자. 최근 저서로 『L’Empire de l’or rouge: Enquête mondiale sur la tomate d’industrie 붉은 황금의 제국: 전 세계 토마토 산업 조사보고서』(Fayard, Paris, 2017), 『Capital of Humanity 인류의 자본』(Éditions Bouquins, Paris, 2022)이 있다.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


(1) 튀르키예 국회의사당 도서관은 이 이상적인 도시를 소개하는 책 『Création d’un Centre mondial de communication 세계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창설』(1913)의 프랑스어판을 디지털로 변환해 소장하고 있다(https://acikerisim.tbmm.gov에서 열람 가능). 계획안과 도안 원본은 로마에 있는 헨드릭 크리스챤 앤더슨 뮤지엄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