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잃은 무력한 좌파

악화일로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

2022-10-31     세르주 알리미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아리스티드 브리앙, 장 조레스, 블라디미르 레닌, 클라라 체트킨... 유럽에서 전쟁이 터져 유럽 전역이 매몰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좌파 웅변가와 반전 시위대가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는 다르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전쟁과 언론의 격앙된 보도 속에서, 유럽의 좌파는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 이후로 평화로운 일상에 난데없이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당의 관심은 온통 다른 데 쏠려 있다. 미국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외교정책을 다루는 의회, 상원의원 후보자들은 한 시간 내내 이어진 뜨거운 공방 속에서,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느덧 외교는 실종된 듯하다. 러시아의 핵전쟁 경고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매체는 ‘공갈 협박’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는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각종 시설물 파괴 공작에 이어 폭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들은 계속 엉뚱한 소리들만 해대고 있다.

 

‘자유세계’와 ‘악마’와의 싸움

지난 10월 3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는 프랑스 하원의 토론 분위기는 자못 냉담했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면, 이날의 일은 뇌리에서 지워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과거 친 푸틴 행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의원들과, 1950년대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자유세계’ 운운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의원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기개가 없는 정치인들이나 인류의 역사에 무지몽매한 언론인들은 언제나 ‘자유세계’를 운운하곤 했다. 그들은 뮌헨, 달라디에, 체임벌린, 스탈린, 처칠, 히틀러 등 1938년과 1939년, 이 두 해의 역사를 끊임없이 현재와 대비했다. 지난 20년, 그런 식으로 ‘사담’, ‘밀로셰비치’, ‘카다피’, ‘아사드’ 등이 우리에게 독일 총통의 화신으로 소개됐다. 이런 행태는 거의 5년 주기로 거듭 반복됐다. 

2022년에는 ‘크렘린궁의 주인’, ‘푸틴’에게 악역이 돌아갔다. 매번 우리는 동시대의 악마에 맞서 싸워야 했다. 나아가 악마를 응징하고, 무너뜨리고, 박살내야 했다. 더 큰 범죄 행각을 막기 위해 말이다. 그 후에는 언제나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쓰러진 괴물의 자리를 대신한 존재가, 우리가 기대한 관대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애통해하는 것이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자리에는 각종 불법무장조직들이, 사담 후세인의 전 병사들을 양성하던 곳에는 이슬람국가조직(IS)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러시아 ‘정권 교체’라는 위험한 도박을 부추긴 것은 군비 증강과 영원한 문명전쟁을 추종하는 네오콘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를 포함해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 세력도 함께 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구도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냉전이 절정에 달한 1961년, 소련 봉쇄정책의 입안자로 유명한 조지 F. 케넌은 미국 동포들과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 경고했다. “전쟁을 벌이는 민주주의 국가만큼 자기중심적인 존재는 없다. 전쟁을 벌이는 민주주의 국가는 금세 자신들이 벌이는 전쟁 선전전에 스스로 희생자가 될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의를 절대 가치라고 주장하며 다른 모든 세계관을 왜곡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은 악의 화신으로, 자신의 진영은 모든 덕의 온상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리고 양자의 대결은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해석된다. 우리가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더 이상 삶은 가치가 없어지며, 어떤 구원의 가능성도 모두 사라진다. 반면 우리가 승리하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고, (...) 어떤 장애물도 없이 선의 힘을 자유롭게 펼치며, 가장 고귀한 열망을 실현해낼 수 있다.”(1)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이런 ‘민주주의적 이원론’에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에는 러시아 정부의 잘못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모두가 국제적으로 인정한 국경선을 무시하고 이웃국의 영토 완전성을 침해했고,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 권리를 끈질기게 유린하고 있다. 그런 만큼 러시아는 이런 식의 무력 사용을 금지한 국제연합(UN) 헌장을 위반한 책임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게다가 UN 창설국인 러시아는, ‘세계 평화 수호’라는 UN 본연의 역할을 방해하고 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침략국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데, 침략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한 거짓말, ‘구세주 서구’의 신화

 

러시아는 흡사 과거 이라크 전쟁 때의 미국처럼 행동하고 있다. 여기에 죄질은 더욱 심각하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때 스스로 인정한 국경선을 무시하고, 2014년 이웃국 영토의 일부인 크름반도를 강제로 병합했다. 이어 최근에는 돈바스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 등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여러 영토를 또 다시 추가로 병합했다. 심지어 일부 병합한 영토는 온전히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게다가, 러시아군은 파괴공작, 전쟁범죄, 강간 등(관련기사 참조)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물론, 베트남 전쟁 때의 미국이 이들보다 덜했다고 할 수는 없다. B52 폭격기의 공습,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대대적인 고엽제 살포, 1968년 3월 16일 민간인 5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윌리엄 캘리 중위의 미라이 민간인 학살. 이 참혹한 사건들은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아무도 더는 이 사건들을 되돌아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 2월 24일 이후 서구의 고결함을 더럽힐 만한 사건들, 피에 굶주린 폭군으로부터 약자들을 구원한 ‘구세주’, 서구의 미담에 오점을 남길 만한 사건은 함구돼야 한다. 매 순간 이토록 경건한 거짓말을 강요받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위압적이고 비지성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2) 심지어 우리 스스로 ‘몽유병자’를 자처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 터지고 1914년 8월이 돼서야 비로소 미몽에서 깨어났던 저 몽유병자들처럼 말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수일 전, 프랑스인들의 관심은 온통 사라예보에서 멀리, ‘보주의 푸른 선’(알자스와 로렌의 경계를 의미하는 표현-역주)에서 멀리,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7월, 파리의 대법원에서 앙리에트 카요의 재판이 열린 것이다. 4개월 전, 그녀는 남편 조제프 카요에 대한 비방 기사로 음해 공작을 펼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르피가로>지의 편집장 가스통 칼메트를 살해했다. 당시 우파 언론의 눈에 조제프 카요의 죄목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비교적 온건함에도) 좌파 진영에 속했다는 것, 군국주의에 적대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하원에서 막 통과된 소득세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앙리에트 카요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날 무죄 방면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에 총동원령이 선포됐다. 8월 22일, 불과 하루 만에 프랑스 군인 2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요 재판은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사건들도, 곧 우리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지고 말리라. 우리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을 앞에 두고도, 돈바스와 크렘린, NATO 사령부 등에서 용암이 시뻘겋게 끓어오르고 있는데도, 정신이 온통 다른 데 팔려 있다. 

사실 현 단계에서는,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 미국의 거듭된 도발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어찌하여 러시아가 미국이 독일 통일 때 약속한 것과 달리 러시아 국경으로 지속적인 진출을 꾀하고, 옛 소련연방국들을 자국 진영으로 흡수하며, 러시아의 전략적 수단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설명해봐야 무용하다. 사실 구소련 시대에만 해도 서방국가들은 이런 대담무쌍한 도발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국 또한, 자국 국경지대에 전략적 적들이 진을 쳤다면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좋은 결말’은 불가능하다

당시 두 초강대국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립할지라도, 도발-긴장 악화-전쟁이라는 프레임에는 갇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더욱이 당시 실시간 뉴스란 게 존재하지 않고, 미디어의 폐해 역시 오늘날만큼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사태에 도움이 됐을 수 있다. 사실상 1962년 위기를 해결하고 종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비밀 협정 덕분이었다. 

쿠바가 소련의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단순히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간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당시 터키에 배치한 미사일을 해체하기로 약속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서방의 국가수반들은 러시아와의 대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외교란 자고로 공보 활동과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서방의 지도자들은 지금의 푸틴처럼 매번 최후의 통첩을 날리듯 극단적인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지도 않았다.

과거의 쿠바 위기는 여러모로 약이 됐다. 미국과 소련은 감당하기 힘든 위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여하튼 냉전 대신 평화적 공존을 도모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1963년 6월 존 케네디는 “핵강국은 자국의 중대 이익을 수호하면서도 동시에 결코 적이 굴욕적인 후퇴와 핵전쟁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극한의 대립만은 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자국 외교관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도발이나 적대적인 발언”은 삼가라고 지시했다.(3)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해피엔딩이나, 과거의 지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이번 전쟁은 어떤 식으로도 좋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박살나거나, 이웃나라에 무릎을 꿇고, 영토가 분할되는 수모를 겪을 가능성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그런 사태가 정말로 발생한다면, 분명 미국이나 NATO에는 굴욕적인 패배가 될 것이다. 반면 정교회나 극우파와 손을 잡은, 전제적이고 반동적인 러시아 민족주의 세력에게는 큰 승리를 안겨다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말(매우 말하기 조심스러운 사실이지만)은 분명 그 어떤 진보적 대의에도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패배가 나머지 유럽국에 미칠 영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도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 내일 오데사가 함락된다고 해서, 그 다음에 러시아가 런던, 베를린, 파리로 진격할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도 터무니없다. 러시아군이 무려 8개월이나 돈바스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향후 러시아가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같은 NATO 회원국들을 위협하기를 바라거나 혹은 위협할 능력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기 어렵다.

반대로, 러시아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해도 전쟁의 끝은 좋지 않을 것이다. 서방국가들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이뤄낸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는 물론 러시아의 침략에 종지부를 찍고, 적어도 공식적으로나마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회복시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전쟁에 진 러시아가 핵전쟁 같은 무모한 도발을 벌이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여하튼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결코 우크라이나 민족만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굴욕으로 흔들리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강화시켜줄 것이고, 모든 자주국방에 대한 야망을 포기한 유럽연합 내에서 미국의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우크라이나가 영속적으로 NATO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와 영원히 긴장관계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분명 러시아는 절치부심 설욕의 기회를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당사국들이 (과거 케네디가 우려했던) ‘굴욕적 후퇴’를 면할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두 강대국은 향후 수십 년간 기후변화나 국가 간 지배·종속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비 증강을 위해 온 힘을 쏟을 것이다. 물론 과거 러시아의 패배는 민주주의 개혁의 씨앗이 됐다(크름전쟁 이후 농노제도 폐지, 1905년 러일전쟁 패배 후 차르의 전제적 권한 제한). 하지만 ‘정권 교체’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과거에는 핵전쟁의 위험은 없었다.

 

새 ‘신성동맹’의 좌파, 그 이중적인 면모

유럽과 미국에서 좌파 세력은 흔히 대서양주의에 동조하는 세력과, 주눅이 들어 조용히 몸을 낮춘 세력으로 갈린다. 그런가 하면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좌파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먼저, 대서양동맹에 동조하는 세력부터 살펴보자. 이들 좌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는, NATO의 정책에 가담하고 있다. 물론 침략당한 국가를 돕기 위해 동조하는 것뿐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침략당한 국가는 (외국의 지원에 호소하는 방법 등) 자국이 선택한 방법에 따라 조국을 수호하고 영토를 해방시킬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 좌파는 정말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때로는 그들이 맞서 싸우는 정권과 버젓이 연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신성 동맹’ 안에 갇혀, 자율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포기하고, 어떤 독자적인 제안도 표명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적들이 그들에게 항상 기대해온 모습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똑같이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책임감’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현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군사적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낼 유일한 방도는 NATO와 협력하는 길뿐이다. 러시아의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이런 비극적 해법 외에 다른 대안을 남겨 놓지 않았다.”(4) 1999년에도 이미 NATO의 코소보 개입을 열렬히 옹호한 적이 있는 프랑스 좌파지식인으로 저널리스트인 에드위 플레넬은 이렇게 주장했다.

한편 조용히 지내는 또 다른 좌파도 있다. 이들은 속으로는 전혀 적법하거나,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제재 조치를 겉으로는 지지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살짝 다른 주제로 방향을 돌린다. 사회당과 녹색당처럼 프랑스에서 대서양주의에 동조하는 좌파 세력은 오늘날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한껏 어깨가 으쓱해진 상태다. 반면 그 외 공산당이나 불복하는 프랑스당 등 다른 좌파 세력들은 하루빨리 폭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몇 달 전 겨우 결성된 좌파 연대가 계속 지속되기를 고대하며, 조용히 몸을 낮추고 있다.

 

아직도 진영주의 울타리에 갇혀 러시아를 추종

사실 나토주의 세력과 ‘비동맹’ 세력 간의 대립 구도는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1966년 4월 20일, 프랑수아 미테랑과 그의 사회주의 동지들인 막스 르죈과 기 몰레는 드골 장군 정권에 대해 불신임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군의 NATO 탈퇴를 추진하며 “프랑스의 고립을 자초하고, 조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라는 것이다. 프랑스가 NATO 동맹국의 편에 서서 러시아와 대립할 수도 있는 전쟁에 참여할 때가 되면, (환경이나 민생 문제에서는 그토록 의기투합하던) 두 좌파는 극렬히 갈라지곤 했다.

한편 그와는 또 다른 종류의 좌파 세력도 있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나 아랍 세계에서 위세를 떨치는 종종 ‘진영주의자’(진영주의(Campism)란 모든 정치적 상황을 두 제국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환원해, 어느 한 진영에 서는 것을 말한다-역주)로 분류되는 좌파 세력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반제국주의자로 자처하며, 지금이 구소련 시대인 것처럼 거의 모든 러시아의 이론을 열렬히 추종한다. 때로는 마르크스 연구가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의 말처럼, 그들이 현대의 러시아를 ‘자본주의 국가’로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현재의 러시아는 “서구의 동조와 지원 하에, 옛 국가의 재산을 약탈한 덕분에 지배계급이 된 올리가르히”가 판을 치고 있다.(5) 

한편, 우크라이나의 자유주의 운동가들은 단순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정학적 위상을 놓고 싸우는 국가 간 전쟁”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러시아가 자국에 꼭두각시 정권을 강요하고, 우크라이나 화폐를 루블화로 대체하고, 러시아어 교육을 의무화하려는 현실 속에서,(6)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독립 전쟁”으로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반제국주의 좌파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이 미국의 진영에 서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순식간에 이런 지정학적 변화를 초래하고,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의 EU 가입에 박차를 가한 사람이 실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러시아 대통령의 적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푸틴이 KGB 고위 관료 출신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고 싶어 안달한다. 

하지만 지난 2월 이후 푸틴의 성적표를 보면, 심지어 그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국장이었다고한들 (41대 미 대총령 조지 H. W. 부시처럼) 미국의 국익을 위해 과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사실상 러시아는 이미 게임에 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거듭된 패배는 러시아군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한편, 러시아의 모험주의는 유럽대륙 내 미국의 영향력만 더욱 키우고 말았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의식(비록 크름반도, 돈바스 등 러시아어 사용권에 거주하는 많은 주민들이 여전히 스스로를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와 더 가깝다고 여기지만 말이다)을 더욱 자극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아무리 러시아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과 동일한 민족”이라며,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를 부정할지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자국 가스를 수출하고, 외교적인 고립을 피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중국에 깊이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만큼 러시아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전쟁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것과 같다는 기존의 주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좌파의 외교적 해법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해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서로 모순된 사실이기에 더욱 어려울 것이다. 가령 우리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주권을 수호할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충분히 러시아의 ‘굴욕적인’ 패배가 미국의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NATO를 지배하고, 우크라이나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며, 서구 진영의 숙적을 약화시키려 노리는 것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국제질서에서 두 적수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안다면, 많은 저개발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반대하면서도, 러시아에 지정학적 균형추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가 무너지는 순간 미국의 자만심은 극에 달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미국에 반항하는 나라들은 온갖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들은 또한 미국이 어떤 합법성도 없이, 심지어 참여를 원치 않는 나라들에까지 제재 조치를 강요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미국의 제재 조치는 ‘규칙’과 ‘법’을 중시하는 서구의 사상에도 위배된다. 그런데도 많은 유럽국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심지어 유럽국 역시 쿠바나 이란과 거래했다며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했던 치외법권적 날강도질의 희생자인데 말이다. 더욱이 이런 제재 조치는 사실상 미국이 홀로 국제법을 유린해가며 결정한 것이다.(7)  

 

좌파는 이 전쟁에서 어디에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반드시 외교적 해법을 통해 종결돼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이 그저 묘연하기만 하다. 사실상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일부 영토를 강제 병합했다. 그런가 하면, 우크라이나 정부도 절대 푸틴 대통령과는 협상할 의사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런 교착상태에서, 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은 남의 나라의 전쟁터에서 더 이상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여전히 대화가 가능한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양국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조국 수호를 지원하는 서구국가들도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서구가 제공한 무기는 결코 러시아가 용납하지 않을 크름반도 재정복이나 러시아 영토를 겨냥한 군사작전에 쓰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소에 세우려는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제43대)도 은퇴 후에 텍사스의 목장에서 유화를 그리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지난 10월 6일, 바이든 대통령이 ‘인류 종말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서 하는 말이지만, 부디 그가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종말을 예방하는 법을 찾아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기를 희망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역시 휴전이나 분쟁 동결이 핵겨울(핵전쟁 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빙하기 - 역주) 보다는 더 낫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란다.(8)

이런 상황에서 가히 좌파의 부재는 그저 경악스럽기만 하다. 좌파는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거나, 조용히 침묵하거나, 혹은 아무 말이나 마구 주워섬기고 있다. 다시금 문명전쟁과 관련한 주장이 재등장하는가 하면, 화력발전소가 재가동되고, 국방비 지출이 폭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대체 좌파는 어디에 있는가? 좌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외교적 해법을 구상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 좌파가 경제정책, 문화적 상징물, 선거 지지층 확보 등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갈리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외정책 분야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현재 대외정책에서는 준비된 것이 전혀 없거나, 설혹 있다고 해도 쇄신해야 한다.

좌파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George F. Kennan, 『Russia and the West under Lenin and Stalin』, London, 1961년. Tariq Ali, 『Winston Churchill, His Times, His Crimes』, Verso, London, 2022년.
(2) Serge Halimi, Pierre Rimbert, ‘Un voluptueux bourrage de crâne 젤렌스키의 달콤한 과대선전에 휘둘리는 저널리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9월호.
(3) 존 케네디 연설, American University, Washington DC, 1963년 6월 10일.
(4) Edwy Plenel, 『L’épreuve et la contre épreuve 본 실험과 대조실험』, Stock, Paris, 2022년.
(5) Stathis Kouvelakis, ‘La guerre en Ukraine et l’anti-impérialisme aujourd’hui 우크라이나 전쟁과 현대의 반제국주의’, Contretemps, 2022년 3월 7일, http://www.contretemps.eu.
(6) Vladyslav Starodubtsev, Ashley Smith, ‘La Révolution prolétarienne프롤레타리아 혁명’, 제818호, Paris, 2022년 9월 인용.
(7) Jean-Michel Quatrepoint, ‘Au nom de la loi.. américaine 미국법의 이름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한국어판 2월호.
(8) Anatol Lieven와의 인터뷰. ‘The War in Ukraine Could Lead to Nuclear War’, <Jacobin>, New York, 2022년 10월 3일.
 
 

만족스러운 투자

 

지난 10월 4일, 4성 장군 출신이면서 보수 채널의 고문인 잭 킨(Jack Keane)은 폭스 비즈니스(Fox Business)에 출연해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꽤 많이 투자했다. 우크라이나에 올해 660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는 전체 예산의 약 1.1%에 해당한다. 투자로 얻은 것은? 러시아를 저 멀리 가져다 놓았다는 것 (중략) 우리의 660억 달러로 전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크라이나이며, 우크라이나는 전쟁터에서 러시아군을 글자 그대로 쳐부수고 있다. 러시아군은 몇 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며, 소비에트 연방 탈환이라는 푸틴의 야망이 실현될 가능성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간 전쟁이 될 것이며,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전쟁이 될 것이다. (중략) 투자에 대해서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비자

 

2017년, 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은 테러 위험성이 있는 7개국(대부분 무슬림 국가) 국민의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미국의 조치는 유럽의 반발을 샀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체코의 뒤를 이어 폴란드, 핀란드, 발트 3국이 러시아 국민에(쉥겐 비자가 있어도) 영사관 및 국경 문을 닫았지만, 이 결정은 그리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유럽 방문은 특권이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라고 카야 칼라스(Kaja Kallas) 에스토니아 총리가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난처한 반응에, EU 집행위원회는 EU 27개국의 공통된 입장표명을 몹시 원했다. 그 결과, EU 집행위의 제안에 따라 8월 31일부터 러시아인에게 비자 발급 승인을 중단했다.   

 

세상의 종말 예측

 

“우리는 케네디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세상의 종말을 예측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한 녀석이 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적잖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녀석이 잠재적인 전술핵무기나 생화학무기에 대해 말할 때는 진지합니다. 그의 군대는 절대 우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러시아 교리의 일부입니다. 조국이 공격을 당하면 러시아는 핵무기를 포함한 필요한 모든 군대를 동원해 조국을 지킬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 없이는 전술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출처: 2022년 10월 6일 뉴욕에서 있었던 조 바이든의 연설

 

의심의 여지 없는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플로리다 주 공화당 상원의원은 2022년 9월 1일과 2일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 1과 2번을 망가트린 폭발 사건 경위 조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루비오 의원은 사건의 가해자가 모스크바에 있다고 확신했다. 지난 10월 19일, 그의 경쟁상대인 발 데밍스(Val Demings) 민주당 의원과의 상원의원 후보 토론에서 “러시아가 이미 NATO를 공격했다. 러시아에서 독일까지 이어지는 해저 가스관이 폭격 당했다. ‘러시아가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는 르포를 봤다. 정말 다른 국가가 그랬을까? 룩셈부르크? 벨기에? 아니다, 당연히 러시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출처: 2022년 10월 19일 자 <엔비시 6 사우스 플로리다(NBC 6 South Florida)>

 

러시아가 무너진다면

 

“러시아 연방의 붕괴는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이익과 입장에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중국은 고립 상태에 놓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 공급을 위협받게 될 것이며, 신(新)실크로드 계획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중국은 자기도 모르게 러시아를 많이 도와주기로 약속했을 것이다. 중국이 여기에 뛰어든다면, 힘의 균형이 다시 바뀔 것이다. 확실히 우리의 우크라이나 지지는 군사 균형을 깨트렸다. 중국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지만.” 

 

출처: 2022년 10월 3일, 뉴욕 <자코뱅(Jacobin) 매거진>에 실린, 퀸시 책임국정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 유라시아 정책 담당 아나톨 리븐(Anatol Lieven)과의 인터뷰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전쟁이 될 수 있는가(The war in Ukraine could lead to nuclear war)>

 

대놓고 말하지 않기

 

<르몽드>와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등 여러 매체의 논설 기자들은 지난 9월 26일 발생한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 1과 2번 파괴 사건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사보타주(기계·설비 등의 고의적 파괴나 파손-역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전문가들도 10월 1일 자, 독일의 대표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에 실린 기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CIA는 올여름 이미 독일에게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음모 시나리오에 대해 경고했다. 미 중앙정보국은 러시아의 대화를 도청했다. 향후 우크라이나가 서방 인프라를 공격할 가능성을 고려하는 대화였고, 우크라이나가 스웨덴에서 배를 빌리려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었다. CIA는 이런 시나리오는 신빙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방 인프라가 공격받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러시아 측에서 나왔다는 단순한 이유로, 미국은 독일에 이 시나리오를 경고했다.”   

 

출처: 2022년 10월 1일 <슈피겔(Spiegel> 지 기사 ‘Was fur Russland als Tater spricht – und was dagegen’

 

선전 전단

 

제재당하는 국가보다 제재하는 국가에 더 많은 불이익을 주자는 처분에 대해, 2022년 9월 6일 자 <르몽드>에서 스테판 라우어(Stéphane Lauer) 논설 기자는 “이 제재의 효력은 단계적이며 지속성을 지닌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국제 정치경제를 분석하는 기관으로 영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계열사-역주)의 아가트 드마레(Agathe Demarais)에 따르면 이는 마치 인내를 요하는 마라톤과 같다. 유럽인들의 인내심은 시험대에 놓였고, 에너지 분배 및 불황 문제가 불거졌다. 시대는 민주주의 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에너지 안보나 구매력을 포기하면 대가가 있겠지만, 한 시대의 가치관이나 주권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번역·송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