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경쟁 앞에 하나의 유럽은 없다
[Spécial 이념, 무늬와 진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대륙 간 무역 상품의 집산지 역할을 하는 북유럽의 중요 항로로 각광받아왔다. 그러나 국제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에 교통 인프라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항구·운송로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네덜란드가 1839년 조약을 종이 쪼가리 취급한다면 우리도 벨기에 국경을 다시 논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2009년 8월 벨기에의 에릭 반 호이동크 변호사가 분개하며 말했다.(1) 해양법 전문가인 그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분리를 승인한 조약에 대해 170년이나 지나 문제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발언은 2005년부터 추진된 서(西)스헬데강 준설 계획이 네덜란드 때문에 지연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이 문제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항구의 이익뿐 아니라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항구, 공항, 철로, 도로, 가스·원유 수송관 등이 통과해 오늘날 세계 물류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국가가 벨기에와 네덜란드다. 두 나라는 물류산업이 특화되어 있고, 로테르담과 안트베르펜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안트베르펜항은 1990년 1억200만t이던 화물 물동량이 2008년에는 1억8900만t을 기록했다. 그러나 국제 교역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화합 무드가 조성되기는커녕 오히려 항구·운송로 간 경쟁만 심화되고 있다.
스헬데강 준설 문제가 불거졌을 때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철도 수송로를 두고 이미 갈등을 빚고 있었다. 1991년부터 안트베르펜항과 독일의 루르 지역을 오가는 화물열차는 네덜란드와의 국경지대인 리에주 북부를 거쳐 독일 아헨 부근으로 들어가는 노선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이보다 짧고 덜 험난한 노선을 과거 1세기 이상 이용한 적이 있는데, 이른바 ‘철(鐵)의 라인(Rhin)’이다. 벨기에국영철도회사(SNCB)가 이 노선의 재개통을 추진한 것이다. 아닉 디륵스 안트베르펜 항만청 대변인은 그 취지에 공감을 표하며 “물자의 흐름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찬성하며, 특히 환경오염과 도로 교통체증 해소에 기여하는 철도 운송의 발전이라면 더욱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벨기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철의 라인’은 네덜란드 영토를 통과하기 때문에 재개통하려면 국가 간 협정을 맺어야 한다. 2000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교통부 장관인 이자벨 뒤랑과 티네커 네켈렌보스는 “마치 국경이 없는 것처럼 타당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문제는 국경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불협화음을 내고 갈등을 빚기도 하는 서로 다른 주권국가들의 영토 간 경계를 정하는 것이 바로 국경이다.
‘철의 라인’을 되살리려는 벨기에 당국의 의지는 엄청난 장애물에 부딪혔다. 노선이 통과하는 메인베흐 지역은 네덜란드가 199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따라서 철도를 재개통하려면 환경보호 대책이 필요하고, 이는 곧 막대한 추가 비용을 뜻했다. 가령 열차 운행을 재개하려면 소음 공해를 줄이기 위해 터널을 뚫기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 규정보다 더 엄격한 환경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자국의 주권에 속한다고 보았고, 벨기에는 이런 권리를 인정하되 그에 따르는 추가 비용은 네덜란드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기에는 2003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이 사안을 제소했고, 2년 뒤 솔로몬의 재판과 같은 판결이 나왔다. 그 뒤 프로젝트는 보류됐다.(2)
네덜란드는 여기서 나아가 메인베흐 공원 북쪽에 베튀베 철도를 건설했고, 2007년 6월 베아트릭스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열었다. 로테르담항과 독일을 연결하는 이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는 케이레일인데, 로테르담항은 이 업체의 주주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교통 당국은 “물류량이 크게 증가해 기존 도로와 철도의 화물수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티네커 네텔렌보스 네덜란드 교통부 장관은 “이 노선의 개통으로 독일과 중부 유럽의 수출입에서 네덜란드의 위상이 제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3) 결국 교통 자체보다는 네덜란드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이었다. 이웃 국가인 벨기에의 ‘철의 라인’을 뒷전으로 미루면서까지 말이다.
서스헬데강 준설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이런 분쟁이 미처 해결되기 전에 등장했다. 흘수(선체의 수면에서 가장 깊은 부분까지 수직 거리)가 13.1m에 달하는 화물선이 간조와 만조에 상관없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안트베르펜항에 닿을 수 있도록 12곳의 융기부를 제거하는 공사가 사업의 골자였는데, 그 결정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5년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이 체결한 스헬데강 협정은, 홍수 방지를 위해 공사하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환경 피해를 상쇄하는 차원에서 일부 구역에 야생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국경지대에 있는 ‘헤드비허 공작 부인의 폴더’ 구역을 복원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라고 밝혔다.(4)
국경·환경 문제 뒤의 헤게모니
그러나 스헬데강 협정을 이행하려면 먼저 이를 네덜란드 자국법에 반영해야 했는데, 그 과정은 유난히 험난했다. 네덜란드 의회는 2008년 여름이 돼서야 협정을 승인했다. 이듬해 봄에는 정부가 해당 지역 농업 이익집단들의 압력에 못 이겨 역간척 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제일란트주 환경보호단체들이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역간척을 하지 않으려면 하천 준설도 중단하라고 당국에 요구한 것이다. 환경운동가 아넬리스 뤼타인은 “서스헬데강 유역은 담수와 해수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바다표범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의 서식지이며, 아프리카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많은 철새들의 도래지입니다. (중략) 제일란트는 상당 부분이 해수로 덮인 지역입니다. 주민들은 땅 주인들의 로비에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간척지를 복원하면 홍수 위험이 커진다고 믿고 있는데, 사실은 역간척으로 형성된 갯벌이 완충 수역의 구실을 하며 홍수를 막아줍니다.”
2009년 7월 28일자 판결에서 네덜란드 행정법원은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하상 굴착공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마르크 판필 안트베르펜 항만청장에 따르면, 공사 연기로 안트베르펜항은 연간 7천만 유로의 수입 손실을 입게 됐다. 플랑드르 지방은 이 판결에 거세게 반발하며 보복 조처를 궁리했다. 판필 청장은 네덜란드의 대형 화물트럭이 하루 1만6천 대씩 지나는 안트베르펜 외곽 순환도로의 통행을 유료화할 것을 제안했고, 크리스 피터르스 플랑드르 지방정부 총리는 벨기에 주재 네덜란드 대사를 불러들였다. 플랑드르 의회의 아닉 데리더르 자유당 의원은 안트베르펜과 암스테르담을 연결하는 고속철의 개통 연기를 주장하는 한편, 안트베르펜의 식당 주인들에게는 제일란트산(産) 홍합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호소했다.(5)
이런 작은 외교적 소용돌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행정법원의 결정은 잠정적 효력을 지녔고, 결국 2010년 준설 공사가 시작됐다. 양국의 ‘홍합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역간척 사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파문이 최고조에 달하던 2009년 여름, 네덜란드 일간지 <NRC 한델스블라트>의 어느 기자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안트베르펜항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로테르담이 누리게 될 이익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거의 언급이 없다. 플랑드르인들은 이런 침묵이 비열하고 이재에 밝은 네덜란드인의 기질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드비허 폴더의) 젖소, 환경, 사법 결정 존중 등 듣기 좋은 이야기를 꾸며내는 가운데, 이웃 국가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돈벌이를 계속해온 게 네덜란드다.”(6) 즉 네덜란드 당국이 공사를 질질 끄는 이유가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로테르담항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글로벌 무역과 주권국 영토의 상충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은 이런 추측을 단호히 부인했다. 아넬리스 뤼타인은 “기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에게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닉 디륵스 안트베르펜 항만청 대변인은 “양국 항구가 경쟁관계에 있지만 동시에 상호보완적”이라고 강조하며 “로테르담항이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물류 전문이라면 안트베르펜항은 미주와 아프리카의 화물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지중해 연안 유럽 국가의 항구에 대항해 북유럽 항구를 방어하고 인프라의 질을 보호해야 할 때는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로테르담항 관계자들이 사업을 방해했을 리 없다”고 덧붙였다. 2009년 로테르담 항만청 간부들도 이런 분석을 인정하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로테르담항은 흘수가 큰 선박의 접근이 더 용이합니다. 하천을 준설하고 나면 확실히 변화가 느껴지겠죠. 하지만 그 규모는 별로 대단치 않습니다. 안트베르펜항으로 접근하는 길목의 수심이 얕다는 이유로 로테르담으로 우회하는 컨테이너 수는 매주 약 1천 개(로테르담항 물동량의 0.8%)에 불과하거든요.”(7)
‘철의 라인’ 노선과 하천 준설 문제로 양국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오랜 역사를 가진 분열이 재현되고 있다. 안트베르펜항 하구의 경계가 설정된 것은 1585년이다. 당시 스페인령 네덜란드에서 분리·독립한 위트레흐트 동맹 소속 네덜란드 지역은 안트베르펜항의 봉쇄를 명령했고, 15세기 브뤼헤를 대신해 무역항으로서 우위를 점하던 안트베르펜항은 이로써 암스테르담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 경계선을 인정했고,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분리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1839년 런던조약이 이를 확정했다. 런던조약은 벨기에가 림뷔르흐와 스헬데강 남부 연안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대신,(8) 네덜란드는 안트베르펜항의 입출항을 허용하며 아울러 네덜란드령 림뷔르흐를 통과하는 철도, 즉 ‘철의 라인’의 건설권을 벨기에에 부여했다. 2003년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에 상정된 이 노선과 관련된 분쟁은 본질적으로 1839년 런던조약에 대한 해석을 두고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 시장이나 각종 국제기구 앞에서 국가의 역할이 후퇴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가의 주권 문제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다. 물자의 이동이 증가하면서 망각 속으로 사라진 갈등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철의 라인’ 노선과 서스헬데강을 둘러싼 파문은 물자 이동의 글로벌한 성격과 국가 주권의 영토적 성격이 상충하는 사례이다.
글 / 뱅상 두마이루 Vincent Doumayrou
언론인. 주요 저서로 <철도 균열>(La Fracture ferroviaire·Editions de l’Atelier·Paris·2007) 등이 있다.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Ignoring History in the Westerschelde debate’, <NRC 한델스블라트>, 암스테르담, 2009년 8월 8일.
(2) 2005년 5월 24일 발표된 중재판결문의 전문은 www.pca-cpa.org에서 볼 수 있다.
(3) <Die Betuweroute>, Andreas Gebbink, 2009년 12월, www.uni-muenster.de에서 재인용.
(4) ‘폴더’(Polder)란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를 뜻한다. 간척지를 다시 바다로 되돌리는 작업을 ‘역간척’(Depolderization)이라고 한다.
(5) Cf. ‘Modderfigure in Westerschelde’, <NRC 한델스블라트> 2009년 8월 17일.
(6) ‘Ignoring History in the Westerschelde debate’, op. cit.
(7) ‘Rotterdam gunt Antwerpen wel een diepe Westerschelde’(로테르담은 안트베르펜을 위한 스헬데강 준설을 바란다), <Quote Magazine>, 암스테르담, 2009년 8월 28일.
(8) 중립국이던 벨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격을 받았고, 전쟁이 끝나자 피해 보상 차원에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 지위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