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으로 간 인도의 현악기, 비나(Veena)

집단적 상상 속에서 신화적 과거와 합류하다

2022-10-31     장루이 맹갈롱 l 영화 연출가

인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제작국이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주로 국내 시장과 동남아시아 및 아랍-무슬림 국가의 관객을 대상으로 인도에서 제작된 장편 영화는 연간 1,500~2,000편에 이른다.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영화감독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 1921-1992)가 만든 (작가주의 영화, 독립영화, 때로는 병렬 영화로 불리는) 다른 장르의 영화가 있다.  

‘벵골 르네상스 운동의 후계자’라 불렸던 레이 감독은, 장 르누아르와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향한 동경을 드러내곤 했다. 그는 1955년에 제작한 첫 장편 영화 <아버지 판찰리(Pather Panchali)>(국내에서는 <아푸 제1부-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됨-역주)로 이듬해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열풍이 지나간 후, 프랑스에서 레이 감독의 작품은 영화 클럽이나 영화제, 몇몇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에 그쳤다. 

이 ‘잃어버린 날들’ 동안 레이 감독이 1991년까지 제작한 37편의 영화 중 상당수가 프랑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레이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면, 달이나 태양을 본 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따라서, 이 뛰어난 감독의 영화를 DVD로 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행히 필름 상 프롱티에(Films sans Frontières)에서 레이 감독의 영화 12편을 앞서 출시한 데 이어,(1) 카를로타(Carlotta)에서 6편을 출시했다.(2) 이 중 대부분은 1960년대에 촬영된 것들로, 중산층 도시 여성의 초상화 격인 두 작품 <차룰라타(Charulata, The Lonely Wife)>, <대도시(The Big City)>를 비롯해,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아 인물 탐구가 주를 이루는 작품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레이 감독은 <영웅(The Hero)>에서는 영화의 인물, 즉 스타 배우에 대한 색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며, <신성한 인간(The Holy Man)>과 <코끼리 신(The Elephant God)>에서는 종교적, 혹은 세속적 속임수를 비난한다. DVD 배급사가 좀 더 분발하면, 우리는 레이의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레이 감독은 자신의 여덟 번째 작품 <세 딸들(Three Daughters)>에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직접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함께 작업한 인도 북부 힌두스타니 음악(남부의 카르나틱 음악과는 구별되는)의 거장들, 이를테면 시타르 연주의 대가 라비 샨카르나, 사로드(4개 현을 나무로 만든 플렉트럼으로 퉁겨서 연주하는 인도 전통 현악기) 연주의 대가 알리 악바르 칸, 혹은 우스타드 지아 모히우딘 다가르 등 루드라비나(또는 비나) 연주 거장의 협력을 구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허구의 이미지에 대한 비나의 과도한 표현력 때문에, 그 악기 특유의 아우라를 잃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 인도 문화와 힌두스타니 음악을 소개한 연구자 필립 브뤼기에르는 1970년대에 비나 소리를 접한 뒤 이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독학으로 배운 적이 있다면서,(3) “무굴의 화려함이 반영”된 이 악기의 기나긴 발전사에 대해 설명했다. 비나는 ‘인도 궁중 악기의 꽃’으로 자리 잡기 전에는, 공명체 구실을 하는 호리병박이 달려 있는 막대 모양의 치터였다. 이 단일 코드 악기는 여러 해에 걸쳐 보다 정확한 음을 만들어내는 프렛(Frettes, 현악기의 지판을 구획하는 작은 돌기-역주)과 제 2공명체, 그리고 다른 현들을 갖추면서 발전했다. 1526년 무굴제국이 탄생한 후, 이 악기는 이슬람 궁정이나 힌두 궁정에서 열리던 저녁 음악회에서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그후 인도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섞인 ‘하이브리드 궁중 음악’이 등장하고, 여기에 중앙아시아의 영향도 추가된다. 18세기 초부터 무굴제국이 쇠퇴하고 유럽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음악 양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시타르는 등장하자마자 인도 북부 전역을 장악했으며, 따라서 비나 연주자들의 입지도 점차 좁아졌다. 브뤼기에르는 “비나는 오늘날 인도에서 집단적 상상 속에서 신화적 과거와 합류했다”라고 결론지었다. 

이제 보기 드문 귀중한 수집품이 된 17세기 악기 비나는, 파리 필하모니 음악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글·장루이 맹갈롱 Jean-Louis Mingalon 
영화 연출가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


(1) 특히 2003년작 <아푸> 3부작 특선이 그렇다.
(2) 사티야지트 레이의 영화 6편을 담은 사티야지트 레이 특선 DVD 6종 시리즈, 벵갈어/영어/프랑스어 자막, Carlotta, Paris, 2022년.
(3) Philippe Bruguière, 『Une vina du XVIIe siècle 17세기 비나』, Éditions de la Philharmonie, Paris, 2022년.