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주의의 최면에 걸린 이스라엘

2022-10-31     샤를 앙데를랭 l 기자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종교적 민족주의 정당들이 이스라엘 총선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이들의 사상은 이데올로기의 파괴 작업과 맞물려, 이스라엘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은 유대교적 특성 수호를 위해 보편주의와 민주주의를 저버릴 것인가?

 

불과 3년 남짓한 기간, 금년 11월 이스라엘 총선까지 다섯 차례의 총선이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종교적 시온주의 정당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우파의 약진이 보이는데, 특히 18~25세 인구에서 두드러진다. 여론조사는 벤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연정이 총 120석 중 71석,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네타냐후의 연정에서는 베자렐 스모트리치의 종교적시온주의당과 이타마르 벤 그비르의 유대권력당(Otzma Yehoudite)이 11~14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는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이런 변화의 핵심 원인은, 이스라엘 사회 일부에 뿌리내리고 있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다. 현재 이런 흐름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 하나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요람 하조니로, 미국과 유럽의 극우파 세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하조니의 『The Virtue of Nationalism 민족주의의 미덕』은 2018년 9월에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돼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특히 미국 보수주의 진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 하조니는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껴 2년 전에 이 책을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하조니의 이 저서는 전 세계 민족주의자들의 교과서로 떠올랐으며, ‘트럼프 독트린’의 외교정책 노선을 결정했다.(2) 헝가리에서도 빅토르 오르반 대통령이 이 책의 내용을 주기적으로 인용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조니의 이론은 샤를 모라스의 통합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반유대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보편주의의 거부, 계몽주의 사상,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 원칙 등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하조니는 유럽 연합에 대해 신성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의 한 형태이며, 히틀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제국주의자였다고 주장한다.

하조니는 자신의 저서가 큰 인기를 얻자, 그 여세를 몰아 워싱턴에 에드먼드 버크 재단을 설립했다. “서구권과 그 외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를 강화”하고자 설립한 단체다. 영국의 정치인이었던 버크는 1790년에 프랑스 혁명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재단의 공동 대표인 데이비드 블로그는 1,000만 회원을 보유한 미국의 기독교 단체 ‘이스라엘을 위한 기독교인 연합’의 대표를 역임했다.

2022년 6월에 버크 재단은 재단이 표방하는 사상을 정리한 ‘민족주의와 보수주의의 원칙 선언문’을 발표했다.(3) 프랑스 독자들은 이 선언문을 읽으며 페탱주의를 떠올릴 것이다. 페탱이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선언문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국민 국가의 전통이란, 애국주의, 용기, 명예, 충성, 종교, 지혜, 가족, 남성과 여성, 안식일(Shabbat), 이성, 정의를 올바르고 공적으로 지향하는 데 필요한 원칙들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런 미덕들이 우리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는 보수주의자다.” ‘신과 공공 종교’라 명명된 제4조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곳에서는 공공 생활이 기독교에 기반해 이뤄져야 하며, 국가와 공공기관 및 사설기관들은 기독교의 도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유대인과 기타 소수 민족은 보호돼야 한다.”

하조니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부 시절부터 종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4년 봄의 어느 날 저녁, 랍비 메르 카한은 250명의 유대인 대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유대인방위연맹(JDL)을 창립한 카한은, 미국에서 테러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준비했다는 혐의로 이스라엘에서도 몇 차례 투옥된 인물이다. 카한은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제 막 이스라엘 국회(Knesset)에 입성한 참이었다. “우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중략) 랍비 카한은 우리의 삶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유대인 지도자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4) 

그러나 하조니는 JDL의 폭력적인 정치적 성향에 동조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JDL의 창립자 카한은 1990년 암살당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카한의 신메시아주의는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땅에 온 것은 서구적인 국가가 아닌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서구의 일시적인 가치가 아닌 유대인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이른바 진보주의적인 사상도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해줄 수 없다.”(5)

 

극우파 정치인과 국수주의 작가의 연합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카한을 만나고 5년 후, 미국에서 한 여성의 남편이자 아이 4명의 아버지로 살던 하조니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중심부에 엘리 정착촌을 만든 이들을 만났다. 하조니는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교에서 정치철학 논문(1994년 발표)을 쓰면서 <예루살렘 포스트>의 편집국에서 일했다. 영어로 발행되는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는, 캐나다 출신의 언론재벌 콘래드 블랙이 인수한 후 극우성향으로 바뀌었다. 데이비드 바르 일란 당시 편집장은 이스라엘계 미국인 하조니의 필력을 높이 평가했고, 리쿠드 당의 당수인 벤냐민 네타냐후에게 하조니를 소개했다. 

하조니는 『A Place Among the Nations 국가들 사이의 공간』의 편집에 참여했다. 후에 총리가 된 네타냐후의 계획이 담긴 책으로, 히브리어 버전은 1995년에 출간됐다. 이미 이 책에서부터 하조니는 역사를 자신의 이론에 끼워 맞추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많은 역사학자들의 의견과는 달리, 135년에 바르 코흐바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유대인을 추방한 것은 로마인이 아니라 637년 이슬람교가 탄생하던 무렵에 아랍인들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6) 이 책에서 하조니의 영향력이 드러난 부분이 또 한 군데 있다. 네타냐후의 발언을 든 대목이다. “이스라엘 좌파는 1세기 전부터 유대 민족을 괴롭혔던 고질병으로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좌파와 극좌파 성향의 유대인 운동과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에게 스며든 마르크스주의다.”(7) 1967년 6월 전쟁 이후 이스라엘 좌파가 점령된 영토를 왜 되찾기 원했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하조니는 네타냐후의 미국 측근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 “유대 민족이 겪는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싱크탱크”, 샬렘센터를 1994년 예루살렘에 설립했다. 점령운동기구 네쿠다(Nekouda)에서 하조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 평생의 목표는 마르크스주의와 시온주의의 개념이 이스라엘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더 이상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특히 이스라엘에서 유대 민족의 사상적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8)

그로부터 6년 뒤에 출간된 『The Jewish State. The Struggle for Israel’s Soul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분투』에서, 하조니는 이스라엘의 유대교적인 특성을 거부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폭로 및  분석했다.(9) 이런 음모의 시작은 유대계 지성인들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를 설립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의 설립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유대계 미국인으로 개혁파 랍비이자 평화주의자이고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유다 레온 마그네스와, 아랍인들과의 화합과 2민족 1국가(Binational state)를 주장하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있었다. 

 

이스라엘 사상의 적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유대 신비주의 전문가인 게르숌 숄렘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감히’ 시온주의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활동에서 메시아적인 요소를 약화시키라고 조언한 것이다. 하조니는 숄렘의 조언에 대해, 메시아적인 요소를 약화시키면 시온주의자들의 정치적 주장에서 유대교적인 모든 기반이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하조니의 다음 타깃은 텔아비브대학교의 철학과 교수 아사 카셰르다. 카셰르는 다음과 같은 주장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대 국가를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시민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사회적 성격이 우선시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에서, 국가의 성격은 군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 엘리 정착촌에 거주하기도 했던 하조니는(현재는 예루살렘에 거주) 분노했다. “카셰르는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란 국민은 유대인이고 국가는 보편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는 결국 유대교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하조니의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이스라엘의 유대교적인 특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셈이다. 하조니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적’은 그밖에도 많다. 우선 대법원 판사인 애런 버락이 있다. 버락은 헌법 개정의 책임자이자, 유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인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다.”

이스라엘 출신의 유명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조니는 이들이 유대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평화주의 작가 아모스 오즈는 민족주의가 인류의 불행이라고 주장했고,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A. B. 예호슈아는 이스라엘이 정상 궤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그로스만은 “결함은 국가를 고결하게 만들고 따라서 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이스라엘 국민에게 강조했다.

미국 내 공화당원과 우파 유대인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하조니는 최근 몇 년간 메시아적 랍비들과 국수주의 단체들로 구성된, 종교적 시온주의를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적 생태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1998년에 조성된 티크바 기금(Tikvah Fund)은 부유한 미국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이런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2012년에 설립된 코헬레트 정책 포럼(Kohelet Policy Forum)은 종교적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싱크탱크로, <하레츠>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회(Knesset)를 배후에서 은밀하게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10) 이 단체의 로비 활동의 결과로 이스라엘 국회는 2018년 7월 19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차별적 법률을 제정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유대 민족으로 구성된 국민 국가로, 유대 민족은 자주적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자연적,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권리를 이행한다.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 자주적 결정에 따라 이런 권리를 이행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유대 민족뿐이다. (중략) 국가는 유대 민족의 지역(locality) 개발을 국가적인 가치로 여기며, 지역의 조성과 강화를 촉진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샬렘 센터가 생긴 지 24년이 지난 지금, 요람 하조니의 사상이 곧 이스라엘의 법이 됐다. 

 

 

글·샤를 앙데를랭 Charles Enderlin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프랑스어판은 Jean-Cyrille Godefroy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서문은 하조니를 ‘정신적 형제’라고 믿는 질-윌리엄 골다넬 변호사가 썼다.
(2) Michael Anton. The Trump Doctrine, Foreign policy, Washington, D.C., 2019년 4월 20일.
(3) National conservatism : a statement of principles, The Edmund Burke Foundation, 2022년 6월 15일, www.theamericanconservative.com
(4) <Jerusalem Post>, 1990년 11월 9일.
(5) Meir Kahana.『Le défi : la terre choisie (en hébreu) 도전 : 선택받은 땅(히브리어)』, Édition Le centre pour la conscience juive, Jerusalem, 1973.
(6) Benjamin Netanyahu,『A place Among the Nations. Israel and the World』, Transworld Publishers Ltd, London, 1993. 
(7) Édition en hébreu, Yediot Aharonot, Tel-Aviv, 1995.
(8) Nekouda, Ariel, n° 180, 1994년 9월.
(9) 프랑스어판 제목은 다름: 『L’État juif. Sionisme, postsionisme et destins d’Israël 유대 국가, 시온주의, 포스트시온주의, 그리고 이스라엘의 운명』, Éditions de l’éclat, Paris et Tel Aviv, 2007.
(10) The right-wing think tank that quietly ‘‘runs the Knesset’’, Haaretz, Tel Aviv, 2018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