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인들과 문명인들의 충돌?
그들과 우리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서방 지도자들은 결정적인 선택을 했다. 이 전쟁을 국제연합헌장과 국제연합 회원국의 영토 보존 존중원칙에 반하는 ‘군사 침공’으로 보고 대응하기보다, ‘타협이 불가한 두 문명의 충돌’로 각색한 것이다. “러시아와 서방 전체의 싸움”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주장이 “서방 전체 대 러시아”로 순서만 바뀐 채 그대로 사용됐다. 자유주의 언론은 곧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되풀이했다.
이 전쟁은 맞아야만 움직이는 인민들로 가득한 독재국가와, 생기와 용기가 넘치고 진보적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자유 민주주의 간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 악과 선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명백하게 독재주의자와 민주주의자 간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9월 13일, 마크롱 대통령 진영 인사인 유럽연합 의회 의원 나탈리 루아조가 한 말이다.
1991년, <TF1> 기자 샤를 빌뇌브는 걸프전에서 연합국의 침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문명 세계와 아랍인과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1) 프랑스 공영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문명화된 세계와 러시아인 간의 전쟁으로 연출하고 있다. 2022년 8월 30일, <프랑스 앵테르> 방송에서 방송인 레아 살라메는 영화 <콤프로마트(Kompromat)> 소개를 위해 영화배우 질 를루슈를 초대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러시아의 정신과 사회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와 그들, 즉 우리 서방 국가와 러시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문화 격차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데요. 영화를 보면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요원 중 한 명이 배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우리 러시아가 얼마나 너희 서방 국가를 경멸하는지 상상도 못 할 거다. 얼마나 너희들이 쇠퇴하고 타락했는지 봐봐. 너희는 겁쟁이야. 약한 놈들, 하찮은 것들이야. 우리가 너희를 짓밟을 거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걸까요?”
러시아 사람들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근동지역 사람들을 자극할 법한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논란을 의식했는지 를루슈는 잠시 침묵한 후, 방송인의 열성적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화는 곤란할 듯합니다. 모든 러시아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2주 후, 우리는 이렇게 집단에 책임을 돌리는 시각을 <르몽드>의 2022년 9월 15일 자 기사에서 또 발견할 수 있었다. <르몽드>의 칼럼니스트 실비 코프만은 발트 3국, 우크라이나, 폴란드의 엘리트 정치인들이 러시아 국민 모두를 ‘회개’시키고자 얼마나 노력하는지 기탄없이 적었다. 그녀는 누가 이 범죄에 대해 해명할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인가? 러시아인가? 아니면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 이 전쟁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인가?”
유럽의 외교 정상들 간에는 이 전쟁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신념이 지배적이다. 유럽연합의 외교 안보 정책 고위 대표인 호세프 보렐은 지난 10월 13일, 브뤼헤에 있는 유럽 외교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냈다.
“유럽은 정원입니다. 우리가 이 정원을 건설했죠. 모든 기능이 잘 돌아갑니다. 인류가 만든 정치적 자유, 경제적 번영, 사회적 연대가 가장 잘 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에덴동산 밖 세계의 대부분은 정글이고, 이 정글은 이 정원을 언제 침략할지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정원사들은 정글로 들어가야 합니다. 유럽인들이 외부 세계에 훨씬 더 많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글에서는 온갖 수단으로 우리 정원을 침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개한 이들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겠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es Nouveaux chiens de garde (새로운 경비견)』, Raisons d’Agir, Paris,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