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과 중국 사이에서
2011년 12월 테인 세인 버마 대통령이 정부군에 샨 반군과 카친 반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런 평화적 국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위태롭기만 하다.
2011년 3월 버마(미얀마) 대통령으로 선출된 장군 출신 테인 세인은 민주주의 문민정부의 구색을 갖추느라 정신이 없다. 먼저 가장 골치 아픈 문제로 자치권이나 더 나아가 독립을 요구하는 20여 개 소수민족 무장단체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버마 소수민족은 대부분 1989~94년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세력이 강한 민족으로는 와족, 카친족, 북부 샨족이 꼽힌다. 버마 군부는 과거 반군을 정부군 소속 국경수비대(BGF)로 편입(1)하려다 실패했다. 이후 오히려 중앙정부와 분리주의를 외치는 소수민족 사이에 전투만 더욱 치열해졌다.
군부의 휴전협정 파기
카친독립군(KIA)은 버마 정부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2011년 2월 모든 소수민족 단체를 모아 ‘통합민족연방협의체’(UNFC)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치군사연합체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모두 11개 소수민족 단체가 참여했다. 하지만 샨주남부군(SSA-S)은 강경한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샨족의 성향에 따라 UNFC 가입을 거부했다. 와족도 처음에는 카친족의 제안에 솔깃해했지만 결국 UNFC 참여를 포기했다.
2011년 4월 버마 정부가 공식 출범하자마자 군부는 휴전협정을 깨고 샨주북부군을 공격했다. 수많은 살인과 집단강간, 방화, 강제이주가 자행됐다. 버마 군부는 이미 카렌주에서 힘겨운 군사작전을 펼치는 중이었지만, 샨주북부군을 목표로 공격하며 며칠 안에 샨족을 모조리 쓸어버리며 제2의 코캉전을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는 다른 반군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소수민족 간 협력 체계를 시험할 절호의 기회였다. 공격을 시작하자마자 기갑부대와 포병부대가 순식간에 기지와 교통로를 점령했다. 하지만 샨족(고작해야 2천 명이 조금 넘는다)은 정글 속으로 흩어졌다. 샨족의 저항은 예상외로 거셌다. 전투 강도가 점차 약화됐지만 끝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력이 강한 와주연합군(UWSA)은 샨족의 오랜 동맹이었다. 하지만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큰 형님 중국의 은밀한 개입으로 북부샨족을 지원하기를 꺼렸다. 오히려 북부샨족과 어떤 동맹관계도 맺지 않은 남부샨족에만 지원군을 보내 정부군을 배후 공격하며 북부샨족의 숨통을 터줬다.
버마 지도자들이 전혀 포기할 태세가 아님을 깨달으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했다. 소수민족 사이의 군사관계 지형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타이와 접경한 샨주 남부에서 활동 중인 샨주남부군은 2005년 반목했던 옛 적군 와주연합군과 비밀협정을 맺었다. 양 민족은 버마 문제에 정통한 일부 전문가마저 놀랄 정도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양 민족 사이에 평화로운 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샨주남부군 지도자 요르드 세르크의 뛰어난 정치 지략 덕분이었다. 샨주남부군은 오늘날 남크함이나 무세 등 중국 접경지대에 이르기까지 정찰 범위를 샨주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 접경지역에서는 샨주남부군 소속 701여단이 작전을 수행 중이다. 2008년부터 중국 정부에 은밀히 협조하며 마약 밀매 조직 소탕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샨주남부군은 버마 정부의 이익에 반해 중국의 간접적 지원을 받고 있다.
2011년 6월 정부군과 카친반군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서 민간인 수천 명이 중국 국경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중국 정부의 반응은 잠잠하기만 했다. 일단 중국 정부는 안정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며 자신이 지원하는 반군에 정부군을 향해 먼저 발포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휴전협정을 체결한 다른 모든 반군과 마찬가지로 와족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편 오늘날 와족이 보유한 군장비(20대가 넘는 군 수송 차량, 130mm 포, 이동식 대공 미사일 발사기 등)는 모조리 중국제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일부 소수민족을 지원하면서도 버마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은 버마에 81억7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더욱이 2010년 9월, 5일간의 베이징 방문 기간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영접을 받은 탄 슈웨 장군은 중국에서 300억 위안(약 42억 달러) 규모의 무이자 차관을 제공받았다. 중국은 버마의 원자재와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버마에는 무기와 생필품 등 중국산 공산품을 수출하고 있다.
와주에서는 중국 기업 ‘농창’이 와족 지도부와 직접 수천ha에 달하는 30년짜리 고무나무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라후민족개발기구(Lahu National Development Organization)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샨주 전역에는 약 50만ha에 달하는 고무나무 조림지가 조성돼 있다. 그러니 이 기업들이 자신의 고무나무 조림지가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중국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벵골만 가스를 수송하는 가스관과 차우크퓨 항만에 들어온 유조선에 실린 석유를 수송하기 위한 송유관의 안전이다. 현재 중국 노동자 2천 명을 동원한 중국국영석유회사(CNPC)의 참여로 차우크퓨 심해 항만이 한창 건설 중이다. 항만은 2012년, 가스관·송유관 공사는 2013년 초 완공을 앞두고 있다. 가스관·송유관은 아라칸 해안지대에서 출발해 샨주 최북단 지대인 만달레이와 무세를 지나 윈난시까지 무려 10만km나 이어진다. 심지어 구이저우성과 광시 자치주까지 가스관을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 초대형 공사에는 모두 30억 달러가 투입될 것이며, 가스관이 완공되면 적어도 30년 동안 중국에 가스 공급이 가능할 것이다. 시공사로는 CNPC가 선정됐고, 여기에 한국 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가스전 개발), 버마 국영기업인 미얀마석유가스공사(MOGE), 그리고 2개 인도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버마의 주요 강에 수력발전댐을 건설하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전력을 생산하고 강물을 모아두기 위한 이중의 목적으로 계획된 이 사업에는 초기 타이가 참여했다. 전력 생산에 관심이 많은 중국은 타이전력공사(EGAT)가 시공사로 참여 중인 이 사업에 합류해, 카렌주 살윈강 유역 하트지댐과 샨주 남부 살윈강 유역의 타상댐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타상댐은 90억 달러가 투입되는 7천 메가와트(MW)급 이상의 초대형 사업인 만큼, 중국은 자국의 3대 대형 에너지기업인 중국삼협총공사와 중국남방전망, 중국수전을 총출동시키고 있다.
중국, 천연자원 노리고 분쟁 개입
버마 기관지 <미얀마의 새 빛>에 따르면, 2009년 12월 시진핑 중국 부주석이 버마의 새 수도 네피도를 방문할 당시 양국 사이에는 무려 16개에 이르는 수력댐 사업 협정이 체결됐다. 샨주 살윈강의 2개 댐 외에도 쿤론강의 2400MW급 초대형 댐 건설이 포함됐다. 중국수전은 살윈강의 두 지류인 남마와 남카, 그리고 메콩강 지류인 남르웨 등의 댐 건설 계약을 대거 따냈다.
2010년 초 중국의 또 다른 유수 수력발전업체인 다탕수력집단이 버마 전력부와 이라와디강 지류인 타핑강 수력댐 건설 계약을 맺었다. 이 댐은 카친주 타공에 위치한 니켈 제련소와 금광 등의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240MW급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다탕수력집단은 카레니주의 3개 댐 건설 공사에도 참여한다. 600MW급 댐을 살윈강 유역의 이와팃과 살윈강의 두 지류인 남풍, 남타벳 등에 건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력댐 건설 사업이 증가하면서 지역단체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수력댐으로 인해 생태계 균형이 파괴되고 수많은 마을과 농지가 침수되는 것은 물론, 취약계층의 강제이주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카레니족은 최초의 초대형 댐이던 로피타댐 건설 때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의 도움을 받아 카레니주에 로피타댐이 건설됐지만 지역민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았다. 댐에서 생산된 전력은 카레니주의 주도인 로이코가 아닌, 중앙정부와 랑군시에 공급됐다.
자본 투자로 새로운 갈등 불씨
중국과 접경한 카친주에서는 2007년 5월 버마 군부가 말리카, 은마이카, 그리고 이라와디강의 발원지인 이 두 강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마잇손 유역에 6개 댐을 건설하기로 중국전력투자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사업으로 카친족의 문화 유적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싱가포르 크기에 해당하는 지역이 물에 잠기면서 다양한 생물종 서식지가 파괴되고, 주민 1만 명이 강제이주를 해야 했다. 더욱이 댐이 건설될 지역은 지진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상류 40km에 위치한 카친주의 주도 미치나에 엄청난 재앙이 몰아닥칠 것이 분명했다.
중국과 댐 건설 계약을 체결되자마자 카친주의 비정부기구들과 카친독립군이 강하게 반발했다. 반대 여론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이 사업은 이라와디강을 수원지로 하는 모든 소수민족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부 부처의 지원을 받은 이 사업에 대해 군부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부 장성은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앞으로 중국 의존율이 더욱 높아질 것을 우려했다.
2011년 9월 30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테인 세인 대통령이 마잇손댐 건설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일부 반정부 세력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버마 정권의 술책에 익숙한 좀더 신중한 다른 이들은 정부가 잠시 사업을 중단한 것이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다른 6개 댐 건설 사업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중국 정부는 불만을 표시했다. 2011년 10월 21일 중국 난닝에서 버마 부통령 탄 아웅 민트 오우를 만난 원자바오 총리는 버마가 양국이 맺은 공동사업 계약을 준수해야 마땅하다며 강하게 몰아세웠다.
오랫동안 ‘접경지역’으로 불리며 역대 정권의 홀대를 받아온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막대한 양의 천연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군부나 군부와 결탁한 모리배들은 1990년대 초부터 이 지역의 자원을 부지런히 약탈해갔다. 이 때문에 정작 주인인 지역민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최대 수혜자인 중국만 배를 불리고 있다. 중국은 버마 접경지역뿐 아니라, 버마 전역에서도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버마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도, 버마 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일부 소수민족을 지원하기를 잊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글 / 앙드레 부코 André Boucaud & 루이 부코 Louis Boucaud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1) ‘버마 군부, 영구 지배 위한 교묘한 전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1월호.
(2) 2009년 8월 버마 정권은 단 며칠 만에 중국 접경지대에서 코캉 반군 소탕에 성공했다.
(3) <언더커런츠>, 제3호, 방콕, 2009년 4월.
(4) ‘Wen says China, Myanmar should stick to their word‘, <로이터통신>, 2011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