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의 양날

2022-10-31     엘렌 리샤르 l 언론인

1856년 러시아는 크름전쟁에서 패배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서방과 대적하고 있는 러시아는 크름전쟁 당시 패배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당시 승자들은 러시아에 화평 조약을 강요했다. 이제 러시아의 적들은 러시아의 굴복을 꿈꾼다. 전장에서는 성범죄 등 만행이 계속되고, 러시아는 핵무기를 휘두르며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전례 없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좌파는 제시할 해결책이 있는가? 러시아에 가한 제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과 신흥국의 피해로 돌아왔다.

 

몇 달 전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에 향한 ‘경제・금융전면전’이 매우 쉽다고 믿었다(믿고 싶어했다). “러시아는 대국이고 인구도 많습니다. (…) 하지만 GDP는 스페인보다 조금 위입니다.” 유럽연합 내수시장 담당 집행위원인 티에르 브르통이 3월 1일 유럽의 민영방송 <RTL>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전쟁으로 유럽이 받을 충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서구가 1차 제재 패키지를 시행한 지 6개월이 흘렀고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입은 것은 확실하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3월 러시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8.5%로 봤다. 세계은행은 향후 GDP가 4% 하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추세라면 3월 26일 조셉 바이든 미 대통령이 폴란드 방문 시 발표했던 것처럼 러시아의 경제가 ‘반 토막’이 나기는 어렵다.

유럽연합은 유가 급등으로 두 자릿수대 물가 상승률을 보였다. 9월 말 프랑스는 구매력 보호 조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교육비 예산에 준하는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2,000억 유로 규모의 산업 보호 계획을 위해 프랑스의 3배에 달하는 예산을 배정했다. 영국에서는 2023년 초 물가 상승률이 2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철도파업이 일어났고 온 나라가 마비됐다. 

영국 정부는 GDP의 6.5%에 달하는 예산을 책정하고 가정용 가스와 전기 요금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150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GDP의 6.5%를 상회하는 예산 규모다.(1)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정권 운영을 위해 매달 70억 달러가 필요한데, 위 금액은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무기와 재정 지원은 계산에 포함시키지도 않은 금액이다.

에너지 위기에 더해 팬데믹 이후에 계속된 충격으로 여러 산업분야(화학업, 철강공업, 에너지 산업이나 제지업 분야)가 침체를 겪거나 폐업했다.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아서 수익성이 나빠진 것이다. 일부 기업은 생산시설을 베트남이나 북아프리카 지역, 심지어 미국으로 옮기고 싶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를 대체하고자 공급을 63% 늘리고 유럽과 영국에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2) 루프트한자와 알디, 프레제니우스, 지멘스 등 생산시설 일부를 이전하려는 독일 기업 60곳은 미국 오클라호마의 구애를 받았다. 독일 경제신문인 <한델스블랏>의 칼럼을 통해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오클라호마주의 비교 우위를 투자자들에게 자랑했다.

10월 3일 오로르 베르제 의원은 상사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럽이사회의 순회 의장직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의 의장직은 유럽연합의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사상을 수호할 줄 알았다.” 이미 국민들이 참담한 결과를 목격한 상황에서 베르제 위원의 발언은 비웃음을 샀다. 다수당 소속인 베르제 의원이 칭송하는 유럽의 (상대적) 단일성은 미국의 목표 및 이해관계와 방향만 일치할 뿐이기 때문이다. 고의적인 전략일까, 실패한 변명일까?

 

서방의 금융 제재, 기대에 못 미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충격은 부분적으로 위와 같은 무분별함을 설명해준다. 러시아 공격 다음날부터 독일은 미국이 수년간 요구해왔던 대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개통을 확정적으로 중단했다. 위와 같은 독일의 결정에는 대서양 양쪽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조율한 유럽집행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2월(향후 침공 가능성을 예상해서 제재 패키지를 마련한 날짜)까지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유럽연합 및 회원국들과 일주일에 10~15시간 통화나 화상회의를 했다”라고 한다.(3)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위원장으로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내각 의장을 맡고 있는 비요에른 자이베르트는 미국과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를 오가며 관련 서류를 관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한 소식통은 “유럽연합 역사상 안보 문제에 대해 미국과 이토록 긴밀한 접촉을 했던 적이 없다. 전례 없는 일”이라며 자찬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연합국들은 1차 기습공격으로 대규모 금융 보복 전략에 합의했다.(4) 러시아 은행 7개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루블화 보호능력을 마비시키기 위해 러시아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절반(약 30억 유로)을 동결시켰는데 이는 징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반대로 러시아 은행 시스템은 버텼다. 자본을 통제하고 수출업자들에게 수출대금으로 받은 외화의 80%를 의무적으로 루블화로 바꿀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피해를 줄였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이미 여러 차례 (1988년, 1998년, 2008년, 2014년) 위기를 겪어본 터라 현금지급기로 몰려가지 않았다. 

기습 금융공격의 실패로, 에너지 제재 관련 금기가 무너졌다. 4월 1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저지른 잔혹행위들이 드러나자, 압박이 더 강해졌다. 독일 재무부 장관이 “러시아산 가스는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끊기면, 러시아보다 우리의 피해가 크다”라고 하자,  자크 드로르 에너지 센터의 센터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답했다.(5) 하지만 러시아를 대체할 다른 공급처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인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GDP의 2%p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더 이상 전쟁을 벌일 돈이 없다는 것”이라며 냉정하게 말했다. 

 

에너지 금수조치로 러시아 루블화 가치 급등

4월과 5월에 채택된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조치(러시아산 석유 90%에 대해서는 즉시 적용하고, 가스에 대해서는 시간차를 두기로 했음) 때문에 러시아는 오히려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금수조치 이후 대체 공급처(노르웨이, 알제리, 미국)를 찾는 발길이 쇄도했다. 그 결과 석유 가격이 급등했고 수출량 감소가 상쇄됐다. 석유만 따졌을 때 러시아는 2022년에 월평균 2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2021년 월평균 매출은 146억 달러 규모였다).(6) 타격을 입기는커녕 “러시아는 현금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고 국제금융연구소(워싱턴 소재)의 엘리나 레바코바 부수석 경제연구원은 말했다.(7)

그녀는 2월에도 “(루블화) 평가절하와 외환보유고 접근 관련 불안 및 향후 러시아 금융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 가능성”을 예측한 바 있다.(8) 탄화수소 연료 가격 상승에 힘입어 루블화 환율은 4월 말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80루블/1달러)했고 이후 루블화 가치는 급등했다.

제재로 인한 부메랑 효과로 유럽에서 긴장이 고조됐다. 이탈리아나 그리스와 달리 독일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서 낮은 금리로 빚을 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로존 내 갈등을 유발했다. 프랑스를 포함해서 24개국이 합의한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두고도 불화가 일어났다. 해당 24개국은 유럽이 미국을 비롯한 천연가스 공급처에 가격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이 경제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거나 유럽연합이 약해지면 안 된다.”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이 의회에서 한 발언인데, 그는 위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듯 했다. “우리는 우리의 협력국인 미국이 액화천연가스를 자국 내 가격의 4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없다.”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는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면 가뜩이나 가스가 부족한 유럽시장에서 가스 확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가격상한제를 거부했다.

틀림없는 사실은 러시아가 아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경제 구조적 취약성은 진행 중이다. 탄화수소 연료와 관련해서 손실을 메우기엔 아시아로는 부족하다. 중국은 미국의 보복조치에 노출될까봐 서구 기술에 대한 금수조치를 풀지 고민 중이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 외교정책 대표는 ‘전략적 인내’를 요구했다. 하지만 2023년에 러시아 경제는 더욱 침체될 것인데 그때 보렐 대표는 ‘효과적인’ 제재를 결정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가에 달렸다.

러시아군의 패배를 원하는가? 푸틴 정권의 종말을 원하는가? 이란이나 북한에 실패한 구속 조치들이 러시아에 먹힐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일부 국가들은 세계 11위 경제 규모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이자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인도는 전통 무기 구매에 러시아산 석유도 대량 주문했다(1일 약 100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국가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이 큰 국가이지만, 바이든 미 대통령이 7월 14~15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향후 ‘결과’가 있을 것이라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 연합체-역주)에서 대규모 감산을 결정하면서 러시아와 협력하고 석유 가격상한제를 방해했다.

 

신흥국가들, 미국・서방의 러시아 고립전략에 반대 

이는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바르샤바에서 극찬한 “군사력에 필적하는 피해를 줄 수 있는 이 새로운 경제 지배 기술”의 역설이다.(9) 세계 2위 석유수출국이자 사료와 밀 등 핵심 제품의 주요 공급국인 러시아에게 해당기술을 적용하면서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전 세계 ‘혈액순환’에 지장을 줬다. 국제통화기금의 보고서는 “시장 통합이 보편화되면서 제재로 인한 충격이 세계 경제로 확산되는 경로가 확대됐다”라고 설명했다.(10)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한 국가들이 필수품을 완전히 수입하는 신흥 국가들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들 국가는 러시아산 수출품에 대한 압박이 장기화되면 국제수지 위기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과 협력하지 않는 국가를 통해서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이 증가하면서 러시아를 완전 고립시키겠다는 목표는 빛이 바랬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10월 초 딱 한 번 국민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일방적이고 표적화된 제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제법에도 어긋납니다. 제재 조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저해했고, 유럽을 포함해서 취약 계층의 인권을 침해했습니다.”(11)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동(프랑스는 양국의 만남을 이미 도발로 받아들였다)에서 제재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에 식량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서구에게 식료품 분야를 제재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제연합도 “기근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 철수 후 약 2,000만 명이 심각한 식량부족에 직면했다고 세계식량기구는 전했다. 

제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생명을 아직 구하지 못한 채, 이미 죽이고 있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언론인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National policies to shield consumers from rising energy prices’, 브루겔(Brugel) 연구소, 2022년 9월 21일.
(2) <Les Échos>, Paris, 2022년 10월 4일. 
(3) ‘Weaponisation of finance: how the west unleashed ‘shock and awe’ on Russia’, <Financial Times>, London, 2022년 4월 6일. 
(4) Mathias Reymond et Pierre Rimbert, ‘Qui gagne la guerre de l’énergie 에너지 전쟁,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6월호. 
(5) ‘Malgré Boutcha, les Européens peinent à sanctionner le gaz russe 부차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러시아산 가스 제재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The Huffington Post>, 2022년 4월 5일. 
(6),(7)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22년 8월 30일.
(8) ‘War in Ukraine Could Cause Sizable Contraction for Russian Economy, IIF Says’, <The Wall Street Journal>, 2022년 2월 28일. 
(9) 2022년 3월 바르샤바 연설 중에서. 
(10) Nicholas Mulder, ‘L’arme des sanctions 제재의 무기’, IMF, 2022년 6월.
(11) ‘Lula y Bolsonaro sobre Ucrania y las sanciones contra Rusia’, <Noticias del mundo>, 2022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