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불만의 인디언 서머’

야당의 무력감

2022-10-31     마크 르노르망 l 폴 발레리대학 교수

전기세 납부 거부, 항만, 우체국, 제조공장, 철도 파업 등 영국의 ‘불만의 여름’은 가을로 이어졌다. 영국 전역이 경제, 정치 위기에 함몰되고 있다. 9월 6일 취임한 엘리자베스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사임했고, 그 뒤를 이어 42세의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리시 수낵이 보수당 신임대표 겸 79대 영국 총리가 됐다.

 

영국에서 여름부터 전례 없는 파업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7월 물가 상승률은 10.1%를 기록하고 9월에 더 상승하는 등 1982년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펠릭스토우와 리버풀의 컨테이너 항만, 철도, 우체국, 대도시의 공공 교통, 특히 제조업 분야 공장 등 노조 조합원들은 압도적 다수가 파업을 지지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파업 예고만으로도 노사 간 협의가 도출되기도 했지만 공공 교통, 항만 산업, 철도 분야는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1972년의 ‘영광의 여름’, 2022년의 ‘불만의 여름’

수십 년 지속됐던 온건한 분위기는 다시 노사 간 마찰이 시작되면서, 과거 보수당 집권을 가능하게 한 이른바 '수구지향적인 쟁점들’이 우선됐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그렇다면 노동당과 노조의 관계가 다시 돈독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

영국 언론은 바로 1978~1979년 ‘불만의 겨울’에 빗대어 ‘불만의 여름​'을 들먹인다. 당시 노조는 파업으로 제임스 캘러헌이 이끄는 노동당 정부의 긴축정책에 맹렬히 맞섰다. 오히려 2022년의 대대적인 파업은 1972년 '영광의 여름'을 상기시킨다.(1) 당시 에드워드 히스의 보수당 정부가 급여인상 상한선을 책정한 것에 반대해 탄광, 철도, 항만을 비롯해 건설, 제조업 분야까지 대규모 파업이 이어졌다. ​그 무렵 영국 경제는 1960년대 이래 통화 위기와 불황으로 인한 탈공업화의 전조가 퍼져나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민간 산업 분야에도 노사갈등이 시작됐다. 1978~1979년의 '불만의 겨울'은 일종의 바통 터치와도 같았다. 공공 분야의 파업에 이어 자동차와 철도 노동자도 파업에 들어갔다. 1979~1997년 집권당인 보수당은 역사적인 성과를 이룬다. 강성이었던 광산과 인쇄업 분야의 노조가 1980년대 중반 치열한 파업 이후 동력을 잃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전력과 통신 분야의 민영화가 이뤄졌다. 지방자치단체, 교육, 보건 분야는 노사 문제의 중심이 됐다.

최근 일련의 파업이 더 의미 있는 것은 노동자들이 마가릿 대처와 존 메이저 총리 시절에 제정돼, 그 후 노동당도 이어받아 보수당이 2010년 이후 더 강화했던 반 노조법안을 거스르고 파업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공장 점거, 연대 파업, 퇴직연금보호 요구 등 노동자들의 일반적 요구사항을 금지했다. 이를 거스르면 노동자는 해고되고, 노조는 소송에 휘말렸다. 그러나 결국 파업으로 노동자들은 더욱 조직화 됐으며 그 틀을 다져 나갔다.  

조합원들의 단체교섭권, 파업시 조합원 과반수 투표· 50% 이상 찬성, 주요 산업 분야의 선거인단 40%​의 파업 찬성 등의 제도적인 기본 원칙을 지켜야만 했다. 봄부터 노조가 대거 참여한 파업은 큰 소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지속됐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제도적인 제약으로 인해 노조가 영향력이 있는 산업 분야로 파업이 국한됐던 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경제활동인구 중 노조 가입률은 2021년 23.1%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안 보이는 불균형이 있다. 공공 분야에서는 50%이상의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는 반면, 민간 부문에서는 13% 미만에 그친다.(2) 그런 이유로 임금 협상은 민간 부문, 운수, 항만, 제조, 우체국 등의 소수 조합원의 활동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노동자 계급은 정말로 돌아왔을까?

그러므로 철도 노동자들의 주요 노조인 철도, 해상 및 운송 노동자 전국 노동조합 (RMT)의 대표 믹 린치 (Mick Lynch)가 영국 전체의 노동자 계급을 대표해 투쟁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노동자 계급이 돌아왔다 (​The working class is back)” 라는 구호와 함께 돌아온 믹 린치는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33만 명의 사망자를 속출한 엄격한 노사정책이 영국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며,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외쳤다.(3) 1980년대 이후 노조의 쇠퇴와 함께 노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에서 배제된 현 상황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노조운동은 경제불황과 재정위기가 닥쳤던 2007~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4) 

2008년 고든 브라운을 끝으로 내각을 내어준 노동당 정권에서 공기업 노동자의 임금 협상을 위한 파업, 아웃소싱과 경쟁력 강화 등의 이유로 다른 유럽 대륙 국가의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했던 정제 공장에서 있었던 격렬한 파업 등은 보수 언론이 ‘불만의 여름’을 대서특필하게 했다. 2010년 가을에서 2012년 봄 사이 보수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했던 연정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공공 서비스 부분 노조는 대대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였으며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도 결집하게 됐다. 

 

브렉시트와 스코틀랜드 독립 이슈, 영국 좌파와 노조 분열

2012년 2월, ‘런던을 점령하라(Occupy London)’ 시위대의 본부가 해체되는 등 사회적 불만이 잦아들면서, 스코틀랜드에서는 국가적인 이슈가 등장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주요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 (Scottish National Party)이 2011년 5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다수당이 되면서 당시 스코틀랜드 총리 알렉스 새먼드는 국민투표에 붙일 것을 공표했고 2012년 10월 스코틀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는 그로부터 2014년 말 전까지 스코틀랜드 자치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데에 합의했다.

얼마 후 2013년 1월 데이비드 캐머런은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할 경우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을 것인지, 탈퇴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로써 길고 긴 논쟁이 시작됐다. 한편에서는 국가주의자들이 스코틀랜드 독립과 유럽연합 가입 반대 등을 주장하며 국가 존재론적인 사안을 양극으로 몰아가고, 영국의 좌파와 노조를 분열시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분열 현상은 2012년 이후 침체된 노사 문제와 맞물려 2015년 역사상 가장 낮은 파업 일을 기록하고 노사 이슈에 있어서도 상당수 서민층이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1980년대 이래 좌파 정당으로 자리를 굳히며, 노동당에 대한 실망한 표심을 끌어안았다. 2011년 스코틀랜드 총선 당시 글래스고우와 에딘버러의 서민층에서 입지를 굳혀 갔다. 독립을 지지하기에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지지한 것도, 독립을 반대하기에 노동당을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2014년 9월 18일에 실시된 국민투표는 유권자의 84.6%라는 압도적인 참여율 속에 44.7%가 독립을 찬성해, 국가적 사안에서 스코틀랜드 정치권의 새로운 양극화가 드러났다. 영연방이 유럽연합에 남을 것인가에 대한 2016년 국민투표 또한 새로운 양극화 현상을 야기해 적어도 그로부터 2020년 초반까지는 브렉시트에 찬성과 반대, 이 두 개의 진영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유럽연합에 대한 이슈가 특히 노동당을 난감하게 했던 것은 1980년대 이래로 소위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경제 정책에 맞서 보호주의적인 유럽의 경제 공동체에 연대했던 것에 반해 좌파 진영은 유럽식 자유주의에 미온적이었다. 노조 측의 좌파 진영은 철도, 해상 및 운송 노동자 전국 노동조합이 유럽연합 탈퇴를 찬성하며 결성한 무역 연합사회연대 (Trade Unionist and Socialist Coalition)를 지지하며, ‘유럽연합 반대, 민주주의 지지 (No2EU – Yes tp Democracy)’ 동맹을 결의해 공산당 등의 기관들과 함께 2009년 유럽연합 총선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5)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파장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남아 있었지만, 2023년 시행하려던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계획은 2019년 총선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 의해 마치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처럼 변질되면서 그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보수당은 다시금 ‘국민의 당’이 되는 꿈을 꾸며 영국 북부지역의 분리를 막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보건분야의 위기는 공공의료 분야와 시장경제 실패에 대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부터 노사갈등이 점진적으로 심화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노사갈등의 새로운 국면이라 함은 노조와 노동당의 동맹관계가 붕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1900년 노동운동을 의회의 테두리 안으로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창당된 노동당은 주요 노조들의 강력한 조직력과 재정적 지원으로 좌파의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 이런 돈독한 관계는 노동당 정부가 노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특히 야당이 됐을 때 노조 요구에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치 못하면 불신으로 변질됐다. 노조는 2015년, 2017년, 그리고 2019년 선거에서 노동당을 위해 모든 지원을 쏟아부었다. 제레미 코빈은 2015년 자신이 수장으로 당선됐던 당 조직에서 선거 바로 직전까지 당원들에게 공격 받은 반면, 민간 산업 부분 주요 노조인 유나이트의 사무총장인 레오나드 맥클러스키로부터 공공연히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자가 득세하는 노동당, 노조의 신뢰 잃어 

그러나 ​키어 스타머가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고 코빈의 시대를 마감함으로써 노동당과 노조의 긴밀했던 관계에 분열이 왔다. 노조의 주요 임원들은 기꺼이 노동당과 거리를 뒀다. 닐 키녹, 존 스미스, 토니 블레어 등 1980~1990년대 노동당 출신 총리는 신자유주의로 선회했으며, 특히 최근 당수에 선출된 스타머는 노동당에 대해 노조의 독립성을 부르짖는 노조 대표들의 주장에 맞서게 된다. 몇몇 분파는 ​극좌파 정당을 지지하기로 결정한다. 2004년부터 노동당을 배제하기로 했던 철도, 해상 및 운송 노동자 전국 노동조합​이 바로 그 경우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당에 연대하고 있는 조직도 있다. 데이비드 워드는 노동 해방을 공약으로 2005년 우편조합 (CWU) 서기장으로 당선됐다. 유나이트는 샤론 그레이엄이 2021년 맥 클러스키에 이어 사무총장으로 당선돼, 노동현장에서 행동방침을 바꿨다. 노동당 지도부의 태도가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스타머 노동당 대표 임기 초반에는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 내각 의원들이 철도 조합원의 피켓 시위에 가는 것을 금지하면서 노동당이 사측 지도부의 가장 친한 동맹으로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폭발한 민심을 담기엔 역부족인 노동당

여론 조사는 중도층의 민심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금융 시장을 살리기 위해 내놓았던 엘리자베스 트러스 총리 내각의 여러 시도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부자들에게 유리했던 비(非)금융소득에 대한 조세 감면은 그 도화선이 됐으며 에너지 상한가 등의 정책은 결국 민심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케르 밀번 박사에 따르면 9월 초 발표된 일련의 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약 1500억 파운드 정도에 달한다.(6) 

‘납세 거부(Don't pay)’ 캠페인은 수십만 가구가 결집하도록 했으며 ‘이만하면 충분하다(Enough is Enough)’를 구호로 하는 연대는 조합과 협회들, 노동당 내 좌파 의원들이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주장의 기반이 됐다. 신임 재무 장관 제레미 헌트는 2022년 10월 17일 반노조 정책이 될 긴축안을 발표해 또다시 노조 연대를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마거릿 대처에 이어 여성 총리로 관심을 모은 엘리자베스 트러스 총리가 민심 이반으로 불과 44일 만에 사임했고, 그 뒤를 이어 보수당 신임대표 겸 총리가 된 42세의 리시 수낵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 것인가? 또한 노동당과 노조의 선택은? 

 

 

글·마크 르노르망 Marc Lenorman
몽펠리에 폴 발레리 대학교수. 영어와 영국 문명학을 강의하고 있다.

번역·류정은
번역위원


(1) Ralph Darlington, Dave Lyddon, 『Glorious Summer : Class struggle in Britain』, London, Bookmarks, 2001
(2) 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 <Trade Union Membership, UK 1995-2021 : Statistical Bulletin>, 2022년 5월 22일
(3) David Walsh, Ruth Dundas, Gerry McCartney, Marcia Gibson, Rosie Seaman, ‘Bearing the burden of auterity : how do changing mortality rates in the UK compare between men and women?’, <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 2022년 10월호, London / Sanjay Basu 와 David Stuclkler, ‘긴축정책이 사람을 죽일 때’(Quand l'auterite t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0월호.
(4) Tony Wood, ‘영국 사회 운동 혼수상태에서 벗어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0월호.
(5) Owen Jone, ‘사회주의에 분노, 우파에 투표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0월호.
(6) Keir Milburn, ‘Don't pay took down Kwasi Kwarteng’, <Novara Media>, 2022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