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역사에 붙는 가속도
미얀마정권이 민간 정부의 외양을 갖춰가고 있다.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합법화, 정치범의 석방, 반세기 만에 미국 지도자의 방문….
한때 호랑이와 코끼리가 어슬렁거렸던 랑군강을 따라 12살 소년 둘이 돈 될 만한 금속 조각을 찾아 벽돌 파편더미를 헤집고 있다. 한 아이가 녹슨 철근 한 개를 흔들면서 “돈”이라고 소리치며 즐거워한다. 두 번째 아이가 땅에 고개를 박고 작은 망치로 고철덩이를 뒤덮은 녹을 떨어낸다. 식민시대, 도시와 강 사이에 세워졌던 벽이 전날 밤 몇 시간 만에 헐렸다. 누구보다 돈이 절실한 가난한 사람들이 새벽녘에 잔해더미를 뒤지려고 몰려든다.
<미얀마 랑군 해안도로 북쪽에 있는 라타의 빈민촌 골목 모습>, 2011-엘리자베스 러시
10차선 도로 공사 벌어지는 랑군
바로 몇 달 전 미얀마 항만 당국은 전례 없는 대규모 준설공사와 랑군의 주요 도로인 해안도로(Strand Road) 확장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프로젝트는 북부 내륙 오지의 산림지대와 강을 연결해 미얀마의 가장 귀중한 수출자원 중 하나인 목재 수출의 주수송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150여 년 전 영국이 건설한 해안도로는 랑군시 직교도로망의 남쪽 밑면을 이루고 있다. 마치 멀리 있는 강을 따라 그어진 질서의 상징과도 같다. 해안도로는 식민권력이 약탈한 이국적인 목재의 여행에서 마지막 육로 여정이었다. 오늘날 이 도로는 너무 좁고 노후돼 앞으로 예상되는 수출 붐을 견뎌낼 수 없다. 그래서 랑군시의 인구밀집 지역에 10차선까지 주요 간선도로를 뚫는 것을 포함해 총사업비 수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계획 입안자들에 따르면, 현재 1만5천t 운항 수준에서 3만5천t까지 화물선 통행이 가능하게 하는 준설사업이 끝나면 랑군강 운항 능력은 3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미얀마 북부 지역과 남부 아예야르와디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 랑군항은 과거에 번성했던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랑군은 세계에서 뉴욕 다음으로 이민자가 많이 몰려드는 항구였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아르메니아, 그리고 유럽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와 상인이 엘도라도의 꿈을 안고 찾아들었다. 오래지 않아 랑군은 학교와 백화점, 스테인드글라스와 수입 세라믹 타일, 정교한 철문 문양의 엘리베이터를 갖춘 화려한 건축물로 뒤덮였다. 그러나 황금시대는 짧았다. 뉴욕과는 반대로, 랑군은 침체에 빠졌다. 20세기에 많은 대도시들이 겪은 것처럼, 일시적인 번영은 붕괴의 시기에 자리를 내줬다.
영국인들이 철수하고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서서 철권통치로 영토의 단합을 유지하고, 국호도 미얀마(연방공화국)로 변경했다. 역사는 꽁꽁 얼어붙은 듯 보였다. 2010년 랑군 국제공항에 내린 여행객은 29만7천 명뿐이었고, 미얀마를 들고나는 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해안도로 공사는 미얀마 정부가 세계 무대에 복귀하기로 결정했음을 시사한다.
6년 전 랑군도시개발위원회(YCDC)는 여전히 해안도로를 보호 대상 문화유산으로 간주했다. 위원회가 제안한 계획은 랑군항의 항구 기능 대부분을 남쪽으로 25km 떨어진 틸라와항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수도 랑군의 해안지구를 보행자 구역으로 바꾸고, 해안도로 북쪽에 위치한 식민시대 건축물들을 화려하게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장소의 가치를 화물수송 고속도로와 어떻게 조화시키겠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당시 위원회의 건설담당 국장은 이런 답변으로 피해갔다. “이제 해안도로는 단일 용도, 즉 수송 용도로만 허용될 것이다. 우리는 해안도로가 중소산업과 중공업 등 산업 발전을 촉진해주길 희망한다.”
뉴욕과 어깨 겨루던 옛 영광 회복을 위해
이미 해안도로 연도에는 중산층들을 겨냥해 막스콜라, 삼성, 골드로스트 커피, 허브샴푸, 뉴질랜드산 분유 등 광고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랑군에선 미국 록밴드의 기념 티셔츠를 자식들에게 입히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진 가구 수가 분명히 늘고 있다. 하지만 상점에 넘쳐나는 수입 플라스틱 장난감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미얀마가 준비하는 미래의 불완전한 모습을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해안도로 확장 공사는 ‘아시아월드’사가 자금을 대고 있다. 아시아월드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 갑부로 알려진 스티븐 로우 박사가 이끄는 대기업이다. 미얀마로 투입되는 중국 자본의 대부분은 아시아월드를 통해 들어온다. 아시아월드는 중국∼미얀마 석유·가스관 사업과 미트소네 수력발전댐, 차우크퓨 심해 항만 등 미얀마 최대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뿐 아니라 랑군항을 통한 컨테이너 수송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해안도로 확장으로 해상교역이 확대되면, 이미 엄청난 아시아월드의 수익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화물 수송도 약 500%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미얀마 정부는 아시아월드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지만, 랑군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항상 노후한 인프라에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도로 현대화에 그만큼 더 무관심하다. 서점 주인 우 자우 윈은 일반 여론을 대변하듯 “이런 프로젝트는 우리가 결코 그 색깔을 알 수 없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데만 기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고 내뱉었다.
미얀마 정부 당국이 해안도로에 모든 관심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사이, 정전이나 100년 된 망가진 하수 체계는 계속 사람들의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날마다 반바지만 걸친 어린 소년들이 골목가의 막힌 도랑을 맨손으로 쳐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젊은 청소부들의 동료인 시 공무원들이 오물을 수레에 담아 실어 내갈 때까지 행인들은 검은 진흙더미 사이를 스키 활강을 하듯 지나다닌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해안도로에선, 기계 살수 장치가 새 도로의 빛나는 아스팔트의 질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 위에 물을 뿌리고 있다.
미미하지만 미얀마엔 큰 변화
지구본에서 우표 딱지만 한 크기의 이 나라에서 천연자원이 대량판매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말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루비와 금, 구리, 티크목재, 아편 등 미얀마 땅에서 나는 자원들에 외국시장은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왔다. 이 자원들의 수출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군사정권은 자유무역의 개방 정책을 점진적으로 시행해왔다. 그 결과 교역은 10배로 늘어났다. 중국과 한국,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많은 회원국에서 자본이 밀려들었고, 천연자원은 소실됐다.
그러나 오늘날 ‘투자’가 슬로건이 되면서, 이런 투자 요구에 종속돼 항상 부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련의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2010년 11월 미얀마에선 거의 20년 만에 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적 투표가 이뤄졌으나, 미얀마의 역사적인 야당 인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의 출마가 금지됐다. 투표 부정이 수없이 자행된 가운데 새 의회가 열렸다. 의원들은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의원들은 토론을 기꺼워하진 않지만, 2011년 8월 언론에 의회 회기에 대한 취재를 허용하는 조처를 취했다.
2011년 9월 미얀마 정부는 ‘고물차 현금보상제’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이는 40년 된 차량의 모든 소유자에게 그동안 새 차 구입을 힘들게 했던 무거운 수입관세의 50%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미미한 조처로 보이지만, 주차장이 여전히 골동품 가게처럼 보이는 나라에선 중대한 일이었다. 그래서 1971년 이후 만들어진 차를 소유하는 일이 더 이상 정권의 보호를 받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게 됐다. 최근 다수의 정치적 반체제 인사를 포함해 6천 명의 수감자들이 석방됐다. 9월 말에는 테인 세인 대통령이 이라와디강 유역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아온 미트소네 댐 건설의 중단을 수용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댐 건설이 국민의 뜻에 반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태도 변화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는 새 대통령의 욕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다른 이들에겐, 이런 변화가 서구의 우호적 태도와 달러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정부 인사로 변신한 전직 장성들의 이중성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을 짓눌러온 침묵의 벽이 약간 들린 것에 안도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20년 군사독재를 경험한 이들을 몇 차례 단속적인 제스처만으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미래에 대한 희망, 가족에 대한 희망,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을 그렇게 오랫동안 강하게 제한받아온 탓에, 심대하고 지속적인 변화에 대한 보장 없이 마냥 안심할 미얀마인들은 거의 없다.
댐 저지시킨 주민들, 그러나 아직은 불안
그래서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당장 과거의 경제제재가 수지맞는 투자로 전환된다면, 누가 그 이득을 챙기게 될까? 2010년 총선 전날 급조된 경매에서 얼음공장부터 주유소까지 공기업의 80%를 가로챈 정권에 연줄을 댄 인사들일까, 억만장자 로우와 그의 아시아월드일까, 억만장자 타이 차우 흐투와 그의 ‘흐투그룹’(광산·해상운송·부동산·호텔)과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에서 활동해온 몇 안 되는 미국 석유회사 가운데 하나인 셰브런일까, 호화 아파트들을 기록적인 시간에 건설해 랑군을 변모시킨 한국과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일까? 이 밖에 유럽인들도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이 구석에서 달러 몇 푼을 줍게 될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여름 미얀마 상무부와 미국의 캐터필러(세계 최대의 건설·광산 장비, 가스 엔진, 공업용 가스터빈 생산 업체) 그룹 사이에 협의가 진행됐다. 투자에 사업적 후각으로 이름난 캐터필러는 다른 국제 투자자들에게 종종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몇 달 뒤인 지난가을,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들이 환율 문제(암달러 환율은 달러당 800차트이지만, 공식 환율은 달러당 6.5차트로 고정)와 자금 이전 절차를 명확히 하기 위해 2주 동안 미얀마를 방문했다.
되살아나는 역동성, 누가 이익 볼까
미얀마가 세계 무역 무대에 복귀하게 되면, 현재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실히 지우게 될 것이다. 조만간 미얀마는 더 이상 그렇게 먼 나라나 폭력적인 나라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티크나무 보호구역이 황폐화되고 마지막 루비가 달러로 바뀌고 난 뒤에도, 넘쳐나게 몰려든 투자자들이 미얀마 국민에게 공정한 임금과 수입 소다수뿐만 아니라 삶의 수단까지 제공해줄 수 있을까?
랑군의 새 해안도로 건설 공사는 몬순철이 오면서 지체되고 있다. 저녁 무렵 반쯤 완공된 도로엔 축구 시합을 하는 아마추어 축구팬들과 습한 공기 속에 산책하는 연인들로 넘쳐난다. 전기는 변덕스럽게 끊임없이 오락가락한다. 별빛 아래서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끌어댄 텔레비전 앞에서는 친구들끼리 작은 플라스틱 탁자에 모여 차를 마시고, 호박튀김도 먹고, 저녁 때 방송되는 한국 연속극을 보며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나눈다. 해안도로 공사가 끝나면, 이런 즉흥적인 공공 산책로도 모두 끝장날 것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맨발바닥들이 부닥치며 내는 타닥타닥 하는 소리는 대형 화물트럭의 부릉부릉 소리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미얀마의 지식인 모에 와르 탄은 이렇게 지적한다. “티크목재 약탈로 벌어들인 부는 식민지배의 원동력이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수혜자가 다르다. 지구온난화가 이런 교역을 이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만든다는 점만 뺀다면.”
구리, 목재, 그리고 주석은 새 해안도로를 따라 실려 내려와 먼 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수출품의 최종 목적지나, 수출로 서둘러 황폐해져가는 풍경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무엇이 변하게 될까?
글 / 엘리자베스 러시 Elizabeth Ru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 / 류재훈 hoonie@hani.co.kr <한겨레> 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