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팀, 축구공은 둥글지 않다

2012-01-10     이동연

“국가대표팀의 선임과 해임은 기술위원회의 권한이고 결정 사항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의 해임을 두고 어떠한 기술위원회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기술위원회가 그동안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을 토대로 면밀한 분석과 토의 끝에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저는 수용할 용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위원회의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입니다. (중략) 향후 어떠한 인물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떠나는 일이 있다고 해도 한국 축구의 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대표팀 감독직이 좌우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축구계의 권력 투쟁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조광래 감독을 만나 해임을 통보한 이후, 조 감독이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성명서 일부다. 이 성명서를 서두에 올린 이유는 이 안에 대한축구협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광래가 아닌 다른 감독이 같은 일을 당해서 성명서를 써야 할 상황이라도 아마 거의 동일한 내용을 썼을 것이다. 이 성명서가 담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문제의 핵심은 바로 합리적 절차가 무시되고 소수 권력에 의해 한국 축구 행정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단일 구기 종목으로 가장 큰 행정조직일 뿐 아니라, 한 해 1천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3차 예선이 진행 중인 시점에 대표팀 수장 경질 여부를 놓고 벌인 촌극은 한국 축구 행정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기술위원회 회의 한 번도 없이, 회장단의 결정으로 감독을 경질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을까? 누가 왜 합리적인 절차 없이 대표팀 감독을 경질했을까?

어찌 보면 이번 사태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 벌어진 것도 아니고, 눈을 전세계로 돌리면 축구를 둘러싼 더 심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곧 정치이고, 산업이고, 권력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건은 작게는 축구협회의 권력 투쟁에서, 크게는 국가 간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막후의 역사가 실로 복잡하다.

1970년 월드컵 중미 예선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각각 승리해 제3국인 멕시코에서 최종전을 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엘살바로드가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이기자, 이에 격분한 온두라스 팬들이 자국의 엘살바도르인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엘살바도르 정부가 곧바로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은 5일 만에 휴전됐지만, 이 초유의 ‘축구 전쟁’으로 양국에서 5천 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이던 프란츠 베켄바워는 수문장 올리버 칸을 놓고 당시 감독이던 위르겐 클린스만과 대립했는데, 이유는 클린스만이 만년 독일 수문장 올리버 칸 대신 옌스 레만을 주전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이 바이에른 뮌헨의 상징인 올리버 칸에게 물먹인 것은 곧 독일 축구의 최대 권력 집단인 바이에른 뮌헨과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다. 독일 축구의 역사는 남부를 연고로 한 바이에른 뮌헨과 나머지 비(非)바이에른 팀들로 양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던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 권력을 지배하는 바이에른 뮌헨에 반기를 들고 이탈리아 삼프도리아로 이적하면서 이른바 ‘바이에른 뮌헨 권력’과 등지고 말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베켄바워는 월드컵 조직위원장이었을 뿐 아니라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주였다. 바이에른 뮌헨 출신의 독일 축구 권력집단은 베켄바워를 내세워 클린스만을 흔들려 했다. 실제 언론도 둘 사이에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독일 월드컵을 코앞에 둔 상황이라 베켄바워는 결국 클린스만을 지지했고, 월드컵 뒤 클린스만이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선임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지만, 독일 같은 선진 축구계에서도 특정 계파를 둘러싼 권력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1994년부터 3번에 걸쳐 이탈리아 총리에 오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전통의 명문 AC 밀란의 구단주다. 그는 숱한 정치 스캔들과 성추문으로 100건이 넘는 조사와 재판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바로 이탈리아의 영원한 축구 사랑이 있었다. 이탈리아 축구계는 정치인과 마피아의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승부 조작 사건의 배후에는 마피아가 있고, 그 마피아의 배후에는 정치인이 있다. 스페인에서도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과거부터 왕당파가 지지하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와 시민 공화파가 지지하는 바르셀로나 선수 간의 대립이 격화되기도 한다. 스페인 축구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월드컵에서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은 모두 두 파벌 간의 싸움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 출신인 델 보스케가 맡고, 선수는 바르셀로나 선수 중심으로 꾸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축구대표 선발을 놓고 영원한 앙숙 보카 주니오르와 리베르 플라테 간의 권력 싸움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 권력 집단은 대표팀 경기를 어디에서 치를 것인지를 놓고도 큰 싸움을 벌인다. 보카 주니오르 출신 마라도나 감독이 남미 예선전 때 계속 경질 위협에 시달린 것은 부진한 성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베르 플라테 축구계 출신들의 줄기찬 사퇴 압력 탓이 컸다.

과거 한국 축구계에도 라이벌 권력 집단이 존재했는데, 흥미롭게도 그것은 프로 클럽이 아닌 대학 출신 간의 대립이었다. 프로리그가 출범하기 전에 한국 축구대표팀은 연세대 출신과 고려대 출신 선수들이 양분하다시피 했다. 연세대 출신 대표팀 선수로는 허정무·조광래·김호곤 등이 있고, 고려대 출신 대표팀 선수로는 차범근·김정남·이차만 등이 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대표팀 선수 선발을 놓고 연·고대 출신 축구계 인사들 간에 권력 싸움이 치열했다. 대표팀 경기 중에 양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들 간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으로 패스 게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는 루머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임원진 내부에도 연·고대 출신들 간의 치열한 권력 싸움이 있었고, 이는 곧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서 연맹 산하 임원 인사에 이르기까지 축구협회가 오랫동안 학연과 지연에 의해 좌우됐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한국 축구 권력, 학연에서 재벌로

한국 축구에 프로리그가 정착되면서 학연에 의한 파벌 싸움이 조금 줄어들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대표팀 안에 학연과 서열 문제가 많이 해소했지만, 축구협회에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이 권력 집단의 중심에 정몽준 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1993년 42살에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임돼, 2009년 조중현 현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16년간 축구협회를 지배했다. 정몽준 회장이 축구협회에 취임하면서 가삼현 국제부장을 비롯해 현대그룹 출신 인사들을 대거 축구협회 간부로 임용했고, 조중현 현 회장을 지렛대 삼아 축구협회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축구계의 큰손 현대그룹의 경영 2세인데다, 한·일 월드컵 유치를 위한 국제 로비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거기에 국제축구협회(FIFA) 부회장에 당선된 정몽준 회장을 비판적으로 견제할 만한 축구협회 내부 인사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호 감독에게서 들은 정몽준 회장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 김호 감독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을 준비하러 1993년 가을 독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훈련 도중 갑자기 대한축구협회 임원의 연락을 받았는데, 그해 1월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당선된 정몽준 회장이 격려차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호텔 앞에 마중 나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선수를 훈련시키고 있던 김호 감독은 시간 여유가 없어 거절했지만, 의전상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반강제적인 연락을 받은 뒤 고민 끝에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김호 감독은 그때 감독의 권한과 자존심 때문에 직접 호텔 로비로 나가 정몽준 회장을 맞이하는 대신 나중에 만나서 인사를 했다. 그때부터 김호 감독과 정몽준 회장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고 한다. 김호 감독은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동래고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실업 축구팀으로 입단했다. 그는 축구계의 연·고대 인맥도 아니고 오직 실력 하나로 인정받아 국가대표 감독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의 한계는 그를 아직까지 축구계의 야인에 머물게 하고 있다.

정몽준 전 회장 재임 기간에 역대 국내파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는 김호, 박종환, 고재욱, 차범근, 허정무 등이 있다. 이 감독들 모두 재임 기간에 협회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김호 감독도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회의 지원 부족으로 아주 힘들었다는 개인적인 고백을 했고,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본선 기간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되는 수모를 당했다. 허정무 감독도 월드컵 예선 기간에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조광래 감독 역시 월드컵 예선 기간 중에 적법한 절차가 생략된 채, 전격 경질됐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국가대표 감독은 모두 20번 교체됐다. 평균 1년에 1명씩 교체된 셈이다. 어느 외신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수 선발, 대표팀 전지훈련 일정과 방법, 기술위원회와의 원활한 소통 등에서 감독이 얼마나 자율권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다. 포스트 정몽준 체제를 이끌고 있는 조중현 회장 역시 정몽준 체제에서 형성된 대한축구협회의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조광래 전 감독은 자신의 감독 재임 기간에 3명의 축구계 인사로부터 특정인을 대표팀에 발탁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실 이런 선수 선발 관련 청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축구협회 핵심 인사들의 개인적 친분과 관련된 청탁은 감독들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조광래 감독 경질에 축구협회와 월드컵을 후원하는 스폰서 기업, 그리고 중계권을 가진 모 방송사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표팀이 월드컵 최종 예선에 나가지 못한다면 막대한 재정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축구협회의 행정을 뒤흔들고, 축구협회 현 임원들도 이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축구협회를 점령하라!

현대 축구는 그냥 필드 위의 축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축구가 필드 위에서 펼쳐지기까지 그 안에는 수많은 정치적 권력 투쟁과 자본의 논리가 개입된다. 한국 축구협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협회가 축구인에 의해, 축구인에 대해, 축구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랫동안 축구협회를 지배해온 정몽준 현 명예회장 체제에서 완전히 독립해 새로운 체제로 가야 한다. 조중현 현 회장 역시 정몽준 체제의 연속이다. 한국 축구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는 월드컵 본선에 8회 연속 진출하는 것보다, 축구협회의 행정 체계를 완전히 새롭고 투명하게 개혁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뒤에서 꼼수 부리지 않고, 앞에서 정정당당하고 통 크게 축구협회 행정을 혁신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인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1999), <문화부족의 사회: 히피에서 폐인까지>(200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