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네로와 싸워 이기는 법
사람들은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 한 번 나서면 대체로 그게 마지막이다. 마크롱 함대의 얄궂은 책사는 아마도 지금 사람들이 들썩이는 게 그 주인에게 유리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지금 밖으로 나온 프랑스 사람들이 한동안 잠잠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석 달 안에 연금개혁을 위해 또다시 집 밖에 나서지는 않으리란 계산이다.
어찌 보면 임금인상 파업은 그 자체로는 강도가 약하다. 레닌이었다면 아마도 (계급적 정치의식의 발전 없이 분파적 이익만을 내세우는) 노동조합운동일 뿐이라 지적했을 것이다. 파업에 돌입해 몇 퍼센트의 임금인상을 얻어내면 사람들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임금인상 파업은, 표면상 요구사항은 내세우나 원칙적으로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제도권 안에서의 행동방식이다. ‘틀 안’에서의 요구사항만을 제시하는 노동조합주의는 기존의 ‘틀’을 인정하므로 이를 뒤엎을 구상은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 구매력 회복이 절박하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 특유의 이 오만한 잣대는 잠시 접어둬야 할 것이다. 프랑스 국민 중 상당수가 이틀에 한 끼밖에 먹을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생활 여건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결국) 일깨워준 노란 조끼 시위대의 가슴 시린 외침을 우리는 기억한다. 시위는 2018년에 일어났으나, 4년이 지난 지금도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임금인상 요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지극히 반가운 일이다.
마크롱, 로마 황제 네로, 칼리굴라에 비교돼
그럼에도,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잔소리를 약간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마크롱의 얄궂은 책사에게 이를 깨우쳐주기 위함이 그 첫 번째 이유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그리고 구매력을 잡으면 나머지 문제는 알아서 해결된다.
파트리크 푸야네 토탈에너지 대표나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같이 배부른 슈퍼 돼지 몇몇을 제외하면, 그리고 일부 ‘워너비’ 인사들과 스타트업 기업인, 민간 혹은 공공 부문의 지체 높은 양반들, 자타 공인의 사업가, 돈 많은 노인, 고액의 보수를 받는 칼럼니스트들, 아울러 성대한 연회에 참석은 했으나 한쪽 구석에서 남은 고깃조각만 주워먹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즉 상징적으로나 혹은 선거를 통해서나 이 나라를 지탱하는 10%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떤 생계 수단도 없다. 마크롱의 친구들이 이들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권력의 나팔수로부터 언론 플레이를 꾸준히 받아온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혁명기념일의 정례 인터뷰에서) 자신이 (세간의 평처럼) 신들의 제왕 주피터(Jupiter)가 아니라 (원료를 주물러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대장간의 신(神) 불칸(Vulcan)에 더 가깝지 않냐고 했다. 마치 북한 방송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분명 프랑스다. 그리고 인터뷰어도 심지 굳은 프랑스 언론인 카롤린 루였다. 내 생각에 마크롱은 주피터나 불칸이 아니라, 굳이 로마 쪽 인물을 꼽는다면 네로나 칼리굴라에 가깝다. 이 나라는 로마 유적처럼 곳곳이 허물어진 폐허가 됐으며, 선거 때 ‘스타트업 국가’를 내세우며 프랑스를 차세대 IT 국가로 만들겠다던 대통령은 이 나라를 제3세계 후진국으로 만들었다.
최근 몇 년간 ‘주변부의 프랑스’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 사실 표현 자체는 더없이 적절하나 개념에 있어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여기에서 ‘주변’이라는 말은 ‘도심의 주변부’라는 의미로 이해할 게 아니라 국제정치경제학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여기에서 주변부란 국제적인 분업 관계에서 중간 위치에 놓인 국가로서, 비용 삭감으로 비교 우위를 내세우며 사회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를 의미한다. 이런 개념 정의는 일명 ‘신흥국’들에 적용되며, 마크롱과 그 친구들의 ‘주변부화’ 작업은 ‘비 신흥국’의 상황에서 이뤄진다. ‘네로’ 황제에 가까운 우리의 지도자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 스트라스부르의 크루스(CROUS, 대학생활지원센터) 측이 개최하는 대회가 하나 있는데, 입상한 학생들에게는 두 달간 무료 식사가 제공된다.
- 스트라스부르 지역 대학의 연말 방학이 2주간 연장된다. 이 지역은 날씨가 유난히 추운데, 대학에 난방 재정이 없기 때문이다.
- 프랑스의 영아 사망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 보건의료 체계가 붕괴 직전이다. 코로나 사태 발발 직후나, 현재나 지속적으로 병상이 줄고 있다. 브라운 보건부 장관은 인력 부족으로 병상을 폐쇄했다지만, 병상이 줄고 인력유지가 힘들어진 탓에 직원들이 떠난 사실을 장관은 정녕 모르는 걸까?
- 공교육도 붕괴 직전이다. 학교에 애정을 잃은 선생들은 결국 교편을 내려놓고 학교를 떠났다. 30분 속성 면접으로 교사를 채용하는, 바야흐로 ‘Job dating’의 시대.
- 의료진 못지않게 직업 자부심이 높던 초등학교 교사들도 일을 그만두고 있다.(1)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면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무너진 탓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장도 있다. 신자유주의 비즈니스 논리가 뼛속까지 파고든 학교는, 번지르르한 엘리트 계층을 꿈꾸는 이들 손에서 점점 비인간적인 조직이 돼간다.
- 의료체계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됐던 프랑스의 유치원과 초등 교육이 동반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 프랑스 최대 요양시설 운영업체 오르페아(Orpéa)는 ‘개방된 시설’로서 노인을 ‘존경’하고 항상 ‘노인의 곁에 상주’하며,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듣고 따뜻하게 ‘환대’할 것을 약속‘만’ 했다.
- 신생아, 입원 환자, 초등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선생들, 노인들 모두가 소외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네로 황제는 분명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 곁에 서 있었다”고.
- 물론 정부는 실업자들 곁에 ‘함께’하기는 했다. 사람 잡는 잔혹한 실업 보험 개혁으로 말이다. 만일 노예제도가 있었다면 쇠사슬 길이를 두고 협상했을 사람이 추진한 ‘개악’이란 평이다.
- 버스, 기차, 지하철 운전자들도 일을 그만뒀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다.
- 프랑스 전기 기술자의 핵 기술 역량 또한 무너진 지 오래다.
- 화재 탐지 시스템도 엉망이고, 소방대원의 희생이 늘어나는 가운데 소방 재정은 축소됐다. 소방 항공기 관리도 부실하다. 기후 변화가 한창인 지금 참으로 잘하는 짓이다.
- 프랑스 산림청도 무너졌다. 이 또한 기후 변화의 시대에 참으로 잘하는 짓이다. 산림 ‘파괴청’의 수장은 우리의 네로가 임명했다.
- 국립도서관이 망하고 있다. 이곳 수장의 임용계약도 네로가 갱신했다.
- 국립영화센터도 무너지는 중이다. 이곳의 수장? 당연히 우리의 네로가 임명했다. 영화관이 텅텅 비면? 극장을 E-Sports 경기장으로 바꾸면 된다. 이 기발한 생각을 해낸 날, 우리의 네로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 수영장이 썰렁해지고 있다. 학교의 수영교사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공석이 생기면 민간 인력으로 때운다. (수영 문제를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런 ‘사소한 일들’이다. 이 사회가 어느 수준까지 무너지고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 포도밭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 제초제 때문이다. 제초제의 주요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는 아직 포도밭에서 퇴출되지 않았다.
-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다짐했던가?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잃지 않겠다고 했나? 그런데 정부의 법령으로 ‘상위 보호 구역’이 해제됐다. 덕분에 해양 자산의 파괴가 마구잡이로 일어나게 됐다. 환경이 죽어가는 시대에 참으로 잘하는 짓이다.
- 네로의 차관 하나가 브뤼셀에 가서 가장 공격적인 어획 방식(수저에 사는 저서생물에 대한 트롤 어업)의 금지를 반대하고 나섰다.(2) 덕분에 해양 자산의 파괴가 마구잡이로 일어나게 됐다. 역시, 환경이 죽어가는 시대에 참 잘하는 짓이다.
네로의 만행에는 끝이 없다. 전쟁으로 사료 수급이 힘들어진 양돈 농가의 원성도 높아지고, 민간 제트기 분야도 규제 논란으로 시끄럽다.
거리 시위를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
1995년 갸르 드 리옹 역에서 발언대에 오른 부르디외는 그 당시 쥐페 총리의 특별연금제도(공공부문연금제도) 개혁에 대해 ‘문명이 걸린 사안’이라고 했다. 당시 대표적인 좌파언론인이던 로랑 조프랭(전 <리베라시옹> 편집국장), 알랭 맹크(전 <르몽드> 감사), 장마리 콜롱바니(전 <르몽드> 발행인), 에드위 플레넬(전 <르몽드>편집국장, <메디아파르트>창간), 철학자 피에르 로장발롱 등은 이에 코웃음을 쳤고, 부르디외 자신도 스스로의 발언이 너무 멀리 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뒤,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됐다. ‘신자유주의’ 세력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이다. 마크롱 정권과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는 이 정권과 함께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덕분에 임금 체계가 무너지고 공직 사회가 붕괴했으며,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도 사라졌다. 공공서비스는 물론 그에 대한 애착도 이젠 볼 수 없는 세상이 됐고, 직업에 대한 애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회를 지탱하던 뼈대도 흔들리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따르지 않던 그 모든 형태의 공공 조직이 허물어졌다. 땅도, 바다도, 우주도, 마실 공기와 마실 물도, 지구도 파괴됐다. 자신이 질러놓은 불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 시대의 네로는 이제 다음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 또 한 번의 연금 개악이다.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까.
구매력 싸움을 위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위해서도 우리는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는 나가야 한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que Lordon
경제학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Ludivine Bantigny 트위터(https://twitter.com/Ludivine_Bantig/status/1580168216034234370) 참고.
(2) Claire Nouvian 트위터(https://twitter.com/ClaireNouvian/status/1577949080638177281) 참고.
참고자료
* 레닌 노동조합주의 관련 참고자료 링크 : * la startup nation (La French Tech) * 마크롱 = Vulcain, Jupiter * 프랑스 물가폭등 항의시위 * Job dating 관련 * 참고 링크 maitre-nageurs senne demersa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