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뮤직을 향해, 공화 - 민주 애정 경쟁
미국 공화당의 2012년 대선 후보 경선도 오바마 대통령의 차기 대선을 위한 민심 얻기 캠페인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2008년 대선 때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 벌인 컨트리뮤직 페스티벌이 그랬다. 2011년 11월 21일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에서 ‘국민의 백악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임스 테일러, 디어크스 벤틀리, 라일 로벳 등의 가수를 초청해 컨트리뮤직 페스티벌을 연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대통령은 이렇게 국민과 만남의 자리를 가지며 “국민이 그렇게 환호하는 컨트리뮤직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용기는 칭찬할 만하다. 백인계 미국인들의 서민문화를 대표하는 컨트리뮤직은 백악관 엘리트들이 통상 무시하는 문화 분야였고, 반동적 성향을 띠는 문화로 간주돼왔다. 국가를 증오하고 도시 엘리트층을 비난하며, 소수민족을 불신하는 것으로 비쳐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컨트리뮤직과 손잡으며 흑인계 하버드대학 출신의 민주당보다는 티파티가 우위를 지닌 분야에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선 겨냥해 낯선 손짓
풀뿌리 백인계 장년층 남성들의 한이 과시적 애국심 속에 미국성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이들은 이런 미국성이 타락했고, 빼앗겼다고 여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성이 공화당만의 전유물도, ‘수준 낮은 백인 시골뜨기들’을 풍자하는 요소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1) 남부에서 태어났고, 낡아빠진 옷차림을 한 카우보이의 구식 발음이 특징인 컨트리뮤직은 이미 몇 해 전 미국 전체를 통틀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2010년 최다 판매율을 기록한 3대 음반 중 2개가 컨트리뮤직 가수의 것이었다. 에미넴의 뒤를 이어 레이디 앤티벨럼의 <지금 네가 필요해>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금 말해>가 3대 음반에 올랐다. 영화 부문에서도 2005년 가수 조니 캐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워크더라인>이 오스카상을 받은 이후 영화 부문에서도 컨트리뮤직이 인기를 얻고 있다. 4년 뒤, 고독한 알코올중독자인 옛 컨트리 가수의 방황을 그린 영화 <크레이지 하트>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2011년 여름 개봉한 영화 <컨트리스트롱>도 흥행에 성공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2011년 4월 리듬앤드블루스(R&B)계의 대스타 흑인 가수 리아나가 그간 형편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컨트리뮤직 어워드 시상식에 초대된 것이다. 이는 컨트리뮤직이 현대 미국 사회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컨트리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정한 미국의 정서를 담아냈다는 ‘흘러간 옛 노래’를 몇몇 사려 깊은 가수들이 음악화한 것으로, 외진 농촌지역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컨트리뮤직이 최초로 녹음된 것은 1920년 초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컨트리뮤직의 탄생 시기를 독립전쟁 때로 보기도 한다.(2) 애환 넘치는 가사, 기타와 밴조 같은 악기로 반주하는 포크음악과 발라드는 특히 세계 경제공황 이후 미국 농촌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억압당한 흑인들에게 블루스가 있었다면, 외딴 산간과 평야 지역 농촌민들에게는 ‘힐빌리 블루스’라고도 불린 컨트리가 있었다. ‘촌놈들의 블루스’라는 뜻이다. 컨트리는 이주민들의 전원적 삶에 대한 이상, 서민층 백인이 주를 이루는 타락하지 않은 남부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이런 이상적 모습의 덧없음을 묘사하며, 동시에 케케묵은 ‘잭슨식 애국심’을 강조했다.(3) 1865년 남부가 쓰라린 패배를 당한 뒤, 그 씁쓸함이 깃든 향수가 훗날 컨트리뮤직으로 발전하는 배경이 되었다. 좌절된 미국식 애국주의의 배경음악이 된 것이다.
그 뒤 컨트리뮤직은 미국의 정체성 약화를 가져올 위협에 맞서는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컨트리뮤직이 미국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는 믿음은 허구에 불과하다. 컨트리뮤직 자체가 끝없이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약간 비꼬는 것이 없지 않지만, 텍사스는 컨트리뮤직 가수들에게 ‘나쁜 남자’라는 이미지를 추가하면서 컨트리뮤직 전통에 근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누구보다 컨트리뮤직의 정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극우보수주의 성향이다. 1969년 가수 멀 해거드가 부른 전설적인 제목의 <오키 프럼 무스코기>(Okie from Muskogee>는 북부도시와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던 장발의 히피족들에 대한 증오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대변인이었고, 한때 수감생활도 한 해거드야말로 제2의 우디 거트리가 될 수도 있었다. 우디 거트리는 포크송 가수이자 프롤레타리아 정신을 담은 사회주의계의 음유시인이었다. 그러나 해거드는 동시대의 가치인 ‘질서’, ‘국가’, ‘미국인의 민족성’을 받아들였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민중음악인 컨트리야말로 미국을 더욱 훌륭하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선언하며, 컨트리를 성조기와 연관지을 정도였다. 이후 컨트리는 미국 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남부보다 다른 주들의 음반 판매량이 더 많을 정도였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컨트리뮤직이 보기 드문 순수 미국적인 예술의 한 갈래이며, 미국적 애국심을 담고 있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명 컨트리 가수들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베트남전쟁과 마약 관련 법을 반대하는 가수도 있었고, 열성 페미니스트도 있었으며, 테네시 지역의 컨트리뮤직 독점에 반대하는 가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음반사는 능수능란한 마케팅으로 록을 컨트리와 접목시키며 대중의 취향에 영합했고, 기억 속에 잊혀버린, 말만 번지르르했던 ‘진정한’ 미국 애국주의 선구자들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게 보장했다.
미국식 애국주의 상징 장르
텍사스는 특히 컨트리를 선호하는 지역이 되었다.(4) 조지 부시 대통령은 컨트리를 가장 선호하는 음악 장르라 선언하며, 자신의 우익화 사업을 종결지었다. ‘문화 결속’과 미국적 진정성에 대한 주장은 더욱 굳어졌다. 9·11 테러 이후 컨트리 가수들은 다시금 미국을 나타내는 표식과 상징에 애착을 보였다. 호전적인 대통령을 따라 유명가수 토비 키스는 <커티시 오브 더 레드, 화이트 앤드 블루>(Courtesy of the Red, White and Blue)에서 감히 미국에 위해를 끼친 인간들을 ‘족쳐야 한다’는 가사를 담았다. 음반 2500만 장을 판 가수 토비 키스는 2003년 윌리 넬슨과 함께 <비어 포 마이 호스>(Beer for my horses)에서 옛날 텍사스에서 악한 인간들을 나무에 목매달았던 것처럼 미국민들이 직접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비 키스의 이런 언사에 일각에서는 우려가 일기도 했으나 그 노래는 6주간 인기 순위 정상에 머물렀고, 토비 키스 생애 최대의 성공 중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2008년 그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의 극찬
한편 2003년 3월 그룹 ‘딕시칙스’의 리드 보컬 내털리 메인은 영국 콘서트 당시 부시 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임이 창피하다고 했다.(5) 며칠 지나지 않아 딕시칙스는 대중매체의 혹독한 공격을 받았고, 그들의 노래는 모든 라디오 방송사들로부터 방송 거부를 당했다. 물론 보수적인 청중은 내털리 메인이 외국에서 그런 언사를 행한 데 언짢아했다. 하지만 딕시칙스에 대한 대중매체의 비난은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었고, 텍사스 지역 1250개 라디오 방송사를 소유한 클리어채널라디오사가 딕시칙스의 말이 가져올 정치적 파급효과를 우려해 취한 결정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컨트리뮤직계에서도 이라크전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스티브 얼, 로젠 캐시, 셰릴 크로, 멀 해거드가 대표적이다. 특히 스티브 얼은 1970년대 유행한 반항적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2004년 <리치 맨스 워>(Rich Man’s war)에 다음과 같은 가사를 담았다. “바비는 팔에 독수리와 성조기 문신이 있었지/ 아프가니스탄에 착륙하던 때 바비는 손톱 끝까지 빨갛고, 하얗고, 파랬다/ 바비는 어여쁜 아내와 딸을 뒤에 남겨두었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갚아야 할 빚은 늘어만 갔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바비는 못 돌아가네/ 메마른 땅을 헤치고 유령을 찾아헤매지/ 바비의 가족은 차도 압류당했네/ 가진 것 없는 청년 한 명이 또다시 가진 자가 벌이는 전쟁에 보내졌네/ 언제쯤 돼야 이치를 깨달을까?”
2008년 대선 당시,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컨트리 가수들의 입장은 천차만별이었다. 딕시칙스에 맞서 미국의 적에 대한 적개심을 대변하며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 토비 키스조차 오바마에 대한 호의를 나타냈다. 컨트리 가수들도 허황된 원망과 애국주의에 슬슬 지쳐가고 있다. 영화 <크레이지 하트>나 <컨트리 스트롱>은 반영웅적 영화이며, 맥 빠진 성조기 앞에서 용서를 구하러 돌아온 스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허세가 심하고 보수적 인물들을 방송에 초대했다. 티파티도 그들 집회에 많은 컨트리 가수들을 초청했다. 티파티는 컨트리 가수들과 공통점이 많다.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컨트리 가수들이 상업용으로 전통적인 컨트리뮤직을 이용한 것처럼, 티파티라는, 단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집단은 강력한 이해집단들의 교묘한 배후조종의 산물이다. 이 둘은 모두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못하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가면 뒤에 계급의식에 기반한 논리를 숨기고 있다. 티파티와 컨트리 가수들은 ‘계급 없는 사회’라는 미국의 유토피아를 예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계급적 경멸에 희생된 피해자 입장의 이야기에만 등장한다.
인기 절정, 그러나 다양해진 정치색
2010년 여름, 안젤로 코드비야 교수는 미국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불평등 문제를 분석했다. 그는 주요 정당들의 외면과 엘리트들의 무시를 받는 서민계급인 ‘컨트리클래스’와 당파성을 초월한 계급 ‘오버클래스’를 대치시켰다. 컨트리뮤직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은 틀림없이 컨트리클래스다. 일부 컨트리 가수들은 사회적 계층 하락이 유발하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발하며, 컨트리뮤직이 대변한 거짓을 털어버렸다. 그중 대표적인 가수가 존 리치인데, 2008년 대선 때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현재 월가 지도층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컨트리뮤직의 ‘전통’에 엮인 전형적 특징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거둔 컨트리 가수들도 있다. 그룹 레이디 앤티벨럼은 일반적인 컨트리팬들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의 인기를 끌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나 지역적 정체성도 담고 있지 않다.
2011년 미국 음악대상에서 그해의 가수상 후보에 오른 내슈빌 출신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극히 감상적인 사랑 노래나 아름다운 전원에 관한 노래만 부른다. 그가 2009년 이 음악대상을 수상하자, 래퍼 카니에 웨스트가 수상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난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조차 직접 나서서 카니에 웨스트의 행동을 비난했다. 그 결과, 상처받기 쉽고 허세라고는 없는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른바 ‘심오한 미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순수성을 간직한 얼굴로 부상했다. 경제위기와 강한 자들의 오만함에 떠밀린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향수가 서린 서민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국인임을 예찬할 핑계를 찾는 나라의 얼굴 말이다.
글 / 실비 로랑 Sylvie Laurent
<백인 쓰레기들>(White Trash·소르본대학출판부·파리·2011)의 저자.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농촌지역 백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특히 남부 지역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교양 없는 알코올중독자라는 이미지가 붙는다.
(2) 제임스 에드워드 아켄슨, <전쟁터로 간 컨트리뮤직>, 켄터키대학출판부, 렉싱턴, 2005.
(3) 강경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829~37)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4) 아론 폭스, <진정한 컨트리뮤직: 노동계급문화의 음악과 언어>, 듀크대학출판부, 더럼, 1994.
(5) 제시 엠킥, ‘마녀사냥의 희생자 딕시칙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